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누명을 쓰고 5년 2개월 복역했던 오재선(77세)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32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제갈창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로 1986년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오재선의 재심 재판에서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오재선은 당시 1심 재판 때부터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 나는 간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고 유죄를 선고한 당시 재판장은 양승태 판사다.
오재선은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제주도 출신 한국인이다. 해방 직전인 1945년 3월, 그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왔다. 그의 부친은 애월면사무소에서 일했다. 1948년 일어난 ‘제주 4.3사건’ 이후 그의 아버지는 일본으로 다시 떠났다.
오재선은 15세 때인 1956년,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처음 밀항했다. 일본에서 아버지와 일본인 새엄마와 함께 살며 가방공장 재단사, 식당종업원 등으로 일했다. 그는 1983년 제주도로 돌아와 정착했다.
제주경찰서 소속 경찰은 1986년 4월 25일 오재선을 강제 연행했다. 경찰은 오재선을 45일간 불법구금 상태에서 고문해 간첩으로 조작했다. 오재선이 일본에서 조총련 간부에게 포섭돼 지령을 받고 제주도로 건너와 국가기밀을 수집했다는 게 경찰의 조작 내용이다.
당시 경찰의 고문 후유증으로 오재선은 오른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가족이 없는 오재선은 2005년부터 제주양로원에서 살고 있다.
오재선 사건에서 연달아 오판을 하는 등 판결로 군사정권에 부역했던 두 판사는 훗날 대한민국 최고 법관 자리에 올랐다.
양승태 재판장은 대법관을 거쳐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임명으로 대법원장이 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거래 의혹 관련 지난 6월 1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재판 독립의 원칙을 정말 금과옥조로 삼는 법관으로서 40여년을 지내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재선은 2심에서도 무죄를 항변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2심 재판장은 서성 판사다. 그는 법원행정처 차장을 거쳐 지난 1997년 대법관이 됐다. 퇴임 후에는 대형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서성 전 대법관은 퇴임 후인 2003년 9월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가 “후배 법관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현직에 있을 때 처신을 바로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항상 노력했습니다. 법관은 항상 용기를 가지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자제하고 남을 위해 베풀며 ‘적극적’ 청렴을 실천해야 합니다.”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은 오재선은 <제주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양 전 대법관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기반성을 먼저 하고 새로 태어나라.”
오재선을 도와 무죄를 이끈 이명춘 변호사는 “과거 군사정권은 수없이 많은 재일동포를 간첩으로 조작했고, 오재선도 그중 한 명이다”라며 “이제라도 오재선이 누명을 벗어 다행이다. 국가는 겸허하게 반성하는 자세로 상처받은 재일동포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오랫동안 다시 재판을 받는 것도 누명을 쓴 사람들에겐 상처”라며 “검찰은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