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에 따라 다음과 같이 소송비용액 상환을 요청 드립니다. 총징수액 금 이천오백이십일만….”

우편함에 청구서가 도착했다. 보낸 곳은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대표 피청구인은 김종익(69).

국무총리실에서 생산한 문서에 김종익의 이름이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에 만든 문서엔 수십 번 넘게 등장했다. 그때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종익을 불법 사찰했다. 그가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배후세력으로 보인단 이유였다.

지난달 22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그의 집에서 김종익 씨를 만났다 ⓒ셜록

이명박 정부의 불법사찰로 김종익의 삶은 뒤틀렸다. KB한마음(현 뉴스타트한마음)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고, 회사 지분을 헐값에 팔았고,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이후엔 경찰-검찰 조사가 이어졌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버틴 후에는 암이 찾아왔다.

모든 게 총리실의 불법 행위였다는 게 2010년 알려졌다. 불법사찰을 주도하고 관여한 직원들은 형사 재판을 통해 처벌받았다. 김종익은 국가와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 <MB는 지고도 웃었고, 김종익은 이기고도 울었다>)

소송의 결과는 일부 승소였다. 재판부에서 피해를 ‘일부’만 인정한 결과, 피고 대한민국은 오히려 김종익에게 청구서를 내밀었다. 불법사찰 가해자였던 총리실은 어째서 피해자인 김종익에게 2500만 원을 독촉하는 입장이 된 걸까. 그 배경은 ‘민사소송법 제98조’에 있다.

김종익 씨가 블로그에 공유한 ‘쥐코’ 영상은 영화 <식코>(2008)를 패러디해 광우병 소고기 수입 등 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월간 작은책

2008년 당시 불법사찰을 주도한 곳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신설된 지원관실에선 김종익을 집회 배후세력이라 여겼다.

그가 ‘친노‘로 분류되는 이광재 전 국회의원과 관련이 있고, 노사모(노무현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핵심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또, 김종익이 블로그에 공유한 이명박 정부 비판 영상을 보고 동영상 제작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그가 집회 자금줄을 댈 만한 능력(?)이 있는 금융회사 대표라는 점도 고려됐다.

총리실의 유추는 사실이 아닐뿐더러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설령 김종익이 촛불집회의 배후세력이라고 해도 총리실이 국민을 사찰할 순 없다는 점이다.

“제가 촛불집회에 자금줄을 댔다뇨. 노사모 회원이었던 건 맞지만 핵심 인물도 아니었고, 이광재 전 의원과는 친분도 없었습니다. 그랬다고 하면 또 어때요? 그러면 국가가 국민을 사찰해도 되는 건가요?

터무니없는 이유로 총리실은 2008년 9월 김종익의 삶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대표이사로 있던 KB한마음 사무실로 찾아가 자금 횡령 여부를 조사했고, 모회사인 국민은행 부행장을 찾아가 ‘김종익을 잘라내지 않으면 국민은행까지 위험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명예훼손, 횡령 혐의로 경찰에 직접 조사 의뢰까지 했다.

김종익은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급하게 회사 주식 75%를 싼값에 팔았다. 경찰은 김종익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넘겼고 검찰은 기소를 유예했다.

2010년, 민주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불법사찰을 주도하거나 관여한 총리실 직원들은 형사 재판에 넘겨져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공권력을 불법적으로 행사하고, 조직적으로 한 개인을 사찰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불법사찰을 주도하거나 관여한 총리실 직원들은 대부분 실형을 받았다 ⓒ셜록

잘못한 사람들이 벌을 받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잃은 게 돌아오진 않는다. 김종익은 2011년 불법사찰을 주도한 총리실 관계자들과 국가를 상대로 30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었다.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계속 일했다면 받았을 급여, 퇴직금, 상여금을 청구했어요. 또, 그때 제가 회사 주식을 당시 시세에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았거든요. 주식 매매로 인한 손해액, 정신적 위자료도 함께 청구했죠. 가족들의 정신적 위자료도 더했어요.”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2년, 후배와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고 있던 날이었다. 바싹 마른 그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던 후배가 건강검진을 해보라며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형님… 내가 형님께 이거밖에 못해줘서 미안합니다.”

봉투엔 돈이 들어 있었다.

김종익은 후배가 봉투를 내밀었던 순간을 말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고마움이란 감정도 사무치면 슬픔이 섞였다. 김종익의 입에서 울음을 참느라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갑상선암이 발견됐어요. 크기가 커서 의사는 당장 수술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암이 반가웠어요. 수동적 죽음을 바라게 되더라고요. ‘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죽자‘는 마음 같은 거요.”

그때 김종익은 책 번역 일을 하고 있었다. 병이 삶을 집어삼키게 두더라도 약속한 일은 끝맺어야 했다. 수동적 죽음을 결심한 그날도 새벽 3시까지 글자를 들여다보다가 안방으로 향했다.

안방엔 아내가 곤히 자고 있었다.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아내의 발뒤꿈치가 보였다. 부르터서 여기저기 갈라진 하얀 살점이 보였다. 군데군데 내려앉은 피딱지도 눈에 띄었다.

그 발을 본 순간에야, ‘내가 그동안 너무나 내 생각만 했구나’ 깨달았어요. 아내도 표현을 안 하고 있었을 뿐이지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요.”

김종익 씨가 국무조정실에서 보낸 소송비용액확정서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셜록

온 가족이 힘든 상황을 견디며 소송을 진행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 ‘일부 승소’ 판결을 내놨다.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재판부는 김종익이 겪은 피해 중 일부만을 보상 범위로 인정했다.

김종익이 대표이사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부분만 피해로 인정하고, 주식 매도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정신적 피해도 다 인정받지 못해 위자료 액수도 깎였다.

피고 대한민국과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은 30억 원 중 약 6분의 1에 해당하는 5억 2000만 원만을 김종익과 가족들에게 지급하게 됐다. 대법원은 2016년 2심 판결을 확정했다. 김종익은 승소 후에도 웃지 못했다.

“제 아내와 아이들의 정신적 위자료는 각각 500만 원만 인정됐더군요. 재판부에서 청구한 금액에 극히 일부만 인정한 것도 억울한데… 나중에 소송비용 청구서까지 날아왔어요.”

비록 ‘일부 승소’였지만 재판에서 이긴 김종익이 왜 소송비용을 내야 하는 걸까.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는 민사소송법 제98조 때문이다.

소송비용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는 단연 변호사 비용이다. 이외에는 인지대(종이를 발행하는 데 든 돈), 송달료(편지나 서류, 물품 따위를 보내 주는 대가로 내는 돈) 등이 포함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다. 변호사 비용은 소송 당사자가 실제로 변호사와 맺은 보수계약에 의한 금액이 아니라 대법원이 정한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명시된 금액을 따른다.

문제는 민사소송에서 승패가 동전 뒤집기처럼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가 1억 원을 청구했으나 재판부가 3000만 원만 인정했다고 치자. 표면적으로는 원고가 승소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원고는 나머지 7000만 원 범위는 패소한 셈이다. 따라서 법원에서 패소 범위에 대한 소송비용을 ‘일부 승소’한 원고에게 청구하게 된다. 법원이 김종익에게 소송비용 5분의 4를 물어내라고 한 이유다.

‘가해자’ 대한민국은 김종익에게 사과문이 아닌 청구서를 보냈다 ⓒ셜록

우편함에서 소송비용액확정서를 발견한 날 김종익은 2차가해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날 국무조정실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국무조정실 담당자는 “선생님(김종익)에게 신청된 비용은 몰라도, 따님과 아드님에게 청구된 건 빨리 납부하시는 게 좋을 거다”라고 설명했다.

저는 국무총리실로부터 단 한 번도 사과받지 못했어요. 당사자인 이명박 정부 때는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도요. 피해자에게 사과가 중요한 이유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매듭짓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과는커녕 소송비용을 내라고 통보하다뇨. 그것도 불법사찰 가해자인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에서요.

저는 앞으로도 소송비용을 낼 생각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청구서가 날아오거나, 압류 등의 행위가 이뤄지면 대응을 이어 나갈 겁니다.”

개인의 사정에서 출발했어도,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대부분 공익적 성격을 띤다. 염전노예 피해자를 법률대리 한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염전노예 피해자분들이 신안군 등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서였어요. 국가에 책임을 묻는 이유는 개인의 권리 구제와 동시에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드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소송 자체가 국가에 던지는 일종의 메시지이자 시그널이 될 수 있습니다.”(최정규 변호사)

최 변호사가 맡은 국가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 중, 국가의 책임이 일부 인정된 경우가 있었다. 청구한 위자료는 절반만 인정됐다. 그래서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이 소송은 피고(국가)가 잘못해서 하는 소송이고, 위자료 산정에는 기준이 없으니 일부 승소라 하더라도 소송비용은 다 피고가 부담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그 요청을 수용했다.

“하지만 문제는 법원이 모든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 이런 판단을 내릴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공익소송으로 보고, 일괄적으로 패소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선 안 된다고 봐요.”(최정규 변호사)

피고 대한민국과 싸우는 일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돈이 들었다. 김종익도 그랬다.

소송을 제기할 땐 패소자 부담 원칙을 몰랐죠. 전혀 몰랐어요. 소송엔 돈이 정말 많이 들더군요. 아직도 기억나는 황당한 순간이 있어요. 제가 그때 강제로 회사 지분을 팔았잖아요. 재판에서 당시 제가 가진 주식의 가치가 얼마였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졌어요. 그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만 돈이 4300만 원 들었어요. 그걸 제가 다 냈어요.”

암과 투병하면서, 돈 수천만 원을 쓰면서, 아내의 부르튼 뒤꿈치를 보면서 견뎌낸 재판. 그 끝은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송비용까지 청구됐다.

이런 식이면 국가라는 거대한 상대에게 피해를 입은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재판에 뛰어들 수 있겠어요. 피해 구제를 봉쇄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익소송에도 패소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에요. 이 문제에 앞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김종익 씨가 “타인이 저를 바라보듯 ‘불법 사찰 사건 피해자’로만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며 미소 짓는 모습 ⓒ셜록

총리실의 증거인멸 지시 등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분노가 생을 망치게 두지 말라‘고. 불법사찰을 당했던 2008년으로부터 15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김종익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지켜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은, 제 개인의 불운일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권력의 부정을 증언하는 역사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사건 속에서 제 나름대로 성찰과 배움을 얻었어요. 권력에 의해 개인이 비참하게 휘둘렸지만 인간에 대한 제 믿음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장진수 전 주무관, 당시 변호인이었던 최강욱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죽음을 막아준 지인들, 저를 압박 수사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좌천된 당시 동작경찰서 A 경위에게 감사합니다. 이 마음으로 저는 앞으로 제 삶을 낭비하지 않고 사회에 이바지하며 살고 싶습니다.”

총리실과 이명박 정권을 향한 분노는 김종익을 삼키지 못했다. ‘인간을 믿는다’는 김종익의 목소리는 더는 떨리지 않았다.

 

주보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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