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 1월부터 보도한 ‘로드킬 : 남겨진 안전모’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직접 나섰다.
16일 경기 고양시 주교동 고양시청 앞에서는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안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은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자유로 청소노동자들,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고양지부,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가 함께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자유로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 13명과 김인수 전국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 곽승율 전국민주연합노조 고양지부장, 이도영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공동의장 등이 참석했다.
제2자유로는 소속된 노동자 8명 모두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제1자유로 노동자 일부는 기자회견 직전 도로 낙하물을 수거해달라는 민원이 접수돼 업무를 처리하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기자회견 취지에 대해 “고양시는 2015년 두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사망한 뒤에도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최근 셜록의 보도 이후에도 사실상 근본적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고양시를 규탄한다“고 설명했다.
셜록은 지난 1월부터 프로젝트 ‘로드킬 : 남겨진 안전모’를 통해 고양시 자유로를 청소하는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를 알렸다. 셜록 취재 결과, 자유로를 관리하는 세 주체 중에서 유독 고양시에 안전 문제가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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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는 자유로 청소를 민간 용역업체에 위탁했다. 자유로 중에서도 다른 구간을 관리하는 파주시는 시 산하 지방 공기업에, 국토부 산하 기관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직접고용 형태를 취한 것과 대조된다.
고양시 자유로를 관리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직접 도로에 들어가 낙하물을 치울 때 차 한 대만 대동한다. 같은 상황에서 파주시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모두 두 대 이상의 보호차량을 둔다. 또 고양시만 안전 수칙이 포함된 업무 매뉴얼이 없었다.
고양시가 관리하는 제1자유로에서는 2015년 청소노동자 두 명이 일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사망 사고 후, 청소노동자들은 ▲민원 제기 ▲노동조합 활동 ▲시 관계자 면담 등의 활동을 통해 안전 문제를 호소했으나 고양시는 근본적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제2자유로 청소노동자로 12년간 근무한 김환필(58) 씨는 “일하는 동안 서행하는 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두 번이나 겪었지만 안전 매뉴얼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오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이렇게 기자회견에 나섰다, 오죽하면 이렇게 나섰겠나”라고 토로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로, ▲안전 매뉴얼 마련 ▲작업 보호차량 증차 ▲자유로 주행속도에 맞는 충격흡수장치 설치 ▲매뉴얼에 중대 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인 고양시의 책임 명시 ▲용역업체 관련 예산에 안전 비용 반영 등이다.
발언에 나선 제1자유로 청소노동자 윤재남 씨는 “2015년에 사망한 노동자 분의 대체인력으로 입사한 이후, 저 역시 하루하루 죽을 뻔한 순간을 경험하며 일했다“며 “더 이상 불안해하면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는 “담당자를 찾아가 대책을 요구해도 매번 구두 약속만 해온 고양시를 믿을 수 없다“며 “신뢰할 수 있도록 강제성을 갖춘 매뉴얼을 마련해달라“고 덧붙였다.
곽승율 전국민주연합노조 고양지부장은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고양시민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수행하면서 하루하루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데, 시에선 언제까지 이 상황을 ‘나 몰라라’ 할 것이냐”라며 “이동환 고양시장은 더 이상 자유로 안전 문제를 방관하지 말고 이들을 위한 보호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주장했다.
이도영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공동의장은 “청소노동자가 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은 시민 운전자가 그분을 차로 쳤다는 뜻”이라며, “세상에 노동자를 차로 치고 싶은 시민이 어딨겠나“라고 반문했다.
이 공동의장은 “자유로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는 곧 고양 시민 모두의 문제다”며 “노동자와 시민 모두가 안전한 자유로를 위해 도로 주행속도에 맞는 차량 충격흡수장치를 설치하는 등 안전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셜록의 ‘로드킬: 남겨진 안전모’ 보도가 이어지자, 고양시는 지난 14일 ‘고양특례시, 제1·2자유로 청소 근로자 안전 확보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고양시 자원순환과는 보도자료에서 “관내 노면 및 제1·2자유로 청소 대행업체 관리자와 회의를 개최해 청소 근로자의 안전을 당부했다“며,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진공노면청소차를 보호차량으로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노면청소 차량은 보호차량으로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지속 가능한 해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2자유로 청소노동자 이승민 씨는 “노면청소 차량을 보호차량으로 활용하는 대안은 2015년 산재 사망 사고 이후에도 추진됐지만, 강제성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됐다“며, “가을에 낙엽 청소 업무 등 노면청소 차량에도 할당된 업무가 있기 때문에 결국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민 씨는 “셜록 보도 후, 고양시가 노면청소 차량을 활용하기로 하면서 노면청소 운전원들은 업무가 추가됐다고 생각해 반발이 심한 분위기다”라며, “함께 일하는 동료들 눈치를 보면서 안전을 챙기는 게 말이 되냐”고 호소했다.
제1자유로 청소 용역업체 소속 윤재남 씨 역시 “노면청소 차량을 보호차량으로 활용하는 건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전형적인 미봉책“이라고 말했다.
고양시가 지난 14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청소 대행업체 관리자와 안전 작업 매뉴얼을 공유했다”는 내용이 있다.
고양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지난 15일 ‘안전 매뉴얼을 드디어 마련한 것이냐’는 셜록의 질문에, “시에서 직접 매뉴얼을 만들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용역업체에게 업무 매뉴얼을 제작하라고 지시하면서 국토부 지침 ‘도로작업구간 안전 매뉴얼’을 함께 전달했다”고 밝혔다.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은 안전 매뉴얼을 원청인 고양시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신재호(가명) 씨는 “용역업체가 2년마다 바뀌는데 그럼 그때마다 매뉴얼도 바뀌는 게 아니냐”면서, “어떤 업체가 들어와도 안전 수칙이 지켜지려면 시가 직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이후에는 정민경 고양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고양시의회 본관 5층 회의실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정민경 시의원은 환경경제위원회 소속이다.
정 시의원은 자유로 청소노동자와의 간담회를 마련한 취지에 대해 “자유로 청소노동자와 같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 사회가 유지되고 운영된다고 생각한다”며, “청소노동자들이 계시기에 시민들의 안전도 담보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계신지 이야기를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시의회 차원에서 안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제2자유로에서 근무하는 이승민 씨는 “고양시는 최근까지도 최소한의 예산으로 할 수 있는 해결 방법만 제시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시 예산이 증액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시의회에서 나서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정 시의원은 자원순환과에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안전 매뉴얼 부재와 보호차량 부족 문제를 가장 주요한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며 “자원순환과에 자료 요청을 통해 자유로 청소 행정 시스템의 문제를 확인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또, “환경경제위원회 상임위원회가 열리면 자유로 청소를 관할하는 부서인 자원순환과에 질문을 할 수 있다”며 “시정질의 등을 통해 해당 사안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셜록은 자유로 청소노동자들의 안전 문제가 개선될 때까지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안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제기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