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하에서도 공안사건은 있었지만, 이렇게 몰상식적으로 압수수색을 하진 않았거든요. 정권의 유한성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막 나가지는 않았어요. 근데 지금 정부는 견제 세력이 없어요. 마치 브레이크 없는 차 같은 거죠.”
조영선(57)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만들고 있는 공안정국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이 적힌 점퍼를 입고 수백 명이 동원된 압수수색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며,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절감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 민변 국가보안법폐지TF 단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3월 15대 민변 회장에 당선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지난해 9월 15일 열린 국가보안법 위헌법률심판 공개변론에 참석해 위헌 측 변론을 맡기도 했다.
“70여 년 역사 속에서 국가보안법이 갖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공개변론 한 적도 없고, 처음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죠. 국가보안법이 갖는 폐해와 국가보안법이 침해하는 것들(사상·양심의 자유)을 국민들한테 생방송으로 알린다는 점에서 중요한 계기로 생각했던 거죠.”
국가보안법 2조(정의)와 7조(찬양·고무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헌법재판소는 과거 일곱 차례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으나, 지난해 공개변론 당시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공개변론은 여론을 수렴하고, 찬-반과 제3의 의견까지 듣는다는 차원에서 진행된다. 즉, 국가보안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수렴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것. 또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호주제’, ‘긴급조치 9조’ 등 위헌 결정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 대해 공개변론을 해왔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가능했다.
당시 조 회장은 기대를 안고 대심판정으로 향했다. 그는 변호인단이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치열하게 공개변론을 준비했던 일화를 들려주며, “기쁜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공개변론에서 쟁점이 된 것은 역시 ‘위헌성’이었다. 조 회장은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국가보안법은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돼왔는데, 특히 자신과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위치에 있는 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폐지 권고가 나온 사실을 언급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아니에요. 국민의 헌법 수호 의지인 거죠.”
조 회장 역시 지난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심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4월 퇴임을 앞둔 이석태 재판관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오랜 숙원을 해결해줄 거라는 기대였다. 이 재판관은 2004년 민변 회장으로 있으면서, 한 해 주력사업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꼽을 만큼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재판관은 위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퇴임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헌법재판소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판단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조 회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헌법재판관 내부적으로는 합헌인지, 위헌인지에 대한 토론이 이미 이뤄졌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을 확보하는 문제로 판단이 늦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헌 결정이 나올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재판관들이 늘어난다면 전체적으로 보수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 회장은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문명화된 사회와, 73년 전에 탄생한 국가보안법이 양립할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라도 동의할 만한 “법적인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소한 이적표현물 소지·반포 부분에 있어서는 위헌 결정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4월부터 <국가보안법 ‘마지막’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국가보안법이 낳은 무고한 피해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울 수 없었고, 자기검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첫 기사 : <“국가보안법 무죄!” 나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공안당국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유무죄가 중요하진 않은 거예요. 사실 국가보안법은 나중에 (법정에서) 무죄가 된다면 ‘참 운 좋게 잘됐다’ 정도인 거고, 기본적으로 (검찰이) 기소하는 순간부터 이미 게임은 끝난 거거든요.”
조 회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는 순간, 이미 한 개인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무너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가보안법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면서 한 개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결국 ‘생각의 감옥’에 가두고 만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창살 없는 거대한 감옥’을 만드는 데 동참했다. 재미동포 신은미는 2014년 11월 ‘통일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가 ‘종북’이라는 오명을 썼다. 그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언론은 연일 기사를 쏟아내며 마녀사냥에 앞장섰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헌법재판소에서 ‘기소유예 취소 판결’이 나왔을 때 언론은 철저히 침묵했다.
셜록은 신은미 관련 언론 보도량을 ‘의혹 제기'(2014년 11월~2015년 1월) 시기와 ‘무죄 판결'(2021년 10월) 시기로 구분해 집계했다. 그 결과 1788:12라는 참혹한 대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관련기사 : <언론이 만들어낸 마녀… ‘1788 : 12’라는 참혹한 대비>)
앞서 셜록이 만나온 피해자들 역시 기소된 순간부터 무죄 판결까지 적게는 7년, 많게는 32년(재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국가보안법은 긴 시간 사람의 피를 말린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제적 활동에 제약이 따르고, ‘빨갱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은 개인의 삶은 처참하게 무너진다.
개인의 비극은 곧 가정의 불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조 회장은 1983년 간첩 혐의로 체포된 한 재일동포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체포된 이후에 딸이 태어났다.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나왔지만, 성장한 딸은 그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30여 년이 지나 재심을 청구했고, 결국 무죄를 받아냈다. 그러나 딸은 여전히 아버지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있다.
개인을 넘어 가정까지 파괴하는 국가보안법. 사회에도 그 영향이 미치지 않을 리 없다.
“국가보안법은 유죄 판결을 통해서 그 사람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효과도 있지만, 공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세뇌시키는 일종의 교육 효과도 있죠. 공포정치에 따른 교육 효과를 노리는 거예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던 2020년 4월이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며, ‘국가보안법 철폐’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사회적 기대가 커졌다.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열기는 식어갔다. 다음 총선이 약 10개월밖에 남지 않은 지금, 조 회장 역시 21대 국회에 걸었던 기대가 좌절됐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서로의 책임을 방기하는 사이, 윤석열 정부의 신(新) 공안정국이 펼쳐졌다. 노동조합, 농민회 등 진보세력을 상대로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연행, 구속이 이어졌다. 그 무기는 역시 ‘국가보안법’이었다.
“검찰 출신 대통령이라는 출신성분을 속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죄-무죄’, ‘내 편-네 편’밖에 없어요. 이렇게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차별과 혐오로 대응하는 거죠.”
조 회장은 검찰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 확신’이 몸에 밴 사람일 수 있지만, 그것을 정치 영역까지 끌어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과 주장이 다른 사람을 “악의 축”이자 “섬멸할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또는 문재인 정부는 뭔가를 하려고 하면 당장 검찰과 경찰의 견제를 받았단 말이에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보면 지금은 모든 권력이 한몸이 돼서 손발처럼 알아서 움직여준다는 점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광기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검찰권력과 정치권력, 행정권력 사이에 작동하고 있던 ‘최소한의 견제’라는 원리가 사라진 것 같다는 말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성격은 힘과 권력으로 국민들을 누르려고만 하는 ‘냉전적 보수’에 가깝다며, 조 회장은 걱정을 드러냈다.
조 회장은 “오늘날 ‘광기’ 서린 압수수색이 국가정보원에서 경찰로 ‘대공수사권’이 이관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 같다”는 지적도 했다. ‘국가정보원’이 새겨진 점퍼를 입은 수백 명의 수사관이 공안사범을 잡아내는 모습을 언론에 드러냄으로써, 변함없는 위세를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지적이었다.
21대 국회에 걸었던 ‘국가보안법 폐지’ 기대는 사그라들었고, 윤석열 정부의 공안정국 ‘칼춤’은 멈출 줄은 모른다. 다시 한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나온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조 회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오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 사람들을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전망했다.
“(국가보안법이 작동하는 한 일부 조항에 대한) 위헌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현실(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같아요. 다만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 있을 겁니다. (정신을 통제했던) 생각의 그물이 걷혀진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죠.”
취재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