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시민에게만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제한하는 건 명백한 인권침해다.”
“용산어린이정원을 (대통령) 사유지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이하 용산시민회의)’가 10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원효로 용산경찰서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특정 시민들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제한하고 1인시위와 기자회견을 방해하는 등 민주적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규탄하기 위한 자리.
이날 기자회견의 발단에는 사진 한 장이 있다. 김은희 용산시민회의 대표는 지난달 22일 회원 6명과 함께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실이 주최한 ‘특별전시’를 보고 경악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전시, 대통령 연설문으로 시 짓기와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가운데, 윤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도안으로 한 ‘색칠놀이’까지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부부의 국정활동 모습을 도안으로 한 5종의 그림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김 대표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사진을 찍고, 이튿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이 사진은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확산되고, 기사로도 보도되며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런데 이 사실을 SNS에 최초로 알리며 비판한 김 대표가 지난 2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했다. 그는 “용산어린이정원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시도했을 때 ‘예약 불가’ 안내를 받은 사람은 본인 포함 6명으로 확인된다”고 전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달 22일 김 대표와 함께 용산어린이정원에 출입했다는 것.(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오늘(10일) 기자회견장을 찾은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당한 한 용산 주민은 “출입 제한 사실을 지난 2일 핸드폰으로 사전 예약을 신청할 때 뜨는 ‘예약 불가’ 문구를 통해 알았다”며 “당혹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온라인 사전 예약을 거쳐야 방문이 가능하다.
이후 그는 관리자에게 전화를 했지만, “대답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황당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관리자 대신 책임자를 찾았다. 하지만 “책임자가 없다, 곧바로 답을 주겠다”는 말을 한 지 8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답변은 받아볼 수 없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무슨 불순한 일을 했습니까? 마음에 안 든다고 오지 말라니, 무슨 밴댕이 같습니다.”
김은희 대표 또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에 제한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출입 제한을 당한 것이 지난달 22일 ‘윤석열 대통령 색칠놀이’ 사진을 SNS에 올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는 “누구나 SNS에 개인 의견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며, 이 때문에 입장 불가 조치가 취해졌다면 그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가 이번 출입 불가 조치를 두고 황당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질의에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에 따라 김 대표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위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에는 “관리기관장은 반환부지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출입 제한 조항’ 규정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이 조항은 특정 행위나 물품 반입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 특정 ‘인물’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출입 제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조건이 무엇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언제든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 이는 지난 5월 4일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이후 약 두 달 만인 지난달 10일 만들어졌다. 오직 ‘출입 제한 조항’만을 추가하기 위한 개정이었다. 개장 전후로 계속 이어져온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반대 운동이 ‘출입 제한 조항’ 신설에 영향을 준 걸로 짐작된다.
“제가 (윤석열 대통령 색칠놀이) 사진을 찍은 그날 함께 들어갔던 6명에 대해 ‘예약 신청 불가’가 내려진 상태입니다. 용산어린이정원을 윤석열정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발상입니다. 어쩌면 (대통령) 사유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윤석열 부부 심기를 건드리는 순간 ‘너 들어오지 마’ 하면서요.”
이어 김 대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흥행을 위해 탄생한 (용산어린이정원) 기획이 잘될 리가 없다”며, “지금은 공원 주변에 경찰들이 배치돼 있어 예산만 축낼 뿐 아니라 보안시설이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나자 김 대표는 용산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용산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용산시민회의가 용산어린이정원 정문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을 ‘미신고 집회’로 간주하고,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김 대표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저는 9년 동안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집회와 기자회견, 문화제, 1인시위 등 많은 것들을 해왔습니다. 용산경찰서와 협조가 잘됐고, 단 한 번도 출석 요구를 받아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지난 기자회견을 두고 미신고 집회라며 출두 요구를 하다니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김 대표는 그동안 미군기지 내 토양오염 문제를 지적하며,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기자회견을 이유로 경찰의 출석 요구를 받은 것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이 거부된 것 모두 “(자신이)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논란은 어느덧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민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고, 쉬어갈 수 있는 공원. 그 앞을 지키는 경찰들은 과연 누구를 비호하는 것일까.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