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면(자유로) 청소를 위험직종이라고 해야 되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9년 11월 26일 고양시의회 시정질의 현장. 이 날 마지막 시정질의는 장상화 전 시의원(정의당)이 했다. 장 시의원은 “자유로 청소노동자 정규직화를 검토할 것”을 질의하면서 ‘위험의 외주화’를 언급했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시속 90㎞를 넘나드는 고속화도로에 떨어진 낙하물이나 동물 사체를 치우는 일들을 하시기도 합니다. 2015년에는 이러한 위험천만한 일로 사망사고가 있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위험이 외주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재준 당시 시장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자유로 청소는 위험한 일이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뒤이어, 이렇게 말했다.
“차량이 2대, 3대 앞뒤에 충분하게 일하시는 분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자료를 들어 보이며) 그리고 이런 차량을 뒤에 받쳐놓고 그 앞에서 작업을 하도록 하고, 분명하게 사람 한 분을 배치해서 이렇게 하도록 했기 때문에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현장취재 결과, 이재준 전 시장의 말과 달리 현재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일을 할 때 보호 차량을 두 대 이상 배치받지 못했다.(관련기사 : <죽어야 시작되는 이야기… 우리는 자유로의 ‘유령’입니다>)
자유로 청소 업무의 위험성을 부정하는 시장의 태도는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에 소극적인 고양시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김동현(가명) 씨와 김규정(가명) 씨는 모두 2015년 10월 제1자유로 위에서 혼자 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관련기사 : <매일 자유로를 걷던 남자, 철조망 위에서 스러졌다>)
당시에도 고양시는 안전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사망 사고 이후 김주실 전 민주연합노조 고양지부장은 자유로 청소 업무를 관할하는 고양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를 만나 대책을 요구했다.
“그때 노조의 핵심 요구 사항은 에스코트 차량(후방 보호 차량)을 충분히 배치해달라는 거였어요. 자유로는 고속화도로라 사실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사람보다는 차가 청소하도록 하라고 요구했죠. 자동차 전용도로를 다니면서 낙엽을 치우는 노면 청소 차량이 배치가 됐어요. 하지만 그러고는 바뀐 게 없더라고요.”
노면 청소 차량을 운전하는 일을 하는 김태진(가명) 씨는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용역업체 제안으로 갓길 청소할 때 쓰는 노면 청소 차량이 도로에 함께 들어가는 방안이 추진됐어요. 하지만 업체 직원들끼리 지나치게 ‘자율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실질적 효과가 없었어요. 그때 작업반장이랑 일부 노면 차 운전원들이 협조를 잘 안 했어요. 시에서 용역을 설계할 때 안전에 관한 의무를 명확히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추진된 ‘청소 업무 시 가능한 한 노면 차량이 함께 다닌다’는 임시 방편은 매뉴얼에 명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직원들 사이에서 의무적인 사항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제1자유로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윤재남(40) 씨는 2015년 11월 용역업체에 입사했다. 그는 바로 지난달 일하다 죽은 김동현, 김규정 씨 중 한 사람을 대체한 인력이었다.
“저는 몰랐죠. 한 달 뒤에야 알았어요. 내가 쓰는 청소 집기들이 죽은 사람이 쓰던 거란 걸. 처음 1, 2년은 그냥 ‘아 다들 이렇게 일하는 거구나’ 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점점 안전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뭐라도 해보자고 이것저것 나섰죠.”
윤재남 씨는 2019년부터 민주연합노조 고양지부에 소속돼 안전 문제에 대해 시의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했다.
민주연합노조 고양지부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모아 2019년 2월, 고양시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추진했다. 이 자리엔 당시 민주연합노조 고양지부 관계자, 자유로 청소노동자, 당시 고양시 자원순환정책팀장, 기후환경국장, 자원순환과 담당 주무관 등이 참석했다.
고양시 관계자가 여럿 참석한 만큼, 노동자들은 근무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약속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자리에서 들은 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윤재남 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고양시 관계자들이 다 모인 면담 자리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정작 그때 들은 건 ‘막말’이었어요. ‘위험하니까 용역 주는 거다’, ‘그렇게 위험하면 딴 일 알아보라’는….”
이 자리에 있었던 당시 노조 관계자도 “고양시 관계자들에게서 안전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지난 26일, 셜록은 당시 면담 자리에서 나온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고양시 측에 공식 입장을 물었다. 다음 날 고양시 자원순환과 담당자인 A 주무관은 셜록과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면담이 열린 때가 4년 전이기도 하고 그때 면담에 참석했던 관계자도 부서에 없어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며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전했다.
윤재남 씨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해봤다. 2019년 8월 19일, 고양시 민원 상담 창구에 안전 문제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5일 후 답변이 돌아왔다.
“고양시는 청소용역 근로자의 안전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기타 궁금하신 사항은 고양시청 자원순환과로 문의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안전 문제에 대한 답은 이 두 줄뿐이었다.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미 고양시 자원순환과에서 안전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아 민원 상담을 넣은 건데 다시 자원순환과에 문의하라는 답변에 힘이 빠졌다.
“이때, 진짜 힘이 빠졌죠.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답변이니까요.”
윤재남 씨는 2019년 11월, 국민신문고에도 안전 문제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다. 국민신문고에선 처리 기관을 경기도 노동권익과로 지정했다. 경기도 노동권익과에선 이런 답변을 내놨다.
“2020년에 고양시를 포함한 경기도 내 8개 시에서 일하는 ‘공무직’ 환경미화, 시설보수 직무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실태조사 이후 안전보건 개선계획 및 정책 방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향후 실태조사에도 적극 협조해주시면 보다 안전한 업무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 경기도는 공공노무법인에게 용역을 맡겨 2019년 11월 28일부터 약 6개월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셜록은 실태조사 결과를 담은 용역보고서 <경기도 공무직 유해위험요인 조사 및 안전보건개선계획에 관한 연구>를 확인했다. 하지만 실태조사 대상에 포함된 8개 시의 명칭은 영문 이니셜로만 표기돼 있어서 고양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해당 연구용역을 진행한 공공노무법인 소속 연구원에게 지난 26일 전화를 걸어 해당 연구용역에 고양시 관할 자유로 청소노동자도 포함됐는지 질의했다. 연구원은 “당시 실태조사 대상은 공무직 근로자였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민간업체 소속이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2019년 11월, 이재준 고양시장과의 면담도 추진했다. 하지만 ‘자유로 청소는 위험 직종은 아니다’라던 시장을 만날 순 없었다.
2020년에 들어서도 장상화 전 시의원은 시정질의를 통해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를 언급했다. 같은 해 6월에 열린 환경경제위원회에서 장 전 시의원은 “5월에 제2자유로에서 일반 시민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자유로를 청소하는 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 후방 충격 흡수 장치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때 장 전 시의원은 사고 내용을 보도한 기사(연합뉴스 <제2자유로서 승용차가 청소차 들이받아 2명 사상> 권숙희 기자, 2020. 5. 27.)을 화면에 띄웠다.
실제로 2020년 5월 27일, 일산 방향으로 가는 제2자유로 위에서는 시민 운전자가 탄 카니발이 그 앞을 서행하던 노면 청소 차량을 들이받았다. 물론 청소 차량을 운전하던 노동자도 다쳤지만, 이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시민 운전자였다. 당시 노면 청소 차량 뒤에는 탈부착형 충격흡수장치(TMA)가 없었다.
이처럼 자유로 위에서 다칠 수 있는 사람은 청소노동자만이 아니다. 대형 청소 차량과 충돌했을 때는 시민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자유로를 관리하는 지자체가 안전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다.
장상화 전 시의원의 질의에 대해 당시 고양시 자원순환과장은 이렇게 답했다.
“저희도 저 부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낙하물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저희가 신기술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그것과 같이 검토해서 만약에 저런 사고가 있더라도 상대편을 보호해줄 수 있는 고민을 한번 하고 있습니다.”
청소노동자 안전 문제는 쏙 빼놓고 시민 운전자 피해를 어떻게 막을 건지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자원순환과장이 언급한 ‘신기술’의 정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해당 발언이 담긴 회의록에서 딱 한 번 언급됐을 뿐더러 부연 설명이 없었다.
자유로 청소노동자의 안전 문제를 고양시가 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 바로 고양시가 원청이면서 실질적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도로는 시민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재다. 일부 민자도로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를 지자체, 공기업 등 국가가 관리하는 이유다.
민간 업체에 용역을 맡기는 주체는 고양시다. 고양시가 정한 ‘과업지시서’에 따라 모든 업무가 이뤄진다. 또 고양시가 정한 예산에 따라 노동자 인건비, 안전 비용 등이 결정된다. 결국 안전 문제의 최종 책임자인 고양시가 예산 증액 등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환경도 본질적으로 달라지기 힘들다.
심지어 고양시 공무원이 용역업체에 속한 자유로 청소노동자와 직접 소통하며 업무 지시를 내린 적도 있다. 2018년 무렵부터 2019년까지 당시 자원순환과 담당 주무관은 현장 노동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업무 지시와 보고를 주고 받았다.
지난 12일부터 셜록이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를 다룬 프로젝트 ‘로드킬: 남겨진 안전모’ 연재한 이후, 고양시 는 안전 문제에 대해 일부 개선된 입장을 내놨다. 고양시 자원순환과 A 주무관은 지난 27일 셜록과의 전화에서 “자유로 청소 작업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일단 용역업체에게 2월 초까지 안전매뉴얼 초안을 만들 것을 지시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 26일에 자유로 현장 노동자와 간담회를 진행하려 했으나 대설주의보로 인해 그러지 못했다”며, “앞으로 간담회를 개최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자유로를 관리하는 주체는 고양시, 파주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 청소노동자를 민간업체에 위탁 고용하고, 안전매뉴얼이 없으며, 도로에 직접 들어가서 일할 때 차량을 두 대 이상 대동하지 않는 곳은 고양시뿐이다.
“자유로 청소 업무는 위험 직종이 아니“라는 전 시장. “그렇게 위험하면 딴 일 알아보라“는 공무원. 이들의 발언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왜 자유로를 관리하는 세 기관 중 유독 고양시만 안전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지 말이다.
2015년 두 명이 일하다 죽었다. 노동을 멈출 수는 없었고, 사고 역시 멈추지 않았다. 또 노동자가 다치고 시민도 목숨을 잃었다. 자유로 노동자들에게 위험은 매일 마주치는 현실이다. 그 분명한 ‘현실’을 부정하고 ‘위험’을 부인하면서 책임을 피하려 한 고양시.
오늘도 자유로에는 22만 대(2018년 기준 하루 평균 통행량, 국토교통부)의 차량이 지나간다. 22만 번의 위험이 자유로 노동자들을 지나간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