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깟뜨! 다시 갈게요. 이 원장, 왜 이래!”
“아, 이 습관이 여기서 걸리네.”
조현병 환자를 연기하게 된 정신과 의사는 자꾸 NG를 냈다.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센터장은 30년 넘게 정신과 전문의로 사는 동안 사람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는 습관이 뱄다.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환자들이 위압감을 느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습관에 익숙한 눈동자는 상대 배우인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카메라 렌즈를 향했다.
“아 이 배우 안 되겠네, 카메라 보면 NG야.”
“연기가 쉬운 게 아니구나.(웃음)”
또 한 번 NG를 내자 양수진 감독이 장난 섞인 핀잔을 줬다. 이영렬 센터장이 민망함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은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사이다.
이 센터장은 영화 <F20, 그 이후> 제작 과정에서 여러 역할을 맡았다. 먼저 이 영화를 기획하고 대본 초안을 썼다. 주인공인 나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정신과 전문의를 섭외하는 등 캐스팅에도 힘썼다.
배우로도 나섰다. 내가 연기하는 주인공 ‘이보미’의 아버지이자 조현병 환자인 ‘이영철’ 역이었다. 30년 넘게 정신질환자를 진료한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를 연기하게 된 셈이다.
영화 <F20, 그 이후>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가 보건복지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제작했다.
영화의 가장 큰 목적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영화는 탐사보도 전문매체 기자 이보미가 ‘안인득 사건’을 취재해 나가면서 조현병 환자인 아버지 영철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안인득 사건’으로 알려진 진주 방화·살인 사건은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아파트 주민을 칼로 찌른 사건이다.(관련 기사 : <‘안인득 사건’ 취재 기자가 배우가 되기로 한 이유>)
영화 <F20, 그 이후>의 제작 배경에는 KBS가 지난해 제작한 영화 <F20>이 있다. 조현병 아들을 둔 두 어머니의 심리를 그린 스릴러 영화 <F20>은 개봉 후 장애인 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영화가 “조현병 환자에 대한 혐오를 담고 있다”는 것.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전국 19개 장애인단체들은 지난해 10월, 서울 KBS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의 공식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이런 발언이 나왔다.
“(영화 대본을 집필한) 작가는 사이코패스와 조현병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배점태 한국조현병회복협회 회장)
“조현병을 가지고 있으면 이웃에게 죄를 지은 것처럼 숨어지내고 당사자 부모도 정신질환이 와서 살인을 하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묘사한 것에 분노를 느낀다.”(권용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
이영렬 센터장은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본 <F20>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모든 조현병 환자가 안인득처럼 극단적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니까요.”
영화 <F20, 그 이후> 속 일곱 명의 주요 배역을 맡은 사람 중 다섯 명은 처음 연기에 도전하는 ‘초짜 배우’였다. 가장 까다로운 연기를 펼쳐야 하는 이는 이영렬 센터장이었다.
“제가 살다 살다 연기를 다 하게 됐네요.(웃음)”
정신과 전문의인 그가 조현병 환자 역할에 적임자인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조현병 환자인 어머니를 곁에서 보고 자랐다. 이 센터장은 ‘영철’ 캐릭터에 병이 만성화된 조현병 환자의 보편적인 특징과, 그가 어렸을 때부터 봐온 어머니의 모습을 반영했다.
“영철이는 성별만 바꾸면 저희 어머니의 모습과 거의 같아요. 보미의 성격과 아빠를 대하는 방식은 제 어린 시절과 닮아 있고요.”
영철은 극 중에서 ‘믹스 커피’를 달고 사는 걸로 나온다.
#씬15
이보미 : “(영철의 커피잔을 보며) 근데 그 커피, 또 믹스 두 봉 탄 거지? 전에는 하루 열 잔까지 마시더니.”
이 장면을 연기할 때 이 센터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저희 어머니가 이러셨어요. 커피믹스랑 콜라를 아주 달고 사셨지.”
이 센터장은 말이 빠른 편이다. 무언가를 단호하게 말할 때 눈매는 매섭게 치켜 올라간다. 그러나 영화 속 이영철의 말투는 느릿하고 눈의 초점도 흐릿하다. 약을 장기간 복용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자 바로 그의 어머니 모습이다.
“원래 조현병 환자들이 다른 사람 눈을 잘 못 봐요. 눈에 힘도 없고.”
조현병 환자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형이 조현병 환자인 양수진 감독이 한마디 덧붙였다.
영화 속에서 이보미 기자는 두 명의 의사를 인터뷰한다. 두 의사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다. 보미가 처음으로 인터뷰하는 인물은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그는 현실에서도 대본 속에서도 ‘자타공인 조현병 전문가’다.
“기자님, 대사 중에 수정된 부분이 있습니다. ‘엉망이 된’이라는 표현 있잖아요. 이건 빼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기자가 “환자들이 상처 받을까봐 그러시죠?”라고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네요.”
극 중 보미의 두 번째 인터뷰 대상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대본 수정을 요구했다. “강제로라도 입원을 시켜야 하겠네요”라는 대사에서 “강제로라도”를 빼자는 의견이었다. 백 교수는 2018년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동료다.
두 의사의 의견은 모두 수용됐다. 환자 입장에서 불쾌하거나 상처가 될 수 있는 표현을 최대한 부드럽게 바꾸기 위해 이영렬 센터장과 두 의사는 촬영 현장에서 자주 머리를 맞댔다.
난생처음 여기에 도전하는 나도 NG를 피해갈 순 없었다.
“대사 물려요!”
‘물린다’는 말은 대사와 대사가 겹친다는 뜻이다. 배우들은 상대가 말을 다 끝내고 2~3초 뒤에 말을 시작해야 했다. 관객 입장일 땐 영화 속 주인공들이 서로 쉴 틈 없이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말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있었다. 바로 감정선이었다.
“주인공 이보미 기자와 진짜 주보배 기자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첫 촬영이 시작되기 전인 10월 21일, 식사 자리에서 이영렬 센터장이 내게 물었다.
“보미가 좀 더 프로페셔널한 것 같아요. 조현병 이슈에 대해 취재하면서 관계자들에게 아빠 이야기를 전혀 하지도 않고 내색도 하지 않잖아요.”
내가 대답하자 이 센터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건 프로페셔널한 게 아니라, 트라우마 때문이에요. 보미는 아빠 영철이 오래 조현병을 앓으면서 그를 돌보던 엄마가 일찍 죽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보미는 아빠를 싫어해요. 아빠와, 아빠 때문에 생긴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들을 외면하고 싶어서 언급하지 않는 거예요.”
이날 이후 보미 역에 이입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보미가 영철에게 가진 감정은 ‘애증’에 가까울 것이라 해석했다. 아빠를 원망하지만, 또 미워만 할 수는 없는 그런 감정. 이후 보미를 연기할 때 누군가에게 애증을 느꼈던 때를 떠올리며 감정을 잡았다.
#씬9
보미의 독백 : 아빠 상태가 나빠져서가 아니다. 아빠는 오히려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중략) 엄마가 돌봐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돌보려는 의지가 강해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게 더 얄밉다. (한 호흡 쉬고) 자기가 그렇게 살고 싶었으면, 엄마도 같이 살도록 했어야지!
“이 원장님이 배우를 잘못 섭외했다, 나는 그냥 아줌마예요. 자꾸 틀려서 우야노.”
가장 많은 NG를 낸 주인공은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회장이었다. 경험 많은 배우도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대사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부담감 때문인지, 대구 출신인 조 회장의 입에선 표준어와 경상도 사투리가 반쯤 섞인 어색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열 번째 NG가 났을 때, 나는 새로운 촬영 방식을 제안했다. 어차피 보미가 조 회장을 인터뷰하는 장면이니, 조 회장이 대본에 적힌 내용과 비슷한 답변을 하도록 내가 질문을 통해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촬영 방식을 바꾸니 조 회장은 평소 자기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우리 아(아이)들’이었다.
“우리 아(아이)들은 말입니더, 자기들 때문에 가족이 힘든 거 다 압니더.”
조 회장은 조현병을 앓는 아들과 함께 산다. 그는 조현병 환자들을 ‘우리 아(아이)들’이라고 불렀다.
#씬14
이보미 : 자조 모임에선 뭘 하시나요?
조 회장 : 우선 우리나라 정신과 법이나 정책에 대해 배웁니다. 기본적인 팩트도 모르니까 목소리를 내도 징징거리는 하소연이나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도 합니다. (한 호흡 쉬고) 지금까지 우리 단체는 변변한 정책 제안 같은 것도 한번 못 해 봤어요. 남들이 제안한 정책에 의견이나 다는 정도, 그것도 불러주어야 가서 한마디하고 오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좀 달라지려 합니다. ‘이제라도 제대로 한번 우리 목소리를 내보자, 우리도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좀 껴보자’ 하고 시작한 것이 이 자조 모임이오.
이 장면을 연기할 때 조 회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도 이제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려는 겁니다!”라는 대사를 할 때는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에 휘둘렀다. 그를 보면서, 이 영화도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이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깟뜨!”
마지막 씬 촬영 종료를 알리는 양수진 감독의 말이 끝나자, 조 회장이 안도의 한숨을 한 번 쉬고 말했다.
“촬영 끝났어요? 그럼 마, 우리 저녁 먹으러 가입시다!”
이영렬 센터장, 조순득 회장, 양수진 감독과 함께 식당에 둘러 앉았다. 조현병 환자를 각각 어머니, 형, 아들로 둔 이들은 자신 곁의 ‘1%’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조현병 환자의 발병률은 1%다.
양수진 : “아드님은 잘 지내세요? 몇 살이세요?”
조순득 : “마흔다섯 들었습니다. 아들이 큰놈이잖아요.”
양수진 : “(아드님은) 언제 (조현병이) 발병한 거예요?”
조순득 :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아휴,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진다’는 우리나라 말이 뭔지 알겠더라요. 딱 그 표현인 기라.”
지난여름 진주 방화・살인 사건을 취재할 때 내가 집중한 건 ‘팩트’(사실)였다. 안인득이 언제, 왜 치료를 포기했는지, 그때 경찰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의 가족들은 그를 입원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왜 좌절했는지 등에 집중했다.
반면 영화는 ‘감정’의 세계였다. 보미는 제자리걸음인 정부 정책을 답답해했다. 또, 조현병 환자인 아빠에게 원망 가득한 짜증을 내고, 때로는 그를 혐오했다. 그러다 종국에는 그를 측은해하면서 ‘함께 잘 살아보자’고 웃었다. 취재할 땐 관찰자에 머물렀지만, 영화를 촬영하면서는 간접적으로 조현병 환자 가족이 돼볼 수 있었다.
마지막 촬영 이후 저녁식사 자리에서 셋이 나누는 대화에 나는 말을 얹을 수 없었다. 쉽게 공감한다 말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들은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범죄자’가 아니라 우리 곁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1%’ 가족들의 진심이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소중하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양수진 :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러시더라고요. ‘나 죽으면 네가 가족들이랑 같이 형을 잘 돌봐라’라고. 그래서 제가 ‘걱정하지 마시라 내가 형 책임질 테니까’라고 대답했죠.”
조순득 : “우리 딸들도 나한테 ‘엄마, 아무 걱정 하지 마. 오빠 내가 잘 돌볼게’ 이라지. 근데 그 무거운 짐을 또 딸들한테 지라는 것도 내가 마음이 아파.”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