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시피, 저도 사람이잖아요. 근데 저한테는 (버티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어요.”
지난 5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한 카페에서 사회복무요원 이효재(가명, 23세) 씨를 만났다. 효재 씨는 까만 마스크를 쓰고, 검은색 상의와 바지에 까만 슬리퍼를 신고 카페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와 대화를 시작하고 몇 분이 되지 않았을 때 알 수 있었다. 효재 씨의 마음도 새까맣다는걸. 그는 우울증 환자다.
대화할 때 효재 씨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반드시 한숨이 놓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악성 민원인 같은 시민들을 대할 때 기분이 어땠나요?”
“하… 그게…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하…
짜증이 나죠.”
한 문장이 끝나려면 시간이 꽤 걸렸다. 그때마다 잦은 한숨이 방해했기 때문이다. 또 어떤 감정이 물밑 듯 밀려올 때는 말을 멈춰야 했다. 까만 눈동자는 초점이 없을 때가 많았다.
효재 씨는 지난해 8월부터 경기 여주시에 있는 한 지방공기업에서 사회복요무요원 생활을 시작했다. 병역판정검사 결과 4급 판정을 받으면 보충역으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다. 한때는 방위병, 공익근무요원 등으로 불렸던, 사회복무요원이 그들이다.
효재 씨는 최근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우울증 증세가 심하다. 효재 씨는 그는 “이 상태를 견디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말한다.
매년 평균 13명의 사회복무요원이 자살한다. 병무청 자료를 보면, 2015~2020년 사이 복무 중에 자살한 사회복무요원은 매년 9∼19명에 이르렀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7년 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최준 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준 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주민센터는 그에게 사람과 대면하는 민원 업무를 맡겼다.(관련기사 : <스물한살 최준이 남긴, 한 번도 신지 못한 운동화>)
최준 씨와 꼭 닮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효재 씨다. 둘은 모두 복무기관에서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그로 인해 우울증이 발병하거나 악화해 자살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이 둘의 결정적 차이는, 생사(生死)에 있다.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살았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효재 씨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뭘까.
효재 씨는 19살 때인 2019년 3월 처음 병역 판정 신체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7급(재신체검사)이었다. 다시 받은 검사에서 4급 보충역 판정이 나왔다. 사유는 ‘경계성 지능 및 지적장애‘였다.
지난해 8월부터 사회복무를 시작한 그에게 주차관리 업무가 맡겨졌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차장에 있는 관제실에서 CCTV를 보고 있다가 ‘상황’이 생기면 밖으로 나가 처리한다. 차량이 들어오면 주차료 할인 혜택 대상인지 살피기 위해 시민들의 신분증 등을 확인한다.
효재 씨가 특히 힘들어하는 업무는 차량 통제다. 주차 공간이 부족할 때, 진입하려는 시민을 막는 과정에서 폭언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거의 하루에 4~5번 사람들이 짜증을 내거나 언성이 높이는 걸 들어야 합니다. 가장 심할 때는 오일장이 열릴 때예요. 그때는 정말 (주차공간이 없는데도) 너도나도 막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막아야 해요. ‘싸가지가 없다‘, ‘너는 엄마아빠도 없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효재 씨는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참다 참다, 제가 폭발해서 화를 낸 적도 있어요. 대응 매뉴얼이요? 그런 거 받아본 적 없는데요. (복무기관 쪽에서는) 그냥 ‘싸움만 만들지 말라‘는 식이에요.”
결국 복무한 지 3개월 만에 효재 씨에겐 마음의 병이 생겼다. 지난해 11월 찾은 정신과 병원에서 우울증을 진단받은 것.
출근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턱 막힌 채 짜증이 솟았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복무기관 재지정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 병무청 복무지도관과 면담을 신청했다. 지난 3월 8일, 면담 자리에서 효재 씨가 재지정을 원한다고 호소하자, 복무지도관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복무지도관 : “이런 얘기를 하면 뭐하지만, 봐보세요. 사진을 한번 보여드릴게요. (이 사진은) 요원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소집돼서 세 번이나 이렇게, 정신과 진료받으면서 이러한(자해를 한) 요원이 있어요.”
효재 씨 : “네.”
복무지도관 : “그런데 이 요원이 근무 못 한다고, 바꿔달라고, 일반행정(기관)으로 바꿔달라고 하는데, 실제로 요건이 충족이 안 되다 보니까 안 됐어요. (…) (효재 씨는) 복무기간 재지정 사유에는 지금 해당이 되지 않아요, 지도관이 그래서 갑갑한 거예요. 요원도 갑갑하시죠?”(당시 대화 녹취록)
사진을 본 효재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해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사진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효재 씨를 무력감에 빠뜨린 건 ‘무조건 안 된다‘는 복무지도관의 태도였다.
“병무청에서 ‘도와줄 수 없다, 자해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보다 더 심하지 않으면 시정 안 해주겠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너는 무슨 짓을 해도 바꿔줄 수 없다’고 협박당하는 느낌이었어요.”
면담 바로 다음 날, 효재 씨는 복무지도관의 부적절한 언행을 국민신문고에 신고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 4월 4일, 효재 씨는 복무기관 재지정을 신청했다. 그로부터 약 2주가 지난 4월 20일, 병무청으로부터 ‘불승인‘을 통보를 받았다.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사회복지시설 혹은 유치원 초, 중, 고 학생 활동 지원 분야에 한해서 질환으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은 사람으로 한정하고 있어 복무기관을 재지정할 수 있는 임무에 해당하지 않는다.(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규정 제35조9항제4호)
위 규정에 따르면 복무기관 재지정을 승인받기 위해서 첫째, 사회복지시설이나 교육 관련 시설에서 복무해야 한다. 둘째, 정신질환으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효재 씨 사례는 첫 번째 기준부터 충족되지 않는다. 효재 씨는 일반 행정기관에서 복무 중이기 때문이다.
효재 씨는 우울증을 6개월가량 앓았다. 우울증은 지난해 11월에 발병했고 재지정 신청은 지난 4월에 이뤄졌다. 문제는 효재 씨가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지속할 수 없었다는 거다.
“치료비가, 많이 부담돼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6월 28일, 효재 씨는 복무기관에서 또 한 번 큰 상처를 받았다. 효재 씨가 지각한 것으로 오인한 직원이 효재 씨에게 욕설과 함께 폭언을 쏟아낸 것.
직원 : “뭐 하라면, 뭐 하나 해라 하면, 그냥 하면 되지. 계속 토 달고. 어? 너 이때까지 내가 ‘뭐 해!‘ 하면 그냥 ‘예’ 한 적 없어. 내가 ×발 니한테 보고받고 일해야 되냐? (…) 내가 분명히 신뢰를 줘야, 너를 믿어야, ×발 내가 말 안 한다 했지?”
효재 씨 : “주임님, 근데 자꾸 말끝마다 ×발 붙이는 건 아니지 않으세요?”
직원 : “내가 말끝마다 ×발 했냐? ‘×랄한다’ 했지. 그게 ×발이냐?“
효재 씨 : “알겠습니다. 제가 죄송합니다.”(대화 당시 녹취록)
효재 씨의 복무기관 재지정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하은성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 사무처장은 병무청에서 같은 법령의 다른 조항을 적용해 효재 씨의 재지정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도 설명했다.
“재지정 사유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질병 또는 심신장애 등으로 복무가 불가능하다고 지방병무청장이 판단한 임무”(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규정 제35조9항제5호)
“복무기관 재지정에 대해 다룬 제35조에는 일명 ‘기타’ 조항이 있어요. 다른 호에서 열거한 재지정 사유가 아니더라도, 지금 ‘복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승인해 주는 조항입니다. 그러나 병무청이 이 ‘복무가 불가능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효재 씨는 병무청의 복무기관 재지정 불승인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하 사무처장의 말처럼,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규정 제35조9항제‘5호‘를 적용해 복무기관을 재지정해달라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결과는 다시 한 번 ‘부결’이었다.
일명 기타 조항이라는 ‘5호’는 대체 어떨 때 적용될까. 병무청 관계자는 지난 9일 셜록과의 통화에서 “해당 규정(9항제5호)은 너무 형편이 어려워서 치료받고 싶어도 치료를 못 받는 경우 등 기관장이 판단하기에 정말 부득이한 때에만 적용되는 규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병무청에 접수된 복무기관 재지정 요청은 1152건이며 이 중 재지정이 이뤄진 경우는 1051건이었다. 재지정 요청이 수용된 1051건 중, 효재 씨처럼 일반행정기관에서 복무하는 사람 중에 ‘질병을 사유로 재지정‘이 이뤄진 건수는 12건에 불과하다.
병무청 관계자는 “질병을 사유로 복무기관 재지정을 요청한 경우(신청 건수)는 따로 집계하고 있지는 않고, 재지정 요청이 받아들여진 경우(수용 건수)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효재 씨가 민원을 제기한 국민신문고 답변에서, 병무청은 복무지도관이 ‘자해 사진‘을 보여준 것이 문제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효재 씨는 해당 지도관으로부터 직접 사과를 듣지 못했다. 인권위 진정 결과 역시 기각이었다.
복무기관 재지정이 어렵다면 업무 변경이라도 돼야 하는데, 효재 씨는 여전히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 효재 씨에게 욕설 섞인 폭언을 한 상급자와는 소속 팀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같은 건물에서 근무 중이다.
“저도 조용히 문제 안 만들고 살고 싶어요. 근데 계속 벼랑 끝으로 내몰리다 보니까, 여기저기 문제를 제기하게끔 만들잖아요. 제게 일어난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껴요.”
인터뷰 내내 효재 씨는 벼랑 끝에 선 듯 위태로워 보였다. 민원인이 화를 내거나 욕을 해도 참아야 한다. 상급자가 욕을 해도 ‘죄송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죽을 것 같지만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 효재 씨의 소집해제는 내년 5월 말이다.
효재 씨와 헤어지기 직전에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나중에 혹시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효재 씨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저도 사실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관심이 많거든요. 아직 사람을 많이 만나는 건 좀 버겁지만…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어요.”
읽고 쓰는 일에 관심이 많은 청년. 힘든 시기를 잘 버텨서 미래를 그려보고 싶은 청년. 모든 치료에는 적절한 시기, 즉 ‘골든타임‘이 있다. 어쩌면 ‘벼랑 끝에 몰렸다’고 느끼는 지금이 이 청년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일지 모른다.
취재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