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99.’ 직업코드상 ‘타투이스트’를 지칭하는 번호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료행위에 속하는 타투. 하지만 의사의 직업코드는 ‘24119’다. 숫자 시작부터 의료와는 전혀 거리가 가깝지 않은 타투이스트는 1992년 대법원 판례에 의해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됐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 ‘미래유망신직업 선정’에서 정부육성 지원 신직업으로 ‘문신아티스트’를 포함해, 42299라는 한국표준직업분류 직업코드를 명시했다. 국세청 업종분류코드에도 문신업이 있다. 사업자 등록과 세금 납부도 가능하다.
하지만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23년 현재 “문신시술을 의료행위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1992년 대법원은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로 해석했다. 의료인이 아닌 자가 하는 타투 시술은 불법으로 판단한 것이다.이후 법원의 판단은 30년째 같은 논리에 머물러 있다.
결국 타투이스트는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됐다.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때는 ‘없는’ 직업이었다가, 세금을 낼 때만 ‘있는’ 직업이 된다.(관련기사 : <법원에선 불법, 세금 낼 땐 합법… ‘타투’는 죄가 없다>)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은 21일 ‘타투 합법화’ 촉구를 위한 두 번째 타투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류 의원은 타투이스트의 직업코드 ‘42299’를 왼쪽 팔에 새겼다.
류 의원은 지난 2021년 6월 ‘타투업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등에 타투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바 있다.
류 의원에게 타투 시술을 한 타투이스트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 김도윤(43, 활동명 ‘도이’) 지회. 김 지회장은 직업코드 ‘42299’를 누리지 못하는 타투이스트 중 하나지만, 그 번호를 현직 국회의원 몸에 새겼다.
지난 21일 오후 1시, 김 지회장은 작업실에 가기 앞서 차에서 멸균 기계부터 챙겼다.
“타투유니온이 녹색병원과 함께 감염관리지침을 만들었잖아요. 어제(20일) 타투이스트 감염관리 교육이 있었거든요. 멸균기계가 차에 있어서 챙겨가야 해요.”
김 지회장은 멸균장갑과 거즈를 챙긴 동료와 함께 서울 종로구 통인동 통인시장을 지나 작업실로 향했다. 그는 편집숍 등이 있는 상가 건물로 들어가 계단 위를 성큼성큼 올라갔다.
3층에 도착하자, 하얀 색깔로 도배한 현관문이 나왔다. 김 지회장은 동그란 손잡이가 달린 현관문을 열쇠로 열었다.
“작업하기 전에 청소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10평 남짓한 작업실은 하나의 방으로 연결됐다. 절반은 나무 바닥재가, 나머지는 파란색 꽃무늬 타일이 바닥에 붙어 있었다. 타일 위엔 타투 시술대가 놓여 있었다.
김 지회장은 청소기를 꺼내와 바닥 청소부터 시작했다. 대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기도 했다. 힘든 와중에도 그의 얼굴엔 웃음이 피었다.
“사실 사람들이 류 의원의 지난(2021년) 퍼포먼스 이전에는 타투이스트들의 노동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잖아요. 퍼포먼스에 대한 논란 여부를 떠나, 국회와 언론에서 타투에 관심을 가져줘서 참 고마워요.”
오후 3시 40분경, 류 의원이 작업실에 도착했다. 류 의원은 팔에 새길 타투의 도안부터 살폈다.
“타투가 사람들한테 잘 보이게끔 하고 싶은데… 너무 가는 글씨체로 하면 잘 안 보이잖아요! 하하!”
김 지회장은 글씨체와 크기를 다르게 짠 도안을 여럿 보여주면서 류 의원에게 물었다.
“의원님, 타투 받는다고 어머니한테는 말씀하셨어요?”
류 의원은 호탕하게 말했다.
“뉴스 보시고 알 것 같은데요? 하하!”
김 지회장은 도안 스티커를 뽑아 류 의원 왼쪽 팔에 붙였다. 류 의원은 거울 앞에 서서 팔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김 지회장은 타투 위치에 대해 설명했다.
“타투는 몸의 방향이나 자세에 따라서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해요. 지금 하는 팔의 타투 위치는 차렷 하고 남이 봤을 때 이상하면 안 돼요. 지금 차렷 해서 보면,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팔을 펴면 이렇게 보입니다.”
설명을 들은 류 의원은 빠르게 대답했다.
“그렇네요. (마음에 든다는 듯) 이렇게 진행할까요?”
김 지회장은 하얀색 시술용 천을 타투 시술대 위에 펼쳤다. 류 의원은 시술대에 엎드려 누우며 물었다.
“(팔을 가리키며) 여기 살이 많이 따갑나요?“
김 지회장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도 최근에 허벅지에 타투 받았는데요. 딱 참을 만한 정도입니다. 숫자는 금방 끝납니다.”
김 지회장은 멸균처리를 끝낸 기계를 꺼내와 타투 시술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는 류 의원의 몸에 타투이스트의 직업코드 ‘42299’를 새기는 타투 시술을 시작했다.
류 의원은 타투 시술을 하고 있는 김 지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직 국회의원이 타투 받았다는 기사 나가면, 누가 저희를 신고할까요?“
김 지회장은 숫자 ‘2’를 새기면서, 대답 대신 쓰게 웃었다.
시술은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애쓰셨습니다. 천천히 일어나셔서 5분 동안 기다려볼게요. “
“따끔한 정도밖에 안 아프네요. 저는 도안이 숫자로 단순한 편이니까 금방 끝난 것 같아요.”
류 의원은 ‘42299’가 새겨진 팔을 들어올리며 시술대에 걸터앉았다. 그는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직접 타투 시술을 받게 된 속마음을 꺼내보였다.
“사실 타투가 합법화되면, (팔에) 타투를 하고 싶었거든요. 지난(2021년) 퍼포먼스 때 화제가 많이 돼서 많은 분들이 이미 타투가 합법화가 되신 줄 알고 있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법이 통과가 안 됐거든요. 타투이스트 직업분류 코드 정도는 몸에 새겨야, 보시는 시민들께서도 ‘(류 의원이) 정말 진심이구나, 그리고 타투 합법화가 정말 잘 안 되고 있었구나’ 이렇게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지회장은 현직 국회의원 몸에 서화문신(타투)를 새긴 최초의 타투이스트이자, 타투이스트 직업코드 ‘42299’를 새긴 사람으로서 이날 퍼포먼스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생긴 게 10년이 다 돼가는데, 입법과 사법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저희의 직업 코드를 새겼다는 것 자체가 참 뜻깊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타투 시술을 공개적으로 진행했는데, 형사고발이 두렵진 않을까.
“2017년에 노동조합 ‘타투유니온’을 만들면서 부조리한 지금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저희가 쌓아온 많은 투쟁들 중에 인상 깊은 하나의 투쟁이 될 것 같아요. 상징적인 사람과 상징적인 숫자와 상징적인 작업을 했는데, 모순적인 문제가 더 알려져 하루 빨리 상황이 바뀔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