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종은 올해 공격적인 스카우트로 주목 받았다. (…) 로펌업계 ‘스토브리그 블랙홀’로 뜨고 있다는 평가다. 즉시 전력감인 스타급 인재들을 새 식구로 들여 기존 인력들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한국경제, 김진성 기자 <공격적 스카우트… 로펌간 인재전쟁서 ‘에이스 싹쓸이’ 한 세종> 2022. 11. 9.)
대형로펌의 ‘인재 싹쓸이’를 보도한 기사의 한 대목. 기사는 “특정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전관들이 줄줄이 합류한 것도 눈에 띈다”는 설명과 함께, 진현일 변호사의 이름을 언급했다.
로펌 홈페이지의 진 변호사 프로필에 “학력 : 미국 UCLA (Visiting Scholar)”, “주요저서 및 논문 : 미국의 공정노동기준법상 임금 제도(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 2019)”라는 소개가 눈에 띈다. 이 ‘스펙’은 진현일 변호사, 아니 진현일 전 검사가 국민의 세금으로 다녀온 국외훈련의 결과다.
진현일 전 검사(사법연수원 32기)는 국외훈련으로 세금 수천만 원을 써놓고, 4년 만에 대형 로펌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진 전 검사가 국외훈련의 결과로 쓴 연구논문은 표절로 의심된다.
법무부는 외국의 선진 법을 배우고자 검사들을 대상으로 국외훈련 제도를 운영한다. 훈련대상 검사는 어학성적, 근무성적,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발한다. 국외훈련 기간 동안 세금으로 국외훈련비가 지원된다. 주요 지원금은 체재비(항공료, 의료보험료, 생활준비금 등 포함)와 학자금.
국외훈련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물은 연구논문이다.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에 따르면,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는 그동안의 성과를 담은 연구논문을 완성해, 귀국 3주 전까지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에 송부해야 한다.
진현일 전 검사가 6개월 동안 미국에서 국외훈련을 받으면서 쓴 국외훈련비(체재비+학자금)는 3092만 원. 하지만 진 전 검사가 작성한 연구논문 총 92쪽 중 73쪽, 약 80%의 페이지에서,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이 발견됐다.
진현일 전 검사는 2017년 12월 21일부터 다음해 6월 17일까지 6개월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당시 진 전 검사는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소속이었다.
진 전 검사는 국외훈련 논문으로 <미국의 공정노동기준법상 임금 제도>를 작성했다. 그가 작성한 논문은 법무연수원에서 2019년 발간한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제34집)>에 실려 있다.
먼저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진 전 검사의 연구논문을 표절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검사했다. 그 결과 표절률은 50%(표절 기준 ‘6어절 이상, 1문장 이상 일치’로 설정). 이후 진 전 검사의 연구논문과 표절 대상으로 의심되는 저작물을 한 문장씩 일일이 비교해봤다.
표절 대상이 된 걸로 의심되는 저작물은 고용노동부가 2014년 9월 발간한 <통상임금제도 개선을 위한 외국의 운용사례 연구>(책임연구원 이○○) 보고서다. 고용노동부 보고서는 통상임금 제도를 크게 한국, 미국, 일본 등 국가별로 나눠 설명했다. 진 전 검사의 연구논문은 이중 한국과 미국 부분을 거의 ‘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갖다 썼다.
먼저, 진 전 검사의 논문 4~20쪽의 ‘우리나라의 통상임금’ 부분은 고용노동부의 보고서(3~5쪽, 10~22쪽) 내용과 거의 똑같다. 문장 순서와 내용 구성 등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할 정도다. 차이점이 있다면, “명시적으로 밝혔다”라는 표현을 “명확히 하였다”라고 바꾼 정도다.
‘미국의 통상임금’을 다룬 본론은 거의 ‘통째로 베꼈다’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진 전 검사의 연구논문(21~69쪽)에선 미국의 통상임금을 ①통상임금의 정의 ②통상임금의 범위 ③임금공제와 통상의 임금 ④시간외근로수당의 지급 ⑤근로한 시간의 결정 ⑥기본급 약정으로 나눠 다뤘는데, 6개의 파트 모두 고용노동부 보고서의 내용(31~65쪽, 93~101쪽)과 거의 동일했다. 쪽수로 총 49쪽 분량이다.
작은 차이가 있다면, 보고서에선 숫자로 표현된 단락 기호(1, 2, 3…)가 진 전 검사의 연구논문에선 한글(가, 나, 다…)로 변경됐을 뿐이다.
또 진 전 검사의 연구논문에선 보고서와 다르게 괄호 안 영어가 생략됐다. 예를 들어 “핵심(keystone)”, “사용자의 이익을 촉진하기(in the furtherance of the employer’s interest)”, “합리적(reasonable)” 등 한글 설명 옆 괄호 안에 들어 있던 영어 표현이 진 전 검사의 연구논문에선 사라졌다.
결론에서도 보고서 내용이 등장한다. ‘미국 통상임금 제도의 시사점’을 다룬 진 전 검사의 결론 부분(89~92쪽)은 고용노동부의 보고서(161~167쪽)에서 일부를 가져와 그대로 배치한 걸로 보인다.
진 전 검사의 연구논문 총 92쪽(표지, 논문 요약, 목차, 참고문헌 제외) 중 19쪽(20%)만이 새로 작성한 페이지였다. 이마저도 국외훈련 국가인 미국이 아닌, 일본의 통상임금 제도에 대한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진 전 검사가 작성한 연구논문의 참고문헌은 물론 주석까지 모두 확인했지만, 원자료 출처에 대한 표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공무원 인재개발법 시행령 제39조(국외훈련비의 지급)에는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 지급받은 훈련비의 100분의 20을 환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진 전 검사가 해당 논문을 쓰기 위해 미국에서 6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사용한 국외훈련비(체재비+학자금)은 3092만 원(더불어민주당 기동민의원실 제공 자료)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3352시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2022년 최저임금 9160원 기준).
진 전 검사는 왕복항공료 164만 원, 학자금 874만 원, 체재비(항공료 제외) 2053만 원을 사용했다. 국외훈련 기간 동안 급여도 지급받는다.
<셜록>은 알고 싶었다. 진현일 전 검사는 왜 연구논문 92쪽 중 19쪽만 새로 쓴 건지, 이마저도 왜 국외훈련 국가인 미국이 아니라 ‘생뚱맞게도’ 일본에 대한 내용으로 채운 건지, 그가 약 3000만 원의 혈세를 쓰면서 미국에서 6개월 동안 공부한 건 도대체 무엇인지.
진 전 검사는 지난 7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0부장 직을 마지막으로 검사 옷을 벗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이직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빅6’에 속하는 대형 로펌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2701억 원으로, 법무법인 기준 전체 4위를 차지했다. 진 전 검사는 법무법인 세종에서 ‘중대재해대응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21일 진 전 검사의 이메일과 개인 연락처를 통해 ▲국외훈련 연구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입장 ▲국외훈련비 반납 의사 등을 질의했다.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진 전 검사가 현재 소속된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서도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달 23일과 24일 진현일 변호사의 담당 비서에게 전화를 걸고, 인터뷰 의사를 전달했다. 담당 비서는 “(셜록의 인터뷰 요청을) 메모에 남겨 전달드리겠다”고 대답했으나, 회신을 받지 못했다.
이후 지난달 29일 직접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을 찾아갔다. 담당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서면질의서를 전달하고자 건물에 와 있다”고 말했으나, 담당 비서로부터 “(법무법인 세종 쪽에서) 답변드릴 사항이 없어 서면질의서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서면질의서를 진 전 검사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셜록>은 최종적으로 이달 20일과 21일 진 전 검사 개인 연락처를 통해 인터뷰 의사를 재차 물었지만, 진 전 검사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국외훈련 제도 담당 기관인 법무부와 법무연수원은 ▲진 전 검사의 표절 의혹과 ▲국외연수비 환수에 대해 “이미 퇴직한 검사 개인의 입장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 특히, 법무부는 책임기관으로서 표절 논문을 걸러내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의에 대해, 이런 답변을 보내왔다.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은 학위논문 또는 학술지에 투고하여 학계에 알리는 등의 통상 논문과는 달리, 훈련대상자가 외국에서 연구할 훈련과제를 부여받아 우리나라의 형사사법 발전을 위해 외국의 제도와 학설, 실무례를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중략) 현재 논문 심사 기준 등은 법무연수원에서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입니다.”
진 전 검사는 재직 시절 기소를 담당하거나 공판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저작권법 위반 사건을 다뤄왔다. 영화 ‘데스노트’를 온라인 사이트에 업로드하는 걸 방조한 웹스토리지 사이트 개설자부터,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수십 곡의 가요를 음악반주용으로 사용한 단란주점 주인까지, 진 전 검사를 거쳐간 저작권법 위반 사건은 다양하다.
위 사건의 피고인들은 타인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한 죄로 법정에 섰다. 그들과 함께 법정에 있었던 진 전 검사는 본인의 연구논문 표절 문제 앞에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이 글은 <얼룩소>(https://alook.so/posts/mbtEx4q)와 동시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