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와 얼굴 근육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이규식의 목소리는 뭉개져 모호했다. 약 1미터 뒤에 앉은 남자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듯 이 목소리를 노트북으로 옮겨 적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무대 중앙 PPT 화면에 언어장애인의 흐릿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목소리가 늘어지면 화면의 문장이 느려지고, 말이 끊기면 문장도 멈추는 일체감과 리듬감.
그 덕에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북토크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중증 뇌병변 장애인 저자 이규식의 이야기를 문제 없이 들었다. 장애인권활동가 이규식과 청중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아준 ‘1미터 뒤의 남자’는 김형진(1989년생).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5월 서울에서 주최한 행사에서도, 7월 광주에서 연 북토크에서도, 김형진은 이규식의 말을 오류 없이 전달했다. 그야말과 완벽한 동시통역이자, 직독직해.
그는 외국어 통역 애플리케이션이나 챗GPT 등 신통방통 하다는 AI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외국어 번역기는 있어도, 뇌병변 장애인의 뭉개진 말을 듣고 이해하는 기기는 한국에 아직 없다. 김형진은 오직 자신의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표정을 살피며 이규식의 말과 의중을 정확히 짚어냈다.
저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뒷표지 날개에 적힌 ‘듣고 적은 사람’ 정보에 단서가 있다.
“김형진 – 이규식의 10년차 활동지원사. 2013년 처음 만나 지금까지 연을 이어 오고 있다. 그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위치랄까. 그러다 보니 때론 자주 다투기도 하지만 작은 손짓, 발짓부터 말투까지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규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김형진의 나이는 올해 서른넷. 20대 중반 이후의 청춘을 오로지 이규식과 함께 보낸 셈이다. 김형진의 동시통역 능력만큼이나, 긴 세월 둘을 연결한 인연의 끈과 일상이 궁금했다. 이규식에게 전화로 물었다.
“하룻밤 재워줄 수 있습니까? 1박 2일 머물며 두 사람(이규식, 김형진)을 취재하려구요.”
지난달 28일 금요일 오후 서울 행당동 이규식의 집으로 향했다. 숨만 쉬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이었다. 서울 지하철5호선 행당역 4번 출구에서 나와 언덕을 따라 한참을 올라야 하는 임대아파트, 이규식의 집은 거기에 있다.
복도식 아파트의 현관문은 오후 햇볕으로 뜨거웠다. 초인종을 누르자 개 짖는 소리가 화답으로 들려왔다. 이규식이 키우는 흰색 반려견 ‘두부’다. 김형진이 현관문을 열었을 때, 두부는 내게 돌진하지 못했다. 이규식의 전동휠체어 하나만으로도 현관은 이미 꽉 차서 개가 기뻐 날뛸 공간이 없었다.
거실 겸 안방과 현관 겸 부엌과 복도 쪽으로 난 작은 방이 있는 10평 남짓한 공간, 이규식의 집이다. 외출용 전동휠체어와 실내용 휠체어 각 한 대가 이미 많은 공간을 차지하니 사람이 운신할 폭은 넓지 않았다.
김형진은 요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24시간씩 이규식 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주말에만 경기 용인시 본가에 간다. 이번 취재 때처럼 주말도 포기하고 일주일 내내 이규식과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다.
이규식은 이런 김형진에게 아예 방 하나를 내줬다. 복도 쪽으로 난 작은 방이 김형진의 공간이다. 김형진은 사계절 옷과 컴퓨터 등으로 자기 방을 꾸몄다.
“규식이 형은 활동지원사가 없으면 코앞에 있는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거든요. 식사는 물론이고, 씻거나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으니, 꼭 근처에 제가 있어야 해요.”
김형진의 말대로 이규식의 뇌병변 장애는 중증이다. 타인의 조력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 이규식의 모든 일상을 보조하고 돕는 게 활동지원사 김형진의 일이다. 그의 급여는 시간당 계산돼 보건복지부-서울시-구청에서 지급한다.
아무리 직업정신과 봉사정신이 투철해도 고용인(이규식)과 24시간을 함께 지내는 게 쉽지 않을 터. 게다가 이규식이 누군가. 종로경찰서를 비롯해 서울 주요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종종 전화를 걸어 “이규식 대표님, 오늘 집회는 살살 좀 부탁합니다”라고 읍소(?)하는 장애인권활동가 아닌가. 이렇게 까칠한(?) 인물과 종일 시간을 보내려면….
“별로 힘들지 않아요. 함께 지낸 지 오래 되기도 했구요.(웃음)”
내가 ‘에이, 정말?’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김형진은 한마디를 보탰다.
“아, 제가 밤에 깊이 잠들지 못하거든요. 규식이 형이 (용변 문제 등으로) 새벽에 안방에서 불러도 힘들지 않게 잘 일어나요. 그니까 24시간을 함께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키 185cm의 김형진은 진심이라는 듯 날 바라보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두꺼운 안경 렌즈 너머 그의 눈빛이 떨리는지 한동안 바라봤다. 미동도 없었다.
중증 장애인의 일상, 먹고-자고-씻고-입고-싸는 모든 걸 지원하는 자신의 노동을 헌신이나 희생, 도움이란 말로 포장하는 법이 없는 김형진. 사실 그는 사회복지 분야와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 김형진은 하늘과 우주를 사랑하는 소년이었다. 고교 시절 수학, 화학 성적은 낮아도 지구과학 쪽은 최상위권이었다.
“별보다는 우주라는 광대한 공간에 대한 동경이 컸어요. 과학이 발달했어도 인간은 고작 화성 정도까지만 가잖아요. 그것도 로봇 하나만 달랑 보내는 정도고. 그 외 공간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잖아요. 막막할 정도로 넓은 공간을 상상하는 게 지금도 좋거든요.”
서울의 모 대학 천문학과에 지원했으나 낙방. 재수하기 싫어 선택한 곳은 담임이 추천한 토목공학과였다. 뭔가를 만들고, 부수고, 건설하는 데 관심이 없으니 학과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군에서 귀인을 만났다.
“군대 후임 중에 디게 착한 애가 한 명 있었는데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더라구요. 그 친구를 보면서 ‘사회복지 쪽 사람들은 다 착한가부다’ 뭐 그런 좀 웃긴 생각을 했어요.”
군 제대 후 ‘알바천국’ 등을 살피다 활동지원사라는 걸 알게 된 김형진. 세상 착한 군대 후임도 생각난 김에 그는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땄다. 평생 직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우주 공간을 향해 그랬듯이 사회복지를 향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첫 활동지원 대상자는 이규식이 아닌, 발달장애 중학생이었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엇갈린 운명이 마침내 자기 자리를 찾을 걸까. 김형진은 그 중학생과 오래 동행하지 못했다.
“면접을 보고 2주 뒤부터 그 중학생 활동지원을 하기로 했는데요. 기관 쪽에서 ‘중증 뇌병병 장애인 쪽에 자리가 있는데, 2주간 먼저 해보겠느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러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만난 사람이 장애인권활동가 이규식, 장애이동권 투쟁가 이규식, 서울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규식이었다. 이규식은 김형진을 처음 본 순간을 책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에 이렇게 적었다.
“처음 활동보조인(활동지원사)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행진(김형진 별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보자마다 ‘쟤구나’ 싶었다. (중략) 처음 만나면 어색할 수도 있는데 왠지 행진은 마음이 편했다. 활동보조를 받아 보면 바로 딱 감이 온다. 나하고 쭉 같이 갈 사람인지 아닌지.”
이규식의 감은 적중했다. 책 내용은 이렇게 이어진다.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 활동보조를 받을 때는 어설프게 해주는 바람에 두어 차례 다칠 뻔했다. 그런데 행진은 몸을 잘 밀착해 안정감 있게 지원해 주었다. 내 의견을 꼼꼼하게 물어보고, 내 말을 잘 따르는 것도 좋았다. 눈치가 빨라 내 성격도 금세 파악했다.”
2주간의 임시 지원이 끝나고 발달장애인 중학생에게 돌아갈 시간. 이규식은 자신의 감을 믿고 밀어붙였다.
“내가 가지 말라고 했지. 계속 내 활동을 지원해달라고, 내가 형진이를 붙잡았지.”
2013년, 둘의 동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직 대학생이던 그때, 김형진은 24시간이 아닌 수업 없는 날 낮에만 활동지원을 이어갔다. 김형진은 이규식이라는 신세계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규식이 형을 만나기 전까지 장애인과 교류해본 적은 거의 없거든요. 규식이 형은 인권운동가니까 여러 활동을 하잖아요. 규식이 형 따라 다니면서 그동안 몰랐던 장애인권, 사회운동을 알게 됐죠. 활동지원사 일을 하면서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게 많아요. 제가 아는 세상이 그만큼 넓어진 거죠.”
김형진은 이규식 따라 여러 투쟁, 집회 현장을 다녔다. 옆 혹은 뒤, 이규식이 부르면 언제든 반응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게 활동지원사의 임무다. 게다가 이규식은 활동 반경과 관심 영역이 넓다.
이규식이 부산-대구로 원정 연대투쟁을 가면 김형진도 가고, 새벽 5시에 지하철 선전전을 나가면 김형진 역시 함께 갔다. 이규식이 제주도 여행을 가면 동행하고, 바다에 뛰어들면 같이 들어가는 것 역시 김형진의 일이다.
이런 이규식과의 동행이 늘 원만한 건 아니다. 늘 붙어 다니는 만큼 갈등이 잦고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줬다. 지금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두부’도 처음엔 둘에게 큰 갈등을 낳았다.
“두부를 데려오기 전에 규식이 형이 저한테 물어봤거든요.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싶은데, 제 생각이 어떤지요. 활동지원사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경계가 모호할 때가 종종 있어요. 규식이 형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지만, 사실 개가 오면 제가 키워야 하잖아요. 그러면 중증 장애인은 반려동물과 함께 할 권리가 없나? 그건 또 아닌 거 같고….
많이 고민한 끝에, 개는 키우지 말자고 조심스럽게 말했죠. 나도 많이 힘들다고. 규식이 형도 수긍했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며칠 뒤 덜컥 두부를 집에 데려온 거예요. 그럴 거면 왜 내 의견을 물어본 건지….”
새 식구 두부가 온 날, 김형진은 많이 실망했다. 두부가 미워서가 아니라, 자기 의사가 무시당한 듯해서 마음이 상했다. 지하철을 세워 이동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버스 밑으로 기어 들어가 저상버스를 도입하게 하는 등 장애인 이동권을 신장시킨 이규식. 일상에서도 무뚝뚝한 ‘무대뽀’ 인 경우가 종종 있다.
미리 말하고 설명하면 되는데, 이규식은 그걸 무척이나 어려워 하는 캐릭터다. 조근조근 말하고 타인의 내면을 잘 살피는 김형진에게, 무뚝뚝한 침묵의 이규식은 종종 버겁다. 대개의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 싸우고 다투면 잠시 떨어져 마음의 여유를 찾곤 한다. 하지만 활동지원사는 그렇게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은 싸우면 잠시 떨어져 있고, 마음 진정되면 돌아오고 그러잖아요. 근데 저는 규식이 형이랑 싸워도 어딜 갈 수가 없어요. 제 마음이 상해도 규식이 형이 요청하면 같이 먹고, 씻기고, 옷 입히고, 여행을 가야 해요. (웃음) 때로는 그런 점이 참 힘들어요.”
지난 10년, 김형진은 종종 “이젠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도 사람이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고, 다른 사회복지 분야에 도전하고픈 생각도 품었다. 다른 기관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 이규식이 붙잡아 못 떠난 건 아니다. 오로지 김형진의 선택이었다.
“그냥 규식이 형이 좋으니까 남았죠. 형한테 배우는 게 많고. (웃음) 무뚝뚝하면서도 세심하게 챙겨주는 매력도 있거든요. (잠시 침묵) 또 규식이 형한테는 제가 없으면 안 될 거 같기도 하구요. 제가 형을 잘 아니까요. 규식이 형을 잘 모르고 성격 안 맞는 사람이 활동지원사로 오면… 형이 너무 힘들 거 같아요.”
그럼 도대체 언제까지 이규식 곁에 남겠다는 걸까.
“이젠 그런 거 생각 안 하려구요. 일단 뭐… 할 때까지 해야죠.(미소)”
한참 김형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규식에게 물었다. 왜, 무엇이 좋아서, 김형진과 10년을 함께했느냐고 말이다. 이규식은 멋쩍게 웃으며 “그냥… 서로 시간이 맞으니까 하는 거지…”라고 퉁쳤다. 역시 무뚝뚝한 사람이다.
김형진은 섭섭한지 “형, 그게 다야? 좀 길게 말해봐”라고 이규식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규식은 멋쩍은 건지 부끄러운 건지 옆에서 웃기만 했다. 그러자 김형진이 우주에 관한 한 이론을 끌어다 설명했다.
“우주에서는 서로 멀리 있는 별은 더 빨리 멀어지고, 가까운 별일수록 천천히 멀어지거든. 신기하지? 형, 우리도 멀어지면 그만큼 빨리 멀어질 거야. 그러니까 우린 가까이 붙어야 돼. 형도 기억하고 있어.”
부끄러운지 이규식은 웃기만 할 뿐 별말이 없었다. 이규식은 손님인 나를 위해 소고기를 준비했다. 밥은 새로 하지 않고 햇반을 내놨다. 바깥 활동이 많아 한번 밥을 하면 버리는 경우가 많아 늘 햇반만 먹는다고 했다.
소고기를 굽고, 햇반을 데우고, 김치를 내놓고… 이 모든 걸 김형진이 했다. 청소를 하고 설거지도 했다. 이규식이 용변을 봐야 하면 김형진이 그를 끌어안고 번쩍 들어 화장실로 데려갔다. 잠옷을 갈아입히고, 이규식을 침대에 누이고, 이불도 여며줬다. 이 모든 건 활동지원사의 업무였고, 김형진이 10년간 해온 일이기도 하다.
그날 밤, 김형진은 자기 방을 손님인 나에게 양보했다. 그러곤 자기는 이규식의 침대 밑 방바닥에 누웠다. “어차피 저는 깊이 잠들지 못한다”면서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습관대로 일찍 일어났다. 안방으로 가보니 이규식과 김형진은 어젯밤 그 모습 그대로 자고 있었다.
김형진이 이규식의 말을 PPT 화면에 새긴 첫날, 나는 속으로 “기술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봤을 때 “저건 10년 세월의 힘”이라 여겼다. 김형진과 이규식을 알고 지낸 지 3개월. 이젠 조금 알겠다.
한 인간의 말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고 전달하는 밑바탕에는, 함께 보낸 세월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한 청년의 깊은 고뇌와 선택, 그리고 인간적 연민과 연대가 있다는 걸 말이다. 어떤 이의 말과 심정은 연민과 사랑, 관심 없이는 통역이 불가능하니 말이다.
창대한 우주를 동경했으나,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서 한 중증 장애인의 일상을 지원하며 살고 있는 김형진. 그의 작은 방 책꽂이 한편에는 칼 세이건이 쓴 《혜성》과 함께 《천문학 사전》이 꽂혀 있었다. 그는 여전히 넓은 세계를 동경하는 듯했다. 그 책을 한번 만져보고 이규식의 집에서 나왔다.
어제처럼 날씨는 아침부터 푹푹 쪘다. 문득 어젯밤 김형진이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올랐다.
“규식이 형이랑 같이 별을 보려고 천체망원경을 하나 샀어요. 제주도에 있는 우리만의 숙소인 삼달다방에 설치해 뒀는데요, 곧 제주도로 여행 가서 규식이 형이랑 우주의 별을 볼 생각입니다. 디게 재밌을 거 같아요.”
집으로 가는 길. 두 사람이 망원경에 눈을 대고 별을 보는 제주도의 밤 풍경을 상상해봤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