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약속한 시각, 그가 병원으로 실려 갔다. 빵을 입에 욱여넣은 게 명치에 걸리는 듯했다. 끼니를 때운 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조창익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은 단식 중이었다. 단식 22일째인 2018년 8월 6일, 조 선생님은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던 중 가슴을 움켜쥐고 서울 녹색병원으로 실려 갔다. 여름의 끝자락, 그때 기온은 33도였다.
올해로 만 59세. 정년이 가까운 나이에 조 선생님이 교단이 아닌 갈바닥에 서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교사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벼랑 끝에 자발적으로 섰다. 그가 병원에 실려 가고, 텅 빈 자리를 소금통과 얼음물이 대신했다. 22일간 그의 몸으로 유일하게 들어간 것이다. 그를 다시 만났 것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조 선생님은 간단한 조치만 받고, 다시 청와대 앞 농성장으로 돌아왔다.
조 선생님의 단식은
처음이 아니다
1989년 7월, 노태우 정부가 법외노조였던 전교조 소속 교원 1527명을 파면, 해임하면서 서른 살 청년의 조 선생님은 동료 교사 600여 명과 함께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어용이나 다름없었던 대한교육연합회(대한교련) 해체를 위해 곡기를 끊고 싸웠다.
두 번째 단식은 지난해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또 단식할 거라 예상 못 했다. 삭발도 삼보일배도 아무 효과 없자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조 선생님은 2017년 11월 1일,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 철회를 요구하는 단식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법외 노조 철회’를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왜 전교조가 법외노조 재판에서 계속 지는지’ 알게 됐다는 점이다. 박근혜 청와대가 재판에 직접 개입한 사실에 더해 양승태 사법부가 동조한 것이 확인됐다. 청와대와 사법부가 손을 맞잡고 ‘전교조 죽이기’에 나섰던 것이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비밀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이명박 때부터 ‘법외노조화’ 작업 시작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전교조 짓밟기’
작업에 나섰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마자 전교조는 제거 대상 1순위가 됐다. 정부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 배후세력으로 전교조를 지목했다. 마구잡이로 자르려 했다. 여러 해고자를 양산하면서 전교조 힘 빼기에 나선 것이다. 일제고사를 거부한 전교조 선생님 13명을 해고하고, 시국 선언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전임자 68명에 대해서는 해고, 정직, 감봉처분을 내렸다.
총대를 멘 사람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었다
2009년 2월 취임하면서 전교조를 ‘종북 좌파 세력’ 으로 규정했다.
“각 부문 대학에서 교수들이나 전교조까지 이제 나서서 시국 선언한다는데, (중략) 아직도 전교조 등 종북좌파 단체들이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의 허울 뒤에 숨어 활발히 움직이므로, 국가의 중심에 서서 일한다는 각오로 더욱 분발해 주기 바람.” – 2009년 6월 19일,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원세훈 원장 발언
박근혜 정부 ‘노조 아님’ 최후통첩
전교조 법외노조화 추진은
이명박 정부 때 시작돼
박근혜 정부에서 구체화됐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전부터 가감 없이 ‘전교조, 싫어’를 드러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때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고 전국적으로 퍼져 나갈 수 있다”면서 전교조를 ‘해충’으로 비유했다. 2012년,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전교조를 ‘학교 혼란의 주범’으로 몰았다.
“모든 사학을 전교조가 장악하게 되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반미를 외치고, 북한 집단 체조인 ‘아리랑’을 보며 탄성만 지를 것.”- 2005년 12월 1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
“이념교육, 시국선언, 민노당 불법 가입 등으로 전교조가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주범.” – 2012년 12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 후보 TV 토론회
박근혜 정부는 결국 칼을 빼 들었다. 2013년 9월 23일, ‘시정요구’라는 제목의 최후 통첩장을 전교조 사무실로 보냈다. ‘규약을 시정하지 않으면 노조로 보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을 한 달 안에 바꾸지 않으면, 해고자를 당장 내보내지 않으면 전교조를 법외노조화 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당시 전교조 6만 명 조합원 중 해직교사는 9명이었다.
근거로 내세운 건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 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노조가 설립 신고증을 받은 후에도 설립신고서를 반려할 사유가 생기면 정부는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외노조’ 통보를 해야 한다’. 사실 이 시행령은 적용사례가 없는 사문화된 것이었다. 전두환 군부 시절 노동자의 단결권을 제약하기 위해 관련 법을 만들었는데,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폐기됐다가 노태우 정권이 이를 대통령령으로 되살린 것이다.
사문화된 법령의
첫 적용대상이 전교조였다
2013년 10월 24일,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내렸다. 노동법학회를 비롯한 학계, 그리고 ILO(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한 국제 사회의 뜻을 거스르는 처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악법이라고 했던 법이었다. ILO와 국가인권위는 해고자의 조합원 가입을 막는 것은 잘못됐고, 노조 설립을 취소할 수 있는 시행령을 즉시 폐지하라고 권고했었다.
교원노조법, 일반노조법에도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헌법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공무원도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누릴 수 있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다. 유독 전교조만 콕 집어서 ‘한 놈 패기’식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만 문제 삼았다.
전교조 법적 지위 ‘7번’ 변경… 배후에 ‘김기춘’
2013년 10월 24일, 전교조는 곧장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소송을 걸었다. 전교조 사무실에 법외노조 통보문이 팩스로 오고 바로 제기했다. 동시에 효력 정지 또한 신청했다. 본안(법외노조통보처분 취소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시로 법외노조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뜻에서 제기한 소송이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전교조 손을 들어줬다. 효력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3주가량 법외노조였다가,
2013년 11월 13일 다시
법내노조로 돌아왔다
2013년 11월 21일, 고용노동부는 즉시 항고장을 제출했다. 예상가능한 반응이었다. 법외노조 통보 직후, 박근혜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교조 소속 선생님들을 일선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이 사실은 잘 드러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을 ‘長(장)’으로 표시한 고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 전교조 탄압 작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2014년 6월 15일 김영한 비망록 중 ‘전교조 탄압’ 내용>
장(長)
전교조 재판 – 6/19 재판 중요
(고용노동부가) 승소 시 강력한 집행
재판 집행 철저히 – YS 시절 잘못 교훈 삼아
2014년 6월 19일, 필연인지 우연인지 정말로 본안(법외노조통보처분 취소 소송) 1심 판결에서 전교조가 패소했다. 당시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서울행정법원이 본안에 대해 기각 판결을 하면서 다시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2014년 6월 23일, 전교조는 즉시 항소했고, 다시 서울고등법원에 효력정지 신청을 했다.
박근혜 정부 때 전교조 법적지위는 7번이나 바뀌었다
고용노동부와 전교조 간의 전교조 법적지위를 둘러싼 싸움이 지속한 결과였다. 법원이 전교조 손을 들어주면 고용노동부가 항고 혹은 항소를 하고, 반대로 법원이 고용노동부 손을 들어주면 전교조가 같은 대응을 하는 게 반복됐다. 이 상황은 전교조가 대법원에 본안에 대한 상고를 하고 4차 효력정지 신청을 한 2016년 2월 1일까지 계속됐다. 그사이 삭발, 삼보일배, 단식이 이어졌다.
김기춘 실장의 법외노조화 작전은 물밑에서 계속됐다. 법외노조 1심 판결을 두고 “긴 프로세스 끝에 얻은 성과”라는 표현을 쓰면서 “강력한 의지로 법 집행”하라고 지시했다. 쉽게 말해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박근혜 정부의 ‘장기적인 기획과 노력’ 끝에 얻어낸 성과라면서, 전교조 사무실을 비우게 하거나 6억 원의 지원금 뺏는 일을 몰래 뒤에서 꾸몄다.
2014. 7. 1. 김영한 비망록 – “전교조 본부 전임자 복귀 조치 우선적으로 단행 – 형사고발
2014. 7. 5. 김영한 비망록 – “자금 추적 요원 파견 필요”
2014. 8. 2. 김영한 비망록 – “전교조 미복귀자 징계 – 직무이행명령, 장관 직권면직 대 집행”
2014. 8. 9. 김영한 비망록 – “전교조 위원장 김정훈 – 교직 박탈”
2014. 9. 22. 김영한 비망록 – “전교조 가처분 인용 – 잘 노력해서 집행정지 취소토록 할 것”
‘전교조 재판’은 대법원에 ‘협상카드’였다
김기춘 실장 바람에
응답한 것은 사법부였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김 전 실장의 말을 모범생처럼 꼼꼼히 받아 적었다. ‘상고법원 추진’이라는 과업을 이루기 위해, 몰래 주판알을 만지며 양승태 사법부는 청와대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리려고 계획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을 조사한 사법부 특별조사단의 보고서와 추후에 공개된 문건에 의해 ‘재판 거래’ 작전이 드러났다.
2014년 9월 22일자 김영한 비망록에 등장하는 김 전 실장의 말 “전교조 가처분 인용 – 잘 노력해서 집행정치 취소토록 할 것”이 나온 직후 바로 움직였다. 그때부터 부지런히 법원행정처는 재판 거래 보고서를 작성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을 “사법부가 BH(청와대)에 대하여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가지고 있는 사건”이라 명명하고,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백분 활용하려 했다.
2014년 12월 13일, 임종헌 전 기조실장 지시로 정다주 전 심의관이 작성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151]’ 문건을 보면 주판알을 어떻게 굴렸는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효력정지 결정에 재항고한 후, 대법원이 이를 인용할지 말지 고민하던 시기에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재항고 인용/기각에 따른 BH(청와대)와 대법원 이해타산을 분석했다.
애초부터 법외노조 통보 사건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상고법원을 추진하기 위해 ‘어떤 선고가 대법원 입장에서 최선인지’ 분석했다. BH(청와대)가 사법 관련 최대 현안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재항고 기각은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에게 손해가 될 것이고, 재항고 인용은 양측에서 모두 이득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을
협상카드 쯤으로 여긴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법원행정처는 재판 일자까지 손보려 했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선고기일 이전에 결정하는 것이 대법원 이득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인용했다. 행정법원과 고등법원이 이미 법외노조통보 효력정지 집행정지 신청을 두 번이나 인용했음에도 대법원은 2015년 6월 2일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파기환송했다.
본안 재판에 대해서는
더 치밀하게 움직였다
재판부를 교체해 시간을 벌고자 했다. 곧 정기 인사 시기가 다가오니, 2차 효력정지 결정을 내린 민중기 재판장(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인사 때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다소 진보적인 판결을 많이 해온 민 판사가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선고하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국 법원 뜻대로 재판장이 교체됐고, 2016년 1월 21일 2심 본안에서 전교조는 패소했다.
‘전교조 재판’은 박근혜를 위한 조공이었다
다른 전교조 사건들 또한 사법부의 정부운영 협력사건으로 언급됐다.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과 ‘전교조 교사 빨치산 추모제 참석 사건’으로 명명된 ‘고 김형근 교사 사건’은 재판거래 대상으로 의심된다. “사법부가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노력해 왔다”며 두 사건이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사법부가 ‘전교조 사건’을
재판 거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드러났다
두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은 2009년 6월 18일, 전교조 선생님들이 이명박 정부를 향해 시국선언을 한 일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며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전교조도 그 시류에 동참했었다. “국정 쇄신, 언론·집회·인권 및 양심의 자유 보장, 경쟁만능 학교 정책 중단과 학교운영의 민주화 보장”을 외쳤다.
시국선언 직후 곧바로 전교조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 각 시·도 교육감에게 시국선언 참여 교사를 중징계할 것을 요구했다. 수사도 벌였다. 전교조 집행부를 체포했고, 전교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1차 시국선언의 정당성을 밝힌 2차 시국선언 이후, 정부의 탄압은 더욱 강해졌다. 해임 18명, 정직 45명 결정이 떨어지고, 검찰은 관련자들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법원의 결정은 끝내 전교조 선생님들을 처벌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대전지부 소속 교사 3명이 가장 먼저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는데,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1심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뒤집어졌다. 대법원은 “학교를 정치 공론장으로 변질시켜 학생들의 교육 환경에 영향을 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고 김형근 교사 사건’은 전북 임실군의 중학교 도덕 교사가 2005년 5월, 자신이 가르치는 중학생과 학부모 180여 명과 ‘남녘통일 애국열사 추모제’ 전야제에 참석한 일이다. 당시 김 선생님은 학생들과 6·15 공동선언을 외우고, ‘서울에서 평양까지’ 노래를 불렀다. 통일 교육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김 선생님은 검찰에 의해 빨갱이가 됐다. 검찰은 김 선생님을 구속기소했다.
1심, 2심에서는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빨치산 추모제의 개최나 참석을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한 사례가 거의 없고, 이를 활용해 선전 활동을 벌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야제가 빨치산 활동을 미화하고 찬양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결을 했다. 김 선생님은 결국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
사법부는
두 사건을 박근혜 정부에
조공처럼 바쳤다
“그동안 사법부가 VIP(박근혜 당시 대통령)와 BH(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왔다”며 두 사건을 그 사례로 들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로부터 상고법원 도입에 관한 협조를 얻기 위해 재판을 협상 카드로 삼았다는 의혹은 점차 사실에 가까운 얘기가 됐다.
<전교조 법외노조 관련 일지>
2013. 10. 24. 고용노동부 장관, 전교조에 대하여 법외노조통보처분 [첫번째 법외노조]
2013. 10. 24. 전교조, 법외노조통보처분 취소의 소 제기 및 효력정지 신청
2013. 11. 13. 서울행정법원, 법외노조통보처분 효력정지결정 [첫번째 법내노조 지위 회복]
2014. 6. 19. 서울행정법원, 법외노조통보처분 취소청구 기각 판결 [두번째 법외노조]
2014. 9. 19. 서울고법, 법외노조통보처분 효력정지결정 [두번째 법내노조 지위 회복]
2014. 9. 22. 고용노동부, 효력정지결정에 대하여 재항고장 제출
2015. 5. 28. 헌법재판소, 교원노조법 제2조 합헌 결정, 노조법시행령 제9조 제2항 각하 결정
2015. 6. 2. 대법원, 고용노동부의 효력정지결정 항고신청 인용 [세번째 법외노조]
2015. 11. 16 서울고법, 법외노조통보처분 효력정지결정 [세번째 법내노조 지위 회복]
2016. 1. 21. 서울고법, 고용노동부의 취소청구 항소기각 판결 [네번째 법외노조]
‘법외노조 취소’ 권고 무시하는 정부
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전교조의 기대는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신정부 들어서면 우선적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운영도 맥을 함께 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ILO 협약 제87호를 준수하면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고용노동부장관 자문기구가
‘법외노조 취소’를 권고하자
더욱 기대감은 부풀었다
2018년 8월 1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그간의 노동 적폐 중 하나의 사례로 전교조를 예로 들면서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한 것은 부당하다”며 고용노동부에 “즉시 고용부장관은 직권으로 취소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법외노조 통보 과정에서 윗선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인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을 삭제하라고도 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의 ‘법외노조 취소 권고’와 관계없이 정부는 현재까지 요지부동이다. 2018년 6월 19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조 선생님과 만나 “청와대와도 (직권 취소를) 협의하여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강경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직권취소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직권취소 가능성을 잠재웠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법외노조 관련 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재판 중이기 때문에 직권취소 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논리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국정역사교과서’, ‘기간제 단원고 교사 순직’ 사안은 모두 재판 중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이 두 사안을 해결했다. 국정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폐지 결정을, 기간제 단원고 교사에 대해서는 순직 처리를 결정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도 ‘직권 취소’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학교에서 더 이상 ‘사법부 독립’ 가르칠 수 없다”
“교사의 생애주기는 교과서가 되어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몸이 교과서가 되어야 해요. 책의 내용과 하나가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교과서에서는 ‘정의’를 외치는데, 교사가 정의롭지 않다면 그게 교육일까요?”
인터뷰하는 동안 조창익 선생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중간 중간에 이어졌다. 시야가 흐려졌다는 말에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하지만 조 선생님은 인터뷰를 빨리 끝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교사들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운동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교육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교단 밖 교육을 실현 중이라고 했다.
“교단의 변화는 세상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거시적인 변화가 없으면 교사 개인이 열정만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없어요. 사회가 변해야 교육이 변합니다.”
반면 사법부의
태도는 어떠한가
조 선생님의 말과 완전히 배치된다. 법원은 검찰이 청구하는 사법농단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영장을 줄줄이 기각했다. 법원은 “자료가 남아있을 개연성이 희박하다”, “임의제출을 선행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영장 청구를 쳐냈다. 사법부 스스로 사법정의를 걷어찬 것이다. 선생님들은 좌절했다. 더 이상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을 가르칠 자신이 없어졌다.
“제 정년퇴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꼭 교단에 다시 서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해줄 얘기가 많아요. 사회 부조리에 대해 내가 싸워온 얘기를 해줄 겁니다.”
조 선생님은 2016년 전교조 법외노조 저지투쟁으로 다시 해직된 상태다. 사회 문제 중심에 있지만, 정작 학생들에게 자신의 담당 교과목인 ‘사회’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조 선생님이 교단서 서고, 전교조의 법외노조 5년을 종식시키는 빠른 길은 있다. 청와대가 직권으로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