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청소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에도 안전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은 고양시. 3년 전에는 “안전 매뉴얼을 마련하라“는 국토교통부 공문까지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낙하물을 수거하기 위해 도로에 직접 들어간다. 신호체계와 횡단보도가 없는 고속화도로 특성상 자유로 청소 업무는 고위험 직종에 속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2021년까지 도로 및 관련 시설 운영업종에서 발생한 연평균 재해율은 1.52%로, 다른 업종(0.56%)에 비해 2.7배나 높다.
실제로 고양시가 관할하는 제1자유로에는 2015년 10월, 약 2주 사이 두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두 명의 산재 사고 사망자가 발생한 후에도 고양시 관할 자유로에는 ▲안전매뉴얼 부재 ▲보호 차량 부재 등 안전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관련기사 : <죽어야 시작되는 이야기… 우리는 자유로의 ‘유령’입니다>)
자유로를 구간별로 나눠서 관리하는 세 주체 중에서 특히 고양시(가양대교 북단 일부~장월IC 장월교 부근)에 안전 문제가 두드러졌다. 파주시(장월IC~자유IC), 서울지방국토관리청(송촌대교~통일대교 사이 일부 구간)의 경우 안전 매뉴얼이 있고, 노동자가 직접 도로에 들어가 일할 때 보호 차량이 함께 움직이는 게 원칙이다.
자유로의 위험한 노동 환경이 지적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11~12월 사이 연합뉴스 등 언론을 통해 안전 문제가 보도됐다. 해당 보도 역시 2015년 제1자유로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언급했다.
김동현(가명) 씨는 2015년 10월 9일 제1자유로 이산포IC 부근에서 갓길 청소를 하다 졸음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그로부터 12일 후인 10월 21일엔 마찬가지로 제1자유로 청소를 위해 행주대교 구간을 걷던 김규정(가명) 씨가 차량과 충돌해 사망했다.
언론이 자유로의 위험성을 지적하자, 국토교통부가 나섰다. 이듬해인 2020년 2월 5일, 국토교통부 소속기관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고양시를 포함해 경기 북부 및 서울 국도를 관리하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안전관리 실태 점검을 요청한 것.
이에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2월 12일, 고양시 등 자유로와 같은 국도를 관할하는 지자체에 부서 관계자 회의를 두 차례 소집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해당 공문에 회의를 추진한 배경이 “최근 언론에서 제기된 자유로 고양시 관리구간의 도로 보수원에 대한 안전관리 문제“라고 밝혔다.
공문 말미에는 회의에 참석하는 지자체가 작성해야 하는 두 개의 문서 서식이 첨부됐다. 하나는 ‘도로 보수원(청소노동자) 안전관리 현황‘, 다른 하나는 ‘안전관리 실태 점검표‘였다. 특히 ‘도로 보수원 안전관리 현황‘에는 ▲안전매뉴얼 보유 여부 ▲현장 작업 시 안전관리 규정 준수 여부 등을 확인해 표기하도록 했다.
고양시는 안전관리 실태 점검 회의에 자원순환과 관계자가 참석하겠다고 회신했다. 첨부된 두 개의 서식도 제출했다. 고양시는 ‘도로보수원 안전관리 현황‘에 ‘작업자 안전매뉴얼은 없다‘는 내용을 기재했다. 안전관리 실태 점검표에는 현재 고양시에선 ‘가이드차량(작업 보호 차량) 투입, 충격흡수장치 장착’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표기했다.
코로나19 위기경보가 2020년 2월 23일 최고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관계자 회의가 취소됐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회의를 취소하는 대신 고양시를 비롯한 지자체에 “각 지자체 실정에 맞는 관련 규정 및 매뉴얼을 작성하는 등 도로보수 작업자의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하여 달라“고 다시 한번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을 보내면서 국토교통부가 사용하고 있는 매뉴얼인 ‘도로작업구간 안전매뉴얼‘과 안전교육자료를 함께 전송했다.
국토교통부의 요청에도 고양시는 안전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았다. ‘작업자 안전매뉴얼이 따로 없는’ 고양시 자유로의 상황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2019년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제출한 문서에선 ‘작업 보호 차량 투입’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지만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도로에 들어갈 때 보호 차량이 필수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실정이다. 셜록이 현장 취재를 통해 확인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2019년 11월 26일, 이재준 당시 고양시장은 시의회 시정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이런 말을 했다. 자유로 청소노동의 안전 문제가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되기 며칠 전이었다.
“사실 노면(자유로) 청소를 위험직종이라고 해야 되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상화 전 시의원(정의당)이 “자유로 청소노동을 민간업체에 맡긴 건 위험의 외주화“라고 지적하자 내놓은 답변이었다. 이재준 전 시장의 발언으로부터 약 석 달이 흐른 뒤 국토교통부는 각 지자체에 “도로 보수 작업자의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고양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2일, 고양시에 “3년 전 국토교통부 요청에도 왜 안전매뉴얼을 만들지 않았는지” 질의했다.
고양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3년 전 일을 물으시면 솔직히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자님이 정답을 말해달라“며 난감함을 표했다. 그는 “과거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양시는 자유로 청소노동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셜록의 보도 이후 자유로 청소 업무를 위탁한 용역업체 측에 안전매뉴얼 초안을 만들 것을 지시한 상태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매뉴얼은 고양시가 만들어야 지속 가능한 안전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란 입장이다. 제1자유로에서 일하고 있는 윤재남(40) 씨는 “용역업체가 2년마다 바뀌는데 안전 매뉴얼도 그럼 2년마다 바뀌는 건지 불안하다“며 “업체 사정에 따라 내용이 바뀌거나 영향력이 축소되지 않으려면 시가 책임지고 매뉴얼을 제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유인종(62) 씨 역시 “용역업체가 아무리 안전 매뉴얼을 잘 만들어도 그게 이행되려면 필요한 건 결국 시 예산“이라며, “매뉴얼엔 도로에 들어가서 작업할 때 차를 대동하라고 돼 있어도 시에서 예산을 반영하지 않아 차를 못 사면 무용지물인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