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과 고려대학교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 씨 입학을 취소했다. ‘입학취소‘라는 강수는 문재인 정부의 원칙이었다. 2018년 1월 26일, 당시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논문에 기여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논문에 저자로 표시되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입니다. 검증 결과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우, 입학취소 등을 포함하여 원칙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사실 부정 논문, 가짜 스펙 등 2010년 즈음의 대규모 입시 부정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셜록>은 서울대 교수들의 ‘미성년 자녀 부정 논문’을 취재해 보도했다. (관련 기사 보기) 교육부는 이미 ‘그 시절의 미성년 논문’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교육부도 진실을 알고, 서울대는 더 자세히 안다.
이제는 ‘조민 이후‘가 중요해졌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례 없는 대규모 입학취소 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물론이고, 조 전 장관 가족 수사 책임자였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뜨거운 감자를 쥐게 됐다.
‘10년 전의 성공한 입시비리를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손볼 것인가.’
교육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 <셜록>은 지난겨울 만난 사단법인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이사장 엄창섭 고려대 의대 교수 인터뷰를 공개한다. 엄 교수는 “연구부정 교수 및 행위 공표”를 강조했다.
- 논문에 미성년 자녀 이름을 올려 ‘부정 판정’을 받은 서울대 교수들,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더라.
“자신이 연구 부정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남들 다 그러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생각할 거다.”
- 실제로 서울대 농생명과학대학 A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자기 자녀가 연구에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거다. ‘부당한 저자 표시’는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 이름을 논문에 올리거나, 반대로 기여한 사람 이름을 빼는 걸 얘기한다. 여기서 ‘기여’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서 그런 태도가 나오는 것 같다.”
[관련 기사 보기 – 세금으로 딸 ‘스펙’ 만든 서울대 교수.. “너 어느 대학 나왔어?”]
- 학계에서 인정하는 ‘기여’의 기준은 무엇인가.
“연구 윤리에서 ‘기여’는 학술적 기여와 기술적 기여를 말한다. 학술적 기여는 학문 발전에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한 걸 말한다. 기술적 기여는 새로운 연구 방법을 만들거나 뭔가를 발견하는 걸 얘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얘가 영어를 잘해서 논문 번역이 좋아졌어’ 혹은 ‘얘가 데이터를 액셀로 정리해서 좋아졌어’ 이런 정도를 가지고 ‘기여했다’고 판단한다. 이건 기여가 아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판단 기준이다.
예를 들어, 의학 관련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액셀 정리를 부탁하면, 시간은 걸려도 정리는 가능할 거다. 초등학생한테 줘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건 기여가 아니다. 하지만 정리를 하면서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류 기준을 찾아냈다면 그건 중요한 기여다. 즉, 학술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가가 판단 기준이다.”
- 대학 교수가 자기 논문에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올려주는 문제,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미성년 공저자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들이 저자로 들어갈 정도의 기여를 과연 했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 <셜록>이 취재한 한 고등학생은 방학 때 연구에 참여해 SCI급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어떤 고등학생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저 한 학기 동안 토요일마다 연구실 와서 세 시간씩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대학원생 경우를 보자. 석사 학위는 2~3년 하고 박사 학위는 3~5년, 석박사는 합쳐서 3~8년 이렇게 공부 한다. 그 사이에 이 친구들이 논문을 몇 개나 쓸까? 석사 학위 논문 하나 쓴다. 박사는 기껏해야 SCI급 논문 하나 정도에 학위 논문까지 해서 많이 쓰면 두 편 정도다.
고등학생이 주말에 세 시간씩 한 학기하고 SCI급 논문에 제1저자가 될 정도의 일을 3년, 5년씩 하다니, 이 대학원생들은 무능한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결국 연구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거다.
- 연구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공정함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고등학생한테 연구할 기회를 주는 것만큼 자기 대학원생에게 기회를 안 줬거나, 아니면 연구를 방해한 셈이다. 연구실에서 자기가 지도하는 대학원생과 자기 자녀를 차별하는 거다. 연구에 참여하는 건 기회 불균등의 문제다. 자녀 공저자 문제는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아 자기 자녀에게 이익을 줬다’는 측면으로 봐야 한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 서울대학교 A 교수는 부녀 사이가 탄로날까봐, 실제 교신저자였던 자기 이름을 빼고 동료 B 교수를 교신저자로 넣었다. (관련 기사 보기)
“교신저자는 논문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결국 책임질 사람을 바꿔치기한 거다. 연구자 한 명 이름이 들어가고 나간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자신이 교신저자 역할을 해놓고 빠지는 경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거고, 무언가를 숨기려는 의도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 부정행위 중에서도 중대한 거다.”
- A 교수는 B 교수에게 교신저자를 대신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A는 정교수였고, B는 정교수가 되기 전이었다. 위력이 어느 정도 작동했을 거 같은데.
“요즘은 (교수 임용을) 2년 정도 계약하고, 이후에는 재임용을 한다. 재임용 때 심사를 하는데, 심사위원으로 정교수인 A가 들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A 교수가 잠재적인 평가자인 거다. 이해관계가 있는 교수 부탁을 거절할 분이 많지 않다. (재임용) 심사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탁을 거절 못하고 받아들인 교수도 잘못을 한 거다. 이에 대한 책임까지도 본인이 가지고 가는 거다.”
- 교수가 연구 부정을 저질러도 외부에서는 해당 내용을 모른다.
“참 답답하다. 내부에서도 모른다. 옆 교수가 연구 부정으로 징계를 받아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조사가 끝나고 결론이 나와도 부정행위를 공표 못 한다. 개인정보라고 해서 전부 다 막아 놨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돼버린다. 이래서는 교육 효과가 하나도 없다.
나도 연구진실성 조사 업무를 담당해 연구부정 행위에 대해 비밀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사실이 공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정행위 사실과 그에 따른 징계 사항을 알려야 교육효과가 있다.”
- 어떤 교육 효과가 있나.
“부정행위자를 철저히 징계하고, 연구비 회수도 해야 한다. 누가 부정행위하는 교수랑 일을 하겠나. 누가 그 사람을 신뢰하겠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유형의 부정행위가 연구 부정 판정을 받았고, 어느 수준의 징계를 받는지 등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알리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부정을 하면 이 정도 징계를 받는구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교육 효과가 있다.
대학끼리도 이를 공유해야 같은 부정행위에 대해 동일한 징계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지금은 학교마다 양형기준이 다르다. 어느 학교에 있든지 균등한 정도의 징계를 받도록 양형기준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징계 수준이 예측돼 효과가 있다.”
- 다른 나라도 연구 부정행위를 비공개 처리하나.
“미국은 연구 부정 교수 실명과 그 내용, 국가 과제 참여 제한 등 결정 사항들을 모두 알린다. 일본은 실명까지는 안 밝히지만, 소속 대학·연구실을 공개한다. 연구실이 공개되면 누구든지 다 알 수 있다.”
- 연구 부정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일벌백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은 표절 (방지) 외에 전문적인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 대학도 책임져야 한다. 연구 진실성을 확보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 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부정행위를 한 당사자 책임이 가장 크다. 연구자 스스로 자율적으로 연구 진실성을 확보하면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연구자가 학교에 부정 논문을 업적으로 등록했을 때, 학교에서 철회하라고 얘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