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의 이헌승 국회의원(국민의힘, 부산 부산진구을)이 ‘표절률 1위 의원’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이헌승 의원이 2021년 발간한 정책 연구용역 보고서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보고서를 뭉텅이로 베껴 표절률 71%를 기록했다. 이 의원의 보고서는 21대 국회에 이뤄진 연구용역 보고서 323건 중 표절률 70%를 넘는 유일한 사례다.

국회의원들은 입법 역량 개발을 위해 국회 예산인 ‘입법 및 정책 개발비’를 활용해 정책연구용역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소규모 정책 연구용역 보고서 1회에 지원될 수 있는 최대 액수, 500만 원을 주고 만들었다. 해당 연구용역 계약의 상대자는 김진태 현 강원도지사가 이사장으로 있던 사단법인 정치문화연구소다.

이 의원이 표절 보고서를 발간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에도 과거 19대 국회 당시 발간한 국정감사 자료집을 석사학위 논문에서 베낀 사실이 밝혀져 비판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표절률 1위’라는 오명으로 얼룩진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다.

3선의 이헌승 국회의원(국민의힘, 부산 부산진구을)이 ‘표절률 1위 의원’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 연합뉴스

연구수행자 A, B는 2021년 11월 <개발제한구역관리 방안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이헌승 의원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작성했다.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해당 보고서를 검사한 결과 표절률은 71%로 집계됐다.(표절 기준 ‘6어절 이상, 1문장 이상 일치’ 적용) 21대 국회 들어 발간된 정책 연구용역 보고서 323건 중 ‘표절률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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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이 의원의 연구용역 보고서와 표절 대상이 된 원자료의 문장을 일일이 대조했다. 참고문헌 포함 총 50쪽으로 이뤄진 보고서 중 약 30쪽에서 표절 정황을 확인했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표절 부분이 없는 페이지를 찾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해당 연구용역 보고서는 국책연구기관과 지자체 출연 연구기관의 정책보고서 총 두 편을 주요하게 베꼈다. 타인이 쓴 논문에서도 일부를 가져오기도 했다.

보고서는 ‘연구 배경’과 ‘목적’을 밝히는 초반(3~6쪽)부터 논문 내용과 흡사했다. 이 논문은 서울대학교 조경학 박사과정 C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부교수 D가 2019년 12월 발행한 <최근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의 토지이용 정책에 따른 토지이용 변화>다.

보고서는 해당 논문의 ‘연구배경 및 목적’과 ‘연구방법’ 부분을 일부 가져와 짜깁기한 걸로 보인다. 개발제한구역 쟁점과 그에 따른 연구 목적-방식 내용이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대체할 수 있다”, “주목받고 있다” 등의 문장이 “대체할 수 있음”, “주목받고 있음” 등의 형태로 바뀐 정도다.

연구용역 보고서의 나머지 부분은 정책보고서 두 개에서 거의 통째로 가져온 걸로 보인다. 첫 번째 정책보고서는 경기연구원이 2019년 6월 발간한 <경기도 개발제한구역 이용실태와 관리방안>이다. 문제의 연구용역 보고서는 절반 이상을 해당 정책보고서에서 가져왔다.

본문 ‘개발제한구역 정책 및 제도 현황’(9~16쪽)과 ‘개발제한구역 관리정책 방향’(34~43쪽) 부분을 경기연구원 정책보고서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헌승 의원의 표절 용역보고서에선 한 페이지 안에 같은 문단이 두 번 반복된 경우도 있었다. 해당 부분 역시 경기연구원의 보고서에서 표절한 내용이다.

한마디로 ‘복사-붙여넣기’ 범벅이다. 복사(?) 과정에서 실수로 한 페이지 안에 같은 문단이 두 번 반복된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3쪽으로 이뤄진 참고문헌 목록 중 1쪽은 경기연구원 정책보고서와 나열 순서마저 동일했다.

이헌승 의원의 표절 용역보고서(왼쪽)는 경기연구원이 발행한 연구보고서의 참고문헌마저 바꼈다. 총 3쪽으로 이뤄진 참고문헌 중 1쪽은 원자료와 비교할 때 나열 순서마저 동일했다.

이헌승의원실의 연구용역 보고서가 표절한 두 번째 정책보고서는 국토연구원이 2021년 9월 27일 발행한 <국토정책 brief-개발제한구역 훼손지 복구제도 개선방안>이다. 총 8쪽으로 이뤄진 정책보고서 요약본에서 7쪽 분량이 그대로 문제의 보고서로 옮겨갔다. 발췌한 그림 3개도 동일했다. 원자료를 거의 긁어오다시피 해서 정책보고서를 채운 셈이다.

이헌승 의원의 용역보고서(왼쪽)는 국토연구원이 2021년 9월경 발행한 정책보고서를 뭉터기로 베꼈다. 총 8쪽으로 이뤄진 정책보고서 요약본에서 7쪽 분량이 그대로 문제의 보고서로 옮겨갔다.

이렇게 한 편의 논문과 두 편의 보고서를 골고루 베꼈지만, 이 의원이 발간한 연구용역 보고서의 참고문헌이나 주석 등 어디에도 출처는 표기돼 있지 않았다.

‘입법 및 정책 개발비’를 활용해 정책 연구용역을 수행할 수 있게 돕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입법 역량 개발을 위한 것. 하지만 이 의원의 경우에는 법안 발의 시기와 연구용역의 연계성을 고려할 때, 문제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꼭 발간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의원은 2020년 12월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전통사찰, 지정문화재 및 등록문화재에 대한 토지형질변경 부담금을 면제하는 내용이다.

이 의원이 ‘표절률 1위’ 연구용역 보고서를 발간한 것은 그로부터 11개월 뒤다. 이미 약 1년 전에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관리’와 관련한 법을 발의한 상황에서, 심지어 법안 발의 시기보다 이전에 발행된 논문과 정책보고서를 짜깁기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굳이 세금 수백만 원을 들여 발간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런 엉터리 표절 보고서에 쓰인 정책연구비는 500만 원. 소규모 연구용역 1회에 지원될 수 있는 최대 금액이다. 이 의원의 연구용역을 수탁한 계약상대자는 ‘정치문화연구소’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21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후 2020년 8월 설립한 사단법인으로, 해당 연구용역을 의뢰받은 2021년 10월 당시 이사장도 바로 김 지사였다.

2020년 10월 (사)정치문화연구소 창립을 알린 김진태 당시 이사장의 페이스북 글 캡처 ⓒ김진태페이스북

기자는 지난 9월 26일 이헌승의원실에 서면 질의서를 보내 ▲연구용역 보고서 표절에 대한 입장 ▲연구용역비 반환 의사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한 반론을 요구했다.

이헌승의원실은 “연구주제에 대해서만 협의했으며, 구체적인 내용과 결과에 대해서는 관여한 바 없고 표절 여부도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기자는 지난 6일 이헌승의원실에 ▲대표발의 법안과 연구용역 보고서의 내용 차이 ▲법안 발의 이후 같은 소재로 연구용역을 진행한 사유 등에 대해 추가로 질의했다. 하지만 11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헌승 의원의 표절 보고서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의원은 19대 국회 당시에도 표절 보고서를 발간한 이력이 있다. 2013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으로 <철도 폐선부지의 관리제도 개선방안>을 발간했는데, 2012년 발행된 석사학위 논문 <철도폐선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개선방안 연구>를 표절한 보고서였다.

2017년 11월 언론 보도로 이 의원의 표절 보고서 발간 사실이 밝혀졌다. 이 의원은 불과 5개월 전인 그해 6월 인사청문회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헌승 의원이 지난 1월 6일 건설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무대 위에서 큰절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타인의 석사학위 논문을 표절한 보고서를 발간한 것도 모자라, 이번엔 연구용역 보고서로 ‘표절률 1위’의 오명까지 얻게 된 이헌승 의원. 하지만 이헌승의원실은 “관여하지 않았다”, “인식하지 못했다”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월 이 의원은 건설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무대 위에서 큰절을 올렸다. ‘표절률 1위’ 보고서로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도 인정도 반성도 없는 그의 태도에서, 지난 1월 그의 ‘큰절’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정치인은 과연 언제 고개를 숙이는가. 언제 고개를 숙여야 하는가. 부끄러움은 또 다시 국민들‘만’의 몫이 됐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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