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처음부터 여자였다

점쟁이는 엄마의 부른 배를 보고 한마디 했다.

“여자애를 낳아야 하는데, 뱃속에 남자애가 잘못 들었구먼.”

엄마는 점쟁이 코앞에서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서야 점집을 향해 침을 ‘퉤‘ 뱉었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배 속의 아이는 남자로 태어나 건강하게 자랐다. 점집에 침을 뱉은 이후 약 20년이 흘렀다. 아들은 대학생이 됐고, 벌써 징병검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군대에 다녀오면 더 씩씩한 남자라 될 거라, 엄마는 생각했다. 어느 주말 아침, 밥상에 앉은 아들이 엄마의 믿음을 엎어버렸다.

“난 군대 못 가.”

엄마는 흰쌀을 씹으며 아들 얼굴을 바라봤다. 딸도 오빠의 눈치를 살폈다.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나 여자가 될 거야.”

눈앞의 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아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뭔 소리냐?”고 묻지 않았다. 밥상이 엎어지는 것을 넘어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묻지 않았다. 올 것이 왔을 뿐이라고 엄마는 스스로를 달랬다.

사실 엄마도 아들을 키운 20년간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말이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들은 여자였다. 여자인 아들, 현실이 그랬다. 세상엔 그런 사람이 있고, 하필이면 그게 내 아들, 아니 내 딸이었다.

아들의 밥상 ‘커밍아웃‘으로 엄마는 한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 대신 술로 배를 채웠다. 점집을 향해 침을 뱉어 벌을 받는 건지, 그때 복비를 덜 줘서 이렇게 된 건지,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다.

‘이혼한 여자로 사는 것도 힘들었는데, 여자가 되려는 아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

엄마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지척에 널린 게 산이었지만 아들 강유영(가명)은 방안을 더 좋아했다.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로봇 장난감을 사줬지만, 아들은 조용히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매 학년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엔 이렇게 적혔다.

“세심하고 여성스러운 성격”

엄마 마음도 모르고 아들은 장래희망에 이렇게 적었다.

“현모양처”

어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여자이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점쟁이가 아니다. 용한 게 아니라, 아이를 제대로 봤다. 어린 강유영은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자고 일어나면 여자가 돼 있을 거야.”

“기도 백 번 드리면 달라져 있을 거야.”

“밤에 요정이 찾아와서 나를 깜짝 변신시켜줄 거야.”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쓴 OMR 카드에 성별 표기란이 있었다. 당연히 ‘여자‘로 체크했다. 선생님은 “잘못 체크했구나“하며 카드를 바꿔줬다. 그게 현실이었다.

하필이면 남자 중학교에 배정됐다. 남자아이들끼리 있는 공간에 들어가자 놀림이 격해졌다. 어떤 아이는 화장실에서 성추행도 했다.

“나랑 한 번 할래?”

강 씨가 중학교 1학년이던 2001년 배우 하리수 씨가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출연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난리가 났다.

“야, 하리수가 꼭 너 같은 사람이래!”

묘하게도 친구들의 놀림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

‘와, 여자가 되는 게 가능한 일이구나, 나에게도 희망이 있는 거네!’

어떤 아이는 벌써부터 돈으로 놀렸다.

“야, 너 어떡하냐. (성전환) 수술하려면 일억 원 든대!”

성전환 수술이라는 것도 있다니! 강유영에겐 유익한 정보였다. 고등학교 땐 다행히 남녀공학에 진학했다. 집에서 멀리 나와 혼자 자취를 해 부모님 눈치 안 보고 ‘여자가 되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 아이들이 알려준 정보(?)와 달리 성전환 수술은 1000여만 원이면 가능했다. 졸업 후 돈을 모아 수술하면 만사가 풀릴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때로 눈에 안 보이는 걸 보는 듯했다. 고교 졸업 무렵, 엄마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너 행동이나 말하는 게 여자 같은데.. ‘게이‘라는 애들이 그런다고 사람들이 그러던데, 넌 아니지? 엄마는 네가 남들에게 놀림당하는 거 싫어. 좀 남자다웠으면 좋겠다. 그게 엄마 마음이야.”

엄마 마음을 확인한 아들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일이 뒤로 밀렸다. 대신 친구에게 먼저 말할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 입학식 날 바로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친해졌다. 그에게 마음을 밝혔다.

친구는 “너는 여자로 사는 게 훨씬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반응했다. 세상에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강유영에겐 하리수를 안 순간만큼 기뻤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었다. 엄마가 말한 ‘게이‘ 중 한 명이었다.

그 친구 이후 두 번째 고백이 바로 집안 ‘밥상 커밍아웃‘이다. 밥 대신 술로 배를 채운 엄마는 괜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유영이 어릴 때 내가 핑크색, 보라색 옷을 사 준 게 잘못이었나? 로봇에서 멈추지 말고 장난감 총, 칼도 사줬어야 했나..?’

술도 괜한 자책도 위로가 안 됐다. 해결 방법을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다. 남편과 이혼한 후 자신이 겪은 괜한 차별의 시간이, 아들의 미래로 보였다. 마음이 저렸다. 하지만 그 아픔이 또 길이 됐다.

“엄마는 네가 살아가면서 받을 상처가 걱정된다. 네가 다시 생각하면 좋겠지만.. 네 인생이니까,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지 어쩌겠냐.“

가족에게 있는 그대로 존재를 인정받는 건 축복이다. 대다수 성소수자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외면당하고 상처 입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강유영 씨는 90만 원을 들고 인근 대도시 성형외과에 가 고환 적출 수술부터 받았다. 동시에 호르몬제 투여를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큰 변화는 없었다. 코밑 수염도 일찍이 레이저 시술로 없앤 뒤였다. 호르몬제 투여 3일째부터 근육량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이전까지 번쩍 들어 올렸던 물건을 들기 어려웠다.

유영 씨는 본격적으로 머리를 길렀다. 호르몬제 투입 이후 가슴이 나오는 등 몸도 여성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남성으로 입학한 대학, 남자 모습으로 보낸 대학생활. 방학 이후 여성으로 학교 가는 게 두려웠다. 대학을 자퇴했다.

두 번째 단계로 가야 했다.

스물두 살 무렵부터 식당, 호프집 등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질 재건 수술 비용을 모았다. 엄마는 아르바이트를 할 거면 진로에 도움 되는 일을 하길 바랐다. 하지만 신분증을 제출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곳은 몇 없었다.

노동을 하며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항의를 제대로 못 했다. 설날을 며칠 앞두고 일하던 호프집에서 벌어진 일이 딱 그랬다. 호프집 사장이 입꼬리 한쪽을 올리면서 말했다.

“야, 맞은편 편의점 사장이 너랑 나랑 사귀는 사이냐고 물어보더라. 왜 너 같은 애를 알바로 쓰냐는 거야. 너 여자 옷 입고 다니는 남자라고, 변태라고 동네에 소문 다 났던데?”

낭떠러지 절벽 앞에 선 느낌이었다. 그 길로 일을 그만뒀다. 월급도 받지 못했다. 딸이 되려는 아들을 인정한 엄마는 용감했다.

유영 씨 대신 엄마가 호프집을 찾아가 “내 자식 월급이라도 내놓으라“고 뒤집어 놓았다. 사장은 유영 씨가 그동안 그릇과 술잔을 수없이 깼다며 그걸 제하고 3만 원을 한 달 치 월급이라고 보냈다.

더는 그 동네에선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강 씨는 짐을 싸 고향 마을로 내려왔다. 이번 기획 1, 2화 주인공 정태연 씨 사례(기사 링크)처럼, 성소수자 정체성이 일터에서 차별의 이유가 되면 당사자는 다음 도전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강유영 씨에겐 엄마의 지지와 응원이 큰 힘이었다. ‘방콕‘만 하는 강 씨를 보고 엄마는 “나가서 다른 일이라도 찾아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병원 업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의료보험 납입 기록 등을 조회하면 겉모습과 달리 법적으론 남성인 걸 알 수 있지만 운 좋게 일을 구했다.

체계적으로 뭔가를 배우면서 일을 하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내가 직업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의료 관련 일을 하고 싶어 다시 시험을 거쳐 대학에 입학했다.

2015년, 두 번째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휴학계를 내고 태국으로 향했다. 강 씨는 한 달 동안 혼자 방콕에 머물며 유방 확대 수술과 질 재건 수술을 받았다. 약 1300여만 원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치질 수술했느냐“고 오해했다.

그만큼 한동안 걷는 모양새가 부자연스러웠다. 바로 법원에 성별정정을 신청했고, 법원은 주민증에서 남성을 뜻하는 ‘1’을 ‘2’로 바꿔줬다. ‘반대 성의 성기 외관을 갖추고 생식능력을 상실한(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제435호 6조 3, 4항)’ 이에겐 일은 그나마 순조로웠다.

새로 입학한 대학교는 기독교 재단이 운영했다. 그래도 대학은 강 씨를 내치지 않았다. 학교 측은 “배움에서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학적부의 성별을 수정해줬다. 교직원에게 “회개할 필요는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말이다.

수술과 법적 성별정정으로 얻은 자신감 때문일까. 학교에서 종종 “언니, 혹시 트랜스젠더 아니야?”라는 말을 들어도 웃어넘기는 여유가 생겼다. 차별과 배제에서 벗어난 강 씨는 조기 졸업을 해 남들보다 빨리 병원에 취직했다.

이 모든 건 가족의 지지와 인정, 수술과 성별정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술한 지 약 5개월 지났을 때였다. 엄마는 “야, 같이 목욕이나 가자“라고 강유영 씨에게 말했다. 훅 들어오는 엄마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야, 아무도 신경 안 써. 빨리 가서 나 등도 좀 밀어주고 그래!”

결정적인 순간마다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버팀목이 돼 줬다. 강유영(현재 31세) 씨는 인터뷰 내내 “나는 운이 정말 좋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때 이런 강 씨를 두고 “쟤는 만날 저렇게 일이 쉽게 풀리냐“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강 씨 사례는 트랜스젠더 세계에서 예외적이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환대가 눈에 띈다. 대개의 성소수자는 사회에서 차별받기 이전에 가족들에게 외면을 당한다.

이 기획 1, 2화에서 소개한 정태연 씨의 예를 보자. 정 씨의 가족을 잘 아는 지인들은 그녀의 언니에게 “네 남동생(정태연 씨) 어디 있느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중국으로 유학 갔다“고 둘러댄다.

경조사 때는 배제가 더욱 노골적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정태연 씨는 장례식에 가도 앞에 나설 수 없었다. 정 씨의 엄마가 그녀에게

“탈의실에서 나오지 말라“

고 명령했다. 이런 정 씨는 자기 엄마가 돌아가셔도 상주 노릇을 못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성별정정을 원한다면 가족과의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없다.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바꾸기 위해서는 부모 동의서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트랜스젠더가 가족과의 인연을 억지로 이어간다.

성별정정 요건을 떠나서라도, 가족, 혹은 가까운 사람들의 지지와 환대가 성소수자에게 왜 중요한지 강유영 씨의 예가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성소수자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일은 아니다. 사회적 인식과 환대 여부가 달라져야 해당 가족도 다른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트랜스젠더, 특히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받는 상처와 사회적 혼란에는 변함이 없을것“이라며 성별정정 요건 완화가 만능키는 아니라는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강 씨에게 모든 장벽이 사라진 건 아니다.

강 씨는 1년 전에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다. 마음을 열지 않는 강 씨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구애하는 남자친구에게 저절로 마음이 열렸다. 강 씨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다“라고 말해도 남자친구는 모두 괜찮다고 했다.

강 씨는 요즘 예식장을 알아보며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남편에겐 과거를 밝힐 생각이 없다. 매 순간 지원군이 돼줬던 엄마는 ‘남의 집안에 큰 상처를 주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상견례 날짜 잡는 걸 미루고 있다. 커밍아웃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강 씨는 “엄마가 스스로 결심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다른 사람들의 성전환 수술과 성별정정에 도움을 주던 강 씨는 결혼을 앞두고 커뮤니티 탈퇴를 고민하고 있다. 남편이 그녀의 과거를 알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제가 그 사람에게 좀 더 열심히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살려고요.”

말은 이렇게 해도 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요 며칠 사이에만 남자친구와 이별하는 꿈을 몇 번 꿨다.

“내가 그 사람에게 아무리 잘 한다고 해서, 지금 내가 하는 짓이 정말 죄가 아닐 수 있을까?”

스스로 늘 묻곤 한다. 그래도 강 씨 마음속 답은 늘 똑같다.

“누군가는 어떻게 그런 큰 비밀을 속이느냐고 손가락질할지 몰라요. 하지만 결혼과 사랑이라는 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뤄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그냥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잖아요.”

강 씨는 지금까지 무사히 여러 문을 통과하고 고개를 넘었다. 그녀는 지금 새로운 문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