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덕 의원(이하 민) : “성별, 학벌, 그리고 지역균형채용 외에 누군가의 청탁이나 지시에 의해 (국민은행에) 부정 입사한 사람은 없습니까?”
이재근 행장(이하 이) : “네, 법원 판결에 그렇게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민 : “의원은 20명 정도가 청탁에 의해서 성적이 조작된 걸로 파악하는데, (부정입사자) 없습니까?”
이 : “특정인을 요 사람(부정청탁자를 의미) 때문에 요렇게 했다는 건 판결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11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오간 질의와 답변이다. 이날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증인 신분으로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민병덕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양시동안구갑)은 이날 이 행장에게, 국민은행의 부정입사자 문제와 그로 인한 채용 피해자 구제 대책에 대해 질의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20년 9월부터 ‘은행권의 정유라, 그들은 왜 당당한가’ 기획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은 부정입사자들이 여전히 은행에 근무 중인 문제를 집중 보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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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망을 좁혀오는 듯한 민 의원의 구체적인 질의에도, 이 행장은 ‘부정입사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답변만 반복했다.
하지만 국민은행 노조는 이 행장의 발언에 즉각 반발했다. 류제강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장은 11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 행장이 ‘판결문상 부정청탁 입사자를 특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1심 판결문을 보면 부정입사자가 명확하게 특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1심 판결문과 판결문에 첨부된 범죄일람표를 보면 부정입사자를 충분히 특정할 수 있는데, 이 행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다는 설명이다. 류 지부장은 “이 은행장을 위증죄로 고발하는 걸 검토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실제로 국민은행 채용비리 판결문을 직접 살펴본 결과, 노조 측 주장대로 특정된 부정입사자들이 일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 2015년 상반기 신입행원 채용 관련
“‘청탁지원자 김○○(실제 판결문상에는 실명으로 적시됨)도 합격했다’라는 취지의 보고를 하고 결재 받아 최종합격자로 선정함으로써 2차 면접전형 심사위원자들로 하여금 위 28명이 정상적인 평가절차를 통해 2차 면접전형에 합격한 것처럼 오인한 상태로 최종합격자를 선발하게 하였다.”
– 2015년 하반기 신입행원 채용 관련
“‘청탁지원자 박○○도 합격하였다’라는 취지로 보고하고, 결재 받아 최종합격자로 선정함으로써 2차 면접전형 심사위원자들로 하여금 지원자 이○○ 등 114명이 정상적인 평가절차를 통해 2차 면접전형에 합격한 것처럼 오인한 상태로 최종합격자를 선발하게 하였다.”
– 2016년 하반기 신입행원 채용 관련
“2차 면접전형 심사위원자들로 하여금 지원자 양○○ 등 48명이 정상적인 평가절차를 통해 면접전형에 합격한 것처럼 오인한 상태로 최종합격자를 선발하게 하였다.”
대법원은 올해 1월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은행 인사담당자들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따라, 판결문에 적시된 부정채용 ‘의심’ 입사자들도 부정입사자로 확정됐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정규직 신입사원 공채에서 190명을 부정하게 채용했다. 이 기간 국민은행 전체 신입사원은 655명으로, 약 3분의 1에 가까운 인원을 부정하게 채용한 것이다.
판결문이 부정입사자 190명 전부를 일일이 특정하진 못했을지라도, 부정청탁 지원자 일부가 판결문에 적시된 건 엄연한 사실이다.
11일 국정감사 현장에서 이 행장도 특정 인물이 판결문에서 부정입사자로 지목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민 : “‘회장님 각별한 신경’ 메모가 있었던 그분은 (국민은행을) 다니고 있나요?”
이 :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민 : “윤종규 회장의 종손녀는 (국민은행을) 다니고 있나요?”
이 : “네, 다니고 있습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부정입사자 A 씨는 2015년 국민은행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했다. 인사담당자들이 관리한 청탁 지원자 명단에서 지원자 A 씨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A 씨 이름 옆에는 “회장님 각별히 신경”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A 씨의 아버지는 김○○ 한양대학교 교수다. 김 교수는 2014년 3월 28일부터 2015년 3월 27일까지 KB금융지주 사외이사였다. 2014년 윤종규 회장 선출 당시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이었다.
윤 회장의 종손녀 B 씨도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인물이다. B 씨는 서류전형 840명 중 813등, 1차 면접 300명 중 273등을 하며 저조한 성적을 보였지만, 2차 면접에서 120명 중 4등으로 합격했다. 경영지원그룹 부행장과 인력지원부 직원이 B 씨에게 최고 등급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2018년 당시 B 씨의 특혜채용 문제가 불거졌으나 검찰은 증거불충분 사유로 윤 회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은행권 채용비리 문제가 불거진 지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이 행장은 11일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대책보다는 회피와 변명에 초점을 맞춘 대답만 반복했다.
민 : “(부정입사자 190명이) 아직 은행에 재직하고 있습니까?”
이 : “은행을 다니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민 : “부정입사자들이 계속 은행을 다니고 있다면 어떻게 청년들에게 공정을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은행이 5대 시중은행 중 가장 실망스럽고, (피해자 구제 관련) 아무런 자료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 “피해자 구제는 누구를 구제할지 특정해야 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공채 지원 당사자들의 자료를 폐기하기 때문에 누가 피해자인지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법원 판결이 해당 직원(부정입사자)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을 확인해주지 않아 취소나 해고가 어렵습니다.”
민 의원은 추가질의 시간을 통해, 변명만 반복하는 이 행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은행은 공기업 수준의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데, 채용비리로 국민들의 신뢰를 배반했습니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은행이 그동안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가 핵심인데,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계속 (국회에) 안 주지 않았습니까. (…) 늦어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법원 확정판결을 기준으로, 우리은행·대구은행·부산은행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한 사람은 총 54명이다. 세 은행은 2020년 9월부터 이어진 <셜록>의 집중 보도 이후 부정입사자 전원을 퇴사시켰다.
대법원 판결을 받은 은행 중 부정입사자가 여전히 근무하고 있는 곳은 국민은행·신한은행·광주은행 3곳뿐이다.
한편, 금융정의연대·민달팽이유니온·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등은 지난 6월 22일 ‘국민은행 부정입사자 채용 취소 및 피해 구제’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바 있다. 진정인들은 약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해당 진정서 관련 회신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지 못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