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 대리가 6년간 일하고 받은 ’50억 퇴직금’. 누가 봐도 수상한 이 돈을, 1심 법원은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아직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 국민들이 많다. 그 돈은 아들이 아니라, 전직 검사이자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를 향한 ‘우회 뇌물’일 거라는 의심.
여기 또 하나의 ‘우회 뇌물’ 사건이 있다. 감독기관 공직자에게 직접 뇌물을 주는 대신, 보험회사에 다니던 그의 부인을 ‘보험왕’으로 만들어주는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이 기발하고 특별한 뇌물 사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사무장병원’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된다. 비의료인이, 면허가 있는 의료인이나 의료법인 등의 명의를 빌려 개설·운영하는 ‘불법’ 개설기관. 우리는 그것을 흔히 사무장병원이라 부른다.
건강보험 급여 약 52억 원을 부정하게 받아낸 한 사무장병원은 유착 상대부터 남달랐다. 병원 조사와 감사 무마를 목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직원에게 접근했다. 이들이 건보공단 직원에게 건넨 현금만 약 2650만 원에 이른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공직자에게 접근한 병원은 또 있다. 건강보험 급여 약 28억 원을 부당하게 타먹은 또 다른 사무장병원. 법인 이사장은 자신이 운영 중인 병원의 현지조사 무마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직원에게 400만 원 상당의 골프접대를 했다. 또 법인 이름으로 CEO 보험에 가입해, 그 직원의 부인을 ‘보험왕’으로도 만들어줬다.
곳간을 지키라 했더니 오히려 도둑을 도운 꼴. 사무장병원을 단속해야 하는 건보공단과 심평원 직원이 그들의 ‘뒤’를 봐줬다. 사무장병원의 뇌물 앞에 공직자의 양심도 무너졌다.
이들의 비호 아래 사무장병원들은 건강보험 급여를 제 주머니에 있는 쌈짓돈처럼 빼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정리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들이 부당하게 받아간 수십억 원의 건강보험 급여는 어떻게 됐는지 추적했다.
진실탐사그룹셜록은 사무장병원이 부당하게 받아간 수십억 원의 건강보험 급여는 어떻게 됐는지 추적했다 ⓒ셜록
임상병리사 출신 신정환(가명) 씨는 2010년 사무장병원을 운영할 목적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A 씨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병원을 운영해 수익금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하려고 하니 대표 명의를 좀 빌려주세요.”
신 씨는 2010년 10월 12일 A 씨의 명의를 빌려 그를 대표로 하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했다. 이름은 사단법인 드림나눔봉사회. 실제로는 ‘나눔’도 없고 ‘봉사’도 없이, 오직 이익을 남기겠다는 신 씨의 꿈(‘드림’)만 있었지만, 이름만은 거창했다.
개설 당시 주사무소는 광주 서구에 뒀다. 등기부등본상 이 비영리법인의 목적에는 지역사회에 필요한 의료기관, 방역시설 설치 및 봉사활동 등이 포함됐다.
사단법인 드림나눔봉사회는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사무장병원 개념의 의료기관 4곳을 운영했다. ▲광주 서구에 위치한 명문의원 ▲명문의원 종합검진센터 ▲광주 북구에 위치한 명문한의원 ▲한국의원(분사무소)이다. 신 씨는 2012년 5월 사단법인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신 씨가 ‘불법’ 사무장병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건보공단 직원 김준호(가명) 씨. 그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까지 건보공단 광주지역본부 광주서부지사에서 근무했다. 김 씨는 요양급여비 지급 등 업무를 담당했다.
불법 의료기관 운영자와 감독기관 직원. 누구보다 거리를 둬야 할 이 둘은 오히려 더 가깝게 지냈다. 신 씨는 2013년 9월 18일 한국마사회 광주지사에서 은밀하게 김 씨를 만나 현금 600만 원을 건넸다. 용건 없는 돈거래는 있을 수 없는 법. 신 씨는 청탁도 빼먹지 않았다.
“건보공단에서 실시하는 명문의원에 대한 현지점검을 담당 공무원을 통해 무마해주세요.”
부적절한 만남은 또 이어졌다. 신 씨는 2014년 2월 광주 서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현금 1000만 원을 건넸다. 각 200만 원씩 들어있는 봉투 다섯 개. 보건복지부 직원 다섯 명에게 인사할 용도였다. 이번에는 보건복지부 감사를 무마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런 식으로 드림나눔봉사회가 건보공단 직원 김 씨에게 건넨 돈은 총 2650만 원이다.
“피고인 신정환이 2014년 8월 돈을 세고 있는 모습을 보고 피고인 신정환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피고인 신정환이 ‘(건보공단 직원 김준호가) 귀찮게 해서 얼른 줘 불라고요’라고 말했다.” (광주지방법원 2016고합399 판결문, 명문의원 간호조무사의 검찰 조사 진술 중)
드림나눔봉사회가 감독기관인 건보공단 직원과 결탁하는 방식으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사무장병원 네 곳을 운영하며 건보공단으로부터 빼낸 요양급여비는 약 5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의 ‘환장’ 케미도 끝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광주지방법원은 2017년 2월 10일 불법 요양병원 개설 및 뇌물공여 혐의를 받은 피고인 신정환에게 징역 4년에 추징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건보공단 직원 김준호에 대해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0만 원과 추징금 2450만 원을 선고했다. 김 씨의 혐의는 뇌물수수 및 알선뇌물수수. 두 사람은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 했던가. 뇌물에 양심을 판 직원은 건보공단에만 있지 않았다. 사무장병원이 청구한 요양급여비를 심사해야 할 심평원 직원도 뇌물 사건에 등장한다.
사무장병원 운영자 이정식(가명) 씨는 2016년 3월 한의사 배용구(가명) 씨의 명의를 빌려 광주 북구에 ○○○○요양병원을 개설했다. 한의사 배 씨는 이 씨에게 명의를 빌려주는 대신 요양병원 원장으로 근무하며 매월 850만 원의 급여를 지급받기로 약속했다.
당시 이 씨는 전남 목포시에 주사무소를 둔 ○○의료재단 이사장이었는데, 배 씨는 2010년 7월부터 2013년 4월까지 해당 의료재단 산하 ○○요양병원에서 봉직의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 씨는 2016년 4월 7일부터 같은 해 9월 28일까지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해, 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및 의료급여 약 19억 원을 부정하게 받아냈다.
이 씨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씨는 심평원 직원 한형민(가명)에게 접근했다. 한 씨는 심평원 광주지원에 근무하며 요양기관의 인력, 시설 장비 등 현황관리를 담당했다.
유착의 연결고리는 ‘골프’였다. 이 씨는 2015년 8월 광주 광산구에 있는 골프장에서 시가 3억 원 상당의 VIP 회원권을 한 씨에게 빌려줬다. VIP 할인 혜택이 한 씨에게 넘어갔다. 덕분에 한 씨는 약 1년 동안 59회에 걸쳐 골프장을 이용하고, 합계 약 400만 원을 할인받았다.
접대의 목적은 분명했다. 이 씨가 이사장으로 있던 ○○의료재단 산하 ○○노인전문병원 현지조사에 대한 편의를 봐달라는 것. VIP 혜택의 효과는 확실했다. 한 씨는 심평원 내부 정보까지 빼돌렸다. 2015년 9월 23일, 한 씨는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심평원 담당 직원) B 씨에게 현지조사를 안 하는 방향으로 하라고 부탁하였고, 현지조사 여부는 2015년 10월 6일 정도에 결정되며, 어찌될지 모르니 서류 정리를 잘해놓으십쇼.”
결국 이 씨의 소망대로 ○○노인전문병원에 대한 심평원의 현지조사는 무마됐다. 이 씨는 그 대가를 확실히 챙겨줬다. 이번엔 우회 노선을 택했다. 한 씨에게 직접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 씨의 아내 C 씨를 ‘보험왕’으로 만들어주는 작전이었다. C 씨는 보험설계사였다.
이 씨는 2015년 10월 15일 C 씨를 통해 월납입 보험료 약 1000만 원가량의 CEO 보험을 들어줬다. CEO 보험은 의료법인을 가입자로 해 5년간 납부하는 조건으로, 재단 이사장인 이 씨가 사망하는 경우 재단이 10억 원의 보험금을 수령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대형 계약’ 덕에 C 씨는 보험회사로부터 보험판매 수당으로 약 170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우회 뇌물’로 모두를 속일 수 있을 거라는 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은 2018년 1월 11일 불법 요양병원 개설 및 운영 혐의를 받는 이정식 씨에게 징역 5년과 추징금 1000만 원을, 한의사 배용구 씨에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과거에도 이 씨는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 혐의로 이미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요양급여비 등은 다수의 국민들이 꼬박꼬박 납부하는 건강보험료 등으로 마련된 건강보험재정과 의료급여기금에서 나온 돈이다. 피고인 이정식의 사기범행으로 인해 국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환자들에게 국가가 베풀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었고, 정당하게 적정한 숫자의 의료인력을 갖추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의료기관들을 지원한 국가의 재정능력도 그만큼 감소하였으며, 무엇보다 이 모든 손실을 메우기 위해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되었다.”(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2017고합72 판결문)
이 씨의 은밀한 파트너가 돼 달콤한 혜택을 누리던 심평원 직원 한형민 씨도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200만 원과 추징금 2186만 원을 선고받았다. 2심 법원은 2018년 5월 24일 이들 모두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불법 사무장병원을 개설해서 건강보험 급여를 빼먹은 자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양심을 팔아넘긴 공직자들. 그들은 모두 처벌받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바로, 그들이 부당하게 빼먹은 돈을 되찾아오는 것. 요양급여비 환수 문제다.
현행 의료법 제33조 2항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 ▲비영리법인 등에 해당하지 않는 자는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료법에 제33조 2항을 위반해 불법으로 개설한 의료기관, 즉 사무장병원은 개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추후 적발되면 그동안 지급받은 요양급여비를 건보공단에 반납해야 한다.
“공단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사람·준요양기관 및 보조기기 판매업자나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보험급여나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1항)
셜록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두 사건에 등장하는 사무장병원들의 환수결정 요양급여비를 확인했다.
건보공단이 사단법인 드림나눔봉사회에 대해 환수 결정한 요양급여비는 올해 3월 기준 총 52억 7400만 원. 건보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와 환자들이 낸 본인부담금을 합친 비용이다.
하지만 환수율은 처참했다. 드림나눔봉사회가 운영한 사무장병원 네 곳 중 세 곳은 2023년 3월 현재까지 단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징수율 0%다.
네 곳의 사무장병원 중 한국의원만 2016년 12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여섯 번에 거쳐 총 1억 800만 원을 납부했다. 그럼에도 드림나눔봉사회에 남은 채무는 51억 6600만 원이다.
기자는 드림나눔봉사회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달 10일 광주 서구에 위치한 신 씨의 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신 씨를 만날 수 없어 서면 질의서를 놓고 왔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사단법인 드림나눔봉사회가 운영하는 의료기관 네 곳은 2017년 이전에 모두 폐업했다.
건보공단은 드림나눔봉사회의 환수결정 요양급여비 미징수에 대해 “법인 폐업으로 인한 무소득·무재산으로 징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격 및 재산변동 사항을 수시로 점검하여 압류대상 가능건 확인 시 즉시 체납처분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평원 직원 아내를 보험왕으로 만들어준 ‘우회 뇌물’ 사건의 장본인 이정식 씨가 운영한 ○○○○요양병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보공단이 환수 결정한 요양급여비는 올해 3월 기준 28억 9700만 원. 사무장병원 운영으로 편취한 요양급여 외 다른 요인들까지 합치면, 이 씨가 부정하게 타낸 돈은 총 97억 원이 넘는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씨는 재판 중 7억 원을 건보공단에 직접 지급하고, 약 66억 원을 법원에 공탁했다. 남은 요양급여비 약 23억 원을 2020년 3월까지 24회에 나눠 갚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요양병원 앞에 남은 채무는 19억 2300만 원이다. 이 씨는 2023년 3월 현재까지도 사무장병원에 대한 체납 요양급여비를 매달 분할납부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10일 이 씨의 집도 찾아갔다. 이 씨의 집은 광주 북구의 고급 단독주택 단지 안에 있었다. 하지만 이 씨 역시 그날은 만나지 못했다. 건보공단은 2019년 12월 11일 이정식 씨 부인 D 씨 소유 자택을 가압류한 상황이다. 청구 금액은 10억 원이다.
이 씨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의료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23년 5월 현재 재단의 대표이사는 이 씨의 부인 D 씨다. 기자는 지난달 19일 ○○의료재단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의료재단이 운영하는 목포○○요양병원 총무과 관계자는 “기자가 연락해온 사실을 현 이사장 D 씨에게 전달해주겠다”고 답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
한편, 이 씨가 한의사 명의를 빌려 운영했던 ○○○○요양병원은 현재 다른 사람에 의해 정상 운영 중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