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란찜은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가 너스레를 떨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크게 웃는 법이 없다. 입을 반도 벌리지 않고, 소리 없이 빙긋이 웃을 뿐이다. 그가 언제부터 ‘웃음 없는 사람’이었는지는 모른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부터 그는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웃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계란찜은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경기 포천시, 영평천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캠핑장. 텐트 안에서 그가 해주는 밥을 먹으니 정말 캠핑이라도 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캠핑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지금은 이 텐트가 그의 집이다. 그의 피난처이기도 하고, ‘병원’이기도 한 곳. 만 2년 3개월째, 그는 여기 혼자 머물고 있다.

“제일 힘든 게 소음이에요. 조금만 시끄러우면 집중이 안 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니까.”

정신질병 산업재해 피해자.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공익신고자. 모두 최홍범(50, 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에서 관용차 운전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운전원이었다. 5년 반 전 그날, 1분 30초짜리 뉴스 한 꼭지가 세상에 보도된 날부터 그의 운명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육아정책연구소 공익신고자 최홍범. 그는 경기 포천시의 한 캠핑장에서 만 2년 3개월째 혼자 머물고 있다. ⓒ셜록

2017년 7월 14일, 채널A는 우남희 당시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 의혹을 보도했다. ‘최근 1년간 관용차로 교회는 120번 정도, 마사지숍은 10번, 골프연습장은 6번 갔다’는 내용. 제보자는 최홍범이었다. 언론 제보와 동시에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도 했다. 국무조정실은 육아정책연구소를 향한 종합감사에 들어갔다.

뉴스가 보도되자, 육아정책연구소는 최홍범에게 ‘언론인터뷰 관련 경위서’ 작성을 지시했다. 부당한 지시라고 생각한 최홍범은 경위서 작성을 거부했다.

최홍범의 공익신고를 바탕으로, 채널A는 우남희 당시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 의혹을 보도했다 ⓒ채널A 보도 캡처

또 육아정책연구소는 최홍범을 기관장 차량 운전 업무에서 배제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 심리적 불편”이 있다는 이유로, 최홍범이 아닌 대리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업무배제는 우 전 소장이 퇴임한 그해 10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이어졌다. 최홍범은 컴퓨터와 전화기 한 대가 전부인 책상에서 ‘버려진 사람처럼’ 종일 앉아 있어야 했다.

그 사이 이상한 일도 있었다. 그해 9월 12일 아침, 최홍범은 이미 출근한 뒤 그의 아내가 집 앞에서 우 전 소장을 목격했다. 우 전 소장이 집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는 게 최홍범 아내의 주장. 가족들은 충격과 불안에 휩싸였다. 최홍범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경찰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2017년 9월 12일 최홍범 씨가 출근한 사이 최 씨의 집 앞에 나타난 우남희 전 육아정책연구소 소장의 관용차량. 미용실 CCTV에 그 모습이 잡혔다. ⓒ최홍범 제공

국무조정실의 감사 결과가 나왔다. 우 전 소장에 대해서는 ▲연가일에 공용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근무시간에 여고 동창회 행사 등 참여 ▲남편 운영 회사 자문기관으로 육아정책연구소 명칭 사적 활용 등 네 가지 비위사항이 지적됐다. 최홍범의 공익신고 내용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우 전 소장에 대한 처분은 ‘1개월 감봉’에 그쳤다.

우 전 소장은 국회에서 ‘위증’까지 했다. 그해 10월 2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 육아정책연구소 등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국책연구기관 기관장들이 출석했다.

박선숙 당시 국민의당 의원은 우 전 소장에게 “제보한 사람들(최홍범) 징계위에 회부하셨나요?”라고 질문했다. 우 전 소장의 답변은 “아니요”. 박 의원은 “명백한 위증”이라며 다시 한번 질의했다. “징계위원회에 제보자들을 출석시킨 일이 없다고 답변하시는 거지요?”라는 질문에 우 전 소장은 “예”라고 재차 답변했다.

팩트는 이렇다. 최홍범은 그해 10월 12일 육아정책연구소로부터 징계위원회 출석통지서를 받았다. 바로 다음 날로 고지된 징계위원회. 최홍범은 부당하다고 생각해 출석하지 않았다. 국정감사에서 우 전 소장은 ‘오락가락’ 답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자신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신고자 최홍범을 ‘징계하려 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공익신고 이후 돌아온 업무배제와 개인사찰, 징계 시도. 최홍범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7년 12월 6일 그와 뜻을 같이하는 다섯 명의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공공연구노조 산하의 육아정책연구소지부. 최홍범이 지부장을 맡았다.

육아정책연구소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국책연구기관이다 ©베이비뉴스 최대성

2017년 12월 19일,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육아정책연구소 새 소장으로 취임했다. 백 소장은 2012년과 2017년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를 도운 인물. 최홍범은 문재인 캠프 출신의 신임 소장에게 작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기대대로 신임 소장이 문제를 잘 해결했다면, 내가 최홍범을 만날 일도 없었을 거다. 2018년 5월부터 최홍범은 또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2019년 2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베이비뉴스가 그의 이야기를 보도하기 전까지, 약 9개월 동안 사실상의 업무배제가 계속됐다.

전임 소장은 “심리적 불편”을 업무배제 이유로 삼았다. 신임 소장이 내세운 이유는 그보다는 구체적이었다. “노조 지부장이 기관장 운전원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 하지만 업무상 직위와 노조원 자격이 충돌하는 문제는 교섭을 통해 해결할 사안이다. 일방적으로 업무에서 배제하는 걸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운전원(최홍범)이 수당 문제로 연장근로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 전임 소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으로 인한 초과근로에 시달렸던 운전원이, 수당 지급을 요구한 것도 업무배제의 이유가 된 셈이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정상적으로 일을 시키고 규정에 따라 수당을 주는 대신, 멀쩡한 운전원을 가만히 앉혀두고 대리기사를 쓰는 방법을 택했다.

“정말 모멸감이 듭니다. 제 아이가 ‘아버지는 뭐 하느냐’고 종종 묻는데요. 할 말이 없습니다. 종일 일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합니까.”(셜록 <‘문캠프’ 출신에 기대했지만.. ‘일’ 잃었다> 이명선 기자 외, 2019. 2. 19.)

최홍범이 “종일 일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사이, 대리기사가 관용차 운전을 맡아 했다. ‘차량은 공인된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연구소 소속 직원에 의해서만 운행할 수 있다’는 자체 지침을 어겼다. 최홍범 월급에 대리기사 비용까지, ‘세금’도 이중으로 낭비했다.

새 소장에 대한 기대도 물거품이 되고, 업무배제가 길어지면서 “모멸감”은 점점 더 크게 쌓여갔다. 2018년 10월 최홍범은 “중증의 우울에피소드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이때부터 먹기 시작한 우울증 약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최홍범의 텐트에 지금도 수북이 쌓여 있는 약 봉지들. “불안할 때 한 알씩”이라는 글씨도 보인다. ⓒ셜록

2019년 2월 19일 최홍범의 소식이 처음으로 보도된 뒤, 정치하는엄마들,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여성엄마민중당 등 시민사회가 백선희 소장 경질을 촉구했다. 백 소장은 한 토론회에서 “원만하고 책임 있게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베이비뉴스 <공익신고자 탄압 논란 중 “저희 잘하고 있죠?” 자화자찬 토론회> 권현경 기자, 2019. 2. 22.)

그런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폭풍’이 불어왔다. 육아정책연구소 안에는 산별노조인 최홍범의 노동조합(제1노조) 말고도 기업노조 형태의 ‘제2노조’가 있었다. 제2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대거 노조를 탈퇴하고, 제1노조의 상급단체인 공공연구노조에 가입신청을 한 것이다.

최홍범이 지부장으로 있는 제1노조 조합원보다 두 배가 넘는 인원. 그중에는 팀장급 보직자가 상당수 있었고, 심지어 그 전 해 노사 교섭에서 사측의 교섭위원을 맡았던 사람도 있었다.(경향신문 <육아정책연구소, 민주노조 와해되나?> 이하늬 기자, 2019. 4. 20.)

공공연구노조는 위 사실을 알린 경향신문 보도에 대해, “(기업노조 출신 조합원들의 가입을 승인한 것은) 조합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일 뿐 조합 와해와는 관계가 없으며, 조합 규정상 인사 총무 관련 보직자도 노조 가입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론한 바 있다.

그들은 가입하자마자 최홍범 ‘지부장’ 탄핵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사유는 “조합원 의견수렴 무시, 총회 거부, 가입 불인정, 본부 권고 무시 등 비민주적 조합 운영”. 서명운동 결과를 근거로 2019년 4월 5일 공공연구노조는 최홍범에게 지부장 ‘직무 정지’를 통보한다. 이후 소집된 임시총회의 첫 번째 안건은 “지부장 탄핵소추 및 집행부 불신임의 건”이었다.

최홍범 직무정지 이후 소집된 임시총회의 첫 번째 안건은 “지부장 탄핵소추 및 집행부 불신임의 건”이었다 ⓒ공공연구노조

공공연구노조는 2019년 5월 육아정책연구소지부를 ‘사고 지부’로 지정하고, 최홍범 지부장 대신 경제인문사회본부 본부장을 지부장 직무대행으로 지정했다. 다음 달에는 기업노조(제2노조) 출신 새 지부장을 ‘공식’ 인준했다. 최홍범은 그렇게 노조에서도 밀려났다.

최홍범이 처음 공익신고를 결심했을 때는, 우남희 전 소장 한 사람을 상대로 싸운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싸움은 어느새, 연구소 ‘전체’를 상대로 한 싸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2019년 12월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최홍범에게 제3회 이문옥밝은사회상 회원특별상을 수여했다 ⓒ최홍범 제공

‘웃음 없는 사람’인 최홍범에게도 가끔은 웃을 날이 있었다. 2019년 12월,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최홍범에게 제3회 이문옥밝은사회상 회원특별상을 수여했다. 이문옥밝은사회상은 “공익제보자들과 건강한 사회를 위해 의로운 일을 한 이들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이듬해인 2020년 5월에는 더 반가운 일이 있었다. 약 1년 전 제기한 초과근로수당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것. 최홍범은 우남희 전 소장 시절인 2016년부터 3년간 미지급한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약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육아정책연구소가 최홍범이 요구한 수당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2019가단5131155 임금)

그 의미는 단순히 못 받은 돈을 받게 됐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소송의 출발점에는 우 전 소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 문제가 있다. 교회, 마사지숍, 골프연습장, 동창회 등 사적인 운행을 비롯해, 출퇴근 구분도 없이 일했던 시간에 대해 인정받게 됐다는 의미다.

공익신고 이후로 이 판결까지,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기서 아름답게(?) 마무리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10개월 뒤는 그는 “제발, 그만 괴롭혀 주세요”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에게 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야기는 이어진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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