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들의 죽음은 누락됐을 것이다.
사회복무요원이었던 최준(사망 당시 21세) 씨는 2016년 6월 복무 중에 사망했다. 그가 복무한 서초1동주민센터는 우울증이 심한 준 씨에게 민원인을 상대하는 업무를 맡겼다. 준 씨는 민원인의 폭언을 듣다가 주민센터를 뛰쳐나가 한강으로 향했고, 이틀 뒤 반포대교 북단 인근 한강 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관련기사 : <스물한살 최준이 남긴, 한 번도 신지 못한 운동화>)
과거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불렸던 사회복무요원은 병역판정검사 결과 4급 판정을 받아 보충역으로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이들이다.
최준 씨의 엄마 최명희(58세) 씨는 아들이 죽고 1년 뒤인 2017년 6월 서초구청 홈페이지에 아들의 죽음을 조사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당시 조은희 서초구청장(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이런 답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조은희 서초구청장입니다. (…) (고인의 죽음은) 당시 수사기관에서는 위에서 제기한 부모님 의견을 포함한 가족 참고인 조사와 현장조사, 과학수사를 통해 질병에 의한 사유로 종결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준 씨의 죽음을 개인적 일로 치부하는 답변. 오래도록 최준 씨의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아들의 죽음 이후 3년 동안 몸과 마음이 무너져 약에 의지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누군가 진실을 알려줄 거라고.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이 철벽과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힘을 모아준다면 진실은 세상에 알려질 겁니다.”(최명희 씨 블로그 글 2019. 12. 30.)
최명희 씨는 아들의 죽음이 사회적 결과임을 알리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했고,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언론사와 인터뷰에 나섰다.
그 결과 7년 만에 최준 씨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또, 최준 씨처럼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사회복무요원이 있다는 것 역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엄마가 7년 동안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올해 사회복무요원이 복무 중 몇 명이나 자살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병무청이 사회복무요원의 자살 관련 통계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역 군인은 자살 등 사망 현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방부가 매년 자료를 공개한다. 국민들은 언제든지 부처별 통계를 모아놓은 웹 사이트 ‘e-나라지표‘에 접속해 ‘군 사망사고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집계 대상에 사회복무요원은 포함되지 않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달 17일, 병무청에 ‘사회복무요원의 사망 현황을 알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묻는 질의서를 전송했다.
병무청 측은 지난달 28일 회신한 답변서에서 “국회 요구 및 정보공개 청구 등 요청이 있으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 국방위원회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이 따로 자료 요청을 하거나, 누군가 정보공개 청구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거다.
실제로 2015~2022년 사이 병무청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살펴본 결과 2018, 2019, 2021년엔 ‘사회복무요원 자살자 현황‘이 누락됐다.
자살 원인별 현황이 연도별로 누락된 경우도 많았다. 병무청은 2014년 국정감사 기간 국회에 사회복무요원 자살자 현황을 제출할 때, 자살 원인도 분류해 함께 제출했다. 원인은 ▲신변비관 ▲정신질환 ▲미상 등으로 분류했다. 그해 6월에 이뤄진 국회 업무보고에서 ‘사망자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살 원인 분류 역시 그해 국회의원이 자료 제출 요구가 없으면 누락되기 십상이었다. 최준 씨가 복무 중에 사망한 2016년이 그랬다. 몇 명이 자살했는지만 공개됐고, 자살 동기 분류는 빠졌다.
무엇보다 병무청이 분류한 자살 원인 중에 ‘복무와의 연관성‘은 없다. 대표적으로 2014년 국회에서 ‘사회복무요원 자살사건 관련 진상조사 실시 및 처리내역’ 제출을 요청하자, 병무청은 ‘실시 내역이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 사망자는 직무와 관련성이 없이 퇴근 이후 발생하여 진상조사 실시 등 내역은 없음”
퇴근 이후에 자살했다면 모두 복무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차치하더라도 ’2014년을 제외한 나머지 연도에 발생한 모든 죽음이 복무와 관련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셜록은 지난달 17일 병무청 측에 ‘최근 10년간(2013~2023) 병무청에서 사회복무요원 자살 사건을 진상 조사한 적이 있는지’ 서면으로 질의했다. 병무청은 서면 답변서에서 사건 조사는 경찰의 역할이며, 병무청에서는 ‘사실 확인‘만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사회복무요원 복무 중 사망(자살 포함)한 경우 사망 원인, 동기, 경위 등은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조사하고 있음. 병무청에서는 복무지도관과 복무기관 담당자가 복무 관련 서류 검토 및 복무기관 직원, 동료 사회복무요원 면담 등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하고 있으며 복무기관의 복무관리 이상 여부 확인, 순직 관련 유족 안내 등을 하고 있음.”
이에 대해 하은성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 사무처장은 지난달 28일 셜록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사실상 병무청이 책임을 경찰 측에 떠넘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병무청은 결국 자체적인 진상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진상조사는 고 최준 씨의 사례처럼 온전히 유족의 몫이 됩니다. 경찰이 늘 유족의 요청을 잘 들어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 자살로 종결 짓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자살의 경우 타살 가능성 등 사망 원인에만 초점을 맞춰 진행하는 경찰 수사를 넘어, 업무와 자살 사이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조사기구가 2018년 출범한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규명위)‘다. 군사망규명위는 유족의 진정을 접수해 군인들의 사망사건을 진상조사 해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설 기구가 아니라 오는 13일 활동이 종료된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은 군사망규명위의 조사 대상이 된 적도 없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상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탓이다. 결국 유족이 스스로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야 하지만, 개인의 힘으론 역부족이다.
지난 7월 25일, 한 지역의 교육지원청에서 복무 중이던 사회복무요원 김유철 씨(가명, 사망 당시 21세)가 기관 건물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김유철 씨의 모친인 김희정(가명) 씨는 지난달 28일 셜록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들의 장례까지 미루고 관할 경찰서와 복무기관에 아들의 죽음을 조사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무도 내 요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경찰은 이미 단순 자살로 모든 수사를 종결했다“며 “특히 복무기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만 알 길이 없어 속만 태우다 결국 미루던 장례를 마쳤다“고 호소했다.
2015년 이후 매해 적게는 9명, 많게는 19명의 사회복무요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해 평균 13명(2015~2022년). 병무청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와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공개된 자료를 셜록이 종합한 결과다.
사회복무요원들의 죽음은 왜 이렇게 쉽게 누락되는 걸까. 사회복무요원들이 처한 현실은 왜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은성 사무처장은 사회복무요원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사회복무요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통 이렇잖아요. ’어딘가 하자 있다’, ‘약하다’, ‘현역병에 비해 꿀을 빤다(편하게 지낸다)’ 등 남성 중심 사회에서 2등 시민처럼 취급받습니다. 이런 상황이 사회복무요원이 처한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했던 배경이라고 봐요.
사회복무요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현역병을 무시하거나 현역병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 아닌데, 현역병의 문제가 먼저 해결된 다음에야 사회복무요원의 차례가 온다고 말하는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요.”
사회복무요원이 권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도 짚었다.
“사회복무요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병역법의 적용을 받는 민간인’이라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군인도, 노동자도 아니라는 거예요. 사회복무요원의 이중적 지위가 우리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복무요원이 복무기관 내 직원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가정해 볼게요. 가해자인 직원은 군법으로도, 그렇다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도 처벌받을 수 없어요. 사회복무요원이 완전한 군인도, 그렇다고 노동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복무기관에서 민원인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보호를 받지 못하고, 복무기관에서는 오래 근속할 직원도 아니기에 그냥 방치하는 것이죠. 동료로도 보지 않는 거예요. 병무청은 규정 개정을 통해 복무기관 직원의 폭언이나 부당지시가 발견되는 경우 기관에 불이익을 줄 수 있게 됐다고 하지만, 민원인의 괴롭힘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어요.”(관련기사 : <민원인의 식칼 위협까지… 나는 ‘최전방 방패’였다>)
사회복무요원의 죽음이 누락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사회복무요원의 자살을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병무청은 매해 사회복무요원 자살자 현황을 공개하고 자살 동기 파악 의무화해야 한다.
하은성 사무처장은 유족이 원할 시에 죽음의 원인을 조사하는 제3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무지도관이 조사 주체가 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복무지도관은 1명당 몇백 명의 사회복무요원을 관리하기에 내용을 잘 모를 수밖에 없고, 복무기관 담당자는 당연히 복무기관의 책임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사실확인을 할 것입니다. 제3기관에서 독립적으로 사실조사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3기관이 자살뿐만 아니라 괴롭힘, 자살 시도 등도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살의 경우, 동료 사회복무요원, 복무기관 직원에 대한 기초 사실관계 조사, 지인 및 유족 조사 등을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셜록은 최준 씨와 닮아 있는 상황 속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효재(가명, 23세) 씨의 상황을 보도했다.(<관련기사: 민원 업무하다 우울증 생겼는데… “자해해도 소용없다“>)
‘경계성 지능 및 지적장애‘로 4급 판정을 받은 이효재 씨는 경기 여주시에 있는 한 지방공기업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주차 통제 및 관리 업무를 맡은 그는 업무 수행 중에 민원인을 상대한다. 그는 “민원인이 폭언을 할 때면 (자살) 충동을 느낀다“며 “복무기관 재지정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이효재 씨는 복무기관에서 수행 중인 업무가 우울증을 발병 및 악화시켰다며 복무기관 재지정을 신청했지만 병무청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복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회복무요원은 이효재 씨만이 아니다.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은 지난 5월, 사회복무요원 350명을 대상(소집해제자 23명 포함)으로 복무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실태조사 결과에서 ‘죽음의 신호‘가 나타났다.
응답자 중 64%(약 224명)는 복무 중 괴롭힘에 노출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에서 복무기관 직원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약 61%(약 136명)로 가장 많았다. 최준 씨, 이효재 씨처럼 복무기관 이용자 또는 민원인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우는 24%(약 53명)로 그 뒤를 이었다.
괴롭힘으로 인해 자해나 자살 등을 고민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무려 28%(약 62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괴롭힘을 겪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설문한 결과, 이효재 씨처럼 ‘복무기관을 바꾸고 싶다’고 응답한 경우는 46.7%(약 105명)에 달했다.
사회복무요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4급 사유 업무 거부권 ▲복무기관 긴급 재지정권 등 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급 사유 업무 거부권’이 병역법에 명시되면, 최준 씨처럼 우울증이 심한 사회복무요원이 민원인 상대 업무에 배정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사회복무요원은 신체질환 혹은 정신질환 등 4급 판정의 근거가 되는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병역법에 4급 판정의 원인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해, 복무 중에 질환 악화를 막자는 것.
이와 함께 대책으로 논의되는 게 ‘복무기관 긴급 재지정권‘이다. 사회복무요원은 병무청에 복무기관 재지정을 요청할 수 있다. 여기에는 한 가지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복무기관의 장이 재지정 사유를 확인하는 과정. 병무청에 재지정 요청서를 송부하는 사람은 사회복무요원 당사자가 아니라, ‘복무기관의 장’이다.
긴급 재지정권은 복무 중 괴롭힘이 인정된 경우, 질병 또는 심신장애 등으로 복무가 불가능한 경우 복무기관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재지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요 골자다.
“실태조사 결과,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복무 중에 고통을 겪는 사회복무요원이 정말 많았습니다.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질환이 악화될 수 있는 업무는 복무 중에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합니다. 또, 사회복무요원에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조항을 적용하는 법 개정도 하루빨리 이뤄져야 합니다.”(하은성 사무처장)
최준 씨의 어머니 최명희 씨가 2019년 12월 30일, 블로그에 남긴 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제 아들의 죽음은 지나간 과거가 아닙니다. 미래 여러분의 세상입니다.”
최명희 씨의 말처럼 사회복무요원의 자살은 과거 최준 씨만의 일이 아니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이다. 현재를 바꾸고 달라진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움직여야 한다.
취재 주보배 기자 treasure@sherlockpress.com
사진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