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소유 농지에 도로가 지나가게끔 예산을 짠 세종시의회 의장은 행사 시작 4분을 앞두고 현장에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의장은 행사장을 찾은 주민들에게 허리 숙여 악수를 청했다. 기자가 명함을 건네자, 그의 얼굴이 금세 굳었다.
“감사원에서 시의원들에 대한 징계 처분을 요구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모친 소유 농지에 ‘셀프 예산‘을 편성했다가, 감사원 지적으로 ‘셀프 징계’ 처지에 놓인 김태환 세종시의회 의장. 그는 기자를 피해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기자도 그를 따라 올라가며 물었다.
“의장님, 이해 충돌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친 소유 농지, 정말 모르셨어요?”
이 의장은 기자를 무시한 채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170평의 대강당 안에는 약 240석의 자리가 준비돼 있었다. 그는 기자를 피해 4열로 나눠진 복도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갔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던 이 의장, 카메라를 향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이 의장은 자리에 앉아서도 기자를 외면했다.
“아직 행사 시작 전이니까 한 말씀만 해주세요. 감사원에서 (본인에 대해) 징계 요구를 통보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이 의장은 기자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어 화를 꾹 누르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습니다. 전 (인터뷰) 동의하지 않으니까요. (행사장에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제4대 세종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취임식이 세종문화원에서 열린 4월 26일 오후 1시 56분의 일이다. 이태환 의장(조치원읍)은 재선 세종시의회 의원이다. 2022년 5월 현재 제3대 세종시의회 후반기 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국민 세금으로 본인 ‘엄마 땅‘에 도로를 냈다가 딱 걸렸다. 이런 골목대장 방식의 엉터리 기초의회 활동 문제점을 감사원도 최근 지적했다.
감사원은 세종시의회의 ‘도로개설 예산편성 심의 과정의 적정성‘을 점검한 결과, 위법 부당사항이 확인됐다고 지난 4월 20일 밝혔다. 감사원이 감사보고서를 통해 밝힌 ‘세종시의원 부동산투기 의혹’의 내막은 이렇다.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는 세종시장이 제출한 ’2020년 세종시 예산안‘을 2019년 11월 예비심사했다. 산업건설위원회는 계수조정 과정을 거쳐 애초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은 9개 도로개설 예산 32억5000만 원을 신규 편성했다.
이때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대로 3-6호’ 도로가 신규 편성에 포함됐는데, 공교롭게도 이곳은 이태환 의장 모친과 김원식 세종시의회 의원 배우자가 소유한 농지와 맞닿은 땅이었다. 김원식 의원(조치원읍)은 2018년 제3대 세종특별자치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돼 현재 산업건설위원회 후반기 부위원장을 맡은 인물이다.
‘대로 3-6호‘는 1995년 4월 ‘조치원도시계획변경’ 결정에 따라 계획된 도로로, 2024년까지 개설되지 않으면 도시계획 자체가 없어지는 장기미집행도로였다. 즉, 신규 도로개설 안건에 이 의장과 김 의원의 이해관계가 얽힌 셈이다.
땅의 가치는 도로가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건축법상 도로 없는 땅에는 건축 인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도로와 연결되지 않은 땅을 뜻하는 맹지(盲地)가 투자가치 없는 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 의장과 김 의원은 사익과 공적 책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대담하게 행동했다. 두 사람은 2019년 12월, 의회에 이해충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대로 3-6호’ 신규 개설 관련 산업건설위원회의 심의·의결과 본회의에 참여했다.
당시 사무처 관계자들도 참석하지 않은 간담회 형식 회의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 소위 ‘쪽지 예산‘으로 편성해 회의록도 남지 않았다.
구 ‘지방자치법’ 제70조 및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 등에 따르면, 지방의회의원은 본인의 어머니, 배우자 등 친족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안건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상임위원회 위원장 및 의장에게 신고해야 하고 해당 예산 심의에는 참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의장과 김 의원의 ‘셀프’ 예산안은 2019년 12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현재 해당 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셜록>은 4월 21일 문제의 현장을 직접 찾았다.
내비게이션은 막다른 길을 도착지로 안내했다. 도로 위 포클레인이 차 진입을 막았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대로 3-6호’ 개설 예정 땅은 이미 흙과 자갈이 뒤섞여 평지를 이뤘다. 그 위에 일렬로 줄 선 보도블럭이 도로와 농지를 구분했다.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안내판 문구가 눈에 띄었다.
공사장 기준 오른쪽 옆으로 약 500평의 밭이 보였다. 이태환 의장 모친 소유의 농지다. 이 의장의 모친 이OO 씨는 조치원읍 봉산리에 위치한 1필지 총 1,812㎡ 규모의 밭을 2016년 6월 7일 6억4500만 원에 매입했다.
OO은행은 2016년 6월 23일 이 농지에 채권최고액 3억9600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통상 대출금의 120%를 근저당 설정비율로 정하는 걸 고려할 때, 모친 이 씨는 농지 매입비 절반을 대출금으로 메운 걸로 보인다.
‘대로 3-6호‘은 이 의장 모친 농지의 일부를 관통한다. 세종시는 2020년 9월 4일 217㎡ 크기의 밭을 수용하고, 이 의장 모친에게 보상비로 1억2500만원을 지급했다. 이 의장 모친은 나머지 농지를 여전히 밭으로 사용 중이다.
이번엔 맞은 편에 위치한 김원식 의원 배우자 농지로 향했다. 김 의원 배우자 농지는 이 의장 모친 밭에서 불과 다섯 걸음이면 닿는다. 김 의원 배우자의 밭은 잘 정리돼 있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 의원의 배우자 서OO 씨는 2015년 3월 4일 조치원읍 봉산리에 위치한 2필지 총 1,472㎡ 규모의 밭을 4억8,550만 원에 매입했다. 역시 농지 매입비 절반 이상을 대출금으로 메운 걸로 추정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반대편에도 김 의원 가족 농지가 이어졌다. 약 160평짜리 밭 위엔 조선 소나무 네 그루가 심어져 있다. 모두 7m 이상 높이로 컸다. 배우자 서 씨는 농업경영계획서에 2017년 9월부터 자기노동력으로 관상수를 기르겠다고 기재했다. ‘취득자 및 세대원의 농업경영능력‘에는 남편의 영농경력을 20년으로 적었다.
<프레시안>에 따르면, 김 의원은 수천만 원 대의 조경수를 업무 연관성 있는 사업자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감사원이 도로개설 예산편성에 “세종시의회의 위법 부당사항이 확인된다“고 지적했지만, 여전히 의원 가족 소유 농지에 세금이 투여돼 도로가 건설되는 상황.
국토교통부에서 운영하는 ‘토지이음’ 사이트에 들어가 해당 농지의 공시지가를 확인했다. 이 의장 모친 소유 농지는 2022년 기준 1㎡당 29만 원으로 책정됐다. 김 의원 가족 농지는 2022년 기준 1㎡당 약 39만 원을 웃돈다.
인근의 한 부동산 업자는 2022년 현재 실거래가는 평당 약 300만 원이라고 밝혔다. 이 의장 모친과 김 의원 배우자가 농지를 매입한 시점(2015년~2016년) 대비 약 3배 오른 가격이다.
“이 지역은 거의 외지인들이 투기 목적으로 많이 매매했다고 봐야 해요. 인근 주변에 신도시 생긴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2014년부터 거래가 많았어요. 지금은 (부동산에 나온) 매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인중개사 A씨의 말이다. 실제 ‘조치원 서북부 개발지구’ 사업은 2014년 2월부터 조치원읍 봉산·서창·침산리 일원에 추진됐다. 서북부지구 공동주택 신축공사도 올해 1월부터 착공됐다. 해당 지역은 이 의장과 김 의원 가족 농지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다.
A 씨는 ‘대로 3-6호’ 건설을 두고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대로 3-6호) 도로가 건설되어야 할 이유가 없거든요. 바로 옆에 (이미 방향이 같은) 큰 길이 있는데, 이쪽으로 이동이 많으면 몰라도 (대로 3-6호) 도로를 뚫어서 어떤 혜택이 있겠어요. 예를 들어서 이 도로하고 어디 새로운 길하고 연결이 되면 모르겠지만.. 글쎄요…”
기자는 4월 21일 이 의장 부모가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모친 이 씨를 만났다.
“저희가 카센터 운영하면서 철도(경부선) 옆에 살아보니까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나이 육십 넘어서 이제 (카센터를) 그만둘 거니까. 집 짓고 살려고 평생 30년 일해서 그거(봉산리 농지) 하나 산 거예요.”
농지법상 농지는 농사지을 목적이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데도, 모친은 “노후에 집을 짓기 위해 매입했다“고 밝혔다. 혹시 이태환 의장이 사전에 개발 정보를 알려준 걸까? 모친 이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카센타 손님이 마침 (조치원읍 인근에 농지) 나온 게 있다고 설명해줘서 산 거예요! 우리 아들이랑은 (농지 매입이) 상관이 없는데, 다들 왜 자꾸 결부시키는지 알 수가 없네. 도로가 날 만하니까 난 거죠.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누가 (도로) 내달라고 한다고 도로가 만들어지나요. 아들 빽이 그렇게 좋겠습니까?”
이 씨는 기자가 묻지도 않은 이 의장 성품을 언급했다.
“우리 아들 성격이 ‘요만한 것‘도 자기 이득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성실한 사람인데, 내가 농지 사가지고 아들한테 누가 되어서 진짜 너무 속상해요. 아들이 의원이라는 이유로 (이런 의심을 받는 건) 너무 부당해요.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렇게 취재하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진짜 억울합니다.”
이 씨는 “앞으로도 해당 농지를 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기자는 같은 날 김원식 의원 배우자의 자택을 찾아갔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4월 27일, 김 의원 자택을 재차 찾아갔다.
김 의원은 오전 8시께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집 밖을 나섰다. 기자가 그에게 다가가 ‘농지’ 단어를 꺼내자, 그는 발끈했다.
“할 말 없어요. 비켜요.”
김 의원은 차도를 가로지르며 본인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기자는 “이번 감사원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따라가며 물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명함만 받아달라“는 기자의 말을 무시한 채 차를 몰아 현장을 벗어났다.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의원은 감사원 조사 때 자신들의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 “‘대로 3-6호‘가 모친 소유 농지를 지나거나 맞닿아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 이태환 의장
- “‘대로 3-6호‘가 어디에 위치한 도로인지, 배우자 소유 농지가 어디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고, 이해관계 직무회피 소명 규정을 알지 못했다.” – 김원식 의원
감사원은 “도로개설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을 야기했다“며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세종시의회 의원에 대한 징계를 의장에게 요구했다. 아래는 감사 보고서 결과 중 일부다.
“관계 법령과 대법원 판례 및 유권해석 그리고 도로개설이 일반적으로 토지의 지가 상승 등 경제적 가치의 변동을 유발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신규 도로와 맞닿아 있는 토지를 소유한 의원의 어머니 또는 배우자는 해당 예산 심의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개인으로서 의원의 예산 심의와 관련한 직무 관련자에 해당하고, 해당 안건은 의원의 어머니 또는 배우자와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의당 세종시당(위원장 이혁재)은 이번 감사원 발표를 두고 “의장은 본인의 셀프 예산 편성으로 셀프 윤리특위 상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웃음거리가 됐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면서 “그동안 여러 부정부패 의혹과 이에 따른 징계 요구에도 이를 무시하고 제식구 감싸기로 일관한 세종시의회는 깊이 반성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세종시당(위원장 강준현) 윤리심판원은 작년 1월께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의원에게 각각 ‘당원자격정지’ 1년 6월과 2년의 징계를 내렸다.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의원은 6월 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의장과 김 의원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신청을 아예 포기했다.
세종경찰청은 조선 소나무 무상 취득에 따른 금품수수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받는 김원식 의원을 2021년 8월 검찰에 송치했다. 업무상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농지를 매입한 혐의에 대해서는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의원 모두 불송치했다.
경찰은 “내부정보를 이용한 입증이 어려워 불송치했고, 관련성 여부 수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한 걸로 알려졌다.
한편, 감사원은 ‘사무처 관계자 불참석 및 회의록 미작성 사항’에 대해 “모든 논의 과정에 사무처 관계 공무원을 참석시키거나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해야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어 해당 행위 자체만으로 위법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