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은 면허를 빌려줬고, ‘골목 빌런(villain, 악당)’은 돈을 댔다. 그리고 사이좋게 나랏돈을 알뜰살뜰 빼먹었다.
이 둘의 환상(?) 컬래버를 흔히 ‘사무장병원’이라 부른다. 돈 많은 사무장(브로커)이 의료인 등의 면허를 이용해 불법으로 차린 의료기관을 말한다.
지역사회 내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불법 병원을 만들고 그것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동네 악당, 즉 ‘골목 빌런’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한 시의원의 아들은 시의원인 엄마의 부동산을 활용해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해 돈을 벌었다. 시의원은 의사도 아닌 아들의 병원 개업 사실을 동료 의원들에게 알리며 도왔다.
교회 목사와 장로가 등장하는 사건도 있다. 목사가 만든 의료생협을 인수한 교회 장로. 그는 총회 개최를 위해 교회를 빌리고, 교인들까지 동원해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다.
또 이런 ‘골목 빌런’을 변호하다가 오히려 변호사가 구속된 기막힌 사건도 있다.
가지각색 ‘골목 빌런’들이 전국에서 약 15년 동안 빼먹은 건보료는 이미 약 3조 4500억 원에 달한다. 용인특례시가 올해 편성한 본예산 금액(3조 2147억 원)과 비슷한 액수다.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의 한 해 살림살이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돈.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골목 빌런’들의 천태만상을 법원 판결문을 통해 재구성했다. 그리고 그들이 부당하게 받아간 건강보험 급여는 얼마인지, 그중 얼마나 되찾아왔는지 추적했다.
[빌런①] 시의원 아들, 불법 병원 운영해 건보료 10억 빼돌려
2014년부터 4년간 제7대 정읍시의원을 역임한 배정자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그에게는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에 공동소유 하고 있는 토지와 건물이 있었다.
그의 부동산을 눈독을 들인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아들 조태현(가명)이다. 조 씨는 어머니 소유 부동산을 본인이 관리했다. 엄마의 부동산을 활용해 더 큰 돈을 벌고 싶던 걸까. 조 씨는 결국 합법의 ‘선’을 넘었다.
현행 의료법 제33조 2항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 ▲비영리법인 등에 해당하지 않는 자는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非)의료인은 병원을 개설할 수 없는데도, 조 씨는 2015년 의료인과 손을 잡고 A병원을 개설했다.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의료인 3명이 조 씨에게 면허를 빌려줬다. 당시 그들은 신용불량자가 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배 의원은 의사도 아닌 아들이 병원을 개업하는 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조 씨의 부인 유○○은 2015년 11월 6일 시어머니 배 의원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 (병원 개설) 허가 나왔데요. 애기 아빠(조태현)가 기분 좋아서 죽을라 그래요.”
조 씨의 불법 병원 개업을 축하하고 홍보에 나선 이들도 있다. 어머니 배 의원의 동료 시의원들. 정읍시의회 사무국 소속 의정 담당자는 시의회 부의장의 부탁을 받아 시의원들에게 이런 ‘전체 문자’를 돌렸다.
배정자 시의원 자녀 병원 개업 안내
– 개업일 : 2015. 09. 20
– 장소 : A병원(신태인파출소 앞)
하지만 시의원 가족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북지방경찰청은 2017년 2월 불법 사무장병원을 설립해 요양급여를 부당하게 타간 혐의로 배 의원과 아들 조 씨 등을 불구속 입건했다. 하지만 검찰은 배 의원을 제외하고, 아들 조 씨와 면허 대여 의료인 3명을 재판에 넘겼다.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은 2018년 8월 의료법 위반과 사기 혐의를 받는 아들 조 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9년 4월 유죄를 확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의원님’ 가족이 부당하게 빼먹은 돈을 되찾아오는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사무장병원은 개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적발되면 그동안 지급받은 요양급여비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반납해야 한다.
셜록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A병원의 환수결정 요양급여비를 확인했다. 그 액수는 올해 3월 기준 10억 1900만 원. 건보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와 환자들이 낸 본인부담금을 합친 비용이다.
A병원이 현재까지 납부한 돈은 5억 4000만 원이다. 아직 절반에 가까운 4억 7900만 원이 채무로 남아 있다. A병원이 이 ‘빚’을 마지막으로 납부한 날은 약 1년 전이다. A병원은 2017년 8월 폐업했다. 조 씨의 부인 유 씨가 지난 4월 A병원 건물 지분 일부를 매입했다.
기자는 지난달 11일 조 씨의 입장을 듣고자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이사를 가 만나지 못했다. 6일 뒤 그가 이사 간 새 집으로 서면 질의서를 보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빌런②] 목사가 만든 의료생협, 장로가 인수해 사무장병원 운영
B교회 목사 부부는 2008년 3월 한국전인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한국전인생협)을 설립했다. 한국전인생협은 당시 서울 마포구에 한의원을 운영했다.
C교회 장로였던 김장수(가명)는 지인의 소개로 목사 부부를 알게 됐다. 김 씨는 2009년 5월부터 해당 한의원에서 근무했다.
“운영하던 한의원은 적자상태라 간신히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만두고 싶은 찰나에 C교회 장로인 김 씨가 운영해보겠다고 제안해서 아무 조건 없이 한국전인생협 권리와 한의원 장비 등을 무상 양도했다.”(B교회 목사 부부 수사기관 및 법정 진술)
목사 부부가 병원 운영에 손을 떼던 날, 김 씨는 한국전인생협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2010년 10월경 한국전인생협 명의로 서울 광진구에 혜성의원을 새롭게 개설했다.
그는 바로 ‘자기 사람’으로 조합 임원을 꾸렸다. 부인과 동생, C교회 담임목사와 교인들 등을 이사로 등재했다. 병원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 씨는 병원을 본인 소유물처럼 운영했다. 그는 혜성의원 명의 은행 계좌와 연동되는 체크카드로 주유를 하고, 식당과 마트를 이용했다. 그가 조합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이렇게 쓴 돈은 약 4200만 원이다.
교인들도 병원 운영에 동원됐다. 김 씨는 C교회 교인들로부터 한국전인생협 조합원 가입 동의를 받았다. 매년 총회 개최를 위해 C교회 본당 2층을 빌려 사용하기도 했다. 교인과 조합원이 구분되지 않고, 예배와 총회가 구분되지 않는 이상한 자리였다.
“보통 정기총회는 예배가 끝나고 바로 시작해서 15분 정도 피고인(김장수)으로부터 혜성의원 운영에 관한 설명을 들은 후 식사를 하고 끝냈다. 교인들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서 간단히 끝났다.”(한국전인생협 이사D 서울고등법원 2017노3502 사건 법정 진술)
서울고등법원은 2019년 4월 의료법 위반 및 사기 혐의를 받는 김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같은 해 7월 유죄를 확정했다.
김 씨가 설립하고 운영한 혜성의원에 대한 환수결정 요양급여비는 올해 3월 기준 11억 3200만 원이다. 현재까지 이중 1억 7700만 원을 납부했다. 환수율은 약 16%에 불과하다. 혜성의원이 빚을 갚지 않은 지는 3년째가 됐다.
건보공단은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건보공단은 김 씨 등을 상대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발생한 부당이득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김 씨는 약 2억 6800만 원을 건보공단에 배상해야 한다. 한국전인생협이 운영한 혜성의원은 2016년 7월 폐업했다.
기자는 지난달 15일 김 씨의 반론을 들으러 서울 마포구에 있는 자택으로 찾아갔다. 김 씨의 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김 씨의 부인은 환수결정 요양급여비를 갚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분(김장수) 앞으로는 재산이 없으니까요. 있던 재산은 이미 건보공단에 다 (압류를) 당했어요. 이제 돈이 없으니까 (김 씨가 새로 구한) 직장에서 월급을 타면, (건보공단에서) 얼마씩 가져가는 걸로 알고 있죠.”
부인 말대로 과거엔 김 씨의 월급에서 환수결정 요양급여비를 얼마씩 나눠서 납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김 씨는 최근 3년간은 빚을 한 푼도 갚지 않고 있다.
부인은 기자가 건넨 서면 질의서를 김 씨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빌런③]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그 검사, 사무장병원 연루돼 구속
안민철-이민주(모두 가명) 부부는 2014년 7월경 ‘브로커’의 컨설팅에 따라 의료법인 가나의료재단을 설립했다. 가나의료재단은 2014년 10월 광주 서구에 상무로병원을 개설했다.
남편 안 씨는 이전에도 사무장병원을 운영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병원은 순식간에 사유화됐다. 부인 이 씨는 2014년 8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법인 자금 약 13억 원을 횡령했다. 법인 임원 중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광주지방검찰청은 2017년 8월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혐의로 부부를 재판에 넘겼다. 당시 이들을 변호한 사람이 검사 출신 강○○ 변호사. 과거 광주지방검찰청에 근무했던 그는 직무상 의무를 위반해 2013년 7월 면직된 사람이었다.
그는 의뢰인 안 씨에게 “담당 검사는 내가 (검찰) 안에 있을 때에 시보로 있어서 잘 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시보는 공무원 임용후보자가 정식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이전의 공무원 신분을 말한다.
강 변호사의 요구는 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강 변호사와 안 씨는 2017년 1월 25일 이런 대화를 나눴다.
강 : “주임검사에게 인사이동 전에 선물 하나 주고 가시라고 했습니다.”
안 : “그 일을 보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돈이 없습니다.”
강 : “대출을 해서라도 스탠바이 해놓으시죠.”
강 변호사는 부인 이 씨의 검찰 조사가 있던 날 안 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말씀드렸던 부분 이제 책상에 다 올려놓고 시작하자”고 말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다음날이었다. 안 씨는 강 변호사를 만나 다시 물었다.
“그 일 보시는데 얼마가 필요합니까?”
강 변호사는 검지손가락 하나를 치켜올렸다. 안 씨는 현금 1억 원을 강 변호사에게 건넸다.
“강 변호사 동석 하에 2017년 2월 14일 검찰 조사를 받은 당시, 주임검사가 강 변호사를 집무실로 불러 10여 분간 환담하는데, 웃음소리가 집무실 밖까지 들리는 등 분위기가 매우 좋아보여 ‘얼른 돈을 줘야 그 일을 보겠구나’ 생각했다.”(안민철 검찰 조사 진술)
변호인이 담당검사에게 로비를 하기 위해 의뢰인에게 불법 자금을 받아 간 상황. 결국 그는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광주지방법원은 2019년 7월 변호사법 위반으로 강 변호사에게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20년 6월 형을 확정했다.
사실 강 변호사에겐 숨겨진 이력이 있다. 그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항소심을 담당했던 검사로 유명했다. 검찰의 증거 조작과 강압 수사로 피고인들이 억울하게 복역 중이라는 주장이 나와 최근 논란이 된 사건. 2022년 1월 재심이 청구돼 있는 상황이다.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안 씨 부부도 법의 판단을 피하지 못했다. 광주지방법원은 2017년 12월 남편 안 씨에게 징역 4년을, 부인 이 씨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018년 12월 이 부부의 유죄를 확정했다.
상무로병원(이후 다나암요양병원으로 변경)에 대한 환수결정 요양급여비는 올해 3월 기준 총 59억 5700만 원이다. 현재까지 이중 32억 7100만 원을 납부했다. 아직도 약 45%에 달하는 26억 8600만 원이 남아 있다. 다나암요양병원은 2019년 4월 30일 폐업했다.
기자는 지난달 10일 안 씨 부부의 반론을 들으러 광주 서구에 위치한 자택으로 찾아갔다. 당일 부부를 만나지 못해 서면 질의서를 두고 왔지만, 한 달이 넘은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15일 안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관심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환수결정) 요양급여비 해결 안 된 부분이 선생님(기자)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저한테 이로운 것이 뭣이 있다고 전화를 했습니까”라고 답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불법 사무장병원이 빼내간 건보료를 다시 환수해야 할 책임은 건보공단에 있다. 건보공단은 A병원, 혜성의원, 가나의료재단에 대한 징수 추진계획에 대해 “재산변동 사항을 수시로 점검해 압류대상 가능건 확인시 즉시 체납처분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놓고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하고 홍보한 동네 ‘의원님’ 가족부터, 교인들을 병원 운영에 활용한 교회 장로, 사무장병원 운영자를 속여 돈을 뜯다가 구속된 변호사까지. 하나같이 기가 막힌 사건들이지만, 셜록이 그동안 보도한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건보공단이 약 15년 동안 파악한 불법 개설기관은 전국적으로 총 1695곳. 이들에 대해 2009년부터 2023년(3월)까지 환수 결정된 요양급여비는 약 3조 4500억 원에 달한다. 골목 구석구석에서 나라 재정을 빼먹은 ‘빌런’들이 이렇게나 많지만, 국가는 이 빚을 거의 회수하지 못했다. 환수결정 요양급여비 징수율은 고작 6%에 그치고 있다.
이 난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다음 기사는 해결책을 다룬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