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률 93%’. 이 놀라운 숫자는 검사들의 국외훈련 논문을 검증하면서 나온 것이다.
검사들의 국외훈련은 “검찰의 발전과 훈련대상 검사의 자기계발”을 위해 마련된 제도. 국외훈련 기간 동안 세금으로 체재비(항공료, 의료보험료, 생활준비금 등 포함)와 학자금 등이 지원되는 ‘공짜 유학’이다. 훈련 기간은 단기 6개월에서 장기 1년을 원칙으로 한다(최대 1년 6개월).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는 귀국 이전에 그동안의 성과를 담은 연구논문을 완성해, 귀국 3주 전까지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에 송부해야 한다. 법무연수원은 심사위원회를 거친 연구논문 및 토론 내용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게시하고 연간 1회 논문집을 발표한다.
학자금부터 항공료까지 모두 세금으로 다녀온 국외훈련의 결과물인 논문. 하지만 그 가운데 표절이 의심되는 부정·부실 논문이 있는 것이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취재로 확인됐다.
<셜록>은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발행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84건의 표절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5건의 표절 의심 논문을 확인했다.
표절률은 최대 93%에 달했다. 해당 논문을 쓰는 데 약 5000만 원의 국외훈련비가 지원됐다. ‘표절률 93%’의 국외훈련 논문을 쓴 사람, 박건영 검사(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헌법재판소 파견, 사법연수원 37기)다.
박건영 검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시절인 2019년 7월 25일부터 약 1년간 미국 퍼시픽대학(University of the Pacific)으로 국외훈련을 떠났다.
박 검사가 국외훈련 이후 작성한 논문은 법무연수원이 2021년 발간한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제36집)>에 실려 있다. 박 검사는 <변호사-의뢰인 비닉특권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작성했다.
해당 논문을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먼저 검사해보니, 표절률은 55%를 기록했다. 통상 학위논문의 경우 ‘표절률 20% 이상’은 연구윤리 위반으로 인식된다.
<셜록>은 해당 논문과 원자료들을 직접 하나씩 비교했다. 그 결과 표절 정황은 서론과 본론의 거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한 페이지 안에서 표절이 의심되지 않는 문장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박 검사가 작성한 논문은 총 4개의 저작물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된다. 서론부터 표절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박 검사의 논문 5~7쪽의 ‘비밀유지권’ 부분은 남○○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가 2018년 8월 20일 발간한 논문 <변호사-의뢰인 비닉특권의 도입 요구에 앞서>(488~490쪽)를 거의 그대로 옮겨 썼다.
‘복사-붙여넣기’ 방식은 주로 본론에서 사용됐다. 박 검사의 논문은 세 번째 챕터(16~38쪽)에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의 비닉특권 운영 실태를 소개하는데, 이 내용은 한○○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9년 8월 28일 발간한 논문 <의뢰인-변호사 간 비밀유지권에 관한 검토 및 개선방향>(234~252쪽)과 거의 동일하다. 약 20쪽에 해당하는 분량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박 검사 논문의 네 번째 챕터인 ‘정보통신매체 발달로 인한 비닉특권 적용 논의’(39~45쪽)는 한 문단만 제외하고, 윤○○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8년 10월 29일 발간한 논문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대화내용에 대한 증언거부권>(301~307쪽)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
‘비닉특권의 악용 가능성’을 다룬 다섯 번째 챕터에선 서론에서 베낀 저작물을 다시 한 번 가져다 썼다. 박 검사의 논문 46~55쪽은 남 교수의 <변호사-의뢰인 비닉특권의 도입 요구에 앞서>(492쪽, 507~515쪽)에서 일부를 가져와 그대로 배치했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형 표현을 “막을 수 있었다”라는 평서형 표현으로 바꾼 정도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챕터인 ‘미국의 증거 수집 관련 제도’(56~75쪽)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03년 9월 발간한 <형사증거개시제도에 관한 연구>(연구자 탁○○, 27~28쪽, 41~56쪽, 59~60쪽, 66~69쪽)에서 총 24쪽 분량을 가져와 거의 똑같이 옮겨 썼다. 연구보고서에 첨부된 법령·경전도 ‘박스’로만 처리해 옮겨 쓴 걸로 보인다.
박건영 검사의 논문 총 78쪽(표지 및 요약 포함, 참고문헌 제외) 중 결론을 제외한 64쪽 분량 거의 대부분을 타인의 논문과 연구보고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의심된다. 표절이 의심되지 않는 14쪽 분량의 내용 중에서도 4쪽 분량은 판례로 채웠다.
박 검사의 논문과 원자료를 비교해, 박 검사가 새로 작성한 문장의 수를 확인했다. 전체 563개 문장 중 39개(7%)뿐이었다. 박 검사는 위 논문과 연구보고서 4건의 이름을 참고문헌에 밝혔지만, 문장과 구성의 유사도를 살펴볼 때 단순히 ‘참고’로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국외훈련비의 지급)에는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지급받은 훈련비의 100분의 20을 환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박 검사가 1년간 미국에 머물면서 쓴 국외훈련비(체재비+학자금)는 약 4,894만 원.(더불어민주당 기동민의원실 제공 자료)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연탄쿠폰 약 2만 5000장을 지원할 수 있는 돈이다(산업통상자원부 지원 기준 연탄쿠폰 2000원). 국외훈련 기간에도 급여는 지급된다.
<셜록>은 국외훈련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당사자인 박건영 검사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 박 검사는 현재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소속으로 헌법재판소에 파견 중이다. 기자는 지난달 23일과 이달 1일, 8일 세 차례에 거쳐, 박 검사를 직접 인터뷰하겠다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 취재 사실은 박 검사에게 전달됐지만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국외훈련 연구논문 표절 문제는 박 검사가 헌법재판소에 파견된 후에 있었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입장을 전달하기 곤란합니다. <셜록>의 취재 사실은 당사자인 박 검사에게 전했습니다.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은 박 검사가 국외훈련을 나갔을 당시 소속이었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연락하는 게 좋겠습니다.”(헌법재판소 공보담당관)
기자는 지난달 29일 반론을 듣고자 서울중앙지검을 직접 찾아갔지만, 공보담당관실의 거절로 서면 질의서를 전달하지 못했다. 대신, 같은 날 이메일을 통해 서울중앙지검 공보담당실에 ▲박 검사의 국외훈련 연구논문 표절에 대한 입장 ▲국외훈련비 반납 계획 등을 질의했다.
서울중앙지검 공보담당실은 다음 날인 30일 서면 답변을 통해 “현재 중앙지검 소속이 아닌 검사의 국외훈련 관련한 입장을 서울중앙지검에서 확인 및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셜록>은 현재 박 검사가 소속돼 있는 광주지검 순천지청 공보관실에 수차례 연락을 진행해, 간신히 통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순천지청 공보담당 검사는 14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국외훈련 연구논문은 지청이 아닌 법무연수원 관할이기 때문에 소관사항이 아니”라면서, “박 검사도 (헌법재판소에) 파견을 나가 있어 직접 물어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대답했다.
헌법재판소는 ‘박 검사의 국외훈련 당시 소속이 서울중앙지검이라서‘ 답변을 거부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박 검사의 현재 소속이 순천지청이라서‘ 또 답변을 거부했다. 순천지청은 ‘박 검사의 파견처가 헌법재판소라서‘ 역시나 답변을 거부했다. 지난 3주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은폐의 삼각 무한루프’만이 반복됐고, 박 검사의 답변을 ‘공식적으로’ 들을 방법은 그렇게 차단됐다.
수소문 끝에 알게 된 박 검사의 개인 연락처를 통해 그의 입장을 질의했다. 15일 오전부터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하루가 지나는 동안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알고 싶다. 박 검사는 왜 전체 563개 문장 중 직접 쓴 문장이 39개밖에 없는 논문을 썼는지, 그가 5000만 원의 혈세를 쓰면서 미국에서 1년간 공부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여전히 박 검사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글은 <얼룩소>(https://alook.so/posts/zvtKzJp)와 동시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