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보낸 10개월 동안 우리는 굴욕감, 부당함, 버려짐을 겪었습니다. 공항은 감옥과도 같았습니다. (…) 저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루렌도 씨의 목소리가 법원 앞에 울렸다. 콩고 출신 앙골라인인 그는 13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과거 그의 가족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지난 2018년 12월 28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곧바로 난민신청을 했지만 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입국을 허가하지 않고 난민심사 받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 네 자녀를 포함한 루렌도 씨의 가족은 288일간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체류하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2019년 ‘인천공항 어느 가족’ 프로젝트를 통해 루렌도 가족의 고단한 공항살이를 보도했다. 보도 후인 지난 2021년 루렌도 가족은 난민으로 인정받았다.(관련기사 : <‘인천공항 288일’ 루렌도 가족, 드디어 난민인정>)

인천공항을 벗어나 288일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루렌도 가족. 지난 2019년 10월의 모습. ⓒ주용성

13일 루렌도 씨가 참여한 기자회견은 자신과 같은 난민신청자들이 공항이 아니라 공항 밖에 마련된 ‘출국대기소‘에서 인도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관련법 처리를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난민신청자들의 소송을 조력하는 단체인 난민인권네트워크에서 주관하고, 공익변호사들이 모인 단체 사단법인 두루,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공동 주최했다.

난민 인정의 길은 멀고 복잡하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이 난민 인정심사에서 법무부로부터 회부 결정을 받아야 본격적인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기자회견이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유는, 난민 인정심사에서 불회부 결정을 받아 현재 인천공항에서 장기 체류 중인 ‘L 씨‘의 판결 선고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L 씨는 지난해 10월 법무부의 불회부 처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북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나라에서 지난해 10월 한국으로 온 L 씨는 현재까지 8개월째 인천공항에서 머물고 있다.

L 씨의 소송을 법률 대리하고 있는 사단법인 두루 소속 이한재 변호사는 “기자회견 바로 전날 재판부 측에서 갑자기 변론을 재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이에 따라 L씨의 공항 체류 기간이 최소 2개월 더 늘어나 총 10개월을 넘을 예정이다, 이는 공항에 9개월 동안 있었던 루렌도 가족의 체류 기간을 넘는 수준이다“라고 발언했다.

끝없는 심사를 거치는 동안 난민신청자들은 그 지난한 시간을 하염없이 버텨야 한다. 이 기간에 난민신청자들이 머무는 공간은 제대로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잠들 수도 없는 ‘공항‘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루렌도 가족, L씨와 같은 난민신청자들이 공항 밖 출국대기소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일명 ‘공항난민방지법’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난민신청자들의 인도적 체류를 위해 출국대기소를 마련해달라는 기자회견이 13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열렸다 ⓒ셜록

그동안 공항 출국대기실은 민간항공사들의 연합체인 인천국제공항 항공사운영자협의회(AOC)가 맡아왔다. 출입국관리법 개정으로 2022년 8월부터 공항 출국대기실의 운영 주체는 법무부로 바뀌었다.

발언에 나선 이종찬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새로운 운영 주체인 법무부가 출국대기실을 인권 친화적으로 운영하길 기대했지만 (아직도 출국대기실은) 사람이 수개월을 지내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다“라며, “부실한 식사, 부족한 공간과 잠자리, 직접 들고 온 옷만 스스로 세탁해 입고 지내야 하는 환경 등 의식주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선 관련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난민신청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박주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은평구갑)은 지난해 12월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공항 안에 마련된 출국대기실은 장기간 대기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공항 밖에 인도적 처우가 이뤄질 수 있는 출국대기소를 설치해 운영하자는 것이다.

루렌도 씨는 이날 두 번째로 마이크를 잡았다. 발언은 그가 미리 준비한 글을 프랑스어로 읽으면, 통역사가 한국어로 다시 말해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루렌도 씨는 “공항에서 우리 가족은 매일 같은 식사를 했고, 깨끗하게 씻을 공간이 없어서 밤에 열악한 조건의 화장실에서 씻어야 했다, 공항에서 지내는 시간 동안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난민으로 인정된 뒤에도) 저는 한동안 공항에서의 끔찍한 순간을 잊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누군가를 그러한 상황에 계속 남겨두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휴머니즘이 부족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루렌도 씨는 셜록과의 인터뷰에서 “공항에서의 시간은 감옥 같았다”고 말했다 ⓒ셜록

난민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까지 불회부 결정 취소소송을 하면서 공항 출국대기실에서 지내온 난민신청자는 21명에 이른다.

이종찬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난민신청자들은 짧으면 3~4개월, 길면 8~9개월을 공항에서 지낸다“며 “공항에서 지내면서 생기는 인권 침해도 문제지만 (기다리는 동안) 난민인정에 대한 의지가 꺾이고 국경에서 단념하게 만드는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루렌도 씨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공항에서 생활하는 난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어땠냐“는 질문에, 그는 “너무 놀랐다“고 답했다. 루렌도 씨는 “변호사를 통해서 그 상황을 들었을 때 너무 놀랐고, 내가 거기(공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우리 모두는 이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지금 공항에서 지내고 있는 난민신청자가 얼마나 되느냐“고 되물었다. 기자는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21명의 사람들이 출국대기실에서 지내왔다고 알려줬다.

루렌도 씨는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화장실에 가면 한 시간씩 있다가 나온다, 공항에 있을 때 햄버거, 기내식으로 주는 빵만 계속 먹어서 소화기관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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