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염전노예 살인의 총지휘자… 그가 지금 내 앞에 있다>에서 이어집니다.
사람 하나 죽이고 묻어버리는 건 별일도 아니라는 듯, 염전노예 살인사건은 조작됐다. 소문은 해무처럼 섬에 번졌으나 가해자-피해자-목격자는 경찰 앞에서 입을 닫았다.
염전노예 염태성(가명)이 사망한 살인사건은 익사로 종결됐다. “염전노예가 염전 바닷물에 빠져 죽은” 사건으로 말이다.
염전주 박대성(가명)의 강압으로 동료를 사망에 이르게 한 염전노예 우성수(가명, 1956년생)를 만나고 싶었다. 모든 진실을 아는 그는 섬에 없었다.
이제 섬을 떠나야 할 시간, 차를 선착장으로 몰았다. 육지로 가는 배를 타려면 박대성 집 앞을 지나야 했다. 길가에 세워진 박대성의 낡은 식당 간판이 보였다.
‘다시 들러볼까, 그냥 갈까….’
차 핸들을 식당 쪽으로 틀었다. 자기 집에 살던 염전노예 셋 중 한 명을 죽이고, 다른 한 명을 칼로 찌른 남자. 나머지 한 명의 오른팔에는 장애를 남긴 박대성을 꼭 만나고 싶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식당으로 걸어가며 대범한 척 크게 외쳤다.
“계십니까?”
나보다 머리가 덜 벗겨진 60대 남자가 부탄가스 통과 쓰레기를 들고 나왔다. 구릿빛 피부의 그는 170cm 정도의 키에 몸이 다부져 보였다. 박대성이다.
저쪽 바닷가 쪽에선 쓰레기가 타고 있었다. 이미 섬 주민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그는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했다.
“뭐가 궁금해서 왔습니까?”
“우성수 씨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요. 혹시 어디에 계신지 아시나 해서….”
“몰라요. 그런 사람은 여기 안 살았는데….”
우성수에게 살인을 교사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 그의 오른쪽 팔에 장애를 남겼으면서 모른다니. 짜증이 확 일었다.
“모르긴 뭘 모르십니까. 저기 컨테이너에서 이근만(가명) 씨랑 둘이 살았잖아요.”
“모른다니까.”
박대성은 부탄가스 통을 오른손에 쥐고 쓰레기 소각장으로 걸어가며 무심하게 답했다.
“염태성 씨 죽이고, 이근만 씨 배도 칼로 찔렀잖아요! 왜 다 모른다고만….”
박대성은 걸음을 멈추고 내게 몸을 돌렸다.
“씨×,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당신도 확 어떻게 해버리기 전에….”
그는 거친 욕설을 하며 식당 부엌 쪽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흉기를 들고 나오지 않았다. 거친 욕설이 식당을 흔들었다.
“어떤 씨×놈들이 헛소리를 하고 다니고 지×들이야. 개새×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지껄이고…. 당장 안 꺼져!”
피하는 게 좋을 듯했다. 대수롭지 않은 척 표정관리를 했지만,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 걸음은 확실히 빨랐다. 차에 타자마자 문을 잠갔다. 선착장으로 달리며 룸미러로 뒤를 살폈다. 재빨리 선착장 매표소로 들어가 오후 5시 10분 목포행 배표를 달라고 말했다.
“끝났습니다. 나가는 차가 많아서 5시 10분 배는 꽉 찼어요.”
난감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오늘 섬에서 못 나가요?”
“6시 25분에 안좌도 가는 배 타세요. 거긴 육지랑 다리로 연결돼 있으니까, 그거 타고 나가세요.”
약 2시간을 선착장에서 기다렸다. 차 운전석에 앉아 문을 걸어잠근 채 계속 뒤를 살폈다. 박대성은 쫓아오지 않았다. 그의 집은 선착장에서 보일 만큼 가까웠다.
해가 떨어지자 박대성의 집이 ‘인스타 맛집’처럼 예쁘게 보였다. 마당에 설치된 알록달록한 전등이 켜진 것이다. 안좌도로 향하는 배는 제 시간에 도착했다. 배에 올라 바다 위에서 보니 박대성의 집은 섬에서 가장 화려했다.
군청 홈페이지 관광안내에 따르면, 박대성의 집은 여행객들이 “쉴곳”으로 소개돼 있다.
안좌도에서 다리로 연결된 거사도-암태도-압해도를 거쳐 목포까지 가는 길. 나도 모르게 과속을 했다. 운전하는 내내 박대성의 거짓말이 떠올랐다.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이 터졌을 때,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형사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주(소금물 저장하는 곳)에 (염태성이)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우성수가 하는 말이 염씨가 자기를 때려서 해주로 밀어버렸다고 했습니다.”(2014년 4월 4일)
박대성은 자신의 노예 우성수에게 살인 책임을 떠넘겼다. 경찰이 다시 물었다.
경찰 : “그럼 결국 우성수가 염태성을 죽였다는 것인가요?”
박대성 : “밀어버렸다고 했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보아야지요. 자기를 때리니까 밀었다고 했습니다.”
(중략)
경찰 : “당신은 이 사건과 아무 관련 없고 우성수 혼자 염태성을 해주에 밀어 넣어 사망케 했다는 것인가요?”
박대성 : “예, 그렇습니다.”
경찰 : “위와 같은 사실을 분명히 그 당시 수사하는 경찰에게 진술했다는 것인가요.”
박대성 : “예, 그렇습니다.”
경찰 : “그런데 경찰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인가요?”
박대성 : “예, 뭔 이유가 있으니까 처벌을 하지 않았겠지요.”
그게 정말 궁금했다. 사건이 벌어진 1994년 8월 그때, 경찰은 왜 허술하게 수사하고 박대성을 처벌하지 않았을까? 섬 주민들은 왜 침묵했을까?
누구보다 우성수가 진실을 알 듯했다. 사라진 우성수를 꼭 찾아야 했다. 문제는 우성수의 근황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2014년 당시 경찰이 섬에서 데리고 나온 염전노예 및 노동자는 약 400명. 장애인 및 인권단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이들은 노숙인시설 등 사회복지기관으로 분산됐고, 체계적인 관리와 추적은 불가능했다.
박대성을 만나고 섬에서 빠져나온 그날, 목포의 숙소에서 <셜록>이 입수한 ‘염전노예 사건기록’을 다시 펼쳤다. 염전노예 이근만(1961년생)은 2014년 3월 21일 전남경찰청 광역수대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박대성 형님이 상당히 무섭고 우리를 함부로 대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들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못하면 무조건 막말로 욕을 하고 성질을 냅니다. 염태성에게 일을 시켰는데, 일을 못하니까 우성수한테 시켜서 해주에 처박아서 죽게 한 것입니다. 제 말이 사실입니다.”
감춰진 살인사건이 20년 만에 떠오른 순간. 경찰이 이근만에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소재”를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우성수 고향은 압해도 봉용마을이라고 들었고….”
곧바로 “압해도 봉용마을”을 검색해봤다. ‘봉용’이 아닌 ‘복룡’마을이 지도에 떴다. 이근만이 기억하는 그곳이 정말 우성수의 고향일까? 지도를 자세히 보니, 방금 전 섬을 빠져 나오면서 거쳤던 그 압해도다.
다음 날, 내비게이션에 ‘복룡마을’을 찍고 길을 나섰다. 마을은 ‘복룡4리’까지 있을 정도로 넓었으나, ‘우성수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마을에서 만난 50대 남성들은 우성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원래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염전에 팔려 갔다더니 영 못 쓰게 돼서 나타났드만. 두들겨 맞았는지 어쨌는지 엉망이 돼서 왔어요. 저~기 복룡1리 가서 물어보면 고향집 쉽게 찾을 겁니다.”
정말 그랬다. 우성수는 고향마을에서 유명 인사였다. 이웃들은 다들 “멀쩡한 사람이 정신이 이상하게 돼서 돌아왔다”고 말했다. 고향 사람들만의 의견이 아니다.
박대성이 숨겨놓은 우성수를 경찰이 구출한 2014년 4월, 그는 이미 “멀쩡한 사람”이 아니었다. 박대성에게서 벗어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공포와 불안에 떨며 약 6시간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이 인권단체에 ‘SOS’를 칠 정도였다.
인권단체 활동가는 우성수를 면담하고 이런 기록을 남겼다.
“○○도 들어가서 1년 만에 탈출을 시도할 정도로, 외부로 탈출하고자 했던 우성수. 그는 ‘박대성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좋은 사람’ 혹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대답함. 대화 곳곳에서 박대성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공포심이 드러남.”
활동가가 “자유란 어떤 것이냐”고 묻자 우성수는 “○○도에서 자유로웠다”고 답했다. 활동가는 이런 의견을 남겼다.
“○○도에서 탈출을 통해 자유를 찾으려던 본래의 자아는 박대성이란 인물로 인해 ○○도에서의 삶을 순응하는 자아로 변해버림. (중략) 박대성을 통해 본인이 본래 갖고 있던 자아는 말소, 증발되었다고 보여짐. 박대성이라는 인물을 통해 새로운 자아가 생겼을 것으로 추정됨.”
염전노예에서 벗어난 지 8년여가 흐른 지금, 우성수는 본래의 자아를 찾았을까? 오른팔의 장애를 치료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을까?
이웃들이 알려준 다 허물어져 가는 그의 고향집 문을 두드렸다. 잡초가 무성하고 쓰레기가 많았지만, 널어놓은 빨래를 보니 사람이 사는 듯했다. 얼마 뒤 70대로 보이는 여성이 집 밖으로 나왔다.
“우성수를 찾는다구요? 내가 형수 되는 사람인데…. 갑자기 왜 찾아요? 우성수… 죽었어요.”
형수는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죽었냐구요? 글쎄…. 나야 모르지. 어쨌든 죽었어요. 죽었다고 들었어요. 난 돈 한 푼 받은 것 없으니까…. 나한테 묻지 마세요.”
고향마을에서 우성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는 염전노예 탈출 이후 우성수에게 벌어진 일을 이렇게 요약해 들려줬다.
“서울 사는 우성수 동생이랑 형수가 염전주랑 합의를 했어요. 합의금 두고 그 둘이 싸우고…. 동네가 좀 시끄러웠어요. 우성수만 불쌍하게 됐죠.”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학교 다닐 때 멀쩡했어요. 근데, 염전에 가서 엄청 두들겨 맞고 고생했나봐요. 20년 만에 와서는 몸도 망가지고 별 말도 안 하고…. 바로 옆 동네 ○○도에 끌렸갔다던데, 염전주는 고향 사람을 집에 돌려보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어…. 아이고, 무서운 세상이야.”
이 동창 역시 우성수는 죽었다고 했다. 어떻게, 왜 사망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택시비 500원이 부족해 고향집이 아닌 섬으로 팔려간 우성수. 그때 그 택시기사가 인신매매범 ‘휘빠리’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무사히 고향에 왔다면 우성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살해된 염태성에 이어 우성수가 세상을 등졌으니 이제 ‘박대성의 완벽한 살인’을 말해줄 사람은 딱 한 명, 이근만뿐이다. 우성수처럼 이근만 근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든 이근만을 찾아야 했다.
얼마 뒤, 어렵게 이근만과 연락이 닿았다. 내가 한 발 늦었다. 박대성이 한참 전에 이근만을 만나고 돌아갔다. 이번에도 그는 ‘한 건’ 처리했다. 아주 완벽하게.
☞ 3화 <당신들이 숨긴 소금밭 살인사건… “내가 다 봤습니다”>로 이어집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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