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직후 경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안인득의) 정신 질환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었습니다.”
사람 5명을 살해한 진주 방화살인사건 가해자 안인득.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범행을 저지른 게 아니다.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 사이, 그는 총 여덟 차례 경찰에 신고됐다.
현장에 출동했거나 안인득을 조사한 경찰들은 2019년 4월 17일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이후 기억 속 안인득에 대해 진술했다. 진술에서 신고 사유, 출동 일시, 대처 과정 등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우리는 안인득의 정신 질환을 몰랐다.”
경찰이 진실을 말했는지, 거짓을 진술했는지 지금부터 따져보자.
A 임대아파트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지구대에 신고가 접수됐다. 2019년 2월 28일 오전 7시 10분께, 출근을 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온 강선정(가명. 당시 54)에게 안인득이 계란을 던졌다.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인근을 순찰하던 경위 홍희영(가명)과 경사 김남희(가명)였다.
안인득은 경찰에게 층간 소음 때문에 고통 받다가 계란을 던졌다고 주장했다.
경찰 – “층간소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안인득- “위층에서 곰팡이, 벌레를 잡아 뿌립니다. 몸이 가려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안인득은 경찰 질문에 엉뚱하게 답했다. 강선정은 “우리 집엔 시끄럽게 할 만한 게 없다“고 맞섰다. 경찰은 현장 확인을 위해서 안인득을 데리고 강선정과 최실화(당시 19세)가 사는 50X호로 갔다. 집에는 장애로 몸이 불편한 최실화뿐이었다.
안인득은 “계란 던진 건 인정하지만 사과는 할 수 없다“며 언성을 높였다. 강선정은 울면서 경찰에게 말했다.
“내가 칼이라도 찔리고, 두들겨 맞아야 잡아 갑니까? 칼에 찔리고 죽어삐야 되는가배.”
안인득은 같은 아파트 주민의 집을 불쑥 찾아가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등 이미 몇 번 사고를 일으켰다. 이번이 강선정의 두 번째 경찰 신고였다.
“원래 임대아파트에는 이런 사람이 많아요. 그런 일을 안 겪으려면 이런 데서 살지 말아야지.”
경위 홍희영은 강선정에게 안인득과 화해를 권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강선정이 식당에서 일한다는 것을 안 뒤에는 “식당 아줌마“라 로 지칭하며 “여기 임대아파트로 들어오는 조건은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
정식으로 사건 접수를 요구하는 강선정에게 경찰 홍희영은 이런 말을 하며 만류했다.
“저 사람 구속되길 바라세요? 사건 접수해도 구속은 안 되고 벌금형 정도 나와요. 그렇게 풀려나면 보복할 수가 있어요. 저 사람이 벌금형 받으면 가만 있겠어요? (안인득은) 우리가 봐도 정상이 아니에요.”
결국 강선정은 전화로 아들을 불렀다.
“왜 피해자한테 가해자랑 화해를 하라고 하세요?”
강선정의 아들은 경찰에게 화를 냈다. 홍희영 역시 강선정 아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 경사 김남희의 지원 요청으로 경찰 두 명이 추가로 투입됐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신고자와 싸우는 동료를 본 경위 강민철(가명)은 홍희영과 강선정 모자를 분리했다.
“홍 경위는 저 남자(안인득)를 맡아.”
홍희영은 다른 경찰 한 명과 함께 안인득 집으로 올라갔다. 위층에 사는 강선정이 진짜 벌레를 뿌렸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강민철과 김남희가 강선정과 그의 아들을 맡았다. 이미 홍희영과 대화하면서 진이 빠진 데다 출근 시간을 훌쩍 넘긴 강선정은 사건 접수를 포기했다. 다만 안인득을 격리해 달라는 요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찰이 입원을 요청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안인득은) 응급입원 요건엔 해당되지 않습니다. 입원시켜도 72시간이 경과하면 퇴원 조치 되고요. 다른 방법으로는 행정 입원이 있는데, 이걸 진행하길 원한다면 아파트 주민들의 피해 경위서나 연명 날인이 담긴 탄원서를 마련해서 연락을 주세요. 그럼 저희가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자랑 입원 조치를 의논해보겠습니다.”
경찰 강민철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4조 제2항에 따르면, 경찰은 자해·타해의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발견하면 정신의료기관 등에 진단과 보호 신청을 할 수 있다. 경찰의 요청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관할 지차제 등이 수용하면 행정입원이 가능하다.
“아이고, 경찰 선생님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강선정은 강민철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경찰 네 명은 사건 접수도, 응급 및 행정 입원 요청 검토도 없이 돌아갔다. 이날 홍희영은 강선정과 그의 아들과 싸우면서 감정이 상해 지구대로 복귀한 뒤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이후 이뤄진 조사에서 경찰 김남희는 이런 진술을 했다.
“(안인득은) 층간소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는 경찰에게 곰팡이, 벌레 얘기를 하는 등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이것 외엔 정신 질환을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없었습니다.”
경위 강민철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위층에서 벌레를 잡아 자기 집에 뿌린다는 등 횡설수설하고, 주민들에게 욕을 하는 것으로 보아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생각됐으나 안인득이 경찰 요청에 순순히 응했고, 폭력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으며, 저는 해당 지구대에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돼 정신질환자라고 보지 못했습니다.”
이날로부터 사흘 뒤인 3월 3일, 안인득은 위층 강선정 집 현관문에 똥물을 뿌렸다. 3월 8일엔 같은 아파트 3층 주민에게 욕설을 해 신고당했다. 3월 10일, 안인득은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한 호프집 주인과 손님을 망치로 위협하고 폭행했다.
경찰 – “소지품 확인해야 합니다. 가방 주시죠.”
안인득 – “봐라, 봐. 다 가져가라.”
안인득은 스스로 가방을 열었다. 칼 두 자루, 펜치 등 흉기가 보였다. 경찰은 안인득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안인득은 진주경찰서 형사과로 인계돼 조사받았다.
이때 담당 형사 경위 김선우(가명)는 그의 범죄 경력을 조회했다. 김선우는 불과 두 달 전인 1월, 안인득이 자활센터 직원들을 폭행한 사실을 알았다. 이어 안인득이 2010년 행인에게 칼을 휘둘러 상해를 입힌 사실도 확인했다.
안인득의 소식을 듣고 진주경찰서로 찾아온 친형 안인성(가명)은 김선우에게 말했다.
“인득이가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김선우 역시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경찰 매뉴얼에 따르면 신고접수-현장 출동-사건처리 단계에서 흉기를 휴대하거나 폭행을 저지르는 등 고위험 정신질환자를 발견한 경우 입원 절차를 안내하거나 추진해야 한다. 경남경찰청은 2018년 10월, 이 규정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상 행동(폭행), 흉기 소지, 가족에게 확인한 정신 질환 치료 이력까지. 이미 안인득은 행정 입원 대상자였다. 경찰은 행정 입원을 추진하지 않았다. 며칠 뒤 안인성은 동생의 강제입원을 경찰에 문의했다.
경찰은 “안인득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고, 자해-타해 위험 급박성이 낮아 행정・응급입원 대상이 아니다. 담당 검사에게 알아보라“고 말했다.
‘호프집 흉기 난동 사건’ 이틀 뒤인 3월 12일 오후 6시, 안인득은 또 강선정의 현관문에 오물을 뿌렸다. 강선정은 오후 8시 50분게 경찰에 네 번째 전화를 걸었다.
“CCTV 설치하라고 해서 해 놨는데요. (안인득이) 오늘 오물을 뿌려놓고 애(최실화)를 따라 와가지고 초인종을 누르면서 욕을 했다는데, CCTV 확인할 겸 (같이 집에 올라가주세요.) 저는 무서워서 집 밖에 있거든요.”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CCTV를 통해 안인득의 오물 투척만 확인했다.
“그 사람이 우리 딸래미 학교 마치는 시간 맞춰서 집 앞까지 따라왔습니다. 다시 한번 봐 주이소, 아저씨.“
강민정의 부탁에 경찰은 이렇게 답했다.
“욕설이 CCTV에 찍힙니까?”
경찰은 위층에 사는 안인득에게 찾아가 물었다.
경찰 – “50X호에 오물 뿌린 사실이 있습니까?”
안인득 – “증거 있나요?”
경찰 – “CCTV에 찍혀 있습니다. 왜 뿌리신 겁니까?”
안인득 – “위층 인간들이 쓰레기랑 벌레를 제 집으로 던지고 시끄럽게 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그랬습니다.”
경찰 – “파출소(지구대)로 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안인득 – “싫습니다. 내가 왜 경찰서에 갑니까?”
경찰은 안인득의 인적 사항만 확인한 채 지구대로 돌아갔다. “내가 칼에 찔려야 안인득과 분리될 수 있느냐“는 강선정의 말은 결국 현실이 됐다.
안인득은 칼로 강선정의 목, 어깨, 복부, 오른쪽 손 등을 찔렀다. 안인득은 뇌 병변 장애로 걸음이 느린 조카 최실화를 끝까지 뒤쫓아 칼을 휘둘렀다.
“위에 우리 딸래미(최실화)가 있는데…칼에 찔려서 다 죽게 생겼어…도와주이소….”
강선정은 피가 흐르는 목과 옆구리를 부여잡고 아파트 현관 밖으로 걸어 나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애원했다. 그러다 분리수거장 앞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최실화는 사망했다.
2019년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에 있는 A 임대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건 직후 경찰 책임을 묻는 여론이 커졌다. 사건 발생 다음 날 경남경찰청은 진상조사팀을 꾸려 약 두 달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진상조사팀은 경찰 17명 중 7명을 ‘진주 방화・살인 사건 관련 의무 위반 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2019년 8월, 징계 수위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경찰 조치에 미흡한 점이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징계 수위는 낮았다. 7명 중 5명만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이 중 1명 감봉, 1명 견책 등 2명만이 실질적인 징계 처분을 받았다.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일부 피해자 및 유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중이다. 피해자 및 유가족은 “경찰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아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재판부는 “안인득이 정신 질환자였는지 몰랐다“는 경찰의 말을 어떻게 판단할까?”
<셜록>은 다음 기사에서 진상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처벌 및 징계를 피하고자 무엇을 부인했고,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