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가 거래한 엄마의 60년 비밀

가슴에 할 말이 가득해도 엄마 이외식(92세)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환갑을 바라보는 딸 강정숙(가명. 1959년생)에게도 함구했으니, 엄마의 비밀은 60년간 봉인 상태였다.

오래된 비밀은 한 남자가 눈앞에 나타나면서 조금씩 드러났다. 엄마가 60년간 하루도 잊어본 적 없다는 남자. 잊기는커녕 속으로 늘 안녕과 행복을 기도했다는 사람. 그 남자는 강정숙 씨와 아버지가 다른, 엄마가 오래전에 낳은 아들이다.

‘나에게 오빠가 있다니,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엄마에겐 또다른 결혼생활이 있었다니..’

엄마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과거는 놀라웠다. 골짜기에서 총살 됐다는 엄마의 전 남편, 아버지가 다른 오빠 정도곤(1948년생)의 삶, 불발된 포탄이 터져 죽었다는 또다른 오빠 정병곤..

엄마가 입을 열수록 딸 강 씨의 입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 세월, 이런 인생이 있다니. 그동안 자신에게도 말하지 않은 엄마가 얄밉지 않았다. 오히려 저 비밀을 평생 간직해온 엄마의 마음이 가슴에 사무쳤다.

일생에서 단 하루 딱 한 번, 엄마 스스로 지난 삶을 토해낸 적이 있다. 2013년 9월 5일, 엄마는 먼 길을 떠나 판사님 앞에서 자신이 겪고, 보고, 들은 모든 걸 말했다. 판사가 놀라고, 변호사도 놀란 엄마의 무서운 기억력. 엄마는 그 하루를 위해 평생을 버텨온 듯했다.

엄마의 증언으로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 그때 그 시절의 판사들. 이들은 엄마 이외식의 60년 비밀을 박근혜 대통령과의 거래 물품으로 이용했다.

양승태 대법원이 진행한 재판 거래의 살아 있는 증거, 이외식을 만나러 6월 27일 오후 충북 영동군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다른 남매 정도곤, 강영숙이 동행했다. 이외식은 영동군의 깊은 산골 한 요양원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초여름 태양이 뜨거운 날이었다. 92세 이외식은 보조기구에 의지해 천천히 요양원 복도를 걸어서 나왔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고, 머리카락은 눈처럼 하얗게 보였다.

“가슴에 박힌 이야기를 다 하면, 여기가 너무 아파. 그래서 말을 할 수가 없어.”

이외식은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툭툭 쳤다. 그녀는 일제시대인 1928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10대 중반일 때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곧 ‘처녀공출’을 시작했다. 전쟁터에 끌려가기 싫어 15세 때, 다섯 살 많은 동네 총각 정재식(1923년생)과 결혼했다.

자신은 공출을 면했지만, 남편은 강제징용을 피하지 못했다. 정재식은 1944년 첫째 아들 정병곤이 태어나자마자 일본군 군속으로 오키나와로 끌려갔다. 이외식 혼자 아들을 키웠다. 그녀는 아들을 짧게 “곤”이라 불렀다.

남편은 해방 이후 살아서 고향 칠곡으로 돌아왔다. 해방정국의 조국은 좌익–우익 대결이 치열했다. 적군과 아군이 불분명하고 전선도 없는 전쟁.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다시 고용하고, 강압적으로 식량을 공출하자 이에 항의하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많았다. 항의는 시위로 이어졌다. 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쏴 많은 사상자가 나온 ‘대구10월사건’이 터졌다.

이념은커녕 한글도 모르는 이외식은 남편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1948년 둘째가 태어났다. 딸을 기대했으나 첫째 정병곤처럼 아이는 “고추를 달고 나왔다.” 엄마 이외식의 첫마디는 이랬다.

“또 ‘곤’이가 태어났네..”

둘째는 “또곤이”라 불렸고, 그게 이름으로 굳어 ‘정도곤’이 됐다. 눈에 안 보이는 이념전쟁이 마을을 덮쳤다. 1949년 초여름 경북 왜관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빨갱이 색출한다”며 마을로 찾아왔다. 그들은 과거 식량 공출에 항의한 적 있는 남편 정재식을 끌고 갔다.

아내 이외식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첫돌 지난 젖먹이 또곤이를 업고 걸어서 왜관경찰서로 향했다. 편도 20리 길이었다. 경찰은 남편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20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에도 또곤이를 업고 경찰서를 찾았다. 이번에도 실패. 그 다음날에도 또 또곤이를 업고 왜관경찰서로 향했다. “남편 얼굴 좀 보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한 경찰이 땀에 절은 이외식에게 말했다.

“수감된 사람들 전부 어젯밤 저쪽 골짜기로 끌고 갔으니까, 거기로 가보세요.”

경찰은 칠곡 유학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외식은 또곤이를 업고 경찰이 가리킨 산으로 걸었다. 깊은 골짜기로 걸어도 걸어도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등에 업힌 또곤이는 칭얼댔다. 우연히 만난 산골마을 주민이 얼굴은 땀에 절고, 등은 아이 눈물에 젖은 이외식에게 말했다.

“어젯밤 저 위 골짜기에서 총소리가 났는데, 그쪽으로 가보세요.”

주민이 알려준 곳은 칠곡군 성곡리 절골이었다. 절골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세상 끝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저쪽에서 거적에 덮인 사람들의 손발이 보였다. 수십 명은 돼 보였다.

학살지에 도착한 이외식의 등 뒤에서 또곤이는 또 칭얼댔다. 이외식은 가쁜 숨은 가라앉히고 거적을 하나씩 들추기 시작했다. 뜬 눈으로 죽은 사람의 눈동자를 봐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남편이 아니었으니까.

거적을 들춰 타인의 죽음을 확인 할 때마다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남편은 여기에 없고,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거란 희망도 꿈틀댔다. 타인의 죽음으로 커지는 희망은 부질 없었다. 몇 번째 거적이었을까. 거기 숨쉬지 않는 남편이 누워 있었다.

이외식은 남편 얼굴을 거적으로 다시 덮고, 그 옆에 가만히 앉았다. 푸른 벼랑골이 검게 보였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등에 업힌 또곤이는 배가 고파 칭얼댔다. 이외식은 아들을 앞으로 안고 젖을 물렸다. 또곤이는 죽은 아버지 옆에서 젖을 맹렬히 빨았다. 이외식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온몸에서 물이 다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외식은 2013년 9월 5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그 골짜기에 가서 남편 시신을 찾았습니다. 찾은 후 저는 먹지도 못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학살 현장에서) 내려오니까 그 동네에 아는 사람이 물을 줘서 먹었습니다. (현장에서) 밤을 새우려고 하니까 저를 재워줬습니다. 그 이튿날 집에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니까 누가 알아줍니까. 죽은 듯이 있다가 3년 뒤에 좀 수그러져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빨갱이로 몰리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서운 시절이었다.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져 더욱 그랬다. 이외식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다. “빨갱이 아내”라는 손가락질은 전쟁의 총질만큼 잔인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첫째 아들 정병곤은 초등학교 다닐만큼 자랐다. 어느 날, 정병곤은 마을 냇가에서 터지지 않은 포탄을 장난감으로 갖고 놀았다. 그러다 포탄이 터졌다.

아들 정병곤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외식은 “신식 병원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헛소문을 믿었다. 죽은 아들을 등에 업고 종일 걸어 큰 병원이 있다는 대구로 갔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아들 피 냄새가 엄마 뱃속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도착한 신식 병원. 의사가 타박했다.

“죽은 사람을 누가, 어떻게 살립니까? 얼른 데려 가 묻어 주세요.”

죽은 아들을 업고 울며 다시 집으로 향했다. 다시 온몸에서 물이 다 빠져 나간 느낌이 들었다. 마을에선 “빨갱이 아내는 팔자가 사납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청년 한 명이 나무를 해주고, 물도 길어다 주면서 이외식에게 친절히 대했다. 이외식은 11살 또곤이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기고 그 청년과 마을을 떠났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또곤이는 엄마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다. 또곤이는 중학교를 그만두고 대구의 도너츠 공장에서 일했다. 엄마가 미웠지만 보고 싶기도 했다.

15살 무렵, 친척들에게 엄마의 소재를 물었다. 엄마는 경북 상주의 산골에 있다고 했다. 어렵게 엄마 집을 찾아갔다. 한눈에 봐도 누추한 단칸방에 3살, 1살 남매가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이었다. 또곤이가 엄마에게 모질게 말했다.

“이마이 없이 살라꼬 지는 처내삐리놓고 갔능교? 저 아들 아버지는예?”

빨갱이 아내라고 손가락질 받던 엄마를 사랑한 청년의 얼굴을 또곤이는 안다. 엄마는 그 청년이 “탄광에서 일하다 땅속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또곤이는 잠자는 두 꼬맹이를 보고 생각했다.

‘저것들도 내처럼 아버지 얼굴을 모른 채 살겠구마..’

이외식은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엄마 찾아오지 마라. 엄마 죽었다고 생각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 너는 그냥 너대로 살면 돼. 또곤아, 알았지? 다시는 엄마 찾아오지 마.”

두 남편과 첫째 아들의 죽음. 엄마는 이 모든 걸 “내 팔자가 사나운 탓”으로 돌렸다. 자기 곁에 있으면 또곤이마저 어떻게 될까봐 멀리 밀어냈다. 그걸 알 리 없는 또곤이는 다시 엄마를 증오하며 길을 떠났다. 

세월이 흘렀다. “또곤이”라 부르는 사람 없는 부산에서 그는 정도곤으로 살았다. 부두 노동자로 일하고, 부산 초량시장에서 꽈배기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결혼해 1녀3남을 낳았다. 엄마 이외식과 인연을 끊고 50년을 살았다. 자신도 환갑을 넘긴 할아버지가 됐다.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대구10월사건’을 조사했다. 위원회는 2010년 3월 30일 정도곤의 아버지 정재식이 거론된 진실규명결정서를 발표했다. 한 대목은 이렇다.

이를 근거로 정도곤은 2011년 4월 7일 부산지법에 국가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담당 변호사는 “아버지 정재식 사망 당시 어머니 이외식은 정식 혼인관계였으니, 그분도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마를 안 만난 지 50여년. 먼 친척을 통해 엄마가 생존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 친척에게 “엄마도 배상금 청구하라”는 뜻을 전했다. 엄마는 소송을 거부했다. 아들 정도곤이 다시 우회적으로 엄마를 설득했다. 엄마 이외식은 아들보다 1년 늦은 2012년 5월 24일 부산지법에 국가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사건을 다루는 소송이니 이외식, 정도곤의 재판은 동시에 진행됐다. 부산지법 같은 재판부가 맡아 2013년 1월 16일 선고했다. 국가는 정재식의 아내 이외식에게 약 3억3000만 원, 아들 정도곤에게 약 2억6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는 돈을 줄 수 없다며 항소했다. 부산고등법원에서 2013년부터 2심 재판이 시작됐다. 역시 동일한 사건이니 같은 재판부가 맡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사법부는 과거사 사건을 이전과 다르게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외식–정도곤 사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아들 정도곤 사건이 그랬다.

많은 걸 목격하고 경험한 엄마 이외식이 아버지 사망 사건의 증인이자, 피해자였다. 정도곤은 엄마에게 연락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50여년 만에 들어보는 아들 또곤이의 목소리. 엄마는 아들의 부탁들 받아들였다.

정도곤은 엄마가 사는 충북 영동군으로 찾아갔다. 아흔 살이 다 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엄마가 지팡이를 짚고 아들을 기다렸다. 3살, 1살이던 아버지가 다른 두 동생도 중년이 되어 나타났다. 정도곤은 엄마를 차에 태워 부산으로 달렸다. 한동안 어색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또곤아.. 너 깡패나 나쁜 사람 안 되고, 이렇게 살아줘서 고맙다. 엄마가 너 하루도 잊지 않고, 잘 살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했어. 이렇게 살아 있어서.. 엄마가 고맙다.”

이젠 등에 업을 수도 없는 칠순의 또곤이가 훌쩍였다.

“엄마도 그동안 고생 많았심미더~. 나도 인자 엄마를 안 미워한다. 시절이 험악해서 그렇지 엄마가 뭐 잘못 했능교~. 엄마 잘못한 거 없으니까 마음고생 고만 하시소~.”

정도곤은 부산에 도착해 엄마에게 저녁으로 전복죽을 샀다. 이가 성치 않은 엄마가 먹을 수 있는 건 죽뿐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에게 대접한 음식이 죽이라니, 또곤이는 또 훌쩍였다.

다음날, 이외식은 법정 증인석에 섰다. 판사는 선서를 요구했다. 정도곤이 끼어 들었다.

“우리 어무이는 한글을 모릅미더~. 다른 방법으로 선서를 하게..”

엄마가 아들 말을 끊었다.

“됐다. 너 살아 있으면 기별이라도 할라고, 엄마가 한글 배웠어. 엄마 읽을 줄 안다.”

드디어 아들을 위해 뭔가를 하는 순간, 엄마는 오른손을 들고 선서를 했다.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을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엄마는 놀라운 기억력으로 약 70년 전의 진실을 말했다. 재판 끝무렵 재판장이 엄마에게 “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시라”고 말했다. 엄마는 잘 걷지도 못하는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했다.

“자식(정도곤) 보기도 미안하고, 서울에도 (아버지가 다른) 남매가 있습니다. 사주가 안 좋으니 거기에서도 남편이 먼저 죽었습니다. 저는 고향이고 뭐고 자식을 안 보려고 했습니다. 어린 것을 두고 50년이 넘도록 내려가지 않았으니까 아들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어미가 돼서 이 사건 증언은 한 번 해주자고 생각하고 거동도 못 하는데 왔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우리 아들 잘 부탁합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부. 재판은 이미 이상하게 돌아갔다. 부산고법은 이외식, 정도곤의 손해배상금을 대폭 삭감했다. 재판부는 이외식에게 약 8800만 원, 정도곤에게 약 5000만 원만 지급하라고 2014년 1월 9일 판결했다.

그래도 이건 나은 편이다. 놀라운 반전은 대법원에서 일어난다. 2014년 5월 16일, 대법원 제2부(주심 김소영)는 엄마 이외식의 2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사고는 1년 5개월 뒤, 아들 정도곤 판결에서 터졌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용덕)는 국가는 정도곤에게 단 한 푼의 돈을 주지 말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는 논리를 댔다.

이해 불가능한, 황당한 논리다. 아들 정도곤은 엄마보다 1년 4개월 일찍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엄마 이외식에겐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더니, 먼저 청구한 정도곤에겐 너무 늦게 신청해 돈을 줄 수 없다니. 같은 사건을 두고 앞뒤가 안 맞는 논리로 다른 판결을 한 대법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법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 가능한 게 있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7월 31일에 작성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정도곤은 자신과 엄마의 지난 삶이 ‘양승태의 재판 거래’에 이용됐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은 건 엄마 이외식이다. 50여년 만에 아들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법정에 섰는데, 모든 게 쓸모없는일이 됐다.

대법관 13명은 “재판 거래 의혹은 사실 무근”이라고 지난 6월 15일 발표했다.

아들을 위해 부지깽이로 마당에 ‘가, 나, 다, 라…’ 적으며 한글을 배워 보란듯이 법정에서 선서를 한 엄마는, 많이 배워 똑똑한 대법관들이 같은 사건을 두고 왜 다른 판결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엄마는 오늘도 요양원 침대에 누워 자책을 한다.

“내가 팔자가 사나워서 그래.. 이게 다 내가 못나서 그래..”

정도곤은 “엄마 잘못 아니”라고 이외식을 위로했다. 이 말을 남기고 정도곤은 요양원을 나서려 했다. 침대에 누운 이외식은 정도곤에게 베지밀 하나를 건넸다. 정도곤은 베지밀을 들고 요양원을 떠나려 했다. 엄마 이외식이 작게 말했다.

“또곤아.. 여기.. 앉아서.. 먹고 가. 다 먹고 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것 중 하나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한다. 엄마 이외식은 또곤이의 그 소리를 거의 못 듣고 살았다.

칠순의 또곤이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베지밀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 먹었다. 자기 엄마 들으라는 듯 꿀떡꿀떡 소리나게 베지밀을 식도 뒤로 넘겼다. 엄마는 누워서 그런 아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베지밀은 금방 바닥났다.

“엄마, 다 묵었다. 인자 됐능교?”

아들은 침대에서 일어나 요양원 엄마의 방을 떠났다. 침대에 누운 이외식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가슴에 박힌 여러 사연이 꿈틀 대는지 가끔 한숨을 토했다. 그럴 때마다 92년을 버텨온 한 여인의 오래된 몸이 작게 흔들렸다.

요양원 밖은 여전히 뜨거웠다. 또곤이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물기로 범벅이 됐다.

서울 서초동의 대법원 판사들이 거래한 92세 여인은 충북의 첩첩산중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