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작업실 창가에 내리쬐는 햇살은 그날따라 따뜻했다. 채광 좋은 자리에 앉아 태블릿 PC를 꺼냈다. 도화지 같은 하얀 화면을 불러와 밑그림을 그렸다. 당일 있을 작업의 도안이었다.
전화 벨소리가 작업실에 울렸다. 그림 그리던 손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작년에 배우 A 씨 문신 시술 해주신 적 있으시죠? 의료법 위반으로 수사받으셔야 합니다. (경찰)서에 한번 나오시죠.”
서울혜화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1년 전에 시행한 시술이 이제서야 문제되다니. 펜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경찰 수사관 전화를 받고, 그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전에 형사사건에 휘말린 친구들이 공황장애, 우울증 걸린 걸 보고, 속으로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막상 직접 경험해보니 그동안 제게 연락해왔던 친구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됐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타투 작업실에서 만난 17년차 타투이스트 김도윤(43, 활동명 ‘도이’). 그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 지회장이다. 김 지회장은 2019년 12월 배우 A 씨의 왼쪽 팔 뒤편에 문신 시술을 했다가, 그로부터 약 1년 후인 2020년 12월 형사사건에 휘말리게 됐다.
A 씨가 개인 유튜브 계정에 김 지회장에게 문신 시술을 받는 영상을 올렸는데, 누군가가 A 씨를 고발한 게 사건의 발단이 됐다. 현행법상 타투 시술을 받은 사람을 처벌할 수 없으니, 시술을 시행한 타투이스트가 법적 타깃이 됐다. 김 지회장은 꼼짝없이 법적 테두리 안에 갇혔다.
“그동안 법적인 문제에 휘말리지 않을 노하우를 가장 많이 쌓아놓은 게 사실 저라고 생각을 했어요. 경력이 10년이 넘고, 갓 미대를 졸업한 친구들과 비교할 때 저는 40세가 훌쩍 넘은 아저씨니까 그래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어디에 도움을 구할 수 있을지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구요.”
17년차 타투이스트이자 노동조합 지회장이,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에 의해 고발을 당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타투이스트의 타투(문신) 시술은 불법이다. 1992년 대법원 판례 때문이다.
“(타투 시술이)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본 원심판결은 과연 표피에만 색소를 주입하여 영구적인 문신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및 그 시술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가려 보지 않았고 작업자의 실수 등으로 진피를 건드리거나 진피에 색소가 주입될 가능성이 있으며 문신용 침으로 인하여 질병의 전염 우려도 있는 점을 간과함으로써 법리오해, 채증법칙 위배, 심리미진 등의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파기한 사례.”(대법원 1992. 5. 22. 선고, 91도3219 판결)
당시 대법원은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로 해석했다. 의료인이 아닌 자가 하는 타투 시술은 불법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후 법원의 판단은 30년째 같은 논리에 머물러 있다.
현행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무면허 의료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그들은 있지만, 없는 사람이다. 또 어처구니없는 사실 하나,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은 법원에는 없고 세무서에는 있다.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때는 ‘없는’ 직업이었다가, 세금을 낼 때만 ‘있는’ 직업이 된다.
현행법과 행정 영역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것. 고용노동부는 2015년 정부육성 지원 신직업에 ‘문신아티스트’를 포함하며, ‘42299’라는 한국표준직업분류 직업코드를 명시했다. 또 사업자등록번호 ‘930925’를 통해 ‘문신업’으로 영업도 가능하게 했다. 국세청 업종분류코드엔 ‘문신업’이 있어 사업자 등록과 세금 납부가 가능한 상황이다.
모순적으로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즉 타투를 업(業)으로 삼는 순간부터, 타투이스트는 실형을 감수해야 한다.
‘보건범죄단속법’은 “의사가 아닌 사람이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업으로 할 경우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해놓았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타투를 영리 목적으로 하다가 법에 걸릴 경우 최소 ‘징역 2년 이상’부터 형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투유니온 조합원들한테 당장 사업자 등록을 하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단속이나 신고를 당해서 형사사건에 휘말리면, 보통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돼서 벌금에 처해져요. 하지만 사업자를 등록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한 행위로 인정돼서 보건범죄단속법으로 기소가 돼요. 타투이스트 입장에선 최소 징역 2년 이상의 형을 살아야 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거죠. 생각보다 많은 타투이스트들이 징역형을 받고 있어요.”
김 지회장은 전면전을 택했다. 검찰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그를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배우 A 씨에게 문신을 시술한 그 일 때문이다. 하지만 김 지회장은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1992년 대법원 판례를 뒤집어보고 싶었다.
1심 재판은 약 1년이 걸렸다. 김 지회장은 재판 중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결심공판 때는 판사를 향한 편지를 재판 도중 읽기도 했다.
“제 주변의 어린 작업자들이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혹은 그 직전까지 떠밀리는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표면적인 원인은 우울증이지만, 이들이 나락으로 몰린 이유는 한국에서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었고, 저 혼자의 안전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 이 동료들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미술 표현의 매체를 사람의 신체로 정한 미술가들입니다. 이들이 그림을 열심히 그린 대가로 얻은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는 전과와 벌금, 징역 그리고 부서진 삶입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에도 나섰다. 재판 중인 사건에 적용될 법률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판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한 것. 김 지회장은 의료법 제27조 제1항을 문제 삼았다.
국회도 찾아갔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힘을 합쳤다. 류 의원은 2021년 6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등에 타투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김 지회장과 함께 진행했다. 동시에 류 의원은 타투 합법화를 보장하는 ‘타투업법’ 제정안도 발의했다. 류 의원의 법안을 포함해, 21대 국회에는 여야 막론하고 모두 7개의 타투 합법화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법원은 기존 법 체계를 공고화하기를 택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2021년 12월 10일 김 지회장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기각됐다.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 의한 직업선택의 자유 등의 제한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김 지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지난해 1월 7일에는 헌법소원심판도 청구했다. ‘타투가 의료행위인지’ 헌법재판소에 묻고 싶었다.
“저희는 사법부에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1992년 대법원 판례를 통해 타투를 가장 거리가 먼 의료의 영역으로 보내버린 게 사법부잖아요. 그렇다면 법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도 사법부가 해야 될 일인 거죠. 결자해지를 바라는 겁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그의 희망을 짓밟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타투는 의료행위”라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문신시술은, 바늘을 이용하여 피부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식으로 색소를 주입하는 것으로, 감염과 염료 주입으로 인한 부작용 등 위험을 수반한다. 이러한 시술 방식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성은 피시술자뿐 아니라 공중위생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심판대상조항은 의료인만이 문신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그 안전성을 담보하고 있다.”
의료계 역시 감염 등을 이유로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대한의사협회는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을 환영하며, “인체를 침습하는 문신행위는 출혈, 감염, 급만성 피부질환 등 의학적 위험성이 상존하며, 합병증 유발로 환자 건강에 치명적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지회장은 ‘의료인만이 안전하게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타파하고 싶었다. 김 지회장은 타투이스트에게 의료인 자격까지 요구하지 않고도, 안전한 타투 시술을 보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김 지회장은 자기 발로 의료계를 찾았다.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녹색병원과 함께 TF를 꾸려 국내 최초로 ‘감염관리지침’을 만들었다. 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민간형 공익병원. 타투유니온은 이 지침을 바탕으로 타투이스트를 위한 감염관리 교육을 매월 진행하고 있다.
“눈썹, 아이라인, 그림 등을 포함해서 국민의 4분의 1 정도(1300만 명 추정)가 몸에 타투를 갖고 있어요. 의료계의 말처럼 타투가 그렇게 위험한 일이라면, 불법인 타투가 이렇게 대중화될 때까지 의료계는 국민의 안전과 감염 예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냐는 거죠. 타투가 진정으로 위험한 일이라면, 그전에 의료계에서 최소한의 권고안이라도 발표했어야 했습니다. 의료계가 타투 합법화를 반대하는 건, 이미 큰 시장을 형성한 타투업계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2023년 현재 “문신시술을 의료행위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웃나라 일본도 2020년 9월 최고재판에서 “문신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합법 국가가 됐다.
한국이 대법원 판례를 통해 타투를 불법으로 규정한 날로부터 6년이 지난 1998년, 미국은 타투를 합법화했다. 미국은 41개 주에서 위생과 감염 교육을 이수한 타투이스트에게 타투 관련 자격증이나 면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타투는 의료행위’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한국의 헌법재판관들의 ‘문화지능’은 전 세계인의 눈높이에서 볼 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국민들은 직립보행을 하고 있는데, 법원은 아직도 사족보행을 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저희가 SNS에 해당 내용을 그림으로 만들어 홍보했는데, 전 세계인을 기준으로 조회수가 1억 뷰를 달성했습니다.”
김 지회장은 당시 외국인들이 해당 게시물에 단 댓글 중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You mean in North korea(북한) or South korea(남한)?”
사실 그의 싸움은 혼자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타투유니온 조합원만 500명이 넘는다.
모든 타투업계 종사자로 범위를 넓히면, 그 수는 훨씬 더 많다. 한국타투협회에 통계에 따르면, 타투업계 종사자는 22만 명을 넘어섰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기준 타투이스트를 35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타투는 여전히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30년 동안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은 불법”이라는 판례를 고집하는 법원과, 타투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국회. 하지만 그 와중에 ‘42299’라는 직업코드를 내준 정부. 이런 불협화음 사이에서 타투이스트는 어떤 장단에도 춤추지 못하고 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