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어린이정원(서울 용산구 용산동5가) 정문. 그는 신분증을 제출하며, 이름 석 자를 말했다.
“김은희입니다.”
이름을 말하자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은 누군가와 무전기로 대화를 나눴다.
메고 있던 가방을 엑스레이 검사대에 내려놨다. 공항에서 받는 수하물 검사와 비슷한 절차였다. 반입금지 물품을 소지했는지 확인하는 취지. 직전 방문 때도 강도 높은 소지품 검사를 했던 터.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란 걸 직감했다.
직원은 엑스레이 검사대를 아무 일 없이 통과한 가방을 집어갔다. 가방 지퍼를 열고 소지품을 하나씩 꺼냈다.
분홍색 파일함에 담겨 있는 서류 뭉치도 하나씩 꺼내 문서를 한 장 한 장 살폈다. 용산 미군기지 내 토양오염 실태을 증명하는 자료와 미군기지의 위치를 표기한 지도였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개된 자료였다. 직원은 투명 파일에 넣어놓은 서류도 가방 밖으로 꺼내 내용을 살펴봤다. 가방 검사는 1분 가까이 진행됐다.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대표가 지난달 22일 겪은 일이다.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에선 반입금지 물품을 명시하고 있다. 주로 주류, 앰프, 확성기, 인화물질 등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물품 등이다.
종이 서류 사이사이에 ‘주류, 앰프, 확성기, 인화물질 등’을 숨길 수 있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가방 속 문서 한 장 한 장까지 검사하는 것은, 방문객에 대한 통상적인 소지품 검사와는 차원이 다른 수위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도 이달 1일 용산어린이정원을 직접 방문했지만, 소지품 검사는 ‘반입금지 물품’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
김은희 대표는 자신과 일행들에게만 유난스러웠던(?) 소지품 검사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
“7월 13일에 용산어린이정원 들어갔을 때도 가방 검사를 심하게 당했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검사하는지 지켜보겠다고 하면서, 검사대 옆에 서 있었어요. 그런데 평일 오전이라 관람객이 많이 들어오질 않아서 확인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7월 22일에 방문할 때, ‘이번에도 가방 검사를 심하게 하면 영상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들어간 거예요. 역시나 저와 함께 들어간 일행들만 유독 심하게 가방 검사를 했습니다.”
그날 요란했던 소지품 검사를 거쳐 입장한 김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발견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누리꾼 사이에 큰 화제가 된 그 사진을 언론 역시 크게 보도했고, 용산어린이정원과 대통령실은 ‘어린이를 상대로 우상화 교육을 하느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김 대표는 그날로부터 11일이 지난 이달 2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했다. 김 대표와 함께 그날(7월 22일)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한 용산 주민 5명도 출입을 금지당했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이에 대해 셜록의 취재가 시작되자,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출입 제한 조항’ 규정에 따라 김 대표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 6항)는 규정.
하지만 이 조항은 특정 행위 혹은 특정 물품 반입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람’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청와대나 궁·능 등 다른 기관의 관람 운영 규정에는 찾아볼 수 없는 규정이다. 해당 조항이 생겨난 것은 지난달 10일. 개장 후 약 두 달 만에 오직 ‘출입 제한 조항’만을 새롭게 추가하기 위해 규정을 개정한 것이다.
하지만 LH는 김 대표의 출입 제한을 요청한 기관이 어디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밝히지 않고 있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대표변호사는 김 대표를 상대로 시행한 소지품 검사를 두고 “반입금지 물품 확인을 위한 소지품 검사를 사실상 압수수색에 준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건 헌법상 규정된 영장주의에 반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또한 A 변호사는 “김 대표의 출입을 막은 ‘출입제한 조항’은 법리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며, “차별행위라는 건 장애, 병력, 성별 등 어떤 사회 구성원 집단이라는 신분을 이유로 하는 행위인데, 해당 규정은 사유조차 명시하지 않아 오히려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기자는 10일 LH에 “어떤 규정에 근거해 김 대표를 상대로 수위 높은 가방 검사를 진행했는지” 질의했다. 11일 LH는 “보안검색은 운영업체 재량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특정 입장인에 대한 보안검색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검인이 체감하는 차이는 주관적일 수 있음을 양해해달라”고 답했다.
또한 출입제한 결정에 대해서는 지난 7일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에 근거해 김 대표의 출입을 거부했다는 사실 외에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대답한 바 있다.
최근 김은희 대표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려면, 김 대표가 그동안 용산 지역에서 해온 일들을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15년부터 용산 미군기지의 완전한 반환을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왔다.
첫 번째는 주민소송이었다. 김 대표는 용산 주민 33명 등과 함께 2015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다. ‘용산 미군기지를 원래 계획대로 이전하라’는 취지의 소송이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방부는 미 국방부 장관과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한미연합군사령부(이하 한미연합사) 잔류를 결정했다. 2004년 체결된 용산기지이전협정(Yongsan Relocation Plan, YRP)에 따르면, 한미연합사는 원래 2008년까지 경기 평택시로 옮겼어야 했다. 2004년 협정 내용에 따라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하라는 게 주민들의 요구였다.
하지만 법원은 주민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2018년 최종 패소와 더불어 1000만 원 상당의 소송 비용까지 물어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방부가 소송 비용을 청구했지만, 약 4년을 버텼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올해 1월, 다시 한 번 청구서가 날아왔다.
“다행히 3~4일 만에 돈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뜻이 모이는 걸 보고 엄청난 힘을 받았습니다. 결국에는 국민들이 무엇이 옳은 건지 알고 스스로 힘을 모아 증명해주셨거든요. 정부에서 보낸 청구서가 우리에게 시련을 줬지만, 우리는 오히려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정권은 우리를 누르고 싶었겠지만, 우리는 절대 굽히지 않았습니다.”
용산 미군기지 부지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전후로 본격적으로 반환됐다. 반환된 부지는 윤 대통령에 의해 “정치적인 이유로” 화제에 오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난해 6월 시범 개방도, 올해 5월 취임 1주년을 맞아 실시된 용산어린이정원 상시 개방도 그랬다.
윤석열 정부의 ‘속전속결’ 개방 정책은 토양오염에 대한 우려를 그대로 남겨둔 채 진행됐다. 원래 기지를 반환받기 전에 먼저 환경 조사를 하고 미군과 정화비용을 협상해야 한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국제적 관행인 ‘오염자 부담 원칙’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용산공원은 정화비용 협상과 정화 절차를 미제로 남긴 채 시민들에 우선 개방됐다.
미군기지 내 토양오염은 악명 높다. 2019년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에서는 ‘다이옥신’ 오염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됐다. 다이옥신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RAC)에서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한 맹독성 발암물질이다.
김 대표가 오랫동안 감시해온 용산 미군기지 ‘캠프킴’에서도 다이옥신이 검출됐다. 캠프킴은 용산어린이정원과 겨우 1㎞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제가 용산어린이정원에 들어가는 목적 자체가 다이옥신이 검출된 장소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가까이서 확인하고 싶어서예요. (용산어린이정원과) 굉장히 인접해 있는 곳인데 어떻게 처리해놨을까, 그것부터 알아내야겠다 싶어서 들어간 거예요.”
용산어린이정원 내에서도 토양오염 실태가 확인됐다. 2021년 한국환경공단이 미군과 합동으로 수행한 ‘환경조사 및 위해성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필드에선 토양 1㎏당 유류 오염 물질인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기준치의 36배(1만 8040㎎ 검출)를 넘겼다.
장군숙소 구역에서도 TPH와 중금속 물질인 아연이 각각 기준치의 29.3배, 17.8배 검출됐다. 야구장 부지에서는 TPH가 8.8배, 발암 물질인 비소가 9.3배나 기준치보다 많이 검출됐다.
이에 김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중단하고 오염물질 정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용산시민회의는 시민단체 녹색연합과 함께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일인 지난 5월 4일 용산어린이정원 앞에서 개방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부모들과 손을 잡기도 했다. 참교육학부모회서울지부, 녹색연합 등은 지난 5월 19일 용산 어린이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즉각 개방 중단을 요구했다. 지난달 27일에도 개방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했고, 이달 1일부터는 용산어린이정원 정문 앞 1인시위도 시작했다.
“용산어린이정원 안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토양오염 실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들은 저희를 ‘환경괴담 유포자’ 취급하지만, 저는 정말 그들이 걱정돼서 알려주고 싶어요. ‘위험합니다. 마스크 끼세요.’ 정문 앞 1인시위를 매일같이 하는 건 방문객들 가까이에서 토양오염의 위험성을 알려주기 위한 거예요.”
매일 아침 1인시위를 시작한 뒤로, 김은희 대표에게는 ‘불쾌한’ 일들이 자꾸 생겼다. 지난 6일에는 용산경찰서 경찰들이, 1인시위를 마치고 귀갓길에 오른 김 대표의 뒤를 따라왔다.
“처음엔 경찰이 따라오는 줄 몰랐어요. 1인시위를 마치고 지하철역 안으로 이동했는데, 경찰 두 명이 뒤에 와 있었어요. 혹시나 나를 따라온 건지 확인하고 싶어 다시 지하철역 밖으로 나가봤는데, 경찰들도 다시 따라 나왔습니다.”
김 대표는 자신을 뒤따라온 경찰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경찰들은 지난 7일 김 대표가 탑승한 차량의 번호판을 촬영하기도 했다. 경찰의 ‘채증활동규칙’에 따르면, 집회 또는 시위 현장 등에서 ‘불법행위’가 있어야 경찰은 촬영, 녹화 등의 채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불법행위가 없었는데도, 그저 김 대표가 탄 차량이라는 이유로 사진을 촬영한 것. 심지어 그 차는 김 대표의 차도 아니었다.
“월요일(7일)은 용산어린이정원 휴관일이라서 시민들이 많이 볼 수 있게끔 도로변에서 1인시위를 했어요. 1인시위 마치고 지인 차를 타고 돌아가려는데, 경찰이 차량 번호판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차를 왜 찍냐고 항의하자, 경찰은 ‘김은희가 탄 차이기 때문에 번호판을 찍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삭제하라고 항의했고, 그 자리에서 경찰이 두 장을 삭제했어요.”
이에 대해 B 변호사는 “1인시위 자체를 불법으로 보지 않는 이상 경찰의 채증 행위는 위법”이라며, “‘경찰의 촬영행위는 일반적 인격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 제한을 수반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10일부터 이틀에 걸쳐 용산경찰서에 “경찰이 김은희 대표의 뒤를 따라다닌 이유와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경찰이 김은희 대표가 탄 차량 번호를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불법 채증이 아닌지” 등을 질의했다.
용산경찰서 수사과장은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모르는 일이다. 모르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없다. 내가 (김은희 대표를) 따라다닌 적도 없다”고 말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후 전화와 문자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김은희 대표에게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에게만 유독 과도했던 보안검색, 이해할 수 없는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제한 조치, 1인시위에 대한 감시와 채증까지. 용산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용산시민회의가 개최한 기자회견을 ‘미신고 집회’로 간주하고, 도로교통법위반으로 김 대표에게 출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중단 활동을 멈출 생각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용산은 아픔의 역사가 깃든 곳이에요. 120여 년 전엔 일본 군대가 있었고, 해방 이후엔 미군이 주둔했죠. 용산역 광장에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있어요. 많은 노동자들이 용산역을 통해서 끌려갔거든요. ‘위안부’ 할머니들도 그랬을 거예요. 용산은 역사적으로 상처와 아픔이 있는 곳이죠. 당장은 환경오염 문제로 접근하고 있지만,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하나의 작은 활동인 거예요. 이건 우리 세대가 후손들을 위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