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까운 지역구 농지만 취득한 줄 알았다. 더 살펴보니, 행정단위 너머의 농지도 ‘굳이’ 매입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그 배우자는 경기도 의왕시, 충남 당진시, 서산시 등 전국 각지에 흩어진 농지 총 1만2765㎡(2021년 기준)를 갖고 있다.
공직으로 바쁜 자치단체장과 그 배우자는 그 넓은 농지에서 언제, 어떻게 농사짓는 걸까?
실현이 어려워 보이는 계획으로 농지를 매입한 이 지방자치단체장은 김상돈 경기도 의왕시 시장이다. 그는 2002년부터 의왕시의회 의원(4,5,6대)을, 2014년부터는 경기도의회 의원(9대)을 지냈다. 2018년부터는 시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22년 공개한 <관보>에 따르면, 김 시장과 배우자의 재산은 총 36억 원이다. 이들은 토지 약 10억 원, 건물 약 15억 원 어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장남과 차남은 2022년 <관보>에 재산등록 고지를 거부했다.
헌법 제121조에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명시돼 있다.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농지법 제6조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김상돈 의왕시장이 소유한 농지를 지난 4월 6일 직접 찾아갔다. 첫 번째 목적지는 경기도 의왕시 이동에 위치한 농지.
의왕 IC를 빠져나와 차로 약 5분을 더 달리자, 농촌 마을이 나왔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가는 좁은 도로를 기준으로, 양쪽에 밭이 펼쳐졌다. 밭 위에 드문드문 심어진 매실나무에 꽃봉오리 맺혀 있었다.
차에서 내려,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켰다. 위성으로 내려다 본 김 시장의 농지는 머리가 크고 꼬리가 짧은 고래 모양을 닮았다. 지도상 마을 가장자리에 위치한 땅이다.
김 시장의 농지는 잘 정리된 상태였다. 검은색 비닐이 열 맞춰 덮여 있었다. 비닐 위로 작물을 심은 흔적도 보였다. 전문 농업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해당 농지 건너편으로 높게 쌓인 컨테이너가 보였다. 동양 최대 종합물류기지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ICD)다. 김 시장 농지와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 제2터미널은 도랑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철제 컨테이너에 물건을 싣고 내리는 소리가 마을 전체에 퍼졌다.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소리가 컸다. 물류기지에서 날아오는 먼지는 눈으로도 보였다.
농작물을 수확해 이득을 보긴 어려운 땅인 듯했다. 김상돈 의왕시장은 이 땅을 왜 샀을까.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 시장은 2006년 7월 14일 경기도 의왕시 이동 필지 1곳 1673㎡ 규모의 답(2009년 ‘전’으로 지목변경)을 약 2억2000만 원에 매입했다.
OO은행은 2006년 8월 18일 이 농지에 채권최고액 1억4000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통상 대출금의 120%를 근저당 설정비율로 정하는 걸 고려할 때, 김 시장은 농지 매입비 절반을 대출금으로 메운 걸로 추정된다.
김 시장은 농업경영계획서상 2007년 봄부터 ‘자기노동력‘으로 벼농사를 짓겠다고 지자체에 신고했다. 직업란은 빈칸으로 뒀다. 당시 김상돈은 제5대 의왕시의회 의원이었다. 그는 시정 활동을 하며 약 506평 논에서 벼농사를 짓겠다고 밝힌 셈이다.
김상돈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의왕시의원-경기도의원-의왕시장으로 살았다. 의왕시는 농업 중심 도시가 아니다. 지역 정치인 김상돈은 정말 벼농사를 지으면서 농지를 소유한 걸까?
기자는 지난 6일 김 시장 농지 주변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A 씨는 해당 마을에서 1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농업인이다. 기자가 지적도를 보여주며 “김 시장이 이 농지를 직접 농사짓고 있느냐“고 묻자, A 씨는 피우던 담배를 끄며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 농사 짓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리 경작자가) 여기 (농지)로 맨날 출근해요. 김상돈 의왕시장은 공직에 있는데, 어떻게 직접 농사를 지어요.”
농지법상 법률에 정한 예외에 해당될 경우에만 임대차 및 사용대차가 가능하다. 1996년 1월 1일 이후 자경을 목적으로 취득(증여포함)한 농지는 개인간 임대차를 금지하고 있다. 법을 어긴 채 농지를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면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밭에 농약을 치는 주민 B 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저 안쪽 가장자리 농지는 잘 몰라. 그런데 (의왕시장 땅이) 우리 밭이랑 비슷하게 생겼네? 우리 밭도 한 590평 정도 되는데. (기자를 바라보며) 내가 (1평에) 350만 원에 내놨으니까 사세요.”
기자가 “너무 비싸다“고 하자, B 씨는 말을 이어갔다.
“비싸기는 뭘 비싸요. (다른 밭을 가르키며) 여기는 1평에 300만 원에 내놨고, (또 다른 밭을 가리키며) 여기는 (1평에) 250만 원에 이미 팔았어요. 이제 정권도 바뀌어서 이곳 농지도 개발될 걸로 보입니다.”
인근 농지의 시세가 2021년 4분기 기준 전국 농지 평균 실거래가(1평당 25만 원)에 비해 10배 가까이 비쌌다. 인근 부동산을 찾아 김 시장 농지의 시세를 확인했다. 2022년 기준 평당 최소 250만 원에서 최대 400만 원이었다.
김 시장의 농지 공시지가는 2021년 기준 1㎡당 24만7500원으로 매입 당시 공시지가(122,000원) 보다 약 2배 상승했다.
“의왕시 초평동, 월암동, 삼동 모두 신도시 개발이 확정되어서 현재 남아 있는 전, 답이 거의 없어요. 앞으로 남은 농지도 개발될 걸로 보입니다.”
공인중개사 C 씨의 말이다. 실제 국토교통부는 2021년 8월, 대도시권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신규 공공택지 추진계획 발표를 통해 의왕시를 3기 신도시 사업에 포함했다. 3기 신도시 사업이 추진되는 지역은 모두 김 시장의 농지에서 5km 이내에 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도 의왕시에 들어설 예정이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경기 양주 덕정역~수원 수원역을 잇는 GTX-C노선에 왕십리·인덕원·의왕·상록수역 등 4개 역 추가를 예고했다. GTX 의왕역 예정 부지에서 김 시장의 농지는 약 3km다.
토지투자 전문가 D씨는 본인이 집필한 책에서 “토지 투자의 핵심은 개발 부지로부터 3km 이내의 땅을 매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개발지 근방은 이미 가격이 많이 올라 가격 대비 수익률을 얻기 어렵다는 의미다.
기자는 지난 8일 김상돈 의왕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시장은 소유 농지의 대리 경작 문제에 대해 “현재 아내와 아내 친구랑 같이 직접 농사지으며 자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을 주민이 대리경작자로 지목한 사람이 아내의 친구라는 설명이다.
김 시장은 “배우자의 친구와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맺거나, 따로 임금을 주고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식구들이랑 아내 친구가 함께 (농작물을) 심고, (수확물을) 뜯어먹고 있습니다. 농지 크기가 주말체험 농장처럼 작아서 다른 사람한테 맡길 정도의 면적은 아닙니다. (해당 농지에서 나온) 수확물을 판매하진 않아요. 의왕시가 제 고향이고 하니까, 애향심에 농지를 갖고 농작을 하는 거죠.”
농업경영을 목적으로 농지 506평을 약 2억 원에 매입했지만, 수확물은 자가소비 활용에 그쳤다는 이야기. 김 시장은 농지를 다른 목적으로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의왕시가 개발 호재 지역이라는 건) 요즘 얘기입니다. (제가 해당 농지를 매입한) 수십 년 전에는 개발과 무관했습니다. 지금도 (해당 농지 인근이) 개발 여지나 계획이 잡혀 있지도 않습니다.”
김 시장의 주장대로, 배우자와 그 친구의 노동력으로 짓는 농사를 자경으로 볼 수 있는 걸까? 농지법 위반 혐의로 2021년 12월 벌금형을 선고받은 최훈열 전라북도 도의원 판결을 보자.
최 의원은 2019년 12월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의 농지 402㎡를 매입한 뒤 농업경영계획서와 달리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은 채 농지 취득 자격 증명을 발급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아래 이유를 들면서 최 의원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농업경영 노동력의 확보방안’ 중 ‘취득자 및 세대원의 농업경영능력’ 란에는 피고인 본인만을 기재하고, ‘취득농지의 농업경영에 필요한 노동력확보방안‘란에는 ‘자기노동력’ 부분에만 ‘O’ 표시를 하였을 뿐, ‘일부고용‘, ‘일부위탁‘, ‘전부위탁(임대)‘란에는 표시를 하거나 기재를 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은 이 사건 농지를 취득하여 고용이나 위탁없이, 그리고 세대원이 도움도 없이 피고인 자신만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농업을 경영한다는 것으로 전제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신청한 것이다. (중략)
피고인의 변호인은 피고인 최훈열이 전라북도 도의원으로 재직 중이어서 자경할 처지에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부를 고용하여 경작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경우라면 농업경영계획서의 노동력 확보 방안에 ‘일부위탁’ 또는 ‘일부고용‘으로 기재하여야 하지, ‘자기노동력‘으로 기재한 것은 거짓에 해당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김상돈 의왕시장은 자경으로 벼농사를 짓겠다며 발급받은 농업경영계획서와 다르게 현재는 온전히 자기 노동력만으로 농사짓지 않고 있다.
현행 농지법 제6조를 어기고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에 따른 토지가액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서성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변호사는 “시장은 농지법상 위법 행위를 한 사람들에게 농지 처분명령을 내리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책임이 있는데, 그런 책무를 가진 시장이 보유한 농지의 각 현황과 취득시점을 보면, 정치인으로 재임하며 농사를 지을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하였을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농업경영의사’가 없었다고 보아야 하고, 이는 거짓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은것으로서 농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김 시장은 배우자와 함께 의왕시 왕곡동에 180여평짜리 농지를 하나 더 갖고 있다. 2022년 기준 이 농지의 가격은 약 5억8000만 원이다. 김 시장은 과연 자경하고 있을까?
다음 기사는 김 시장의 의왕시 왕곡동 농지 이야기다. 김상돈 시장은 4월 1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기도 의왕시시장 예비후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 시장은 4월 11일 의왕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출마 의사를 밝히며 ”GTX-C 의왕역 유치 등 교통혁명을 이끈 저력을 바탕으로 의왕대전환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철도·도로 교통망 확충, 지속가능한 미래형 첨단자족도시 구성, 주거만족 최고 도시로 발전, 맞춤형 혁신교육 환경 조성, 시민참여형 정책 추진, 친환경 그린도시 실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 시장은 그 넓은 농토에서 농사 지으며, 언제 이 많은 일들을 하겠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