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백>의 주인공 중 한 명이자,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김승효(68) 씨에 대해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이 과거사 사건에 대해 무죄를 구형한 것은 이례적이다.
검찰은 23일 구형 의견서를 통해 “핵심 기소 내용인 ‘반국가단체 가입 후 북한공작원에 포섭되어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했다’는 부분에 대하여 피고인의 자백 이외에 이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피고인(김승효)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의 무죄 구형으로 김승효는 43년 만에 누명 벗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일교포 김승효는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철학과에 다니다가 재일 거류민단에서 실시한 모국 유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해 1974년 3월 서울대 교양과정에 입학했다.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2개월 뒤인 5월 3일 오후 8시께,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하숙집에서 중앙정보부 직원들에게 강제 연행됐다. 김승효는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19일간 불법감금 상태에서 옷이 모두 벗겨진 채 고문을 받으며 간첩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앙정보부는 “김승효가 남조선 혁명사업을 위해 모국유학생 시험에 응시하라는 북측의 지령을 받고 시험에 합격. 서울대에 침투하여 북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학생들 포섭. 남조선 정치, 경제, 사회 등 각종 국가 기밀을 탐지 수집”했다고 사건을 조작했다.
김승효는 교도소에서 7년을 복역한 뒤 1981년 광복절특사 석방됐다. 일본으로 돌아간 김승효는 고문후유증으로 조현병을 앓아 21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김승효는 2016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6월 10일 재심을 결정했다. 조현병으로 외출을 못하는 김승효를 대신해 형 김승홍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법정에 출석했다.
검찰의 무죄 구형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검찰은 재심 사유가 분명하고 무죄가 명백해 보이는 과거사 사건에 대해서도 관행적으로 “법원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 달라”고 백지 구형을 해왔다.
2012년 서울중앙지검 임은정 검사는 박형규 목사의 재심에서 백지 구형이 아닌 무죄를 구형했다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번 무죄 구형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과거사 사건을 이전과 다르게 판단하려는 검찰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시절, 김승효가 재심을 청구했을 때 박두순 서울고검 검사는 아래 내용이 담긴 ‘재심 반대 의견서’를 법원에 냈다.
“우리나라 선배 법조인들이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건을 조작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분들의 학식과 인품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이 잘 알려져 있고, 그 시대 상황에서 법조인의 양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수사, 기소, 재판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선배들의 전통 위에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체계가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 확정된 이러한 판결은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불충분한 증거로 부정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오는 31일 오후 김승효 선생의 재심을 선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