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특권’을 끝내 위헌심판대에 올린 전상화 변호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오래된 관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구나!’
전 변호사는 “판사는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혀도 국가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에 맞서 싸웠다. 법관 권위에 도전하는 전 변호사를 법원은 악성 민원인 취급하며 모욕을 주기도 했다. 도전하고, 패하고, 모욕당하고, 다시 시도하고, 또 패하고.. 전 변호사가 이렇게 보낸 시간이 6년.
결국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법 211민사단독 서영효 부장판사가 “법관특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는 위헌”이라는 전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위헌제청을 했다.
1심 법원 판사가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판례를, 약 20년간 수많은 판사들이 의심없이 따라온 판례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위헌소지가 있다고 헌법재판소로 보낸 것이다. 이런 말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2항은 평등원칙의 구체적 유형으로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중략) 따라서 법관의 직무상 재판행위에 관해 (중략) 사실상 국가배상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법관에 대한 헌법이 인정하지 아니한 특전을 새로이 창설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헌법에도 없는 특수계급으로서의 ‘법관 특전’을 대법관들이 판례로 만들었다는 지적. 대법원 판례를 헌법재판소 위헌심판대에 올린 이번 일은 한 세입자의 소송에서 비롯됐다.
전상화 변호사는 2016년, 임대료 두 달 연체를 이유로 건물주로부터 가게를 비우라는 명도소송을 당한 한 자영업자 변론을 맡았다. 당시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건물주는 임대료 3개월 이상을 연체한 임차인을 상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의뢰인은 2개월만 연체했으니, 전 변호사는 승소를 장담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서울북부지방법원 임창현 단독 판사는 “임대료 2개월 밀렸으니 임대차계약 해지의 요건은 갖추어졌다”면서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법적 근거가 없는 엉뚱한 판결이었다. 이 판결 이후 자영업자는 권리금 3억 원도 못 받고 가게를 비웠다. 전 변호사는 성공보수 400만 원을 못 받았다.
전 변호사는 “임창현 판사의 고의 내지 과실에 의한 위법한 판결로 성공보수를 못 받았고, 의뢰인으로부터 신뢰를 잃는 등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국가손해배상청구 소송을 2017년 12월 제기했다.
전 변호사의 괜한 아집이 아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는 공무원이 고의 또는 과실’로 법을 위반해 시민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민법 제750조에도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은 배상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즉 국가배상법과 민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1)고의 또는 과실 2)위법 행위 3)손해 발생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완성되면 손배배상 책임을 지게 돼 있다. 판사는 공무원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니 당연히 위 법에 따라 배상책임을 따지면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판사들은 거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임창현 판사 역시 책임지지 않았다. 전상화 변호사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줄줄이 졌다.
재판부마다 문제의 그 대법원 판례를 들이밀었다.
“법관의 재판에 법령의 규정을 따르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이로써 바로 그 재판상 직무 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위법한 행위로 되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그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당해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 수행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법관이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게 이를 행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ᅠ2003. 7. 11.ᅠ선고ᅠ99다24218)
즉 법관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고의 또는 과실’에 더해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했다는 것’을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법관 특별대우’는 법에 없는 내용이다. 판사들이 판례를 만들었을 뿐이고, 이를 수십 년째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전 변호사는 이런 방패 앞에서 연패를 당하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만인은 법 앞에 있는데, 대한민국 판사들만 법 위에 있다”며 계속 추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판사 특권에 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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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서영효 판사가 전 변호사의 도전에 응답했다. 서 판사는 지난 6월 30일 위헌제청결정문을 통해 대법원 판례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이렇게 일갈했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가배상법, 민법 등에서는 법관의 재판작용에 관한 불법행위나 국가배상 책임과 관련해 다른 공무원에 비해 판사 개인의 책임을 면책하거나 제한하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 사건 법률조항의 ‘공무원’의 범주를 규율하고 포섭하는 데서 법관과 다른 공무원을 본질적으로 다른 집단이라고 볼 수 없다. (중략) 국가배상책임의 인정요건을 적용함에 있어서도 법관의 ‘고의・과실’과 나머지 공무원의 그것을 다르게 적용하거나 또는 법관의 경우에 한하여 다른 공무원에 비하여 그 책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중된 요건을 새로이 창설해서는 아니된다.”
서 판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을 판사에게 유리하게 해석해 적용하는 건 삼권분립 정신을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의 임무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모든 사안에 대하여 차별 없이 그대로 적용하여야 한다. 비록 법률을 적용한 결과가 못마땅하더라도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입법기관의 법개정을 통하여 해결해야지, 법원이 법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이들 기관을 대신하는 것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서로 분립-견제시킨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남은 물론이다.
(중략) 사법부의 역할은 법이 무엇인지 선언하는 것이고, 잘못된 입법이나 제외-누락된 부분은 새로운 입법을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판사들이 법적 근거 없이 판례로 만든 ‘법관 면책특권’으로 피해 본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셜록>이 보도한 재판거래 피해자 ‘또곤이’,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박홍준 씨 등도 법관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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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했다. 두 사건을 맡은 여러 재판부 역시 ‘법관 면책특권’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서영효 판사는 위헌제청결정문을 통해 사법부 신뢰의 길도 제시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국민으로부터 사법과 재판에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헌법이 법관에게 부여한 신분보장 외에 별도의 특권적 지위를 창설하지 말고, 그러한 지위를 과감하게 내려놓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서 판사는 결정문 끄트머리에 이런 내용도 적었다.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 스스로 법률에도 없는 요건을 새로이 창설하여 국민의 권리행사는 제한하거나 박탁하는 대신 법률을 법률 그 자체로서 제대로 지키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다 기울이는 데서 국민의 기본권 수호자로서 사법권의 독립과 진정한 신뢰회복은 시작될 수 있다.”
전상화 변호사는 서 판사의 결단에 대해 “대법원 판례를 핑계로 기계적으로 판결하던 여러 법관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양심적인 결정”이라며 “서 판사가 세상을 바꾸는 토대가 될 용기를 냈다”고 평가했다.
이제 공은 헌법재판관들에게 넘어갔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을 법관에게 특혜를 주는 쪽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과연 한정위헌 결정이 나올까? 이런 판단 역시 법관의 손에 달렸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한국 사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제도 하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특권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 정신도 곱씹게 됐다. 오래된 관습을 무작정 따르지 않고 의심한 두 ‘이단아’, 변호사 전상화 판사 서영효 덕에 말이다.
이 자체로 큰 변화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