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 논란이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번질 전망이다.
지난달 용산어린이정원(서울 용산구 용산동5가)이 윤 대통령 부부 모습이 담긴 색칠놀이 도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알려져 큰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소셜미디어에 최초로 알리며 비판한 시민이 지난 2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했다. 8일 현재까지도 출입 거부를 당해 일시적 제한이 아닌, 사실상 ‘출입 정지’를 당한 상황이다.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출입 제한 조항’ 규정에 따라 김 대표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아한 지점이 있다. 위 ‘출입 제한 조항’은 특정 행위 혹은 특정 물품 반입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기관의 요청에 따라 특정한 ‘사람’의 출입 제한을 명시하고 있는 것.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문을 열고 겨우 두 달 만인 지난달 10일, 오직 ‘출입 제한 조항’만을 새롭게 추가하기 위해 규정을 개정했다.
출입 제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조건이 무엇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특정 기관의 요청에 따라 임의로 일반 시민들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을 새롭게 만들어, 언제든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수 있게 됐다.
‘블랙리스트’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출입거부를 당한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대표와 함께 용산어린이정원에 출입한 사람들. 이날은 김 대표가 윤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발견해 사진을 찍은 날이다.
국토교통부(장관 원희룡)는 지난 5월 4일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용산공원 반환부지 중 일부를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이곳은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후에는 일본군이 주둔했고, 해방 이후로는 미군기지로 활용돼 120여 년 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았다.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대표는 지난 2일 용산어린이정원을 찾았다. 김 대표는 그동안 미군기지 내 토양오염 문제를 지적하며, 환경 안전성을 이유로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중단을 촉구해온 시민운동가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온라인 사전 예약을 거쳐야 방문이 가능하다. 다만, 방문 이력이 있을 경우엔 현장 등록 후 즉시 입장도 가능하다. 당시 김 대표는 현장 등록으로 입장을 시도했는데, 돌연 휴대전화로 이런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예약신청이 불가합니다.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김 대표는 이미 이전에 용산어린이정원을 다섯 차례나 방문한 이력이 있었다. 당황한 김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 정문에 서 있는 안내 담당자에게 다가갔다. 출입 거부 사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김 대표의 말문을 막았다.
“위의 방침입니다. 이유를 말할 수 없습니다.”
용산경찰서 정보과의 한 형사가 우회적으로 답을 알려줬다.
“김 대표는 (이전에) 용산어린이정원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 SNS(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평온을 해쳤다.”
김 대표는 그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시물을 찬찬히 돌이켜 보았다.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게시물은 하나뿐이었다. ‘색칠놀이’ 사진. 그 도안은 지난해 12월 경기 용인시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리트리버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김 대표는 해당 사진을 개인 페이스북에 올리며 대통령실이 주최한 ‘특별전시’를 비판했다.
“용산어린이정원 특별사진 전시장은 온통 윤석열과 김건희 사진뿐이다. 놀라운 것은 윤석열 김건희 색칠하기 5종이다. 소름이 돋는다.“(7월 23일 김 대표 페이스북 게시물 중)
대통령실은 지난 6월 9일부터 용산어린이정원 잔디마당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 타이틀은 ‘국민과 함께 시작한 여정’.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활동 사진을 전시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미니 탁구, 링 던지기, 색칠놀이 등의 체험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말 여러 소셜미디어에서 ‘용산공원에서 아이들 색칠하라고 준 것’이라는 제목으로 김 대표가 찍은 색칠놀이 사진이 공유됐다. 많은 언론사가 해당 사진을 인용하여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아동을 상대로 ‘대통령 우상화 교육’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제가 용산어린이정원 안에서 찍은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사진을 (SNS 통해서) 알렸던 걸 (LH 측에서) 불편하게 생각해서 출입 거부를 했다고 이해했습니다.”(지난 4일 김은희 대표 전화 인터뷰)
진실탐사그룹 셜록도 윤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를 직접 확인하고자 지난 1일 오전 9시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했다.
노란색 구조물로 만든 특별전시장이 정원 잔디밭 위에 외딴섬처럼 덩그러니 설치돼 있었다. 노란색 철제 구조물에는 “함께 만드는 길. 큰 꿈과 희망을 품은 어린이를 환영합니다”란 표어가 쓰여 있었다. 그 옆으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국정활동 모습을 도안으로 한 5종의 그림이 차례대로 걸려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두 문을 활짝 열어놓은 캐비닛이 보였다. 열려 있는 캐비닛 문 사이로 익숙한 그림이 보였다. 김 대표가 사진으로 찍었던 문제의 윤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도안. 색칠되지 않은 새 그림이 캐비닛 안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전시장엔 기자 외에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다. 한 직원만 홀로 전시장을 청소하고 있었다. 기자가 그에게 “사람들이 특별전시장을 많이 찾아오는지” 물었다. 직원은 “아이들보다 주로 커플들이 구경하러 많이 찾아온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오늘 처음 방문한 관람객인지” 묻자, 직원은 “맞다”고 대답했다.
이번엔 “색칠놀이” 운을 띄어보았다. 그러자 직원의 얼굴색이 변했다.
“제가 할 게 많아서요.”
그 직원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묵묵히 청소를 이어갔다. 열려 있던 캐비닛 문도 꽉 닫았다.
오전 10시 30분경, 다시 한번 특별전시장을 찾았다. 이번엔 색칠놀이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었다. 나무 책상 위에 윤 대통령 부부 그림 색칠놀이 도안 한 장과 흰색 도화지 한 장 그리고 색연필이 각각 놓여 있었다.
대통령 우상화 교육이란 언론의 비판에도, 용산어린이정원은 여전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 부부 그림을 도안으로 한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실 측은 일부 언론에 “대통령 1주년 기념 사진전으로 대통령의 외교·국내 행보를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사진에 있는 도안을 몇 개 둔 것”이라며 “현장에 (그림이 없는) 빈 도화지도 있다. 그리고 싶은 사람은 여러 개 중에 선택해서 하는 거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하고 자율적으로 하게 둔 것일 뿐”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LH는 어떤 규정을 근거로 김 대표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한 걸까.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에는 “관리기관장은 반환부지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LH는 해당 조항을 근거로 김 대표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7일 기자에게 밝혔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위 ‘출입 제한 조항’ 규정은 특정 행위 혹은 특정 물품 반입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기관의 요청에 따른 특정한 ‘사람’의 출입 제한을 명시하고 있는 것. 이미 용산어린이정원 관람 규정은 다른 조항을 통해 제한 행위와 반입금지 물품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다른 기관의 관람 운영 규정과 비교하면, ‘출입 제한 조항’의 특이성은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청와대 관람 운영 규정’부터 살펴보자. 이 경우 소란, 음주, 쓰레기 투기 등 특정 행위와 인화물질, 야영용품 등 특정 물품의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용산어린이공원 관람 규정처럼 ‘기관의 요청에 따라 특정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궁·능 관람 등에 관한 규정’도 마찬가지다. 4대궁, 종묘관리소, 세종대왕유적관리소, 조선왕릉지구관리소 등이 이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이 규정 역시 고성방가, 종교집회, 무속행위 등 특정 행위와 인화 물질 및 무기류 등 특정 물품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 제한만 명시하고 있다. ‘기관의 요청에 따른 특정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대표 변호사는 “관람 질서 등을 위해 관람자의 일정한 행위를 제한할 수는 있지만 특정인의 출입을 제한할 권한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며, “해당 조항은 특정인에 대한 출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국가기관이 합리적 사유 없이 특정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임시개방구간을 관람할 국민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인권침해행위로, 국가인원위원회 진정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출입 제한 조항’을 근거로 특정 인물의 출입을 제한하는 건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개장 이후 약 두 달 만인 지난달 10일, 오직 ‘출입 제한 조항’만을 새롭게 추가하기 위해 규정을 개정했다. 개장 전후로 계속 이어져온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반대 운동이 ‘출입 제한 조항’ 신설에 영향을 준 걸로 짐작된다.
용산어린이정원은 개방 전부터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미군기지 땅이었던 용산어린이정원 부지에서 여전히 납과 수은 같은 중금속과 발암물질이 나오고 있다는 주장. 이에 일부 시민단체는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중단하고 오염물질 정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용산시민회의와 시민단체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4월 23일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반대한다는 취지로 ‘만 보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일인 지난 5월 4일에도 용산시민회의와 시민단체 녹색연합이 용산어린이정원 앞에서 개방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부모들이 동참하기도 했다. 참교육학부모회서울지부, 녹색연합 등은 지난 5월 19일 용산 어린이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염지대에서 아이들이 건강권과 안전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즉각 개방 중단을 요구했다.
대체 누가 김은희 대표에 대한 출입 거부 조치를 요청했을까. 우선 국토교통부는 LH에게 답변을 미뤘다.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공원운영과 소속 담당자는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토교통부는 용산어린이정원 관리·운영을 LH에 위탁 맡겼다”면서, “LH가 (해당 사안에 대해) 기자에게 안내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같은 날 LH에 “어떤 기관의 요청으로 김 대표의 출입을 제한했는지”, “해당 기관이 김 대표의 출입 제한을 요청한 사유가 무엇인지”를 질의했다. LH 홍보실 담당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에 근거해 김 대표의 출입을 거부했다는 사실 외에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출입 거부 조치가 ‘색칠놀이’ 사진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그동안 그가 용산어린이공원 개방 반대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다는 사실도, 갑작스레 출입제한 조항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김 대표에게 적용되기까지 있었던 일들도 그런 의심에 힘을 더해준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제한 조항’은 지난달 10일 신설됐다. 김 대표는 같은 달 23일 윤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렸다. 27일에는 용산어린이정원 폐쇄 촉구 기자회견을 또 한 차례 열었고, 이달 1일에는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2일, 김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했다.
용산어린이공원에 출입거부를 당한 사람들이 김 대표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이다. 김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시도했을 때 ‘예약불가’ 안내를 받은 사람이 본인 포함 6명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김 대표와 함께 출입거부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김 대표와 함께 용산어린이정원에 출입했던 사람들이다. 그날은 김 대표가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윤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발견해 사진을 찍은 날이다.
김 대표와 함께 지난달 22일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했다가, 최근 출입거부를 당한 A 씨는 황당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LH에 직접 문의했지만, 출입거부 사유에 대해 정확한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LH 측도) 핑계를 대고 (사유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거절할 명분이 없으니 이렇게 대응하는 듯합니다. 무언가를 숨겨야 하니 떳떳하지 못한 거겠지요.”
A 씨 역시 8일 현재까지 용산어린이정원 온라인 사이트를 통한 예약신청이 불가하다. 김은희 대표는 출입거부 사유조차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LH의 조치를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 부부를 비판했다고 해서 ‘너는 안 돼’, ‘너는 오지 마’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공공의 장소가 아닌, 마치 사유지에 못 들어오게 하는 태도로 느껴져서 굉장히 불쾌합니다.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에 불편을 끼치느냐’를 기준으로 국민을 대해선 안 되지 않습니까.”(7일 김은희 대표 전화 인터뷰 중)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