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대를 챙기고 등산복을 입으니 거울 속 모습이 영락없이 관광객이다. 두꺼운 안경과 근육질 아닌 몸매까지, 형사답지(?) 않은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조직폭력배 소굴을 덮치는 일은 아니어도 이 정도 위장은 필수다. 실종된 지 2년째 되는 남자가 섬에서 편지를 보내며 신신당부 했다.
“사람 찾으러 왔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섬에 놀러온 사람처럼 위장하고 오셔야 저를 구출할 수 있습니다.”
구로경찰서 소속으로만 1500여 건의 실종 및 사람 찾기 사건을 해결한 서제공 실종수사팀장에게 그 편지는 무겁게 다가왔다. ‘이거 사건 되겠다’ 하는 경력 25년 차 형사만의 촉? 그런 거 아니다.
“연세 많은 어머니께서 그 편지를 들고 왔는데, 어떻게 ‘이거 별거 아니다’라고 덮습니까. 편지 내용이 진짠지 아닌지를 파악해 보려면 당연히 현장에 가봐야죠.”
서 팀장은 곧바로 서울에서 전남 신안으로 향했다. 가출인지 단순 미귀가인지, 정말로 실종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그렇게 하는 게 순서이자 순리였다.
천일염으로 유명한 전남 신의도에 도착한 첫 날, 서 팀장은 편지 발신자를 바로 찾아가지 않았다. 관광객처럼 섬을 돌며 염전과 노동자를 살피고, 식당에서 주민들에게 말을 걸었다. 2014년 1월 23일 밤은 섬의 한 여관에서 보냈다.
“오랜 시간 반복된 문화였는지, 섬 사람 누구도 발달장애인의 중한 노동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없더라구요.”
서 팀장은 편지 보낸 남자의 집을 다음 날 찾아갔다. 한 남자가 사람이 살 만한 집이 아닌, 창고처럼 보이는 난방도 안 되는 건물에서 나왔다. 한겨울에 여름용 얇은 트레이닝 바지와 구멍 뚫린 양말, 슬리퍼를 신고서 말이다. “구출해달라”고 편지를 보낸 염전노예 김주찬(가명, 1972년생)이었다.(관련기사 : <염전노예를 ‘삼촌’이라 불렀던 청년의 오래된 비밀>)
서 팀장은 신원 확인 후 김 씨에게 “섬 밖으로 나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남자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도 염전노예 대탈출이 시작되는 순간, 염전주인의 아내가 서 팀장을 막았다.
“일꾼을 왜 데리고 나가요? 가만히 계세요. 남편에게 물어봐야 하니까.”
이 섬에서 ‘일꾼’은 이동의 자유가 없나? 아내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더니, 서 팀장을 바꿔줬다. 서 팀장은 김주찬 씨의 자유의지를 설명했다. 이곳에선 법과 상식보다 섬의 관행이 우선인 듯했다.
서 팀장은 “김주찬 씨가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하는데, 이걸 막으면 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제서야 염전주인 아내는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을 터줬다. 이제 배 타고 전남 목포에 닿으면 1차 상황 종료인데, 이상한 일이 터졌다.
이번엔 매표소 직원이 길을 막았다.
“매표소 직원이 김주찬 씨에게는 표를 안 주는 거예요. 염전주인 없이 일꾼이 배 타고 나가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더라구요. 제가 경찰 신분증 제시하고 ‘우리 길 막으면 문제 될 수 있다’고 말했죠. 그래도 직원이 염전주인에게 전화를 하더라구요.’
경찰마저 이렇게 이중삼중의 검열(?)을 거쳐야 했으니, 그 섬에서 염전노예의 자력 탈출은 그야말로 불가능했다. 여러 염전노예의 증언대로 그 섬의 감시망은 촘촘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프로젝트 ‘서칭 포 솔트맨 : 사라진 염전노예를 찾아서’ 9화 기사에서 보도한 대로, 신의도에선 신의파출소 소속 경찰이 앞장서 염전노예의 탈출을 막기도 했다. 염전주인-경찰-매표소 직원은 한 편이었다.(관련기사 : <염전노예를 잡아라.. 주인과 경찰의 ‘토끼몰이’ 합동작전>)
김주찬 씨 탈출로 세상에 알려진 2014년 염전노예 사건. 당시 섬을 나온 염전노동자는 약 400명에 이른다. 대규모 노예노동, 인권 침해, 착취, 국가와 신의도 관할 행정기관인 신안군은 어떤 책임이 있을까?
김주찬 씨를 비롯해 염전노예 피해를 겪은 8명은 대한민국 정부, 전남 신안군, 전남 완도군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2015년 11월 제기했다. 이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대법원은 국민의 신체,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명이고, 소속된 공무원의 직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중략) 신안군과 완도군 내 염전 종사자들이 어떤한 경로로 섬에 유입되었고,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이미 수십 차례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왔습니다. 신안군과 완도군은 더 이상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특별한 계획을 수립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안군과 완도군 내 복지 담당 공무원들은 수많은 장애인과 노숙인들이 붙잡혀 인간 이하의 삶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과 신안군, 완도군은 원고들에게 3000만 원씩 위자료를 지급해야 합니다.”
금전 배상 목적만이 아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반성과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공익 성격의 소송이었다. 이 소송은 결론은? 신안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소송에 참여한 염전노예 8명 중, 끝까지 다툰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최초의 염전노예 피해 신고자인 김주찬 씨 역시 패소했다. 피고 완도군은 염전노예 피해자 1명에 대해, 피고 대한민국은 염전노예 피해자 4명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가장 많은 염전노예 피해자가 발생한 전남 신안군만 아무런 배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냐고?
대한민국의 손해배상 책임 판결은 경찰공무원의 위법행위가 주요 근거였다. 염전노예 피해자들이 신의파출소에 신고하고 탈출 요청을 했음에도 경찰이 이를 묵살한 건 명백한 위법행위이니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완도군의 경우는 소속 사회복지공무원이 염전노예 피해자 박수현(가명)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인권 침해 등 피해를 인지하고도 수사기관 등에 신고하지 않은 책임이 인정됐다.
신안군에 대해서는 ▲염전노예 피해자에게 승선권을 팔지 않은 선착장 관리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신의면사무소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자기 의무를 다 했는지 등이 쟁점이었다.
우선 1심 재판부는 “염전근로자에게 표를 판매하지 않은 매표소의 관리 의무가 신안군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신의면사무소 복지담당공무원은 사건 당시 1명이었는데 관리 복지 대상자는 약 1200명이었다”며 “(일부 염전노예 피해자에 대한) 복지서비스 누락 사실만으로 복지담당공무원의 부작위가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신안군은 당시 재판에서 “복지담당공무원은 (염전) 근로자들의 근로계약 체결 여부와 강제노동의 실태에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신안군은 ‘복지담당을 비롯한 소속 공무원들은 지척에서 벌어진 염전노예의 존재나 실태를 몰랐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여 신안군의 손을 들어줬다.
서제공 형사는 섬 방문 하루이틀 만에 노예제 관행을 감지했는데, 지척의 공무원들이 염전노예 실태를 전혀 몰랐다니. 신안군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외부인은 또 있다.
바로 신의면보건소에서 2007년부터 공중보건의로 근무했던 의사 조○○이다. 그가 2018년 2심 재판부에 낸 진술서는 충격적이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섬에서, 이른바 노예제도는 일상이었습니다. 막 걸음마를 뗀 아이부터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까지, 가장 직위가 높던 면장부터 말단 청소부원까지 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도 모를 수 없는 이미 일상화 된 관행이었습니다.”
의사 조○○은 신의면장 등에게 노예제 문제를 지적했던 일화도 공개했다.
“(공중보건의) 부임 후 얼마 안 되어, 기관장 모임이 있었습니다. 보건지소장 자격으로 면장, 파출소장, 우체국장 등 내로라 하는 지역 유지들과 회식을 가졌습니다. 당시 저는 처음 접한 노예제에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에 파출소장을 비롯한 기관장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관행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 보다 보면 점차 이해될 것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신의면 공무원들은 노예제를 전혀 몰랐다? 공중보건의 출신 조○○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경찰뿐 아니라, 그 섬을 다녀간 모든 사람들 관공서, 교사, 의료인 등 사회 지도층 또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무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문헌적인 법적 요건이 필요하다면 증언하겠습니다. 당시 섬에 있었던 누구도 이 악습을 몰랐던 이는 없습니다. 관공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신안군은 완승했고, 염전노예 피해자에게 손해배상도 하지 않았다. 1심에서 패한 염전노예 네 명은 소송을 포기했다. 항소한 이들도 피고에서 신안군을 뺐다. 핵심 이유는 돈이었다.
염전노예 최초 신고자 김주찬 씨는 지난 19일 셜록과의 통화에서 아픈 기억을 들려줬다.
“1심에서 이긴 신안군은 곧바로 자기들 소송비용을 우리에게 요구했습니다. 기분 더러웠죠. 염전에서 노예로 살 땐 그 지역 공무원들 다 모른 척하더니, 어떻게 자기들 변호사 비용까지 우리한테 청구할 수가 있어요?”
신안군은 2018년 4월, 변호사비용 등 소송비용 697만 2000원을 염전노예 7명(나머지 1명은 완도군 상대로만 소송)이 나눠서 물어내라고 청구했다. 소송에 참여한 염전노예 피해자는 물론, 장애인단체 등 시민사회단체는 거세게 항의했다.
원곡법률사무소의 최정규 변호사 등 원고 대리인단은 재판부에 낸 의견서를 통해, 해당 소송은 공익 성격의 국가배상청구소송이란 점을 강조했다.
“신의면과 목포에는 수많은 경찰공무원과 근로감독관, 사회복지공무원이 있습니다. 이들은 염전노예 사건을 밝혀내고 해결하는 데에 아무런 역할을 못했습니다. 공무원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 지역의 공무원들에 대해 법적인 책임이 추궁되지 않는다면 신의도에서 제2, 제3의 염전노예 사건이 또 발생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피신청인들(염전노예 피해자)에게 패소의 책임을 물어 (신안군 측) 변호사 보수 전액을 상환하라고 명하는 것은 현저히 공정이나 형평의 이념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신안군은 “원고들의 경제적 사회적 사정을 고려해 소송비용 추심포기 여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결국 염전노예 1인당 부담해야 하는 ‘신안군 소송비용’은 22만 9660원으로 조정됐다.
언뜻 신안군이 대폭 양보한 듯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염전노예 피해자 네 명은 1심 패소 후 소송비용 청구에 겁먹고 항소를 포기했다. 항소한 다른 염전노예들도 피고에서 신안군을 제외했다.
그 섬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한 의사는 노예제도의 실상을 “막 걸음마를 뗀 아이부터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까지, 가장 직위가 높던 면장부터 말단 청소부원까지 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도 모를 수 없는 이미 일상화 된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안군은 “우린 몰랐다”고 잡아뗐다. 끝내 신안군이 이겼고, 이들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았다. 요즘 신안군은 “천사의 섬”으로 자신들을 홍보한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염전노예 피해자를 대리했던 최정규 변호사는 “돈 때문에 소송을 포기한 염전노예 사례는 지금도 가슴 아픈 일”이라며 “공익소송에서 소송비 패소자 부담주의에 대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