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단란주점 술값 일부와 밥값 500여만 원을 치르지 않고 육지로 돌아간 유명 한의사에게 21일 전화를 걸었다. 그는 관련 사실을 인정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거 뭐 뉴스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진실탐사그룹이 셜록이 보도할 예정이라고 밝히자, 그가 반문했다.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요?”

대통령 한방자문의 출신 정지천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그의 이런 태도는 새롭지 않다. 오히려 일관성 있다. 그는 자신의 치부를 폭로한 사람에게 이미 뒷감당을 시키고 있다.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고소가 그것이다.(관련기사 : <무릎 꿇리고 단란주점 술값 강요… 갑질 교수와 한의사들>)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 할 수 있겠어요?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해.” 영화 ‘베테랑'(2014)의 재벌 3세 조태오(배우 유아인)는 자신을 수사하는 형사 서도철(배우 황정민)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마치 정지천 교수가 셜록에 한 것처럼. 영화 ‘베테랑’ 포스터. ⓒ(주)외유내강/CJ ENM

관련 사실을 인정했으면서 뭐가 허위라는 걸까? 잠시 2000년으로 돌아가보자.

그해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정 교수는 제자 한의사 30여 명과 제주도에서 친목 행사를 가졌다. 행사의 핵심은 골프였는데, 당시 제주도 골프장은 7개뿐이어서 부킹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정 교수의 부탁을 받은 여행사 직원 양재훈(가명, 1967년생)은 어렵게 골프장을 예약했다. 다만, 티오프(골프 시작 시각)는 골프장 사정에 따라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정 교수 일행은 행사 마지막 날인 10일, 자신들이 원하는 시각보다 약 3시간 늦게 골프를 시작했다.

정 교수 일행은 이를 핑계로, 자신들이 제주도에서 먹고 마신 비용의 일부인 약 500만 원을 여행사 직원 양재훈에게 떠넘겼다. 일명 ‘한의사 집단 먹튀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정지천 교수는 당시 모임의 좌장으로서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정 교수가 대통령 자문의가 됐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 피해자 양재훈 씨는, 2021년 5월 이 사실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폭로했다. 청와대는 정지천을 대통령 자문의에서 즉각 해촉했다.

정 교수는 양재훈을 곧바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이 무혐의를 결정하자, 정지천 교수는 사건을 검찰로 끌고 갔다. 검찰 역시 무혐의 처분했다. 정 교수는 즉시 고검에 항고했다.

여기까지는 정지천 교수가 “뉴스도 아니”라면서 사실로 인정하는 내용.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법이다. 지금부터 그가 허위라고 주장하는 게 과연 진실인지 따져보자.

2017년 7월 정지천 교수의 대통령 한방자문의 위촉 사실을 알린 동국대병원 블로그 게시물 일부 ⓒ셜록

양재훈 씨는 ‘먹튀’만 폭로하지 않았다. 그는 21년간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정지천 교수에게 당한 갑질 피해도 폭로했다.

“정지천 교수가 골프장 부킹 시각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단란주점에서 저를 무릎 꿇게 했습니다.“(셜록과의 인터뷰)

정 교수와 한의사들 앞에서 무릎 꿇은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양재훈 씨는 그 이후에 겪은 심정 고통을 국민청원 게시판에 적었다.

“XX대 한의대 정OO 교수와의 지옥같은 일을 잊어버리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기 한번 걸렸던 것처럼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무심코 ‘라디오 동의보감’이나 TV에서  정OO 교수의 목소리, 얼굴이 나오면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런 날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내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정지천 교수는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500만 원을 전가했는지…. 비참한 기분이 끝없이 들어 힘들었습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아이들에게 못난 아빠였다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아내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당한 제 자신이 두고두고 너무나 한심하고 창피했기 때문입니다.”

정지천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와 제자 한의사들에게 갑질 피해를 입은 양재훈(가명) 씨. ⓒ셜록

피해자가 가장 치욕스럽게 여기는 기억, 정 교수는 딱 이것만 부인하고 있다. 그는 “양재훈 씨를 단란주점에서 무릎 꿇린 적 없다”고 주장한다. 정 교수는 지난 14일 셜록과의 통화에선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엄청난 피해를 당한 겁니다. 그분(피해자)이 국문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무릎 꿇었다’ 그건 다 지어낸 말입니다.”

피해자가 국문과 출신이라서 없는 사실을 지어냈다? 한의학과 출신인 정지천의 기억력 회복을 위해 셜록은 지난 13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제주도에 다녀왔다. 정지천 교수 포함 한의사 30여 명과 2박 3일을 보내며 이들의 집단 먹튀와 갑질을 목격한 또다른 사람이 아직 제주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 제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으니까, 아마 저를 여행사 직원으로 알았나봐요. 양재훈과 같이 있다가 저도 한 세트로 피해를 당했죠.”

2023년 3월 현재 제주시의 한 호텔에서 시설 관리인으로 일하는 조해수(가명, 1967년생) 씨는 담배를 피우며 인상을 썼다. 담배보다 그때의 기억이 더 쓴 듯했다. 그는 호텔 뒷문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그때의 경험을 들려줬다.

조 씨는 양재훈 씨의 고교 시절 친구다. 그가 2000년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한의사들과 동행한 건 친구 양 씨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정지천 교수 부탁으로 어렵게 골프장을 예약했는데, 막판까지 부킹 시각이 미정이어서 재훈이가 엄청 불안해 했어요. 그 양반들 오기 전부터 엄청 닦달을 당했나봐요. 제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의지가 될까 싶어 2박 3일간 함께 다녔죠.”

조해수 씨는 마음의 의지만 돼준 게 아니다. 그는 친구 옆을 지키다 함께 갑질 피해를 겪었다.

“단란주점 룸으로 들어가니까, 정지천 교수가 재훈이한테 ‘무릎 꿇어’ 그러더라구요. 재훈이가 무릎을 꿇었는데.. 저는 뒤에서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해서 덩달아 같이 무릎을 꿇었죠. 제자들 앞이어서 그랬는지 정지천 교수의 압박이 엄청 심했어요. 제자 한의사들도 괜히 한마디 보태면서 거들고….”

정지천 교수와 한의사 30여 명의 집단 먹튀와 갑질을 목격한 또다른 사람이 있다. 일러스트 신지현. ⓒ셜록

조 씨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피해자 양재훈의 기억과 일치했다. 그는 친구이자 월급 200만 원도 못 받는 여행사 직원 양재훈 씨가 정 교수의 압박으로 한의사들이 먹고 마신 비용 500여만 원을 대신 치르는 것도 지켜봤다.

조 씨는 당시 “다 잊어버리자”고 친구를 위로했다. 그는 2021년까지 여행사를 운영했다. 그동안 일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정지천 교수와 제자들은 그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그 양반들의 당시 행동은 갑질 중에서도 탑(top)이었습니다.”

그때의 일이 친구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는 걸, 조 씨는 최근에야 알았다. 경찰의 전화 한 통이 계기였다.

“경찰 하는 말이, 정지천이라는 사람이 친구를 고소했는데 기억나는 대로 당시 일을 진술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진술하고, 재훈이가 쓴 국민청원 글도 읽어봤죠. 친구 마음에 응어리가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요. 지금이라도 상처와 응어리가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양재훈 씨에게 무혐의를 결정한 배경에는 조 씨의 진술도 한몫했다. 두 사람의 진술이 신빙성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증인까지 나섰음에도 가해자 정지천 교수는 “국문과 출신이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말로 자신의 과거를 윤색하고 있다.

정지천 동국대 한의과대학 교수와 한의사들에게 갑질 피해를 입고, 고소까지 당한 양재훈(가명) 씨. ⓒ셜록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조해수 씨는 정지천 교수의 당시 위세를 떠올리며 두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 양반들이 당시 단란주점 갔을 때 저는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재훈이에게 압력 넣는 걸 봤을 때 룸살롱 가겠구나 싶었거든요. 거기 가서 마음대로 술 마시고 친구에게 떠넘겼으면 1000만 원 정도 나왔을 겁니다. 그나마 단란주점 갔으니까 재훈이가 총액 500만 원으로 막은 겁니다.”

다른 에피소드 하나는?

“아, 그것도 정말 잊지 못할 일인데요….”

조 씨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

“2박 3일 함께하는 동안 저희한테 ‘밥은 먹었느냐’, ‘식사를 같이 하자’ 이런 말을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고급 일식당에서 그 양반들 밥 먹는 동안 우리는 밖에서 대기했다니까요. 지들이 먹었으면 계산을 하든가. 그 밥값도 친구(양재훈)가 계산했습니다.”

의사들 밥값, 술값을 여행사 직원에게 떠넘긴 정지천 교수는 여전히 “피해자는 우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를 고소한 그는 셜록에게 ‘뒷감당’을 예고하고 있다. 스승과 제자들의 ‘집단 먹튀’는 뉴스도 아니라면서 말이다.

그는 역시 일관성 있는 사람이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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