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 세종시의원 농지와 조선 소나무. 김보경 기자의 키보다 서너 배는 크다. ⓒ셜록

도로 한복판에 우뚝 선 ‘조선 소나무’ 네 그루의 위용은 대단했다.

족히 7m는 넘어 보이는 큰 키와 우아하게 뻗은 줄기, 그리고 푸르른 이파리까지. 집 앞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나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눈에도 보통 값어치는 아닐 거라고 느껴졌다.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심어진 소나무 네 그루는 고즈넉한 시골 풍경과 조화롭진 않았다.

의왕, 여주, 당진, 공주, 세종, 부산, 그리고 제주까지. 기자가 약 7개월 동안 불법적으로 농지를 소유한 고위공직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이동한 거리는 왕복 약 4200km에 이른다.(관련기사 : <[해결] 셜록이 고발한 농지투기 의혹, 첫 ‘유죄’ 판결>)

그렇게 수많은 고위공직자들의 농지를 보러 다닌 기자에게도 고가의 조경수인 ‘조선 소나무’의 모습은 꽤 낯설었다. 작물 대신 잡초로 우거진 땅과 건강음료용 매실나무가 심어진 땅, 농지가 아닌 주차장으로 쓰이는 땅도 봤지만, 도로 옆 자투리 땅에 심어진 조선 소나무라니.

아름다운 자태와 당당한 위세를 과시하는 조선 소나무를 보고 감탄만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 나무와 땅에 얽힌 이야기는 국민들의 뒷목을 잡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김원식 세종시의회 의원 ⓒ세종시의회

조선 소나무 네 그루가 심어진 땅은 김원식 전 세종시의회 의원과 관련돼 있다. 그는 2014년 6월 제2대 세종시의원에 당선돼, 제3대(2022년 6월)까지 시의원을 역임했다. 토목 관련 업무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김 의원은 제3대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후반기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의 배우자 서○○ 씨는 2015년 3월 4일 세종시 조치원읍에 위치한 2필지 총 1472㎡(약 446평) 규모의 밭을 4억 8550만 원에 매입했다. 배우자 서 씨는 농업경영계획서에 2017년 9월부터 자기노동력으로 관상수를 기르겠다고 기재했다. ‘취득자 및 세대원의 농업경영능력‘에는 남편의 영농경력을 20년으로 적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11월.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는 세종시장이 제출한 ’2020년 세종시 예산안‘을 예비심사했다. 산업건설위원회는 계수조정 과정을 거쳐 애초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은 9개 도로개설 예산 32억 5000만 원을 신규 편성했다.

이때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대로 3-6호’ 도로가 신규 편성에 포함됐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김원식 당시 의원 배우자와 이태환 시의회 의장 모친이 소유한 농지와 맞닿은 땅. 이태환 의장은 제2대부터 제3대까지 조치원읍 지역구에서 세종시의원을 역임한 인물이다.

신규 도로개설 안건에 이 의장과 김 의원의 가족 농지와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 구 ‘지방자치법’ 제70조 및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 등에 따르면, 지방의회의원은 본인의 어머니, 배우자 등 친족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안건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상임위원회 위원장 및 의장에게 신고해야 하고 해당 예산 심의에는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의장과 김 의원은 사익과 공적 책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대담하게 행동했다. 두 사람은 2019년 12월, ‘대로 3-6호’ 신규 개설 관련 산업건설위원회의 심의·의결과 본회의에 참여했다. 의회에 이해충돌 사실을 일절 알리지 않았다.

당시 사무처 관계자들도 참석하지 않은 간담회 형식 회의에서 도로개설 결정이 내려졌다. 소위 ‘쪽지 예산‘으로 편성해 회의록도 남지 않았다. 이 의장과 김 의원의 ‘셀프’ 예산안은 2019년 12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결국 ‘대로 3-6호’ 건설은 확정됐다.

이태환 전 세종시의회 의장 모친과 김원식 전 세종시의회 의원 배우자가 소유한 농지 옆에 뚫린 ‘대로 3-6호’ 도로 ⓒ셜록

감사원은 세종시의회의 ‘도로개설 예산편성 심의 과정의 적정성’을 점검한 결과, 위법 부당사항이 확인됐다고 지난해 4월 20일 밝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지난해 4월 21일 현장을 직접 방문했을 때도 이미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감사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시의원 가족 소유 농지에 국민의 ‘세금’이 투여돼 도로가 건설되는 상황.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의원은 감사원 조사 때 이렇게 항변했다.

“‘대로 3-6호‘가 모친 소유 농지를 지나거나 맞닿아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 이태환 의장

“‘대로 3-6호‘가 어디에 위치한 도로인지, 배우자 소유 농지가 어디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고, 이해관계 직무회피 소명 규정을 알지 못했다.” – 김원식 의원

하지만 감사원은 “도로개설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을 야기했다“며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세종시의회 의원에 대한 징계를 의장에게 요구했다. 당시 시의회 의장은 바로 이태환 의장으로 ‘셀프 징계’ 논란도 불러왔다.

“도로개설이 일반적으로 토지의 지가 상승 등 경제적 가치의 변동을 유발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신규 도로와 맞닿아 있는 토지를 소유한 의원의 어머니 또는 배우자는 해당 예산 심의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개인으로서 의원의 예산 심의와 관련한 직무 관련자에 해당하고, 해당 안건은 의원의 어머니 또는 배우자와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감사원의 감사 보고서 일부)

그렇다면 감사원의 감사 결과대로 두 의원에 대한 징계가 이뤄졌을까? 이 의장과 김 의원은 지난해 5월 17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불복해 재심의를 청구했다.

하지만 두 의원은 지난해 6월 30일, 감사원 재심의 결과가 통보되기 전에 임기 만료로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지난해 7월 1일 열렸지만, 두 의원 모두 출마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세종시당(위원장 강준현) 윤리심판원은 지난해 1월 이태환 의장과 김원식 의원에게 각각 ‘당원자격 정지’ 1년 6월과 2년의 징계를 내렸다. 어디까지나 정당 차원의 자체 징계일 뿐이다.

세금으로 가족 농지에 도로를 뚫고, 감사원이 위법 부당하다고 지적했지만, 결국 아무도 의회 차원의 공식 징계를 받지 않고 흐지부지 끝난 셈이다. 김 전 의원의 배우자는 해당 농지를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김원식 세종시의원 농지와 조선 소나무. 도로 모퉁이에 쌩뚱맞게 서 있다. ⓒ셜록

다시 김 전 의원의 조선 소나무로 돌아가보자. 김 전 의원은 고가의 조선 소나무를 어떻게 부인의 농지에 심었던 걸까.

김 전 의원은 거의 무상으로 수천만 원짜리 조선 소나무 네 그루를 얻었다. 감정가 총 553만 원의 조선 소나무 두 그루는 ‘업무 연관성이 있는’ 한 사업자로부터, 감정가 총 3700만 원 상당의 나머지 두 그루는 김씨 종중으로부터 제공받았다. 공직자는 직무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선 안 된다.

김 전 의원은 결국 피고인석에 앉았다. 대전지방법원 형사6단독(판사 김지영)은 지난 5월 10일 김 전 의원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조선 소나무 무상 취득에 따른 금품수수와 공무상비밀누설을 위반한 점이 인정됐다. 그가 김씨 종중에게서 제공받은 조선 소나무 두 그루도 몰수했다.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

–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중 제4수

오랜 세월 소나무는 굳은 기상과 절개, 강직한 선비정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김 전 의원 배우자의 땅에 서 있는 소나무는 떳떳하지 못한 유착과 비뚤어진 이권을 상징하는 증거물이 돼버렸다. 조선 소나무의 아름다운 자태와, ‘영 아름답지 않은’ 내력의 아이러니가 씁쓸하기만 하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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