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충북이다. 지난달 25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충북교육청을 상대로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공개 행정소송(이하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에 이어 세 번째 행정소송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은 5년째 교육청을 상대로 스쿨미투 정보 공개를 위한 소송전을 계속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4월 서울행정법원은 정치하는엄마들이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가해교사 이름과 감사보고서를 제외한 스쿨미투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충북교육청은 앞선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학교명을 비공개 처리했고, 이에 정치하는엄마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요구한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는 ▲스쿨미투 발생 학교명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가해교사 직위해제 여부 ▲징계 ▲피해자 사과 ▲학교 측 재발방지 대책 등 6가지다.
“스쿨미투 학생 당사자·학부모·지역 사회도 가해교사가 어떤 징계와 처벌을 받았는지, 교단을 떠났는지 등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긴 후에도 몇몇 교육청은 법원의 판단도 무시한 채 학교명을 포함한 주요 정보를 비공개, 부존재 처리했습니다. 한심하게도 그 교육청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곳 충북교육청입니다.”(계희수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 활동가 2023. 5. 2. 충북교육청 행정소송 기자회견)
정치하는엄마들은 서울시교육청과의 소송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6개 교육청(경기·경남·대구·대전·전남·충북)은 스쿨미투 학교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 ‘법’ 뒤에 숨었다. 민사소송의 판결 효력이 해당 소송 내용에만 적용된다는 ‘기판력’을 이용한 것이다.
단,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3월 8일 정치하는엄마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뒤 학교명이 적혀 있는 자료를 제출했다. 이로써 스쿨미투 학교명 비공개 교육청은 5곳(경남·대구·대전·전남·충북)이 됐다.
“교육기관이라는 곳이 민사소송상 기판력을 악용해도 되는지 참담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은 피고(충북교육청)를 상대로 매년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원고(정치하는엄마들)는 개인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공익을 위한 사명으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피고는 세금을 낭비하면서 소송에 응하고 있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불이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입니다.”(정치하는엄마들, 충북교육청 상대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의 소’ 소장 중 2023. 4. 25.)
정치하는엄마들이 만 4년 동안 서울시교육청, 경기도교육청 그리고 충북교육청에 행정소송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청들이 스쿨미투 처리현황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청이 끝내 숨기고 있는 그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소송밖에 없다.
“2018년 스쿨미투가 일어났는데 2019년 3월 가해교사가 돌아오고 있다는 학생들의 고발이 있었어요. 서울시 교육청에 학교 성폭력 고발이 있던 학교들이 어떤 후속조치를 했는지, 처리 결과가 어땠는지 항목을 만들어서 물어봤어요.
그런데 이미 (스쿨미투 사실이) 공론화된 학교들인데도 (교육청이 공개한) 정보가 너무 부실한 거예요. 피해자-가해자 분리 여부나 징계 결과, 감사 보고서 등을 다 제공하지 않으면서 교사의 개인정보 때문에 못 준다고. 우리가 가해교사의 실명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처리를 어떻게 했나 행정 정보를 물어보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희가 2019년부터 (법적으로) 다투기 시작한 거죠.”(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3. 3. 18.)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요청에, 교육청들은 ‘정보 부존재’와 ‘빈칸’이 수두룩한 자료를 내놨다. 특히 스쿨미투 발생 ‘학교명’을 아직도 감추고 있는 교육청이 5곳(충북·경남·대구·대전·전남). 이렇게 ‘빈칸’이 많은 자료로는 시민사회의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학생이 ‘아, 이건 개인정보와 연관 있고, 이건 또 제 학생 업무에 차질이 있기 때문에 제출할 수 없습니다, 알아서 잘했으니까 그렇게 아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시민들은 공무원이 숙제했나 안 했나 검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교육청)은 검사는 안 받고, 그냥 훌륭하게 잘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만 합니다.”(정치하는엄마들 법률대리인 류하경 변호사 인터뷰 2023. 3. 6.)
정보공개를 하면서 얻는 공익은 명확하다. 학교에서 피해 학생이 신고한 사건에 대해 교육청과 학교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과정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공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학생에게 학교가) 과연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인지 확인하는 것부터 양육자인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학교 성폭력에 대한 처리 현황을 공개하라고 한 것도 그런 활동의 일환입니다.”(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3. 3. 18.)
학교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사회의 감시 속에서 후속 처리를 분명하게 한다면 오히려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교육기관과 학생, 학부모가 신뢰를 쌓는 길이다.
“교육청에서 (스쿨미투) 학교명을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학교를 감시하는 것도 교육청의 존재 이유 중 하나잖아요. 학교가 잘못하고 있으니, 교육청은 어떻게 감시했고, 어떤 조치를 했다고 투명하게 보여주는 게 오히려 교육기관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데 학교를 감싸고 들어간다면 오히려 수상하죠.”(서울 광남중 스쿨미투 제보자 박민지, 가명, 2023. 3. 26. 인터뷰)
학교명 등 스쿨미투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교육청의 논리는 5년 동안 한결같았다.
‘가해교사의 개인정보, 사생활 비밀 및 자유의 침해, 인사관리 업무 전반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지난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행정소송 과정에서 펼친 주장이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가해교사의 실명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어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과정을 공개하라는 것일 뿐. 스쿨미투 정보공개를 통해 가해교사가 특정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이미 법원은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
“사건 정보 중 감사결과 보고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가해교사의 성명 부분은 제외)은, ‘피해자·가해자 분리 여부’, ‘가해교사 직위해제 여부’, ‘교육청 징계요구 내용 및 처리 결과’로서 해당 사건에 대한 객관적 조치 결과만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고, 언론 기사 등에 이미 공개된 정보와 결합하여 보더라도 불특정 다수가 행위를 한 교사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서울고등법원 판결문, 2020누38166)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어 그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도 교육청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스쿨미투를 막았던 것과 똑같은 논리입니다. 피해자 특정이 문제면 (정보를 아예 감출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죠. 교장, 교육감, 교육부의 문제죠. 우리 동네에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건 민감하면서, 학교에서 성희롱, 성폭력을 저지른 교사가 그대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는 왜 관대한지 이해할 수 없어요. (교육청도)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정보공개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든 그건 국민의 마음이죠.”(김성미경 한국여성인권플러스 대표, 2023. 3. 8. 인터뷰)
앞으로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을 막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찾는 데도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 공개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스쿨미투 학교명을 공개하면 정말 수많은 학교가 반대하겠죠. 하지만 저는 그만큼 공개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데이터가 기반돼야 정책 대안을 연구할 수 있어요. (2차가해 우려 문제의) 해결 방법은 피해자 보호 강화에 중심을 두면 됩니다. 2차가해 우려 때문에 (스쿨미투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건 무책임한 거예요.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명 공개하고, 제대로 조치 못한 학교들 다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스쿨미투 활동가 한소윤, 가명, 2023. 3. 27. 인터뷰)
지난해 10월 민형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광산구을)은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주호 당시 후보자에게 ‘성폭력 공시제’를 시행하겠느냐고 물었다. 성폭력 공시제는 초·중등학교의 공시대상 정보에 학교별 성희롱·성폭력 발생 및 처리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는 제도를 말한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답변. 이 장관이 취임하고 6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12월 민형배 의원은 성폭력 공시제를 포함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까지 나왔는데, 교육부의 입장은 묘하게 바뀌었다. ‘적극 검토’는 하겠지만, ‘권한은 없다’는 소리.
“(성폭력 공시제의) 취지가 좋으니까 적극 검토하겠지만, 이게 저희가 하고 싶다고 그냥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민형배) 의원실과 계속 협력하고, 여러 교육청의 의견도 듣고, 전문가 의견도 듣는 것입니다.”(교육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 담당자, 2023. 4. 21. 인터뷰)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성폭력 공시제 시행을 위해 국회의 논의와 의결이 중요한 건 맞지만, 교육부도 법안 발의가 가능한 기관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교육부도 입법할 수 있습니다. 법안을 낼 수 있는 엄연한 정부 기관인데, 왜 학교 내 성폭력 피해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요?”(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3. 4. 21. 인터뷰)
성폭력 공시제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매년 스쿨미투 처리현황 정보를 얻기 위한 소송전이 반복돼야 한다. 시민이 직접 소송하지 않아도, 정보공개 청구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누구나 클릭 몇 번으로 전국 어느 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은 어떻게 처리됐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당당하게 신고할 수 있고, 가해자들이 숨을 공간이 사라진다.
“지난 5년간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은폐 노력으로 스쿨미투 가해교사는 웃었고, 피해학생은 울었으며, 학교성폭력 근절은커녕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도교육청들은 일일이 소송을 걸어보란 식으로 소위 법꾸라지(법+미꾸라지) 행태를 보이고 있다.”(정치하는엄마들, 스쿨미투 공시제도 법제화 의견서 중 2023. 2. 14.)
교육 당국이 스쿨미투 처리 현황을 꼭꼭 숨기고 있는 동안 피해자들은 2차가해로 고통받았다.
이소영(가명) 충북여중 스쿨미투 제보자는 학교에서 정확한 스쿨미투 현황을 공개하지 않아 2차가해에 시달렸다. ‘가짜 미투’를 했다는, 거짓말쟁이라는 주변 반응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이소영 씨는 가해교사를 상대로 한 민형사 재판에 약 4년간 필사적으로 임했다. 자신의 피해를 스스로 증명했던 그 시간 동안 고통은 이어졌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대처를 했다는 것까지, 학교에서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폭력 사건 현황) 공시가 안 되면 (스쿨미투가 가짜라는) 헛소문이 돌아요. 저도 그랬고요.”(충북여중 스쿨미투 제보자 이소영, 가명, 2023. 3. 13. 인터뷰)
스쿨미투가 발생한 2018년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거짓말쟁이’라는 누명을 쓴 피해자가 이소영 씨 한 명일까. 교육부와 교육청은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모두를 위해 스쿨미투 처리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해자는 은폐되고, 피해자는 고립되는 현실. 과연 누구를 위한 비밀인가.
스쿨미투가 5년째 졸업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당신들 때문이다. #스쿨미투는_졸업하지_못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