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고 소개하자 목장갑을 끼고 밭을 살피던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애써 감출 게 없다는 듯 태도는 자연스러웠다. 기자는 에둘러 가지 않고 물었다.
-충남 당진에 농지를 갖고 계시잖아요. 직접 농사를 짓는 겁니까?
“그럼요! 1년에 네 번 정도 가서 동네 주민들이랑 같이 지었어요!”
1년에 네 차례 방문으로 농사가 가능했다는 이 사람은 김상돈 의왕시장의 아내 A 씨다. 그는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논농사는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요. 벼만 심어 놓고 가을에 추수하면 되니까.”
그는 봄철 논에 심는 걸 ‘모’라 하지 않고 ‘벼’라고 했다. 논농사의 고단함도 “심으면 추수된다“는 말로 가볍게 퉁쳤다. 당당한 태도와는 달리 농사를 잘 모르는 듯했다.
-전문 농업인이세요?
김 시장의 아내 A 씨는 눈웃음을 지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아니요! 제가 농사 지으면 쌀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논농사는 신경 안 써도 된다더니, A 씨의 입에선 앞뒤가 안 맞는 말이 자꾸 흘러나왔다. 지난 6일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에서의 일이다. 말보다 서류 검증이 필요해 보였다.
등기부등본을 보니, 김 시장은 배우자 A씨와 함께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필지 3곳 총 4,725㎡ 규모(약 1,431평)의 전을 2005년 6월 25일 매입했다. 당시 김상돈은 제4대 의왕시의회 의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김 시장 부부는 2005년 농업 경영을 목적으로 해당 농지를 매입했다. 당시에도 농지법 시행령 제10조(농지취득자격증명의 발급)는 “신청인이 소유 농지의 전부를 타인에게 임대 또는 사용대하거나 농작업의 전부를 위탁하여 경영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 신청인에게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한다“고 명시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농지 취득의 기본 전제는 ‘자경‘이다. 김 시장 부부의 농지취득 관련 서류는 보존기간 10년이 지나 폐기됐다. 같은 법 조항인 농지법 시행령 제7조2항(농지취득자격증명의 발급)을 고려할 때, 김 시장 부부 역시 ‘자기노동력‘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지자체에 신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시장 부부의 의왕시 집에서 당진 농지까지 85km. 차로 빨리 달려도 1시간 거리다. 농지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다. 헌법 제121조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이다.
김상돈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의왕시의원으로 일했다. 그 뒤 4년은 경기도의원으로 살았다. 2018년부터 의왕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바쁜 정치인이 어떻게 의왕시와 충남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는 걸까? 김 시장의 ‘충청도 땅‘을 직접 확인하고자 다음날인 7일 충남 당진시 순성면으로 차를 몰았다.
김 시장 가족이 소유한 농지는 산 근처 깊숙한 곳에 위치했다. 마을에서도 농로를 따라 15분가량 더 운전해야 했다. 김 시장의 농지 주위엔 주택 두 채와 논밭뿐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농지 옆 주택의 문을 두드렸다. 70대로 보이는 할머니 B 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저 땅이 의왕시장 소유지가 맞느냐“는 취지로 묻자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의왕시장 땅이야? 우린 아무것도 몰라.”
김 시장 부부가 농지를 매입한 날로부터 17년이 지났으나, 정작 이웃주민은 김 시장을 모른다고 했다.
이번엔 지붕이 빨간색인 다른 집을 찾아갔다.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C 씨는 경운기에 쓰레기를 담고 있었다.
– (김 시장 소유지인) OO 번지 누가 농사 짓는지 아세요?
“그 땅은 내가 짓죠.”
김상돈 시장 아내 A 씨는 기자에게 직접 농사 짓는다고 했는데, 무슨 말일까.
“시장님 땅인데, 그 사람이 부탁해서 제가 지었어요.”
기자가 “언제부터 농사를 지었느냐“고 재차 물었다. C 씨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사람이 (농지를) 사기 전부터 내가 농사 지은 땅이니까.. 한 20년 정도 됐겠지. (김상돈) 시장은 본 적도 없어. 그 부인이 일 년에 한두 번씩 와서 보고 가요.”
김 시장 부부가 2005년 해당 농지를 매입하기 이전부터 농사를 대신 지어왔다는 C 씨의 고백.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니, 이전 지주도 경기도 시흥에 거주했다.
결국, 김 시장 가족이 소유한 땅에서 20년 가까이 농사를 짓는 사람은 C 씨였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농지법 제6조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농지가 투기 수단이 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C 씨는 어떻게 김 시장 논에서 농사를 짓는 걸까?
“도지를 줘요, 지주(김상돈 시장)한테 매년 농사지은 쌀 다섯 가마니 보내요.”
도지는 남의 논밭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그 대가로 해마다 지주에게 지불하는 쌀을 말한다. C 씨는 “농사가 잘 돼야 1년에 쌀 열댓 가마니를 수확한다“고 했다. 김 시장은 이 중 다섯 가마니를 소작료로 챙긴 셈이다.
농지법에서 정한 예외 사항을 제외하고, 개인 간 계약으로 타인에게 땅을 빌려주는 것도 금지 사항이다. 법을 어긴 채 소유 농지를 임대해준 사람은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 모든 게 불법이란 걸,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가질 수 없다는 걸 김상돈 시장이 모를 리 없을 터. 기자는 지난 8일 김 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경‘을 강조했다.
“제가 직접 농사 지었죠. 동네사람들을 인부로 써서 같이 한 거죠. 벼농사는 그렇게 할 일이 많지 않으니까. 한 번 (봄에 모만) 심고 이제 수확만 하면 되는 거라서, 그렇게 자주 왔다 갔다 할 일이 아니에요.”
“벼는 심어만 놓으면 수확할 수 있다“는 배우자 A씨와 동일한 논리. 김 시장에게 “임차농이 본인을 대신해서 농사 전부를 짓는 게 아니냐“고 묻자, 그는 버벅거리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거를 같이 이야기해서 일할 때 인건비를 주고, 그런 식으로 해놨다는 이야기죠.”
농지법상 ‘자경‘은 최소한 농작업의 2분의1 이상을 자기노동력으로 경작 또는 재배하는 걸 의미한다.
김 시장에게 “농지법에 따라 자기노동력으로 직접 농사 짓는 게 맞냐“고 재차 묻자, 내용이 모호한 일명 ‘유체이탈’ 화법 대답이 나왔다.
“네. 그렇게 알고 있어요”
일명 소작료로 “쌀 다섯 가마니를 받은 적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자가 자경 여부를 다시 묻자 김 시장은 “(충남 당진에) 왔다 갔다 한다“며 오락가락한 반응을 이어갔다. 기자는 다시 물었다.
-왔다 갔다가 아니라 직접 농사를 지었는지 궁금해서요.
김 시장은 지쳤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어떤 농사든 간에 다 사람 쓰고 일당 주고 그래요. 다 혼자 어떻게 짓습니까? 농사를….”
의문이 풀리지 않은 기자는 마지막 질문으로 “당진 농지를 왜 샀는지” 물었다. 김 시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때(2005년) 당시에 의왕시의원 재산 등록을 하면서 현금이 있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돈으로 ‘농사 짓는 땅을 사자’ 해서 알아보니까, 이쪽(의왕 지칭) 땅은 값이 너무 비싸서 그 돈 갖고는 못 사더라고요. 돈에 맞춰서 (당진 농지를) 산 거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보유 현금에 맞춰서 산 농지에서 고용인력을 활용해 자경해왔다는 주장. 하지만 C 씨는 “김 시장 배우자가 1년에 한두 번 농지를 둘러보기만 했다“고 기자에게 고백했다.
농지법 제57조에 따르면 농지를 소유할 목적으로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은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에 따른 토지가액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변호사는 18일 기자와 통화에서 “(김 시장은) 농사 지을 의사가 없었으면서 농지를 취득했고, 이후에는 임차인에게 도지를 받으며 개인적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이는 명백한 농지법 위반이며 땅 투기까지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서성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처음부터 농지 전부를 자신이 자경하지 않고 현지인에게 위탁경영할 목적으로 매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경하지 않았다면, 이는 거짓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은 경우에 해당되는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시장 부부는 왜 자꾸 “벼농사는 손이 많이 안 간다“고 말하는 걸까? 기자가 직접 전문 농업인에게 그들의 주장을 ‘크로스 체크’ 했다.
“1년에 네 번 오가며 논농사를 지으려면, 한 번 갈 때마다 열흘씩 있으면 모를까 산술적으로 불가능하죠. 농사를 얼마나 같잖게 보면 그런 말을 하겠어요. 의도가 뻔하잖아요. 시장님이 나랏일 하기도 바쁠 텐데 왜 농지를 사서….”
조병옥 전국농민회총 부산경남연맹 의장의 말이다. 모든 취재를 마치고 나서야 김상돈 시장과 그의 아내가 왜 그렇게 오락가락, 애매한 대답을 했는지 이해했다. 농사를 짓지 않았으면서, 지은 척 하려니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정부고위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22년 <관보>에 따르면, 충남 당진의 해당 농지의 현재 가액은 1억 2천만원 상당이다.
김 시장과 배우자는 해당 농지를 작년 8월 장남에게 증여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농지 투기 의혹이 불거진 이후의 일이다.
C 씨는 “김 시장 장남과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올해 봄부터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농지 임차료는 일 년에 쌀 5가마니(쌀 1가마니에 18만원)로 합의했다.
자경도 하지 않은 김 시장 부부가 장남에게 농지를 증여하고, 장남은 다시 그 농지를 1년도 안 돼 타인에게 맡겨버린 상황. 김 시장 부부 때부터 이어져 온 임차농이 여전히 같은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기자는 반론을 듣고자 지난 12일 오전 9시경 김 시장의 장남이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센터를 찾아갔다. 장남은 기자의 어떤 질의에도 “아버지 관련 일에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힘들다. (기자가) 직접 아버지에게 물어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김 시장은 지난 11일 의왕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는 같은 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기도 의왕시시장 예비후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이름을 올렸다.
<셜록>은 지난 15일 자 “10년간 주차장처럼..” 시장님의 막나가는 농지 전용” 기사를 통해 김상돈 의왕시장이 농지를 무단으로 전용해 10년 동안 주차장처럼 활용한 사실을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