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후회하시는 선택이 있으세요?”
“없어요. 절대 없어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돌아온 최홍범(50, 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폭풍처럼 흘러온 5년 반의 시간. 결단하고, 기대하고, 좌절하고, 또 결단하고, 다시 부딪히고, 때로는 작은 희망을 품기를 반복해온 시간이었다. 더 이상의 설명도 없는 짧은 대답은 그 어떤 말보다 강렬했다.

그는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운전원이다. 2017년 소장의 관용차 사적 사용 등 비리를 폭로한 ‘공익신고자’.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업무배제와 징계 시도, 개인사찰이었다.

“제가 자연스럽게 나가면(사직하면) 회사는 제일 좋아했겠죠. 사기업 같으면 돈을 줘서 막든 어떤 식으로든 회사를 나가게 만들잖아요. 여기는 (국책연구기관이라) 그렇게 못하니까 제가 그만두면 제일 좋고, 문제 생기면 국민 세금으로 변호사 써서 그때 해결하겠다, 이런 거죠.”

새 소장이 취임한 뒤인 2018년에도 업무배제는 이어졌다. 빈 책상을 지키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존감은 무너졌고 모멸감이 쌓여갔다.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도 그때였다. 그해 겨울 그를 처음 만났고,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베이비뉴스는 2019년 2월 그의 사연을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30일 경기 포천시의 한 캠핑장에서 육아정책연구소 공익신고자 최홍범를 인터뷰했다 ⓒ셜록

지난해 말 3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뜻밖에도 경기 포천시의 한 캠핑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사이 최홍범에게는 ‘정신질병 산업재해 피해자’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생겨 있었다.(관련기사 : <공익신고 이후 5년… 나는 ‘캠핑장’에 갇혔습니다>)

“제일 힘든 게 소음이에요. 조금만 시끄러우면 집중이 안 되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니까. (…) 그나마 지금은 조금 좋아진 거예요. 처음 몇 달은 텐트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주말에는 사람도 많고 시끄럽고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만 갔다가 계속 텐트 안에만 있었어요.”

그의 정신건강이 결정적으로 나빠진 데는 2020년 6월의 ‘그날’이 큰 영향을 줬다. 그해 5월 최홍범이 초과근로수당 소송에서 승소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임시’ 월례회의를 소집해, ‘최홍범에게 줄 미지급 수당을 다른 직원들 급여에서 떼서 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놀란 직원들의 불만이 현장에 있던 최홍범을 향해 쏟아졌다.

“제가 왜 회사를 못 믿냐면, 늘 저 혼자 싸워왔잖아요. 규정에 따라 당연히 줘야 하는 걸, 개인이 변호사 쓰고 노무사 쓰면서 이런 걸(진정이나 소송) 해서 겨우 얻어낸 거예요. 소송 다 이겼어요. 그런데도 회사는 그걸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날 회의가 “인격권 침해”라고 판단했고, 육아정책연구소는 기관경고를 받았다. 최홍범은 이미 ‘회사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돼 있었다. 마음의 병은 깊어졌다. 그해 8월 정신병동에 입원한 뒤, 10월부터는 서울을 떠나 홀로 캠핑장 생활을 시작했다.(관련기사 : <법원도 인권위도 인정했는데… ‘사과’받지 못한 2000일>)

최홍범이 먹어야 하는 정신과 약 봉투 ⓒ셜록

벌써 만 2년을 넘어 3년을 바라보는 캠핑장 생활. 때마다 진단을 받고 약을 타러 병원에 가는 것이 그의 유일한 ‘외출’이다. 지난해 12월에도 그는 “6개월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 번에 여섯 알씩. 텐트 안에는 약 봉투가 수북했다.

“왜 이렇게 약이 줄지 않느냐면,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그래요. 미래가 없잖아요. 제가 오십인데 앞으로 십 년은 회사를 더 다녀야 하고, 애는 커나가고, 그런데 혼자 이러고 있고, 미래가 뭐가 있겠어요? 없어요. 아무런 의욕도 희망도. (…)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없으니까 힘들어요. 이게 정상적인 삶이 아닌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최홍범의 마음은 짧은 인터뷰 중에도 극과 극을 오갔다. 계속 버티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단호하게 밝히다가도, 금세 한없이 가라앉아서 ‘해서는 안 될 얘기’를 하기도 했다.

스스로 삶을 놓는다는 생각. 최홍범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동정하지 않았다. “죽을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마음이 다 무너져 있는” 사람만이, “마음이 완전히 찢어져 있는” 사람만이 겪는 고통이라는 걸.

“이렇게 사느니, 어차피 죽는 거 차라리 회사 가서 죽으려고 그래요. 솔직한 마음이에요. 저는 죽어도 처자식은 먹고살아야 할 거 아니에요. 만약에 제가 죽어요, 그러면 그때 또 (제 죽음을 두고) 두 번째 산재 싸움이 진행되는 거예요.”

최홍범은 이미 ‘첫 번째’ 산재 싸움을 경험했다. 결론은 그의 승리. 2021년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신청인의 우울, 무기력, 자살사고, 불면, 분노감 및 예민함 등의 증상이 있는 신청 상병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최홍범에게 “6개월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적 치료”를 권고한 진단서 ⓒ셜록

캠핑장에서 보낸 2년 3개월. 벌써 아홉 번째 계절을 맞았다. 그사이 소장도 또 바뀌었다. 박상희 현 소장과는 2021년 3월 한 차례 면담을 했다. 하지만 대화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최홍범의 병휴직 신청을 몇 개월마다 승인하는 것이 육아정책연구소가 하고 있는 유일한 ‘조치’였다.

최홍범에 대한 육아정책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담긴 문서는 2020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산재 불인정 의견서’가 마지막이다. 문서에서 최홍범은 “성실하게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건전한 직장문화를 저해하는 직원”, “민원과 소송, 언론제보를 지속·반복 제기함으로써 (…)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곤란”을 주는 직원으로 표현돼 있다.

“저는 그걸(산재 불인정 의견서를) 본 게 마지막이거든요. 2년 넘도록 입장 변화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제가 회사를 어떻게 믿을 것이며, 뭘 바라겠어요? 제가 나가면(사직하면) 회사는 편한 건데, 그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게 쉽겠어요, 제가 그만두고 나가는 게 쉽겠어요?”

하지만 ‘이대로는’ 회사를 떠날 수가 없다. 빼앗긴 세월, 뒤틀린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다. 국무조정실이 공익신고 사실을 인정해도, 법원이 미지급 수당을 인정해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를 인정해도,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해도,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도 최홍범에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제가 회사에 분명히 얘기했어요.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으니까. 저는 그게 원인이 돼서 정신질병 산재를 받았어요. 근데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거예요. (…) 정말 미안하다, 말 한마디. 그럼 직원들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질 거 아니에요? 저 사람이 틀린 게 아니었네, 저 사람 나쁜 사람 아니네, 이 정도로만 받아들여 주면, 뭔가 시작할 수 있겠죠. 회사에서 사과 한마디만 해줬어도 이렇게까지 오래 안 갔을 것 같아요.”

육아정책연구소 공익신고자이자 정신질병 산재 피해자인 최홍범은 2년 3개월째 캠핑장에서 지내고 있다 ⓒ셜록

배제와 차별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흔히 겪는 고통이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서 많은 경우 피해자를 ‘열등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며, 다른 직원들이 볼 때 “애초에는 (괴롭힘이) 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저 사람은 괴롭힘 당할 만한 사람’이 된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심리치유네트워크 ‘통통톡’에서 활동하는 상담심리전문가, 오현정 뜻밖의상담소 공동대표도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게) 조직은 마타도어, 즉 악선동으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일이 흔하다”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를 전략적으로 ‘고립’시키는 것.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를 탓하고, 피해자에게 어떤 의도가 있다고 프레임을 씌우는 거죠. 그걸로 동료들과의 연결감을 끊어내고 고립시키면 2차 가해도 훨씬 더 쉬워집니다.”(오현정)

“건전한 직장문화를 저해하는 직원”이라는 배제와 차별, ‘당신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손해 본다’는 악선전. 전문가들이 언급한 것들은 모두 최홍범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다.

오현정 대표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정’이라는 단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진실을 알아주는 것, 당신이 옳았다고 알아주는 게 응어리를 녹이는 데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신과) 약을 먹는다고 다 치료가 되는 게 아니에요. 생활할 수 있도록 버티게 해줄 뿐이죠. (…)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념 체계가 손상을 입잖아요. 진실에 대한 인정과 책임 있는 사람의 사과, 그것이 믿음을 회복하는 출발점 아닐까 합니다.”(오현정)

최민 활동가는 최홍범에게 복귀를 약속하는 것 또한 조직이 해야 할 ‘인정’ 행위라고 설명했다. 상담과 약물 치료와 동시에 일상생활과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회사가 복귀를 약속만 해줘도 마음이 금방 좋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정신질병이) 산재에 의한 것이면 직장 때문에 내가 아픈 건데, 거기서 ‘너 이제 일 못하잖아’라는 식으로 대하면 굉장히 버려지는 느낌이 들겠죠. 억울하게 일을 못하게 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약속은 일종의 인정으로 여겨질 수 있어요.”(최민)

최홍범의 병휴직 신청을 몇 개월마다 승인하는 것이 육아정책연구소가 하고 있는 유일한 ‘조치’다 ©베이비뉴스 최대성 기자

“미래가 없는 삶” 때문에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지만, 최홍범이 한결같이 바라온 것은 자신의 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는 “모든 게 완치돼서 운전을 할 수 있으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복귀 의사가 있어도 당장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 방법은 없을까.

박공식 이팝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육아정책연구소가 EAP(근로자 지원 프로그램, Empolyee Assistance Program)를 통해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물론 그에 앞서 과거의 “유감스러운” 일들에 대해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근본적으로는 과거의 일들에 대해 소장이 공식적으로 유감 표명을 하고, 최홍범 씨가 건강을 회복해서 일터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발표하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제도적으로는 EAP 제도를 통해 치료를 병행하면서 업무에 복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박공식)

다른 산재 피해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업무적합성평가’를 받아가면서 일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치료를 꾸준히 병행하면서, 업무시간을 조정해 점진적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방식도 가능하다는 게 최민 활동가의 제안이다.

정신질환으로 휴직 후 복귀하는 노동자에게도 업무량을 조금씩 늘리는 기간을 둘 수 있습니다. 당분간 정규 시간보다 조금 짧게 일하거나, 특정한 스트레스 부담이 적은 부서로 배치하는 것도 성공적인 복귀를 돕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 진단명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바로 ‘그’ 노동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 그의 현재 역량에 기반해 업무상 문제나 이슈를 평가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나름북스, 2022) 278~279쪽

지난해 말 셜록은 육아정책연구소에 ▲포괄적 사과 의사 ▲제도적 지원 통한 점진적 복귀 검토 의사 등 11개 질문을 보냈다. 하지만 대면 인터뷰와 전화 답변, 서면 답변까지 모두 거절당했다. 이후 국민신문고를 통해 다시 같은 질문들을 보낸 뒤에야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6일 육아정책연구소는 “최홍범씨의 적절한 치료와 복귀가 조속히 이루어져 다른 직원들과 같이 연구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며, “관련 법률 및 규정 등에 따라 최홍범씨의 질병 치료 및 요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짧은 입장을 밝혔다. 사과 의사와 복귀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다.

나는 최홍범을 살리고 싶어서 이 기사를 썼다. 이 기사 하나로 대단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그에게 이것 하나는 알려주고 싶었다. 아직도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 그러니 아직은 아무것도 놓아버리지 말라는 것.

영평천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캠핑장은 아름다웠다. 다가올 봄은 그가 캠핑장에서 열 번째로 맞는 계절이다. 캠핑장에 꽃이 핀다고 그에게도 봄이 오겠나. 겨울이 너무 길다.

최홍범의 겨울이 너무 길다 ⓒ셜록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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