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뉴스일까’ 고민했으나, ‘이것이야말로 뉴스’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무엇보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응원하는 ‘왓슨’(유료독자) 여러분에게 알려야 한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셜록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이니까요.
22세 ‘간병살인’ 청년의 사연을 다룬 프로젝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기억하실 겁니다. 사건의 주인공 강도영(가명) 씨가 구속된 지도 약 2년이 흘렀습니다.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니, 강 씨는 교도소에서 2년을 더 보내야 합니다.(관련기사 : <“쌀 사먹게 2만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프로젝트 진행과 보도가 끝났다고, 강도영 씨와 인연까지 끊지 않았습니다. 셜록은 강도영 씨와 편지로 꾸준히 소통하며, 영치금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책 한 권 보내줄 단 한 명의 가족도 그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강 씨와의 소통이 늘 원만했던 건 아닙니다. 이해 부족과 욕구 불일치로 삐걱거리기도 했습니다. 생각의 간극이 크게 벌어졌을 즈음, 강도영 씨가 솔직한 생각을 편지에 적었습니다.
“출소 후에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복학을 희망하면 학교는 전과자인 나를 다시 받아줄지… 많이 걱정됩니다.”
셜록은 그동안 강 씨에게 “출소 후 살 집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럼에도 관계가 삐걱거릴 때면 미래에 대한 우려가 강 씨의 마음을 무겁게 했나 봅니다.
셜록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영치금과 물품을 지원하는 것만이 우리의 일일까, 원하는 걸 다 들어주는 게 어른의 역할일까, 어떻게 하면 시혜적 관계를 넘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길이 열릴까….
우선 셜록은 불안해하는 강도영 씨에게 출소 후 살아갈 집을 구하고 학업을 이어가도록 지원하겠다는 걸 다시 한번 분명히 했습니다. 이걸 전제한 뒤, 강도영 씨와 셜록은 더 좋은 관계와 미래를 위해 최근 두 가지를 약속했습니다.
강 씨가 먼저 스스로의 다짐을 편지로 밝혔습니다.
“운동을 해서 체중을 감량하겠습니다. 함께 수감생활을 하는 형(전직 트레이너)이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강 씨의 이런 계획은 과거의 상처와 관련 있습니다. 뇌출혈로 인한 전신마비 아버지 치료와 간병으로 쌀값마저 다 떨어졌을 무렵, 강 씨는 돈을 벌기 위해 구직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본인 건강 문제로 원하는 일자리를 못 구했습니다.
강 씨는 “남 탓을 하기보다는 나에게 좋은 쪽을 택해 노력”하기로 한 겁니다. 셜록은 이런 강 씨에게 공부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박상규 기자는 구체적인 방향을 편지에 적었습니다.
“출소까지 앞으로 2년, 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함께 노력하면 어떨까요.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다면 가능할 겁니다. 도영 씨는 그림과 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요. 어떤 직업을 택하든 내면에 쌓인 독서의 힘이 도영 씨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겁니다. 셜록이 매주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약 보름간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평소 일주일마다 소통했으니, 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무 과한 제안을 한 건 아닌지 걱정도 했습니다. 지난 13일, 기다리던 답장이 왔습니다.
“기자님 부탁대로 하겠습니다. 제 생각도 이젠, 지금이라도 조금씩 바꿔나가야 여기 들어와 생긴 공백을 메울 수 있을 테니까요. 기자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일방적으로 한쪽은 도움을 주고 다른 한쪽은 도움을 받는 관계를 넘어 서로 당당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듯해,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결코 셜록의 살림살이가 넉넉해서 강도영 씨에게 살아갈 집, 휴대전화, 학업 지원을 약속한 게 아닙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셜록이 탐사 취재와 보도를 하며 발견한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딱 한 사람’의 중요성입니다.
셜록 탄생의 모태는 ‘재심 3부작’, 즉 ▲삼례 3인조 사건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 보도입니다. 살인 누명을 쓴 이들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빈곤했다는 것,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다는 것, 본인이 장애인이거나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를 위해 끝까지 노력해줄 사람이 없었다.’
최근 ‘서칭 포 솔트맨’ 프로젝트에서 보도한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 그리고 강도영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위험에 빠졌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사람이 이들에겐 없었습니다. ‘딱 한 사람’만 있으면 살인누명도 안 쓰고, 섬에 팔려갈 일도 없고,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도 않았을 텐데…. 이들에겐 그 ‘딱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셜록은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문제 해결이란, 법과 제도의 마련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일상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자, 궁극의 문제 해결이라 생각합니다.
‘국가는 무엇을 했느냐’는 거대한 물음만 되풀이하느라, ‘딱 한 사람’의 역할과 중요성을 외면하는 건 아닌지, 늘 살피겠습니다. 강도영 씨와 한 약속을 잘 지키겠습니다. 이 순간, 그에게 ‘딱 한 사람’은 바로 셜록이니까요.
끝까지 책임지는 것, 셜록과 왓슨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누군지 잊지 않겠습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