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한번 해보자. 여기 ‘이상한 나라’가 있다. 복어 전문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 A 씨. 그에게 어느 날 출석요구서가 날아왔다. 누군가 A 씨를 경찰에 고발한 것. A 씨가 한 불법 행위는 바로 ‘복어 요리를 만든 것’이었다. 요리사가 요리를 만든 게 불법이 되다니. 엄연히 국가에 신고까지 한 A 씨의 식당은 졸지에 불법 영업장이 됐다.
이 나라는 “보건위생상 위해(危害) 우려가 있는 행위”를 모두 의료행위로 규정했다. 그래서 복어 요리는 의료인들만 할 수 있게 된 것. A 씨처럼 의료인이 아닌 복어 요리사들은 모두 범죄자가 되고, 그들의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였다.
“복어 요리는 상당의 기술을 가지지 않고 행하면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이지만, 현행법은 이것을 의사가 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일본에서의 문신시술 규제를 둘러산 법적 고찰> 박용숙 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2021. 9. 27.)
이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에서 ‘복어’의 자리에 ‘타투(문신)’를 넣는다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문신시술을 의료행위로 규정하여 규제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1992년 대법원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의 타투 시술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은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해당 판례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다.
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최한 포럼 발표자료에 따르면, 국내 반영구문신(눈썹, 입술 등) 이용자는 1000만 명, 서화문신(타투) 이용자는 3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는 타투이스트를 35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2021년 기준).
하지만 타투에 대한 국가의 시각은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현행 법체계상 ‘불법’에 해당하지만, 행정 영역에선 ‘합법’의 범주에 속한다.
고용노동부는 2015년 정부육성지원 신직업에 문신아티스트를 포함했다. 이때 ‘42299’라는 한국표준직업분류 직업코드를 명시했다. 사업자 등록과 세금 납부도 가능하다. 사업자등록번호(930925)를 받아 문신업 영업이 가능하고, 국세청 업종분류코드에도 문신업이 명시돼 있다.
결국 한국에서 타투이스트는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때는 ‘없는’ 존재가 됐다가, 세금을 낼 때만 ‘있는’ 직업이 됐다.
이에 대한문신사중앙회, 타투유니온 등은 타투를 의료행위로 규정한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은 위헌이라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총 6건의 헌법소원심판을 각각 청구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1992년 대법원 판례에 균열을 내보자는 취지였다.
- 의료법 제27조1항 : 의료인이 아니면서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보건범죄단속법 제5조 : 의사가 아닌 사람이 영리를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업으로 할 경우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 100만 원 이상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병과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30년 전 대법원 판단을 반복했다. 지난해 3월, 6건의 헌법소원심판을 병합해 판결한 헌재는 “타투 시술은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며,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재판관 의견은 5(합헌) : 4(위헌)로 갈렸다.
헌법소원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타투는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다.
헌재는 “현재로서는 의료인에 의하여 문신시술이 시행되어야 안전성이 담보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감염증과 알레르기 반응, 혈액과 체액의 관리, 위생 관리 등에 관한 의학적 지식을 숙지해야 하는 점,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예방조치 등을 완전하게 수행하고 안전한 시술 절차를 준수해야 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소수의견을 낸 이석태·이영진·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문신시술은 치료목적 행위가 아닌 점에서 여타의 무면허 의료행위와 구분된다”고 밝혔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의 입법례와 같이, 문신시술자에 대하여 의료인 자격까지 요구하지 않고도, 안전한 문신시술에 필요한 범위로 한정된 시술자의 자격, 위생적인 문신시술 환경, 도구의 위생관리, 문신시술 절차 및 방법 등에 관한 규제와 염료 규제를 통하여도 안전한 문신시술을 보장할 수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현행법상 의료인이 타투 시술을 해도 불법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게 타투이스트들의 주장이다. 현재 유통되는 타투 시술 기계가 인증을 받은 의료기기가 아니기 때문. 김도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 사무장(전 지회장, 활동명 ‘도이’)도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타투 기기도 의료 인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하나를 위해서 의료 인증을 받은 타투 기계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은 없죠. 결국 의사도 비의료기기로 타투를 할 수밖에 없는 불법적인 상황입니다.”(2023. 2. 17. 인터뷰)
타투이스트들은 ‘의료인만이 안전하게 문신시술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타파하고자, 녹색병원과 함께 국내 최초로 ‘감염관리지침’을 만들었다. 타투유니온은 이 지침을 바탕으로 타투이스트를 위한 감염관리 교육을 매월 진행하고 있다.
소수의견을 낸 헌재 재판관들은 염료 문제도 짚었다. 이들은 “안전성이 확인된 염료를 사용하는 한 염료로 인한 부작용은 의료인에 한하여 문신시술을 허용하여야 하는 이유가 되기 어렵다”며, “현행법은 문신용 염료의 성분 등을 규제하고 정부의 감독하에 시험 절차를 정하고 있는 바 문신용 염료로 인한 위험성 예방을 위한 조치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봤다.
헌재 판단의 두 번째 쟁점은 ‘타투이스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다.
타투이스트들은 “문신시술을 위하여 의사면허를 요청하는 것은 지나친 시간과 비용을 요하여 필요 이상의 진입장벽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비의료인인 청구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나 이는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이행하는 중요한 공익에 비해 그 침해의 정도가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반면, 소수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은 “의료행위 가운데 문신시술에 관한 부분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문신시술은 일반적으로 질병치료나 건강증진을 위한 전문적 의료행위가 아니어서 오로지 문신시술만을 위하여 의료인 자격을 취득할 것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 문신시술에 한정된 자격의 요구와 영업 규제 등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 신체나 공중위생에 대한 위해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면, 이는 청구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덜 침해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헌재 판단의 마지막 쟁점은 ‘문신을 이용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지’다.
타투이스트들은 “문신시술을 이용한 미(美)의 추구와 표현, 창작행위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예술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의 제한은 문신시술업이라는 직업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제약된다”고만 봤다.
이에 소수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은 “문신시술은 안전한 시술을 위한 기술을 넘어 창의적이거나 아름다운 표현이 가능한 기술도 요청되고 이러한 추가적인 기술은 의료인이라고 하여 반드시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현실을 외면한 제도의 고수는 증가하는 문신시술의 수요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여 오히려 불법적이고 위험한 시술을 조장할 뿐”이라고 봤다.
김도윤 타투유니온 사무장 역시 헌재 재판관들의 소수의견에 공감을 보였다.
“타투에서 위생을 지키는 건 기본입니다. 요리사가 바지락칼국수를 만들 때 바지락 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처럼 기본이란 말이죠. 더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가려면, 예술성을 중점으로 살펴야 해요. 타투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검증하거나 사전에 보장할 수 없는 예술성이 포함돼 있어요.”
이웃 나라 일본은 2020년 9월 최고재판소에서 “문신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확정하면서 타투 합법 국가가 됐다.
일본의 변호인단은 의사국가시험 시험문제의 출제항목을 근거로 삼았다. 의사국가시험에서는 문신사에게 요구되는 그림 그리는 기술이나 디자인 지식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문신기술과 의사면허는 관계가 없는 만큼 문신사에게 의사면허를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일본에서의 문신시술 규제를 둘러산 법적 고찰> 박용숙 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2021. 9. 27. 참고)
결국 일본 최고재판소는 “피고인의 문신행위는 의사가 하지 않을 경우 피부질환 등을 발생하게 할 우려는 있지만, 의료 및 보건지도에 속하는 행위는 아니기 때문에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미용서비스와 의료행위의 경계에 관한 고찰> 백경희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등, 2020. 12.)
미국과 유럽의 경우도 면허제나 신고제를 운영하고 있다. 1998년 타투를 합법화한 미국은 자격증을 취득하면 합법적으로 문신시술을 할 수 있다. 프랑스는 타투이스트가 보건위생 교육 수료증을 제출하고 신고하면 합법적으로 영업이 가능하다.
한국도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 10월 규제 혁신 차원에서 문신을 통한 반영구 화장 시술을 피부관리실이나 미용실 같은 미용업소에서 시행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사법부의 변화도 감지된다. 청주지방법원(판사 박종원)은 지난해 10월 19일 의료법 위반 혐의를 받는 반영구 문신시술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영구 화장 시술은 질병의 예방·진찰과 치료 및 보건지도의 목적이 있다거나 의료인이 하지 않으면 보건위생상 위해를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워 이 사건 조항에서 말하는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헌재는 타투를 의료행위로 규정한 의료법 및 보건범죄단속법에 대해 2007년 이후 총 7번을 심판했다. 지난 2016년에는 7: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6년 뒤인 지난해에도 합헌 결정은 내렸지만, 5:4로 소수의견의 비중은 높아졌다.
헌재는 지난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의 역할을 주문했다. “문신시술을 위한 별도의 자격 제도를 마련할지 여부는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사정을 참작해 입법부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판단한 것.
21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타투 합법화 관련 법안이 모두 8개나 발의됐다. 강기윤·엄태영·최영희·홍석준 의원(이상 국민의힘), 박주민·송재호·최종윤 의원(이상 더불어민주당), 류호정 의원(정의당)이 각각 발의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모두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8개 법안 모두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달 중에는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 반영구문신사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받을 예정이다. 이번에도 법원은 30년 된 ‘불법’ 딱지를 꺼내들까. 아니면 ‘이상한 나라’의 오래된 판례를 깨고 ‘합법’의 문을 열어줄까.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