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고등학교 공익제보자 A 선생님이 제게 뜻밖의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사전 허락도 없이 호루라기재단에 ‘올해의 언론상’ 추천을 했어요, 수상자로 선정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추천하고 싶어서 추천했으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요~^^”
A 선생님이 메시지와 함께 첨부한 파일을 열어봤습니다. A 선생님은 2022년 한 해 동안 제가 보도한 기사들을 2쪽 분량으로 정성스레 정리했습니다.
“<고위공직자들의 수상한 땅따먹기> <검찰과 법원 : 그들만의 리그> <은행권의 “정유라”, 그들은 왜 당당한가> <반도체 아이들의 가려진 아픔>….
위 취재 기사 외에도 우리 사회의 공익제보 분야(배드파더스 보도, 2021년 호루라기상 수상한 군산시 유기 동물보호소의 불법 안락사 및 매립, 취재 및 보도 등)에서 정성을 다해 헌신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 기자입니다. 이에 언론 분야 호루라기 수상자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추천합니다.“
‘호루라기재단’은 개인적 불이익을 무릅쓰고 부정과 비리를 고발하는 공익제보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입니다. 호루라기재단은 해마다 ‘호루라기상’과 ‘호루라기언론상’을 시상하는데, 호루라기언론상은 공익제보 확대 등에 기여한 공적이 있다고 인정되는 언론에 시상합니다.
불이익을 감내하고 내부 비리를 세상에 고발한 공익제보자가 오히려 기자를 수상자로 추천하다니. 상을 받아야 한다면, 기자가 아니라 공익제보자가 받아야 마땅할 텐데 말이죠.
본인이 제보한 내용도 아닌 기사들을 일일이 찾아 추천서를 썼을 A 선생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 공익제보자들을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수상자로 추천을 받는 일 자체로도 미안한 감정이 앞섰습니다.
고마움, 미안함, 부끄러움, 부담감…. 무엇보다 가장 큰 감정은 감동이었습니다. 공익제보자가 기자를 수상자로 추천해주는 영광을 아무나 쉽게 누릴 수 있을까요.
A 선생님의 강력 추천 덕분에, 저는 ‘2022 호루라기언론상’ 수상자로 최종 선정되는 행운을 얻게 됐습니다.
이런 영광과 행운은 그동안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공익제보자들과 함께 이뤄온 변화 덕인지 모릅니다. <셜록>과 함께 힘을 합쳤던 공익제보자들은 최근 3년간 매년 호루라기재단의 ‘올해의 호루라기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무분별한 비밀 안락사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공익신고자 임○○ 전 동물관리국장은 ‘2019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받았습니다.
<셜록>은 공익제보자 임 국장와 함께 힘을 모아 박소연 <케어> 대표의 비밀 안락사 문제를 2019년 1월 고발했습니다. 임 국장은 “박소연 대표의 지시로 지난 4년간 동물 200여 마리를 몰래 안락사했다”고 고백했습니다.(<구조의 여왕인가, 개 도살자인가>)
의료법인 백제병원의 비리와 의료법 위반 의혹을 알린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는 ‘2020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받았습니다.
<셜록>은 공익제보자 김 씨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20년 1월부터 그해 10월까지 13편의 기사로 백제병원의 각종 비리 의혹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무자격자 수술과 주치의 조작, 의료비 과다 청구, 가짜 현금계산서 발행 등을 추적했습니다.(<논산의 자랑, 백제병원의 배신>)
가짜 ‘유기견 대부’ 이정호 전 군산유기동물보호소 소장의 불법 안락사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들도 ’2021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받았습니다.
공익제보자들은 이 전 소장이 2019년 한 해에만 수의사 대신 본인이 직접 개 약 80마리를 불법 안락사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제보를 받은 <셜록>은 불법 안락사, 유기동물보호비 부정수급 등 군산보호소의 문제를 지난해 10월부터 집중 보도했습니다.(<군산유기동물보호소의 두 얼굴>)
한 명을 빠트렸습니다. 하나고등학교의 입시비리를 공익제보한 A 선생님도 ‘2015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받았습니다. A 선생님과 <셜록>이 힘을 합친 프로젝트 <입시에서 채용까지, ‘동아’ 가족이 남긴 그림자>(2021년)를 보도하기 전이지만 말입니다.
A 선생님은 2015년 당시 서울시의회 ‘하나고 특혜의혹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입학생 남녀성비 조정 등 입시비리 문제를 증언했습니다. 이후 <셜록>은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딸 김○○씨가 2014년 8월 하나고 편입학 당시 면접 점수가 상향 조작되는 혜택을 받고 부정 입학했다는 의혹을 보도했습니다.
호루라기상 수상자는 아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제보자들도 있습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실험묘를 1년간 방치하다 마취제 없이 ‘고통사’시킨 서울대병원의 비리를 폭로한 서울대병원 연구원 출신 B씨(<서울대학병원의 수상한 고양이 실험>), ‘비리·갑질의 왕’으로 통하는 허선윤 이사장 체제 아래 학내 정상화를 위해 싸운 영남공업고등학교 교사들(<영남공고, 조폭인가 학교인가>), 청탁 등 불공정한 혜택을 받고 은행에 입사한 부정입사자들을 고발한 은행권 내부 관계자들까지(<은행권의 ‘정유라’ 그들은 왜 당당한가>).
호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저와 함께 2022년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수상한 공익제보자들입니다.
△두원공대 입시비리를 제보한 김현철 씨
△월성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방사성 오염수 누출을 제보한 최수현(비실명) 씨
△경찰인재개발원 골프장 예약 비리를 신고한 유정은(비실명) 씨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선산재활원의 장애인 학대를 신고한 지영화·유종학·김봉구·장완덕 씨
2022 호루라기상 시상식이 열린 지난 2일, 경찰인재개발원 골프장 예약 비리를 신고한 유정은(비실명) 씨는 이런 취지의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고자질하면 나쁜 거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고자질했다고 상까지 주네요. (일동 웃음) 내부고발 하기 전에 제 남편이 (공익제보 하면) 가족 다 죽으니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제가 살아서 여기 와 있네요. (호루라기상을 통해) 제가 한 일이 옳다는 걸 확인받은 기분입니다.”
또 선산재활원의 장애인 학대를 신고해 수상자로 선정된 공익제보자들은 공익제보 이후 힘들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희생을 감내하고 용기를 택한 이런 공익제보자들 덕분에 세상은 좋게 바뀌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과 연결돼 있습니다. 관계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그렇게 주고받은 영향으로 좋은 일도 함께 만들어냅니다. 그동안 <셜록>이 셜록의 친구, 유료 구독자 ‘왓슨’ 여러분과 함께 이뤄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왔던 공익제보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떠올리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앞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모두 이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