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시민이 최소 23명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출입금지 시민들의 수는, 이로써 확인된 인원만 30여 명에 이르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논란은 이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상화 해프닝에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알렸던 시민단체 대표와, 그와 함께 용산어린이정원을 같은 날 출입한 용산 주민 5명이 출입금지 당한 사실을 지난 8일 최초로 보도했다.
대통령경호처는 지난 14일 “(출입금지 조치의 이유는) 색칠놀이와 무관하며, 불법적인 행위가 확인된 당사자에 대해 대통령 경호·경비 등을 고려해 통제했다”고 밝혔지만, 이들의 불법행위가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용산어린이정원 측이 근거 삼은 ‘출입제한’ 규정은 7월 10일 신설됐다. 그리고 해당 규정이 만들어진 바로 그날, 대학생 단체 수십 명도 출입을 금지당했다. 셜록은 23명이 실제로 출입금지 메시지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고, 해당 단체는 그 수를 40여 명으로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 중 대다수는 이전에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해본 적도 없었다.
앞서 “불법적인 행위가 확인된 당사자”에 대해 출입을 통제했다는 대통령경호처의 해명. 그렇다면 한 번도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한 적 없는 대학생 수십 명이 단체로 출입을 금지당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은 7월 초 용산어린이정원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사전 방문예약을 신청했다. 대진연 환경 동아리 ‘푸름’ 소속 7명과 노래 동아리 소속 8명을 비롯한 40여 명. 방문 예약일은 7월 11일. 대진연 소속이라는 점은 밝히지 않았다.
용산어린이정원은 방문일 6일 전까지 온라인 사전예약을 거쳐야 방문이 가능하다. 예약 날짜와 시간을 골라, 신청인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를 제출해야 한다. 신청은 최대 10명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다.
7월 11일 용산어린이정원 방문을 신청한 대학생 40여 명은, 방문일 하루 전인 7월 10일 오후 6시경 돌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관련기관 요청에 의해 용산어린이정원 입장이 불가함을 알려드립니다. 관람규정 안내 링크 첨부.”
김수형 환경 동아리 푸름 대표는 출입금지 안내 문자를 받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진연 3박 4일 워크숍 행사 중 2일차 화요일(11일) 일정이 용산어린이정원 답사였습니다. 1일차 월요일(10일) 행사를 끝내고 회원들끼리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오후 6시경 동시다발적으로 용산어린이정원 측의 ‘출입금지’ 안내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진연 소속 회원 40여 명이 동시에 출입금지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환경 동아리 소속 7명을 대표해 용산어린이정원에 사전 예약신청을 했다. 김 대표는 “출입 거부 사유를 알기 위해 용산어린이정원 측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노래 동아리 소속 대학생 A 씨도 7월 10일 출입금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A 씨는 노래 동아리 소속 8명을 대표해 용산어린이정원에 사전 예약신청을 했다.
“대학생 수십 명이 용산어린이정원 방문을 신청하니, (용산어린이정원 측에서) 신원을 조회해본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대진연 소속이라는 점을 밝히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사전 예약신청을 한 학생 다수를 동시에 출입 거부할 수 있을까요?“
셜록은 출입금지를 당한 대학생들의 수를 직접 확인했다. 18일 현재까지 설문을 통해 확인한 출입금지 인원은 총 23명이다. 이들은 모두 7월 10일 이후로 18일 현재까지 출입금지 상태에 놓여 있었다. 셜록은 이들이 받은 ‘입장불가’ 문자메지시를 확인했다.
용산어린이정원 측이 출입 거부의 근거로 삼은 규정은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규정’ 제5조(관람신청 및 입장) 6항. “관련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예약신청 또는 현장접수를 받은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7일, 위 규정을 근거로 대학생들의 출입을 제한했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LH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한 유지 관리 및 운영을 위탁받았다.
‘출입 제한’ 규정은 7월 10일 신설됐다. 지난 5월 4일 용산어린이정원이 개방된 지 겨우 두 달 만에 만들어진 조항. 용산어린이정원 측은 오직 ‘출입 제한’ 조항만을 새롭게 추가하기 위해 규정을 개정했다. 그리고 ‘출입 제한’ 규정이 신설된 바로 그날, 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을 상대로 바로 적용됐다.
‘출입 제한’ 규정은 그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조항은 특정 행위나 물품 반입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 특정 ‘인물’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 심지어 출입 제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조건이 무엇인지도 밝혀져 있지 않다. 특정 기관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수 있는 ‘블랙리스트’ 조항인 것이다.
김수형 대표는 용산어린이정원 측의 출입 거부 사유를 이렇게 추측했다.
“대진연 대학생들은 그동안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많이 해왔습니다. 이태원 참사,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고속도로 문제 등을 두고 관련기관에 항의방문을 하거나 성명 발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었죠.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입장을 보이는 활동을 한 게 주된 출입 거부 사유라고 생각합니다.”
환경동아리 푸름 소속 조안정은 씨는 “블랙리스트”를 언급했다.
“대진연 회원들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도 나가고, 대자보를 쓰는 등 활동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이런 학생들 중심으로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거부하니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가 떠올랐습니다. 공원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잖아요. 누군가는 갈 수 없게 만든 상황 자체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셜록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소셜미디어에 알렸던 김은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대표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을 금지당한 사실을 지난 8일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 <‘윤석열 색칠놀이’ 제보자들, 용산정원 출입금지 당했다>)
김은희 대표와 함께 7월 22일 용산어린이정원을 출입한 용산 주민 5명도 출입을 거부당했다. 이날은 김 대표가 윤 대통령 부부 ‘색칠놀이’ 프로그램을 발견해 사진을 찍은 날이다.
대통령경호처가 해명을 내놓았지만, 아무것도 해명되지 않고 의혹만 더 키우는 모양새다. 대통령경호처는 14일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 환경부와 함께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제한 조치 관련하여 색칠놀이 도안 온라인 공개를 사유로 추정해 보도하고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불법적인 행위가 확인된 당사자에 대해 대통령 경호·경비 및 군사시설 보호, 용산어린이정원의 안전 관리 등을 고려해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경호처는 이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기자는 17일 대통령경호처에 새로 질의했다. 대학생 40여 명이 ‘대통령경호처의 요청에 따라’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금지를 당한 건지 물었다.
하지만 대통령경호처 공보 담당자는 17일 기자에게 “개인정보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기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다만 “’색칠놀이’와 용산어린이정원 출입 제한은 일체 관련이 없음을 거듭 밝힌다”는 입장만 강조했다.
용산어린이정원 운영을 위탁받은 LH에도 “어떤 기관의 요청으로 대학생 40여 명의 출입을 거부했는지”, “해당 기관이 출입거부를 요청한 사유가 무엇인지” 질의했다.
LH 홍보실 담당자는 “용산어린이정원 출입제한과 관련하여 관계 기관의 요청에 따라 시스템만을 제공 중이며, 구체적인 현황 등은 파악하고 있지 못함을 알린다”고 답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일 논평을 통해, ‘색칠놀이’ 제보자의 용산어린이정원 출입금지 조치를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폭로한 시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집행했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안”이라며 “공공시설에 범죄자도 아닌 일반 시민의 출입을 막은 이유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진보당도 지난 14일 논평을 내고 대통령경호처의 해명을 비판했다. 진보당은 “(대통령경호처는) 입만 열었을 뿐, 해명도 설명도 전혀 되지 않았다”면서, “‘불법행위’가 무엇인지 ‘대통령 경호·경비’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되물었다.
이어 진보당은 용산어린이정원 측의 ‘출입 제한 조항’ 규정에 대해 “특정한 행위나 물품이 아닌 특정인 자체에 대해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덧붙였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 [기사 수정 : 10월 18일 오후 3시] 최초 기사에서 “김수형 대표는 환경 동아리 ‘푸름’ 소속 9명을 대표해 용산어린이정원에 사전 예약신청을 했다“고 서술했으나, 보도 후 재확인 결과 김 대표는 9명이 아닌 7명을 대표해 예약신청을 한 것으로 확인돼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