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벌어진 ‘삽자루 폭행 사건’은 운명의 예고편 또는 경고였다.
‘곧 나도 저렇게 얻어터진다… 이 섬에서 탈출해야 한다. 어떻게든.’
순진한 생각이었다. 섬에서 자력으로 탈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육지로 가는 배가 없는 게 아니다. 염전주인과 이웃, 선착장 매표원은 모두 같은 편이다. 심지어 경찰까지도.
하지만 그땐 이들의 끈끈한 관계를 몰랐다. 한두 번도 아니고, 몸 약한 발달장애인을 발로 밟고 삽으로 때리다니. 돈 벌러 이 섬에 왔지, 흔적도 없이 죽으러 온 게 아니다. 살려면 도망쳐야 했다.
섬에 들어온 지 약 1개월, 2013년 3월 31일 일요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때마침 염전주 박호성(가명)은 배를 타고 목포로 나갔다. 그의 아내 조수연(가명)은 교회에 갔다. “주인아주머니”로 불리는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주인 부부가 집을 비운 오전 11시, 숙소 뒤 산으로 튀었다. 이 섬에선 염전노예들의 도망을 ‘토끼’라는 은어로 부른다. 직업소개소에 갔다가 얼떨결에 염전노예가 된 이재호(가명, 1980년생)는 그렇게 산으로 튄 토끼, ‘산토끼’가 됐다.
산에서 꼬박 5시간을 버텼다. 저 아래 마을을 살피니 날 수색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산토끼 이재호는 다른 마을로 하산했다. 바닷가 인근에서 40대로 보이는 아저씨를 만났다.
“자꾸 사람을 때리고 괴롭혀서 박호성 염전에서 도망쳤습니다. 배도 너무 고픈데….”
이 주민은 박호성과 달랐다. 자기 집으로 안내하고 떡과 커피도 내줬다. 저녁 땐 씻을 물과 저녁밥을 줬다. 하룻밤 머물 숙소도 내줬다. 다음 날 아침엔 비가 내렸다. 배를 타고 떠나면 노예 생활도 끝이었다. 아저씨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TV를 보며 누워 있는데,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야 이 새×야, 너 여기서 뭐하냐? 나와!”
주인아주머니는 말이 거칠었다. 이웃 주민이 보고 있으니, 뭘 어떻게 하기는 어려울 게 뻔했다. 이재호도 뻣뻣하게 나갔다.
“아주머니 누구세요? 저 아세요?”
주인아주머니는 손도 거칠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조수연은 어제 하나님께 기도한 두 손으로 이재호의 뺨을 후려갈겼다. 눈에서 번개가 쳤으니, 다섯 대 정도를 연속으로 맞을 것 같다. 조수연과 ‘산토끼 체포조’로 함께 온 다른 염전노예가 이재호를 발로 밟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번째 탈출은 실패로 끝나고, 다시 박호성 염전으로 끌려갔다. 숙소에 도착하자 주인아주머니가 순하게 변했다. 그녀는 통닭을 내놓으며 노예 이재호를 타일렀다.
“다시는 도망가지 마. 알았지?”
박호성은 다음날 오후 1시 배를 타고 섬에 들어왔다. 그는 이재호에게 경고했다.
“이번이 처음이니까 봐준다. 또 도망치면 가만 안 둬.”
이재호는 다시 한 달을 섬에서 살았다. 새벽 3시께 일어나 소처럼 염전에서 일했다. 다른 노동자와 ‘2인 1조’로 긴 쇠봉을 끌며 염전에 바닷물을 채웠다. 욕설과 폭행이 난무했다. “월 70만 원 주겠다”는 말을 믿고 왔는데, 염전주는 입을 싹 닦았다.
이재호는 발달장애인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공익근무로 병역도 마쳤다. ‘내가 왜 이 섬에서 노예로 살아야 하나’ 자괴감과 탈출 본능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4월 말, 2차 탈출을 감행했다.
일을 시작하는 새벽 3시께였다. 이재호는 “대변을 봐야 한다”며 화장실로 가는 척, 그대로 산으로 튀었다. 1차 도망 때 ‘산토끼는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엔 바다로 도망간 ‘바다토끼’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재호는 오후 7시께 산에서 내려왔다. 도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했다. 한참을 걸어다가 50대 여성을 만났다. 다시 도움을 청했다.
“박호성 염전에서 일하는데, 자꾸 때려서 도망쳤습니다. 살려주세요.”
그 여성은 혀를 차며 이재호를 자기 집으로 데려 갔다. “종일 굶었을 테니, 밥을 차려주겠다”며 이재호에게 방에서 편히 쉬라고 말했다. 기다리던 밥은 나오지 않았다. 방에서 마당을 내다보니 천사 같은 아주머니의 전화통화 목소리가 들렸다.
“도망친 놈 여기 있으니까, 빨리 데려가세요.”
이재호는 몰래 방을 빠져 나와 도망쳤다. 읍내 쪽으로 달리는데 곧이어 용달차 한 대가 옆에 섰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자 주인아주머니 조수연 얼굴이 보였다. 조수석엔 안타까움에 혀를 차던 ‘천사’ 아주머니가 보였다.
“야, 빨리 타. 안 타면 죽여버린다.”
정말 죽일 것 같아서 용달차에 탔다. 중간쯤 갔을까. 검정색 세단을 만났다. 염전주인 박호성이었다. 박호성은 아내와 차를 바꿔 탔다. 운전석에 앉은 박호성은 아내처럼 이재호의 뺨을 후려갈겼다.
“야, 이 개새×야, 왜 도망가. 어? 왜 도망을 치냐고!”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박호성은 섬의 한 폐기물처리장 인근 외진 곳에 차를 세웠다. 그는 이재성을 끌어내 땅바닥에 무릎 꿇렸다. 박호성을 발로 이재성의 가슴을 차 넘어뜨렸다. 발길질이 셀 수 없이 이어졌다. 몽둥이를 들고 이재성의 “가슴과 등, 다리, 머리 쪽을 20대 넘게” 때렸다.
“한 번만 더 도망치면, 죽여서 땅에 묻어버린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하나님께 빌듯이, 이재성은 무릎 꿇고 박호성에게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두 번의 도망과 실패가 증명하듯, 섬 주민은 같은 편이었다. 앞에서 감시하고, 뒤에서 도망노예를 알려주는 그들은 끈끈했다. 산토끼, 바다토끼 모두 길이 아니었다. 이제 길은 하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이다.
폭행, 욕설, 중노동, 무임금을 버틴 지 약 6개월. 이재성은 8월 18일께 3차 탈출을 시도했다. 이번엔 ‘수사기관 토끼’가 되기로 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이재성은 읍내 파출소로 튀었다. 파출소에 도착하니 출입문은 잠겨 있었다. 벽에 달려 있는 전화기를 이용해 긴급번호를 누르니 파출소에서 경찰이 나왔다.
“염전주인 박호성이 때려서 도망쳤습니다. 섬 밖으로 나가게 해주세요.”
경찰은 “날이 밝으면 책임지고 섬 밖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불을 내주고 파출소에서 이재성을 하루 자게 했다. 아침이 되자 경찰은 “운동 좀 하고 오겠다”며 자전거를 타고 파출소를 떴다. 자전거 타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경찰의 ‘섬 생활 루틴’으로 보였다.
오전 11시께, 염전주인 박호성이 파출소로 왔다. 그는 경찰과 환담인지, 차담인지를 나누고 이재성 앞으로 왔다. 파출소여서 때리지는 않았다. 이재성은 “정말로 돌아가기 싫다, 날 섬 밖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박호성은 “집에 가서 좋게 이야기하자”며 이재성을 다시 데려갔다. 경찰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경찰이 밀고자였다.
이후 염전노예 이재성은 한 번 더 파출소로 탈출을 시도했다. 2013년 10월 7일 새벽이었다. 벌써 네 번째 탈출, 이재성은 작은 변화를 줬다. 바로 파출소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 뒤에서 노숙을 했다. 아침이 되자 경찰이 밖으로 나왔다. 또 그때 그 경찰이었다.
“어… 또 왜 왔어요?”
“섬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제발 조치 좀 해주세요.”
그의 루틴은 변하지 않았다. 경찰은 “운동하러 간다”며 또 자전거를 타고 파출소를 떴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염전주인 박호성이 파출소로 왔다. 그는 자기 차에 다시 이재성을 태웠다.
“너는 사람새끼가 아니야. 넌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냐?”
누가 “사람새끼”고 누가 “개새×”인지, 모든 게 헝클어지고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이쯤되자, 박호성은 이재성을 놓아주기로 했다. 다음 날 박호성은 현금 400만 원을 경찰과 이재성 앞에서 꺼내놓고 지 멋대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너 가불 210만 원 했었지? 그거 까고… 내가 너 소개비로 100만 원 썼거든? 그것도 까고… 90만 원 남으니까. 이게 네 몫이야.”
가불은 한 적도 없는데 지 멋대로 우겼다. 염전에서 일하고, 밭에서 풀 뽑고, 남의 집에서 일한 일당까지 빼앗긴 세월이 약 8개월. 먹여주고 재워줬으니 90만 원이면 족하다는 염전주인의 말을 이재성은 묵묵히 받아들였다. 섬 탈출이 우선이니 꾹 참았다.
이 모든 걸 지켜본 경찰은 가만히 있었다. 염전주인이 돈을 치렀다는 걸 입증할 증인이라도 되려는 듯 그는 가만히 지켜봤다.
주민과 경찰의 ‘토끼몰이’ 합동작전으로 끝나버린 염전노예의 탈출은 이렇게 ‘90만 원 합의’로 마무리됐다. 2014년 5월 2일, 이재성은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이런 진술을 했다.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그 지옥 같은 섬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재성은 경찰의 위법행위를 고발하며 2015년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제42민사부는 2017년 9월 이재성의 손을 들어주며 “국가는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경찰 최○○은 이재성이 파출소로 찾아와 ‘염주에게 폭행을 당했으며, ○○도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음에도, 염주 박호성에게 연락을 하여 이재성이 있는 파출소로 오라고 한 후 자신은 운동을 이유로 파출소를 비우고 박호성과 이재성을 독대하게 하였다. (중략) 경찰의 이러한 직무행위는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그 자체로 위법한 것으로….”
경찰과 가해 주민이 합동으로 염전노예의 탈출을 막았다는 걸 법원도 인정한 것이다.
이재성이 탈출을 포기하지 않는 동안, 그가 목격했던 ‘삽자루 폭행사건’의 피해자도 일을 꾸미고 있었다. 그는 섬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걸 훨씬 이전에 깨닫고 집으로 수차례 편지를 보냈다. 가족의 신고를 받은 구로경찰서 소속 형사는 소금상인으로 위장해 섬으로 들어가 그 노예를 구출했다.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그 염전노예의 편지였다.
여기까지 들으면 불행 중 다행의 해피엔딩. 하지만 90만 원을 받고 육지로 간 이재성은 얼마 뒤 다시 섬에서 발견됐다. “다시는 그 지옥 같은 섬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글은 <얼룩소>(https://alook.so/posts/eVtRWjl)와 동시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