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몸에 새겼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소 자주 하던 말을 몸에 간직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살아가면서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올바르지 않거나 부당한 것들이 우세할 수는 있어도 결국은 바르게 돌아가니, 늘 정직하고 선택에 신중하며 너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라.”

아들 김정민(가명)은 왼쪽 견갑골 등 부위에 가로 4.5㎝, 세로 20㎝ 크기의 문신(타투)을 새겼다.

事必歸正(사필귀정).”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는 등 뒤에 늘 아버지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싶었다.

정민(가명)은 경찰을 꿈꿨다 ⓒpixabay

정민은 경찰을 꿈꿨다. 하지만 몸에 새겨진 이 작은 그림이 그의 꿈을 막았다. 의경으로 복무하던 중 경찰공무원이 되려면, 몸에 문신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용 및 노출 여부에 따라 경찰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문신이 없어야 한다.

– 경찰공무원임용령 시행규칙(제34조의2)에 따른 <경찰공무원 채용시험 신체검사 기준표> 중

정민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총 20회 이상 문신을 지우는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몸에 문신이 있다는 이유로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불효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이익을 받지 않고 꼭 합격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차례 시술을 받았다.

정민은 2021년 경찰공무원(순경) 채용시험에 응시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그는 다음 단계인 신체·체력·적성 검사에 응했다. 신체검사서를 제출하고 신체에 문신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신고했다.

몸에 그림을 그린 대가는 가혹했다. 정민은 신체·체력·적성 검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등에 채 지워지지 않은 문신이 남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2021년 10월 28일의 일이다.

심사위원회는 정민을 신체검사 불합격 대상자로 심의 의결했다. 의결서에 명시된 정민의 불합격 사유는 다음과 같다.

  • ‘혐오성'(사회 일반인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폭력적 공격적이거나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는 내용)
  • ‘기타'(범죄단체 상징 및 범죄를 야기 도발할 수 있거나 공직자로서의 직업윤리에 어긋나 경찰관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 있는 내용)
타투 시술용 염료 ⓒ주용성

몸에 문신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합격 통보를 받은 상황. 정민은 2021년 12월 8일, 경찰공무원 시험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의 문신은 어떤 경찰 제복을 착용하더라도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위치에 있으며, 청구인의 문신은 사필귀정이라는 고사성어를 한자로 새긴 것인데, 이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고사성어 도서 및 초등 필수 고사성어에도 포함되는 등 폭력적 공격적이거나 공포감을 조장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꾸준히 시술을 받아 현재 96%까지 제거가 되어 (문신이) 옅어진 상태이다.”

반면, 피청구인(○○○○○경찰청장)은 “문신 내용의 혐오성은 내용 및 형상의 좋고 나쁨을 떠나 문신 그 자체로서 판단되어야 하고, 그 판단은 청구인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 일반인의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정민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2021년 경찰공무원(순경) 채용시험 중 신체검사에서 ‘등 문신’을 이유로 청구인을 불합격시킨 처분은 위법‧부당하다고 2022년 4월 21일 결정했다.

“청구인이 문신으로 새긴 ‘사필귀정’이라는 고사성어는 사회 일반인의 기준에서 폭력적 공격적이거나 공포감을 조성하여 경찰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신 자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고, 몸에 문신을 새겼다는 이유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이곳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문신시술을 의료행위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멸균 패드로 감싸진 타투 시술 작업대 ⓒ주용성

사실 한국에서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뿌리 깊다. 국내에 미용 문신이 도입된 건 1970년대 말경 중국과 대만을 통해서다. 아무런 체계와 교육적인 기반 없이 비위생적으로 시술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잘못된 미용 문신을 지울 수 있는 레이저 보급이 전무해 문신 시술은 사회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보사부(현재 보건복지부)는 미용 문신 시술을 못하게 하는 방안으로 이를 의료법에 귀속시켜버렸다.(출처 : 강은주 조선대학교 대학원 디자인경영학과 박사학위 논문 <문신시술 행위의 합법화 방안에 관한 연구> 2007년 2월)

이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녹아 있는 현행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범죄처벌법에선 “여러 사람이 이용하거나 다니는 도로·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험악한 문신(文身)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 사람에게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고 명시해 놓았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문신이 있으면 군입대도 불가능했다. 과거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은 신체 전체에 문신이 있는 경우 4급(보충역)으로 판정해 현역병으로 입대할 수 없도록 했다.

국방부는 2020년 12월 온몸에 문신이 있어도 현역으로 입영할 수 있도록 병영신체검사 기준을 완화했다. 문신에 대한 인식 변화와 현역 입영 대상 감소 등이 그 배경이 됐다. 국방부는 “문신은 사회적으로 거부감 등 부정적인 인식이 감소했고, 정상적인 군 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4급 기준을 폐지하고 현역(1~3급)으로 판정 기준을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문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식약처가 ‘소비자 입장에서의 문신용 염료 안전관리 방안’을 주제로 2018년 11월 주최한 제8회 식품의약품 안전 열린포럼에서 한 문신염료 제조업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반영구문신(눈썹, 입술 등) 이용자는 1000만 명, 서화문신(타투) 이용자는 3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젊은층 사이에서 문신은 흔하다. 황희찬, 김영권 등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문신은 경기 중계를 통해 자주 노출되곤 한다. BTS 정국, 박재범, 나나 등 문신을 한 연예인은 인터넷을 통해 더 쉽게 볼 수 있다. 젊은 연예인들 사이에서 문신은 하나의 예술 표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중장년층이 다수인 정치권에서도 문신을 볼 수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이미지 변신 차원에서 눈썹 문신을 했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다. 문신은 더 이상 조직폭력배 등 범죄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미 문신 시장은 성숙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타투협회 통계에 따르면, 타투업계 종사자는 2017년 기준 22만 명을 넘어섰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기준 타투이스트를 35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타투 합법화는 1992년 대법원 판례에 여전히 갇혀 있다 ⓒ주용성

하지만 문신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쫓아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법원이다. 법원은 1992년 대법원 판례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 당시 대법원은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 사건에 대해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타투 시술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본 원심판결은 과연 표피에만 색소를 주입하여 영구적인 문신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및 그 시술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가려 보지 않았고 작업자의 실수 등으로 진피를 건드리거나 진피에 색소가 주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문신용 침으로 인하여 질병의 전염 우려도 있는 점을 간과함으로써 법리오해, 채증법칙 위배,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대법원 1992. 5. 22. 선고, 91도3219 판결)

이에 따라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행위에 속하는 문신 시술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보건범죄단속법’의 형량은 더 무겁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행위에 속하는 문신 시술을 업으로 할 경우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이러한 법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타투이스트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다. 타투이스트는 있지만, 없는 존재다. 법적으로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직업이란 의미다.

법원이 30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는 사이, 타투이스트들은 형사 사건에 휘말리거나 재판을 받아야 했다. 누군가는 견디다 못해 세상을 뜨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타투를 하고 있으니까 모두가 알 것만 같지만, 다들 잘 모릅니다. 타투가 불법인지도, 타투이스트들이 어떤 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1992년 대법원 판례에 의해 누군가가 자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

불법의 그늘 속에 있는 타투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pixabay

결국 타투이스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힘을 한 데 모으기 위해 민주노총 산하에 노동조합 ‘타투유니온’을 만들고, 헌법소원도 여섯 차례 이상 제기했다.

이들의 투쟁에 국회가 응답하기도 했다. 21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타투 합법화 관련 법안이 모두 7개나 발의됐다. 강기윤·엄태영·홍석준(이상 국민의힘) 의원, 박주민·최종윤·송재호(이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각각 발의했다.

대법원 판례가 30년 동안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 현재로서는 타투 합법화 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은 언젠가 그들의 ‘직업’도 불법의 굴레를 벗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진보’해왔기에.

“1992년 대법원 판례가 얼마나 부끄러운 판결인지 알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결국 위헌 판결을 받아낸 호주제도, 낙태죄도 그랬습니다. 법안이 폐지되고 나면, 마치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모두들 잊어버리지요. 하지만 이를(타투 합법화를) 반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열등한 짓을 했는지, 너무 빨리 잊어버리면 안 될 겁니다.”(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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