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주공 아파트에 불났다 칸다. 동생 사는 데 맞나?”
사촌 형에게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최고건(당시 23세)은 호주 브리즈번 한 도로 위에서 운전 중이었다. 형이 말한 그 아파트, 동생이 사는 곳 맞다.
최고건은 곧바로 동생과 함께 사는 숙모 강선정(가명. 당시 54)에게 연락했다. 숙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걱정이 커지고 있을 때 사촌 형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말고 들어라. 실화가, 죽었다. 큰어머니도 칼에 찔려가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운전대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고건아, 니 운전할 수 있겠나?”
입이 얼어붙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지된 머릿속에서 한 문장만 재생됐다. ‘동생이 죽었다.’
스무 살 때 가출하면서 포기한 공부가 마음에 남아 택한 호주였다. 이곳에서 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했다. 등록금을 내고 경영학 공부를 시작하려는데.. 동생이 죽었다. 당장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마침 이웃집 호주 현지인이 항공사 직원이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이웃에 찾아가서 빌었어요. 내 동생 죽었으니까 제발 오늘 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표 하나만 구해 달라고.”
이웃이 한국행 티켓을 판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을 연결해줬다. 사촌 형이 티켓 비용을 대 줬다.
아버지 최형렬(가명. 당시 55)은 죽은 딸 최실화(당시 19)의 화장을 미뤘다. “가더라도 오빠는 보고 가야 한다“며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본 걸 후회해요. 그때 동생 얼굴이 우는 표정이었거든요. 슬퍼 보였어요, 동생이・・・.”
동생은 오빠를 만난 후에야 먼 길을 떠났다. 동생 최실화에겐 중복 장애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낮아 시각 장애 1급을 판정받았다. 선천적으로 뇌 병변 장애도 있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앉거나 누워만 지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혼자 머리 감는 걸 어려워했다. 동생은 샴푸 거품이 들어간 눈을 비비며 엉엉 울기 일쑤였다.
“동생이 태어난 뒤로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나셨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몸이 불편한 동생을 키우는 일이 어려웠겠죠.”
엄마 대신 동생을 돌봐주던 친할머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 가 있는 동안 동생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네 살 장애인 동생을 숙모 강선정이 맡아 키웠다.
안인득은 강선정과 최실화가 사는 OO주공 아파트로 2016년 이사 왔다. 안인득은 40X호, 강선정과 최실화는 바로 윗집에 살았다. 강선정이 현관문에서 처음 악취를 맡은 날은 2018년 9월 25일이다. 현관문에 갈색 액체가 가득했다. 똥이었다. 다음날 강선정은 112에 신고했다.
“집에 누가 똥을 칠했는데 의심되는 사람이 없어요.”
오후 10시 20분께 출동한 경찰은 범인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 없이 돌아갔다. 이 무렵 안인득은 망상 때문에 생긴 증오심으로 이웃집 문에 똥을 바를 정도로 조현병 증세가 심했다.
조현병은 다른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조기 발견 후 꾸준히 치료받으면 호전될 수 있다. 안인득은 2010년 처음 조현병을 진단 받았다.
그의 병은 범죄를 통해 최초 발견됐다. 안인득은 2010년 5월 2일, 도로에서 만난 한 운전자를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나를 감시하라고 보낸 사람‘으로 생각해 칼로 찔렀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안인득은 안인득은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약 한 달간 정신감정을 받았다. 조현병이었다. 재판부는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3년을 선고했다.
안인득은 2015년부터 2016년 7월까지 경남 진주의 한 정신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았다. 자기 스스로 병원에 발길을 끊은 후부터 문제가 생겼다. 망상 증세가 다시 튀어나왔다. ‘누군가 나를 해치려 한다‘는 피해망상과 ‘사람들이 나를 증오한다‘는 관계 망상이 심했다. 특히 자기 집 바로 위층에 거주하는 강선정과 최실화에 대한 불만이 컸다.
방화, 살해를 저지른 후에 그가 한 말을 보면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새벽에 윗집에서 ‘쿵쿵쿵’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50X호에 찾아가서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하소연했습니다.”
“위층에서 독한 벌레를 뿌려 대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강선정과 최실화는 최초 신고일인 2018년 9월부터 2019년 4월 사건 발생일 전까지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안인득을 경찰에 신고했다.
2019년 2월 28일 아침, 식당으로 출근하기 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선 강선정은 갑자기 날아온 계란을 맞았다. 아랫집 남자가 자기 집 베란다에 서서 욕설을 내뱉었다. 강선정은 소리쳤다.
“나한테 왜 이래요? 뭐가 불만이에요?”
안인득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왜 자꾸 망치질을 해, 이 x년아!”
이날 강선정은 두 번째로 안인득을 112에 신고한다.
“지난번에 우리 집 앞에 오물 뿌리고 간 남자가 출근하는 저한테 계란을 던졌어요. 그러면서 나한테 폭언을 퍼붓고 있어요. 저를 만나러 내려오겠대요. (경찰이) 지금 당장 와야 해요. 불안해서 못 살겠어요.”
아파트로 출동한 경찰은 안인득을 찾아가 계란을 던진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구도 경고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강선정에게는 “이웃끼리 싸우지 말고 잘 화해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3일 뒤 아침, 집을 나선 강선정은 현관문 앞에서 또 시큼한 구린내를 맡았다. 문 앞에 뿌려진 액체는 간장, 식초, 똥을 섞은 오물이었다. 강선정은 세 번째로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누가 그랬냐“고 물었다.
“제가 지난번에도 신고했잖아요. 아랫집 사람이 계란 던졌다고.”
강선정은 “이웃집 남자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제발 조치를 해 달라“고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은 CCTV 설치를 권했다.
“피의자가 아직 직접 해를 가한 적이 없어서요. CCTV에 그런 장면이 잡혀야 할 것 같습니다.”
강선정은 직접 CCTV를 구매해 현관문 앞에 설치했다.
3월 12일 오후 6시, 안인득은 귀가하는 최실화를 비상계단에서 기다렸다. 누군가 자신을 쫓는 걸 느낀 최실화는 뒤뚱거리는 걸음을 재촉했다. 여러 번 뒤를 돌아보며 빠른 손놀림으로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약 5초 뒤 안인득이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같은 날 오후 7시 50분, 안인득은 양동이에 식초와 똥을 섞은 액체를 담아 강선정–최실화가 사는 집 현관문 앞에 뿌렸다.
“아랫집 남자가 나를 쫓아왔어. 막 욕 하면서. 너무 무서웠어.”
조카 말을 들은 강선정은 네 번째 경찰에 신고했다.
강선정 – “지금 네 번째 신고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CCTV 설치했거든요?
경찰 – “아래층 사람이 그런 겁니까?”
강선정 – “네, 너무 무서워요.”
강선정은 출동한 경찰에게 안인득이 똥물을 뿌리는 CCTV 영상을 보여줬다. 안인득이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인지 알아봐달라고도 부탁했다. 경찰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알아봤는데 깨끗한 사람입니다.”
바로 다음 날 강선정은 아파트 경비원 휴대폰을 빌려서 다섯 번째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강선정 – “어제 아랫집 때문에 신고한 사람인데요. 전화기를 집에 두고 와서 경비 아저씨 휴대폰입니다. 제가 집에서 1층 현관으로 내려오자마자 (안인득이) 욕을 하며 쫓아왔습니다. 저 지금 어떡해야 합니까?
경찰 – 신고자 분 지금 어디 있습니까?
강선정 – “옆 동 경비실에 있습니다. 무서워서 집에 못 올라가겠어요.”
강선정은 경찰이 동행해야 집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불안이 심했다. “되도록 안인득과 만나지 않게 해 달라”는 강선정의 요청을 경찰은 엄중히 경고해달란 뜻으로 이해했다. 안인득에게 ‘다시는 이러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경찰은 돌아갔다.
3월 20일, 강선정은 최실화와 함께 아파트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경찰서 민원실로 향했다. 최실화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경비실이나 관리실에 문의하라“고 제안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직접 경찰서로 갔겠어요? 저는 안인득한테도 화가 나지만 경찰에게 더 분노합니다. 경찰이 왜 있어요? 위험한 사람한테서 국민을 지켜주려고 있는 거잖아요. 누가 봐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위협적 행동을 하는데 아무 조치 없이 갔다는 게・・・.”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경찰은 남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서 응급 입원을 의뢰할 수 있다. 경찰이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정신과에 환자를 호송하면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환자는 72시간 동안 입원하면서 약물 치료 등 필요한 조치를 받고 이후 전문의가 입원 지속 여부를 따진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 희생자 가족이 국가의 책임을 묻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경찰이 강선정과 최실화의 신고로 출동했을 때 안인득의 이상 행동을 감지해 응급입원을 추진했다면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잇따른 신고에도 계도, 훈방 등 경찰의 소극적 조치가 이어지는 동안 안인득의 망상 증세는 심해졌다. 2019년 4월 17일 새벽 4시 25분께 극심한 증상에 시달리던 안인득은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
2분 뒤, 화재를 알아챈 강선정과 최실화는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대피를 위해 비상계단을 내려가던 둘은 2층과 1층 사이 계단에서 안인득과 마주쳤다. 안인득은 “왜 이러냐“는 강선정과 “살려달라“는 최실화를 칼로 찔렀다.
강선정은 계단을 내려가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갔다. 그는 마주치는 사람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제 딸이 위에 있어요. 칼에 찔렸어요. 도와줘요.”
최실화는 2층 복도로 도망쳤다. 안인득은 장애로 인해 걸음이 느린 최실화를 끝까지 쫓았다. 그는 2층 복도 소화전 앞에서 양손에 든 칼로 최실화을 공격했다. 최실화는 사망했다. 목을 찔린 강선정은 성대에 영구 장애를 입었다.
“큰어머니(강선정)께서는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아요. 우리 가족은 그 누구도 그날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아요. 금기어예요.”
보조장치 없이는 걷지 못하던 동생은 숙모와 살면서 혼자서 외출할 수 있게 됐고, 인문계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나중엔 자기와 같은 장애인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 했다.
“먹는 걸 좋아해서 매운 것도 막 먹었어요. ‘오빠 맵다!’ 하면서 얼굴이 빨개져도 끝까지 잘 먹었는데(웃음). 친구들이랑 아이스크림 먹는 걸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던 소녀였어요.”
6월 8일, 동생이 숨진 아파트 근처 카페에서 만난 최고건은 끝까지 울지 않았다. 건설 현장에서 파이프를 설치하는 일을 하는 그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다.
“가장이 되면 제 가족들을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요. 행복하게 해 주고 싶고요. 동생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럴 순 없으니까요・・・”
동생과 숙모는 경찰에 안인득을 다섯 번 신고했다. 동생은 안인득에게 살해됐다. 경찰은 지금 “우리 책임은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