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를 상대로 한 의료법인 백제병원의 ‘입막음용’ 소송전이 3년 만에 좌절로 끝났다.
대법원(주심 노정희)은 지난 23일, 원고 의료법인 백제병원 등이 셜록 기자를 상대로 총 1억 9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한 소송에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
백제병원의 의료서비스 문제를 집중 보도한 셜록의 공익성을 인정하며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로써 대법원은 백제병원의 패소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사건 기록과 원심판결 및 상고이유서를 모두 살펴보았으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 각 호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아니하거나 이유가 없다고 인정되므로 위 법 제5조에 의해 상고를 모두 기각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의료법인 백제병원은 충남 논산시에서 가장 큰 병원인 백제병원과, 논산시로부터 위탁받은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셜록은 2020년 1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13편의 기사를 통해 백제병원의 각종 비리 의혹을 전달했다. 셜록이 보도한 백제병원의 비리 행위는 무자격자(PA, 진료보조인력) 수술과 주치의 조작, 의료비 과다 청구, 가짜 현금계산서 발행 등이다.(관련기사 : <“나는 백제병원 수술실의 불법 유령이었다”>)
셜록은 백제병원 출신 PA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백제병원의 무자격자 수술 문제를 취재해 보도했다. 당시 PA 출신 직원은 “의료 장비 상인이 수술실에 들어와 함께 수술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외에도 백제병원은 소속된 의사가 아닌 사람이 주치의 행세를 하다가, 해당 의사와 병원이 벌금 100만 원을 2018년 12월 선고받기도 했다.
셜록 기자는 요양급여 부당수급 문제를 확인하고자 직접 백제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당시 백제병원 측은 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를 수년간 부당 청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보도 이후 의료법인 백제병원과 이준영 백제병원 이사장, 이재성 백제병원장, 이재효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장은 2020년 4월 23일 셜록 기자를 상대로 약 2억 원의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셜록이) 허위사실을 적시해 원고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명예 및 신용을 훼손하여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판사 이정덕)은 2021년 8월 26일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논산시에 위치한 최대의 의료기관으로 오랜 기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온 원고들로 하여금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부정적인 요소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논산시와 논산시민 및 백제병원을 내원하는 환자들의 복리와 이익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항으로 공익 목적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위법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의료법인 백제병원 등은 1심 판결에 불복해 2021년 9월 항소했다. 이들은 “(셜록의) 해당 기사는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고, 원고들로 하여금 모욕감을 느끼게 해 인격권 침해에 기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주장하며 총 1억 9,000만 원(‘주위적 청구금액’ 1억 원, ‘예비적 청구 금액’ 9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 역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사의 표현 행위들의 형식 및 내용 등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타인의 신상에 관하여 다소간의 과장을 넘어서서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지난해 11월 8일 항소를 기각했다.(관련기사 : <셜록이 또 이겼다… ‘2억 손배 청구’ 백제병원 상대 승소>)
그리고 백제병원 측은 대법원에 다시 상고했지만, 지난 23일 대법원 역시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백제병원의 최종 패소를 확정한 것이다.
민사소송 이전에도, 백제병원 측은 셜록 기자를 상대로 형사 고소로 집요한 법적대응을 이어갔다.
백제병원은 2020년 1월 28일 셜록 기자를 건조물 무단침입,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등 총 8가지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이재효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장과 백제병원 경리부 직원 3명 또한 셜록 기자를 각각 명예훼손으로 추가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2020년 12월 30일 셜록 기자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려 사건을 종결했다.
검찰의 불기소 판단에도, 백제병원은 또 다시 법적 대응을 택했다. 백제병원은 주거침입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했다. 항고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고소인(고발인)이 고등검찰청에 판단을 구하는 불복 절차를 말한다.
그러나 서울고검은 “항고인이 제출한 모든 자료를 면밀히 살펴보아도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자료를 발견할 수 없다”면서 2021년 3월 31일 항고 기각을 결정했다.
이후 백제병원은 서울고등법원에 재정 신청도 했으나, 같은 해 7월 결국 기각됐다. 재정은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고소인(고발인)이 처분의 적정성을 가려 달라고 고등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다.
사실 백제병원이 비판적 보도를 봉쇄하기 위해 고소와 소송을 남발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이준영 백제병원 이사장은 병원의 문제를 보도한 한 지역신문 기자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 하면서,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해당 형사 사건은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대전지방검찰청은 2018년 9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것에 불과”하고 “객관적인 이유가 상당한 경우에는 명예훼손의 위법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며 불기소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그 후 백제병원은 해당 지역 기자에 대한 민사소송을 취하한 바 있다.
한편 셜록은 입막음용 고소와 소송으로 비판적 보도를 막는 행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2020년 10월 사단법인 두루와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관련기사 : <셜록이 ‘진실유포죄’를 위헌심판대에 올립니다>)
형법 제 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거짓이 아닌 사실을 말해도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사안이면 형사처벌을 할 수 있어 일명 ‘진실유포죄’라고 불린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21년 2월 25일, 5(합헌) : 4(위헌)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당시 소수의견을 낸 김기영 재판관 등은 “피해자가 명예훼손에 대한 피해를 회복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공적 인물과 공적 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보도를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3자의 고발에 따라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행위에 대해서도 형사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마저 가능하게 돼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