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강간범은 전자발찌를 찬 채 한 여성을 강간했습니다. 피해자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강간범은 범행 현장에서 약 2km 떨어진 자기 집에서 인터넷으로 음란물을 보며 경찰을 기다렸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교도소 갈 작정으로 저지른 일이니, 도망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전자발찌는 “나 여기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구속을 각오한 강간범은 집에서 대기하고. 자수만 안 했지, 체포는 시간 문제였습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흘렀습니다. 경찰은 오지 않았습니다. 열흘이 가고, 음란물을 수없이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에서 별탈 없이 13일을 보낸 강간범, 흉기를 들고 새로운 범행 대상을 찾아 다시 거리로 나갑니다.

그는 어느 길목에서 다섯 살, 네 살 남매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여성 장주영(가명. 당시 38세)을 눈여겨 봤습니다. 두 아이를 태운 승합차가 떠나고 얼마 뒤, 강간범은 장 씨를 공격했습니다. 비명 소리에 이웃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강간범은 출동한 경찰이 보는 앞에서 장 씨에게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그렇게 한 여성이 살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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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상습 강간범 서진환, 2012년 8월 20일 서울 중곡동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10년 전 사건을 다시 거론하는 건, 한 물음에 대한 법원 결론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자발찌 추적을 안 한 경찰, 정말 장주영 살해에 책임이 없을까?”

장 씨의 남편 박귀섭 씨는 고개를 젓습니다. 그는 두 자녀와 함께 2013년 2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서진환이 강간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경찰이 전자발찌 위치추적만 했으면 장주영은 살해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2012년 8월 20일 장주영(가명)을 살해한 서진환. 사진은 현장검증 모습이다. ⓒ 연합뉴스

1,2심은 박 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과실이 배상을 할 만큼 크지는 않다는 겁니다. 박 씨와 두 자녀는 2017년 말,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대법원은 여전히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 판단대로 경찰은 크게 잘못하지 않았고, 여성 장주영은 그저 지독하게 운이 나빴던 걸까요? 먼저 이 사건 2심 판결문을 봐야 합니다. 재판부는 장주영이 살해되기 전, 국가가 7개의 잘못을 범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습니다. 

①우범자 관리 잘못 ②대면접촉 횟수 부족 ③우범자 일일감독 소견 지연 입력 ④서진환의 재범방지를 위한 치료 등 필요한 조치 미이행 ⑤개인휴대용단말기(PDA)를 이용한 불시출장 미실시 ⑥위치정보 활용에 대한 사전 교육 및 지도-감독 미흡 ⑦전자장치 피부착자의 위치 정보 미활용

서진환은 21세부터 41세가 될때까지 14년을 교도소에서 살았습니다. 범죄 이력은 이렇습니다.

  • 1991년 3월 강간, 강간미수. 징역 2년
  • 1997년 1월 강간치상. 징역 5년
  • 2004년 특수강도강간. 징역 7년

이런 서진환이 2011년 세상에 나올 때 전자발찌를 찬 건 당연합니다. 당시 서울보호관찰소가 관리하는 범죄인 1165명 중 서진환은 재범위험성평가에서 9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다시 범죄 저지를 가능성 면에서 ‘상위 1%’의 남자였습니다.

국가는 이런 서진환을 엉망으로 관리했습니다.  

서진환은 2011년 출소 전에 강간범죄만 3회 저질렀습니다. 교도소는 수형자가 출소하면 이름, 주소, 죄명, 형기 등이 적힌 석방통보문을 관할 경찰서에 보내야 합니다. 경북북부제2교도소 측은 서울중랑경찰서에 엉뚱한 내용을 통보합니다. 

이름 : 서진환

죄명 : 절도

형명형기(통산) : 징역 6개월

서진환은 ‘첩보수진 대상자’가 아닌 ‘자료보관 대상자’로 분류됐습니다. ‘재범 가능성 상위 1%의 강간범’이 경찰 관리를 받지 않게 된 겁니다. 이건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국가의 헛발질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인권 침해 논란에도 전자발찌를 채우는 건, 재범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철저한 관리를 위해 국가는 전자발찌 부착자마다 전담 보호관찰관을 둡니다. 

보호관찰관은 전자발찌 부착자와 월 3회 이상 대면 접촉을 해야 합니다. 그 중 1회는 전자발찌 신호를 따라 불시에 찾아가 대면해야 합니다. 전자발찌 부착자의 이동경로를 확인해 위치추적시스템에 ‘일일감독 소견’도 입력해야 합니다. 

서진환은 장주영 살해 2개월 전, 담당 보호관찰관 면담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성폭력을 하는 등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보호관찰관은 ‘재범위험성 상위 1%’ 서진환의 말을 허투루 들었습니다. 장주영 살해 전 약 1개월간 서진환을 한 번도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기록해야 하는 ‘일일감독 소견’도 원칙을 어기고, 보름치를 한꺼번에 입력하기도 했습니다. 

범죄의 시한폭탄은 조금씩 파국으로 돌진합니다. 

서진환은 자기 말을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서진환은 장주영 살해 13일 전에는 한 여성을 강간했습니다. 경찰이 전자발찌 부착자를 대상으로 수사망을 좁힐 거라는 건 보통 사람의 상식입니다. 서진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전자발찌 수사가 유난히 어렵거나 까다로운 건 아닙니다. 범죄 발생 지역에서 전자발찌 신호가 있었는지 문의하면 보호관찰소는 금방 알려줍니다. 혐의자를 특정하려면 법원 영장을 받으면 됩니다. 길어봤자 2~3일이면 됩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걸 안 했습니다. 이런 의문이 듭니다.

‘성범죄 수사에 활용하지 않을 거면, 왜 전자발찌 채웠지?’

중랑경찰서는 서진환이 장주영을 살해한 뒤에야 그의 발목에서 전자발찌를 확인했습니다. 그제서야 앞선 강간 사건 가해자가 서진환이란 걸 알았습니다. 장주영 유가족은 이 대목에서 가슴을 칩니다. 

“성범죄 사건 때 전자발찌 수사를 진행했다면, 서진환을 쉽게 체포했겠죠. 그러면 제 아내가 살해되지 않았을 테구요. 저의 이런  생각이 이상한 건가요?”

지난 6월 초 고 장주영의 남편 박귀섭 씨가 전화통화 때 한 말입니다. 그는 이런 질문도 했습니다. 

“국가배상 소송만 거의 10년째인데…. 이게 그렇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인가요?”

2심 재판부는 국가의 잘못을 여럿 지적하면서도 박 씨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전자발찌를 수사하지 않은 경찰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 직전 범행(강간 사건) 당시 관계 법령 이나 경찰 내부의 수사지침 등 어디에도 전자장치 피부착자의 위치정보 활용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은 없었다. (중략) 한시라도 빨리 범인을 검거하기 위하여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현저히 불합리한 수사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재판부는 보호관찰소의 우범자 관리 문제에 대해서도 ‘다소 문제가 있긴 했지만 현저히 불합리한 일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수사기관 또는 보호관찰소 측의 제반 조치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배상책임을 져야 할 정도 로 객관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국가의 여러 잘못과 실수가 있긴 했지만, 장주영 살해사건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어 배상책임도 없다는 겁니다. 

장주영의 남편 박귀섭씨가 지난 2016년 3월 2일 아내가 잠든 곳을 찾았다. ©셜록

몇 가지 정보를 더 알려주고 싶습니다. 서진환은 1997년 강간치상으로 징역 5년을 복역하고 2012년에 출소했습니다. 그 뒤 19개월 만인 2004년에 특수강도강간을 저질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강간치상은 ‘특정강력범죄’에 해당합니다. 이런 죄로 형을 마친 사람은 3년 이내에 다시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앞선 복역 기간의 두 배가 기본 형량입니다. 서진환에게 적용하면, 2004년에 그는 징역 10년을 선고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검사는 실수로 징역 7년을 구형했습니다. 재판부 역시 오류를 바로 잡지 못하고,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서진환은 운 좋게 3년을 얻은 셈이고, 이 기간에 장주영을 살해했습니다. 국가의 잘못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①검사 – 잘못된 구형

②판사 – 관련 규정을 살피지 못한 잘못된 선고

③교도소 – 출소자 범죄 정보 전달 오류

④보호관찰소 – 우범자 관리 미흡

⑤경찰 – 전자발찌 정보 수사 미활용

연쇄 잘못의 끝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습니다. 1,2심 재판부는 “결정적 인과관계가 없으니 배상 책임도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습니다. 즉, 모두가 잘못했지만 누구도 책임질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정말 장주영 죽음에 국가의 배상 책임은 없을까요?”

유가족이 국가배상소송을 시작한 지 벌써 9년, 대법원에만 5년째 머물러 있습니다. 다섯 살, 네 살 때 엄마를 잃은 남매는 지금 중학교 2학년, 1학년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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