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환자는 완강했다.
“남자 간호사는 싫어요. 여자 간호사로 바꿔 주세요.”
백인 할머니의 말이 유난히 아팠다. 게다가 여긴 인종, 성별, 성정체성 등의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 호주가 아닌가.
‘아, 나는 간호사가 될 수는 있어도 여자 간호사는 될 수 없는 거구나.’
이누보(당시 22세) 씨는 작은 수술용 칼 하나를 쥐고 간호 실습 중이던 병실을 빠져나왔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손목에 칼날을 댄 순간, 다른 소수자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친하게 지낸 아르메니안 계 이민자 청소부가 내 피를 닦아내는 중노동을 하겠네.’
간호대학 입학을 위해 호주로 막 건너왔을 때만 해도 이누보(가명, 현재 27세) 씨는 ‘치마 입는 남자 간호사‘로 살 생각이었다. 고교 3학년 때, 담임교사는 간호대에 가겠다는 이 씨에게 말했다.
“뭐 굳이 그런 데를 쓰냐, 다 여잔데 너 혼자 남자일 거 아냐. 가 봤자 어울리기 힘들 걸?”
속으로 비웃었다. 재수를 하며 유학을 알아봤다.
‘영국이나 미국은 아시안이 정착하기 힘들 것 같고.. 캐나다는 춥겠지? 남아프리카는 어떨까.. 에이, 치안이 너무 안 좋아.’
호주의 간호대학을 택했다. 대학 입학식 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갔다.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한인 학생들도 이 씨에게 ‘여장남자‘라는 모진 말을 하지 않았다.
간호대학 1학년 시절, 한 요양병원에 처음 실습을 갔다가 코 밑에 수염난 백인 할머니를 처음 봤다. 병원의 누구도 수염 난 여자를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체질량 지수가 35를 넘으면 의학적으로 비만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게 결코 외적으로 ‘뚱뚱하다(fat)’는 의미는 아닙니다.”
간호학 수업 시간. 강사는 의학적으로 ‘비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지, ‘뚱뚱하다‘와 같은 외모 차별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뚱뚱하다는 말을 들어 온 이 씨에겐, 뒤늦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한 차례 자살 소동 이후, 이 씨는 학교 상담센터에서 정신상담을 받았다.
“여자로 살게 되면… 포르노 스타로 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그래요, 그런 삶도 있을 수 있죠. 자신이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그것만 생각하세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담사 덕분에 마음이 조금씩 회복됐다. 호주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살기로 마음 먹었다. 진짜 여자로 살기로 했다.
정식으로 성주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진단을 받고, 호르몬 치료와 성기 수술을 거쳐 성별 정정까지 하기로 결정했다. 더는 행복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당시 만나던 중국인 여자친구에게도 수술 계획을 털어놨다. 여자친구는 이별을 고했다. 간호사 꿈을 접고 호주 생활 1년 반 만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한 트랜스젠더에게 징병검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병역이 의무인 분단국가 대한민국, 트랜스젠더도 이 현실을 피할 수 없다.
엄마는 “그냥 다녀오라”고 했지만, 이누보 씨에겐 그냥 받아들일 일이 아니었다. ‘여자 이누보’가 어떻게 남자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며 자고, 씻을 수 있을까. 어려서부터 징병제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컸다.
이누보 씨는 신체검사장 대신 병원에 가 성주체성장애 진단을 받고 호르몬치료를 시작했다. 의사는 진단서에 이렇게 적었다.
‘상기인은 남성적 역할에 대하여 불안정하며 여성적 성역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일이 잘 안 풀리면 교도소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2년 버티다 나오면 되겠지…’
가만 생각해보니, 교도소도 대안은 아니었다.
‘아, 맞다. 교도소에서도 남성들이랑 생활해야 하네…’
남성들 사이에서 수형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다. 군대와 교도소,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건 말이 안 됐다.
이 씨는 출생 당시 법적 성별과 스스로 생각하는 성별이 다른 ‘성주체성 장애‘ 질병분류 코드가 찍힌 진단서를 들고 서울 신길동 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검사장으로 향했다. 정신과전문의 2인의 성주체성장애 진단서와 여성호르몬요법 시술 기록을 제출했다.
본격적인 신체검사. 입고 간 옷을 벗고 검사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국방부령 제950호)’엔 “성주체성장 애 및 성선호장애를 보이는 사람에 대하여는 개인별로 칸막이를 하고 검사할 수 있다(제8조)”고 적시돼 있다.
하지만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지 이미 두세달 째, 가슴에 막 몽우리가 잡힐 때였다.
“제가.. 남성들 사이에서 옷을 갈아입기가 좀 곤란한데요.”
“그래서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도 될까요?”
병무청 직원은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문도 칸막이도 없는 뻥 뚫린 화장실이었다. 뒤돌아 서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검사가 다 끝나갈 때쯤 한 군의관이 이 씨가 제출한 성주체성 장애 관련 서류를 들고 말했다.
“더 확실한 액션을 취해 오세요.”
확실한 액션이라니. 무슨 말일까.
“돌이킬 수 없는 조치요. 그 왜.. 고환 적출 수술이라든가 성전환수술, 그런 거 있잖아요.”
여기에 군의관은 한마디를 보탰다.
“가슴수술 그런 건 해 오셔도 5급(현역병 입대 면제 대상)이 아니라 4급(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밖에 못 드려요. 보형물 넣었던 거 나중에 뺄지 누가 알아요?”
분명 규정상 고도의 성주체성 장애가 있는 경우 5급(현역병 입대 면제 대상)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국방부령 제950호 별표 2 신장.체중에 따른 신체등급의 판정기준 102의 2). 하지만 군의관이 보기에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나 호르몬치료 기록, 가슴 성형수술 등은 ‘돌이킬 수 있는‘ 조치였다.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이 병역을 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조치가 아닌, 돌이킬 수 없는 ‘확실한 액션‘을 하라는 의미다.
“오늘은 7급(재검) 판정 드릴테니 11개월 사이에 구체적인 액션을 취해 오세요.”
군의관이 말한 고환 적출. 언젠가는 할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요구받을 줄은 몰랐다. 고환 적출을 한다면 성확정 수술(남성의 성기를 여성의 성기로 재성형 하는 수술)을 한꺼번에 하려 했다. 여성의 성기를 만들 때 고환을 감싸고 있는 피부를 이용해야 표가 덜 나기 때문이다.
병역 신체검사 때문에 확 다가온 수술, 문제는 돈이었다. 고환 적출과 성확정 수술을 한 번에 하려면 적게는 1000만 원에서 많게는 2000만 원 넘는 돈이 필요했다. 고환 적출 수술을 먼저 하면 100만원 정도만 있으면 됐다.
성형외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의사는 두 수술을 따로 하더라도 방법이 있긴 하다고 했다. 고환을 떼어낸 자리에 보형물을 넣어, 훗날 성확정 수술 시 사용할 피부를 남겨두는 방법. 하지만 보형물 1개당 300만 원, 총 6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이제 막 20대 초반인 이 씨에게 그런 돈은 없었다.
남은 시간은 11개월, 그 안에 100만 원을 마련해 고환을 몸에서 떼어내야 했다.
성인이 되고부터 이미 머리는 길게 길렀고, 호르몬치료를 시작한 지도 이미 서너 달. 주민등록은 남성인데, 겉모습은 여성인 이 씨가 취업할 곳은 거의 없었다. 신분증 없이 돈 벌 수 있는 일용직 자리를 찾았다.
출발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였다. 밤새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속도에 하얗게 질렸다.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한 후 감소한 근력도 일에 지장을 줬다. 하루 일하고 포기했다.
“남자의 근력을 가진 여자라는 게 뭔가 슈퍼히어로 같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고환 적출 하기 전까진 말이에요. 고환 적출하고 근력이 많이 사라졌을 때, 몸의 활력이 다 사라진 느낌이 들었어요. 호르몬만 할 때는 근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는데..”
다음은 영화 엑스트라 배우 일자리였다. 신분증 검사는커녕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 문자로 통보받은 장소에 가면 즉석에서 배역을 줬다. “남자야, 여자야?” 묻던 현장 감독도 “시키는 건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니 좋아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려 서울 강남의 엑스트라 배우 전문 에이전시에 찾아갔다. 바로 면접을 봤다.
“어머, 요즘 간호사 배역 많이 들어오는데.”
면접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막판에 주민번호 앞자리에 숫자 ‘1’이 태클을 걸었다.
“남자 간호사 역할은 잘 없는데.. 다른 남자 배역 받으려고 해도, 그 긴 머리는 자르고 오셔야 해요.”
시간당 4000원 받자고 다시 머리를 짧게 자를 순 없다는 생각에 취업을 포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 씨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많았다. 면접 보는 30분 내내 환대받다가, 주민번호를 확인하면 0.1초 만에 얼굴이 싸늘해지는 인사담당자를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다.
고환 적출 수술비 100만 원을 어디서 어떻게 모아야 하나. 머리로만 궁리하며 집안에 쳐박혔다. 온라인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 곳에 들어가면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트랜지션(transition, 원하는 성별의 복장을 하는 일, 호르몬치료와 수술을 비롯한 의료적 조치, 주변인들과 본래 성별로 다시 관계맺기 등 성전환 과정 전반을 가리키는 말)을 인증한 글과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난 어떨까, 이제 좀 여자로 보일까?’
호기심에 이누보 씨도 커뮤니티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저랑 한 번 만나볼래요?”
게시물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커피나 마시자는 줄 알고 나간 자리에서 이 씨는 순진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와, 진짜 카페 와서 이야기 하자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럼 보통 만나서 뭘 하는데요?”
“진짜 몰라요? 모텔 직행이죠.”
“아.. 그럼 원래 저한테 얼마 주려고 했어요?”
“십만 원.”
지금 당장 필요한 돈은 100만 원. 일을 열 다섯 번 정도 나가면 수술비를 하고도 조금 남는 돈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자르기 싫은 머리를 자를 필요도 없었다. 엄마 눈을 피해 틈틈이 일을 나갔다.
2013년 6월, 그렇게 모은 돈을 들고 성형외과에 가 고환을 몸에서 떼어냈다. 2013년 10월, 다시 징병신체검사를 받았다.
‘결함‘을 증명하니 비로소 5급 제2국민역 처분이 나왔다. 현역병 입대가 면제됐다.
하지만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달라진 호르몬 분비 영향으로 70kg정도 나가던 몸무게가 118kg까지 늘었다. 심한 우울증도 발병했다. 다른 일은커녕 조건만남 일도 나가기 어려웠다.
그맘때 쯤, 이 씨는 우연히 성소수자 차별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이 씨는 징병 신체검사 당시 있었던 일을 적어 온라인으로 제출했다. 이를 본 공익인권법재단 희망법의 한가람 변호사가 이 씨에게 연락했다.
2014년 10월, 이 씨는 “더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병무청 요구가 ‘개인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2013년 유엔 고문특별보고관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강제불임수술, 호르몬제 투약 및 수술 등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강제하는 행위가 고문에 해당한다고 보고했다.
이누보 씨는 인권위에 낸 진정서에서 대만의 예를 들며 호소했다. 한국과 유사한 징병 체계를 가진 대만은 ‘신체등급 구분기준‘에 ‘성심리이상‘ 항목을 따로 두고 있다. 성주체성장애 확정 진단을 받은 경우 성전환수술 여부와 무관하게 6개월에서 1년가량 전문의 심리감정을 거쳐 병역을 면제 여부를 가린다. 고환 적출이라는 외과 수술 없이 병역 면제 여부를 가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13년 서울서부지법이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FTM(female to male, 여성에서 남성으로) 트랜스젠더 다섯 명에 대한 성별정정 신청을 허가하면서 “성별 정정의 요건으로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성이 있다“고 밝힌 점도 이 씨 진정의 주요 근거였다.
MTF 트랜스젠더가 병역 기피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현역병으로 입대한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군생활을 마치기는 어렵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의뢰해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참여한 참여한 MTF 트랜스젠더 가운데 47.4%는 군복무 중 관심 사병으로 분류된 경험을 밝혔다. 또 26.3%는 신체적 성폭력을, 15.8%는 성관계 묘사 강요 등 언어적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2017년 11월 개정된 ‘부대관리훈령(국방부훈령 제2088호)’에는 성소수자 가운데 동성애자(게이) 병사를 관리하는 규칙만 있을 뿐, 트랜스젠더 병사의 존재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MTF 트랜스젠더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려 해도 병영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병역 의무를 무사히(?) 이행한다고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은 전역한 다음날 부터 만 8년이 되는 해의 12월 31일까지 예비군 편성 대상이다. 제대 후 여성의 삶을 살다가 예비군 훈련소에 불려가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씨의 호소에 국가인권위는 1년 반 가까이 반응하지 않았다.
2016년 6월에야 인권위는 진정 각하 결정을 통보했다. 이 씨가 군의관으로부터 ‘비가역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2012년 11월 이후 1년 이상 경과된 뒤에 진정을 신청했다는 게 인권위가 밝힌 각하 이유였다.
당시 이 씨 진정을 도운 SOGI법연구회는 “병무청이 고환적출을 요구한 날로부터 1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 발생 1년 이후에도 결정을 할 수 있음에도, 인권위는 진정일로부터 무려 1년 8개월이 지난 후에야 각하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고환적출수술은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하는 등 의료적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수술비용도 수백만원에 이른다“는 성소수자 인권 관련 단체들의 비판도 잇따랐다.
지난 18일 세계보건기구는 트랜스젠더의 성정체성은 정신질환이라는 문구를 삭제한 새 국제질병분류를 발표했다. 1993년 성 정체성이나 성적 선호가 일반과 다른 것을 ‘성적 발달·취향 관련 정신·행동장애‘라는 질병으로 분류한 지 25년만의 조치다.
한국은 트랜스젠더를 질병으로 간주해 ‘열외‘ 처리 방법으로 병역을 면해준다. 누군가에게 한국은 스스로 ‘내가 정상이 아닙니다’를 입증하는 것도 모자라, 몸을 칼을 대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학교, 직장, 군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트랜스젠더를 ‘열외 인간’ 취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