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6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용화여고. 한 학생이 교실 창문에 노란색 메모지 한 장을 붙였다. 그 옆에 다른 학생도 파란색 메모지를 따라 붙였다. 어느덧 알록달록한 메모지 수백 장이 창문을 덮었다.
학생들이 교실 창문 너머 바깥세상을 향해 보낸 메시지는 “#ME TOO”, “WE CAN DO ANYTHING”, “#WITH YOU”. 용화여고 졸업생들이 SNS에 폭로한 ‘스쿨미투’에 대한 화답이었다.
졸업생들은 재학 시절 남자 교사들에게 상습적인 성희롱, 성폭행을 당했다. 용화여고의 연대 활동으로 스쿨미투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정치인, 교사, 학부모 등 대한민국 사회는 학생들에게 스쿨미투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5년이 흘렀다. 교복을 입고 교실 창문에 메모지를 붙이던 학생들은 이제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다니는 사회인이 됐다. 피해자들은 학교를 떠났지만, 스쿨미투는 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다.
“교권 침해 사안에 대응하는 적극성을 스쿨미투 사안 처리에 보여줬더라면… 교육 관련 기사를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 교육당국은 지난 5년간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발 방지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보장받았다. 이제와서 ‘피해자 보호’를 명분으로 스쿨미투 공시제도를 반대하는 것은 속내가 뻔하다. 가해교사와 사건발생 학교와 사건을 부실하게 처리한 교육청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과 다름없다.”(2023. 2. 14. 정치하는엄마들 스쿨미투 공시제도 법제화 의견서 일부)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또 다시 교육청을 상대로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공개 행정소송에 나섰다.
지난 8일 정치하는엄마들은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2018~2021년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의 소(이하 경기도교육청 스쿨미투 정보공개 행정소송)를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지난해 4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한 스쿨미투 정보공개 행정소송에서 이긴 지 약 1년 만이다. 당시 재판부는 가해교사 이름과 감사보고서를 제외한 스쿨미투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도 스쿨미투 발생 학교명 공개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1월 전국 시도교육청에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를 요구했으나, 6개 시도교육청(경기·경남·대구·대전·전남·충북)은 여전히 학교명을 비공개 중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학교명을 비공개한 것은 부당하다”며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과 교사들이 있는 경기도교육청이 17개 시도교육청 중 가장 부실하고 빈약한 정보공개로 충격을 주었다. 학교성폭력 사건의 고발 및 그 처리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정보공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남궁수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3. 3. 9. 정치하는엄마들 보도자료)
정치하는엄마들이 요구한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는 ▲스쿨미투 발생 학교명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가해교사 직위해제 여부 ▲징계 ▲피해자 사과 ▲학교 측 재발방지 대책 등 6가지다. 스쿨미투 발생 학교명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학교에서 스쿨미투 사건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해당 학교가 피해 학생을 제대로 보호하고 사건 후속 처리를 엄정히 했는지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쿨미투 정보공개 청구 운동은 2019년부터 시작됐다. 교육청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은 약 4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스쿨미투를 숨기려는 자와, 밝혀내려는 자의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 [2019년 5월] 정치하는엄마들, 서울시교육청 상대 1차 소송 제기
정치하는엄마들은 2019년 4월 전국 16개 시도교육청(2018년 제주 관내 스쿨미투 없음)에 스쿨미투 사건 후속처리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그 결과, 대전시교육청을 제외한 15개 시도교육청은 모두 ‘비공개’ 답변을 내놨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다음 달인 2019년 5월 스쿨미투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의 소’를 제기했다. ▲피해자-가해자 분리 여부 ▲가해교사 직위해제 여부 ▲감사 결과보고서(원본) ▲교육청 징계요구 내용 및 처리 결과를 공개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스쿨미투 처리현황을 공개하면 가해교사의 개인정보, 사생활 비밀 및 자유의 침해, 인사관리 업무 전반의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2020년 3월] 정치하는엄마들, 서울시교육청 상대 1심 승소
약 1년 뒤인 2020년 3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정치하는엄마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가해 교사의 이름과 감사결과 보고서를 제외한 정보 공개가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시교육청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에 조희연 교육감은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질타를 받기도 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여부는 기초적인 자료인데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학교 내 성폭행 발생과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선 고발 이후 처리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학교 내 성폭력 근절은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와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교육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0. 10. 15.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 [2020년 12월] 정치하는엄마들, 서울시교육청 상대 2심 승소
2020년 12월 2심 판결도 정치하는엄마들의 승리였다. 그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명을 포함한 2018년 스쿨미투 처리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학내 성추행·성폭력 사건의 방지 및 학생 보호의 이익과 자율적이고 공정한 인사업무 수행을 위해 시민들에게 정보공개 해야 한다.”(서울고등법원 판결문 일부, 2020누38166)
● [2021년 3월] 교육부는 스쿨미투 정보 모르고, 교육청은 학교명 또 비공개
2021년 3월 정치하는엄마들은 서울시교육청 승소 판결문을 근거로 다시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에 2018~2020년 3년 치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광주시교육청, 제주도교육청 두 곳을 제외한 15개 시도교육청은 학교명을 가린 ‘부분공개’ 자료를 전달했다. 지난 소송에서 패소한 서울시교육청도 마찬가지였다.
교육부는 ‘해당 부처가 생산, 접수하지 않는 사항’이라며 정보 부존재 답변을 내놨다. 한마디로 모른다는 말이다. 교육부는 스쿨미투 피해 사건 수,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 여부, 가해자 징계 처분 등 2018년 전국 스쿨미투 현황을 단 한 차례도 취합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기존 1차 소송의 판결 효력이 2018년 정보에만 적용된다는 ‘기판력’을 이용했다. 2019~2020년 스쿨미투 처리현황에 학교명을 공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태도였다. 교육청의 논리대로 하자면, 매년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통해서만 새로운 스쿨미투 처리현황 자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무한 소송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그야말로 ‘농단’입니다. 국민들은 피고(시도교육청)를 상대로 매년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원고는 개인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공익을 위한 사명으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피고는 세금을 낭비하면서 소송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불이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입니다.”(스쿨미투 정보공개 2차 행정소송 기자회견문 일부 2021. 5. 21.)
● [2021년 5월] 정치하는엄마들, 서울시교육청 상대 2차 소송 제기
결국 정치하는엄마들은 2021년 5월 똑같은 내용의 2차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학교명 비공개 처분이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학생이 ‘아, 이건 개인정보와 연관 있고, 이건 또 제 학생 업무에 차질이 있기 때문에 제출할 수 없습니다. 알아서 잘했으니까 그렇게 아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시민들은 공무원이 숙제를 했나 안 했나 검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교육청)은 검사는 안 받고, 그냥 훌륭하게 잘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만 합니다.”(정치하는엄마들 법률 대리인 류하경 변호사 인터뷰 2023. 3. 6.)
2022년 4월, 2차 소송 역시 정치하는엄마들의 승리였다. 서울행정법원은 2018~2020년 학교 성폭력 사건 처리현황 중 ‘사건 발생 학교명’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정보공개 거부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학교명 공개를 통해 시민사회 감시활동이 강화되고, 적극적이고 공정한 업무수행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공익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정보가 공개될 경우 학교에서 성폭력 관련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조치, 가해자에 대한 제재조치 등을 제대로 취하였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조치가 미흡하다고 보일 경우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할 수도 있게 되는 바, 학교 성폭력 사건의 후속조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활동을 위하여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할 공익적 필요도 분명히 있다고 판단된다.”(서울행정법원 판결문 일부, 2021구합66241)
● [2022년 4월] 여전히 학교명 공개를 거부하는 교육청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만 3년 동안 이어진 서울시교육청 상대 행정소송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은 이겼지만, 여전히 다른 교육청들은 스쿨미투 학교명을 감추고 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해 4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또 다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11개 시도교육청이 학교명을 공개했고, 경기·경남·대구·대전·전남·충북 등 6개 시도교육청은 여전히 비공개 중이다. 당시 세종시교육청도 학교명을 비공개 처리했으나, 같은 해 9월 국민신문고로 소극행정신고 민원을 신청하자 입장을 바꿔 정보를 공개했다.
서울시교육청 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학교명 공개만으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신원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학교명을 비공개한 6개 시도교육청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 때문’이라는 답변뿐이다.
“학교명을 공개하더라도 학교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인적사항 등까지 특정될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 오히려 시민사회의 감시활동이 강화됨에 따라 더 적극적이고 공정한 업무 수행이 촉진될 수 있으리라 보이는 측면도 있으므로 (…)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서울행정법원 판결문 일부, 2021구합66241)
그래서 또 소송이다. 스쿨미투 고발 이후에 어떤 조치들이 취해졌는지 알 수 없다면, 우리 사회는 미래의 피해자들을 지킬 수 없다. 2018년에 촉발된 스쿨미투. 벌써 5년이나 지났지만, 교육 당국의 답변은 변하지 않았다. 학교는 잊으라 했고, 세상은 지우려 했던 스쿨미투. 정보공개청구 소송은 다시 시작된다.
스쿨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추적은 계속된다. #스쿨미투는_졸업하지_못했다.
“지난 5년간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은폐 노력으로 스쿨미투 가해교사는 웃었고, 피해학생은 울었으며, 학교성폭력 근절은커녕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도교육청들은 일일이 소송을 걸어보란 식으로 소위 법꾸라지(법+미꾸라지) 행태를 보이고 있다.”(정치하는엄마들 스쿨미투 공시제도 법제화 의견서 일부 2023. 2. 14.)
※ [기사 수정 : 16일 오전 10시] ‘전국시도교육청별 스쿨미투 정보공개 현황’ 표의 일부 수치에 오류가 있어서 다시 집계 후 수정했습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